각방 예찬 -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부 침대에 관하여
장클로드 카우프만 지음, 이정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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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적인 공간은 역시 침대가 있는 침실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쓴다는 것은, 육체적 관계 이상의 깊은 애정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파트너와 같이 쓰는 침대는 성역이며, 신성시되어 왔습니다. 동시에 침실에서의 배신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불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공간 역시 침실입니다. 사람들에게 배우자와 각방을 쓰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 이상이 "절대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침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도 한 방에서 잠을 자야 원만한 파트너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침대를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불화는 파트너 관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코를 너무 골아서, 이불을 너무 가져가서,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아서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매일 밤 잠을 설치고,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침대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과거와 달라진 개인에 대한 인식은, 점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것에 대한 회의감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전국수면재단 연구에 따르면, 한 방에서 잠을 자긴 하지만 침대를 따로 쓰는 부부가 전체의 25%에 달하며, 침실을 따로 쓰는 부부는 10%에 달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변화하고 있습니다.

층간소음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층간소음 분쟁이 어느 한 시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디어나 문화적 이유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층간소리가 소음이라고 받아들이면서부터였습니다. 과거에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는 당연한 소리였지만, 그것이 지금은 소음입니다. 침대를 사용하는 문화에 대한 변화도 이와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과거 결혼문화에서 부부가 되는 순간, 개인으로서의 침대 사용방식은 모두 사라지고 부부 공통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가 된 이후에도 개인의 삶의 방식을 유지해야 합니다.

잘 풀리는 부부 생활이란, 한 사람이 배우자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는 방식을 계속 새로이 만들어 가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흔적을 찾아내는 방법도 배워 가는 기나긴 이야기다. 서로 내밀하고 강렬하게 다가서는 장소인 침대는 상황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 분명히 드러낸다. 최선 또는 최악을 향해가는 그 변화를 말이다. - p.59


침대에서 잠을 자는 모습은 그 사람의 개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안경을 쥐고 자는 사람, 옷을 다 벗고 자는 사람, 침대 위에 물건을 마구 올려놓고 잠을 자는 사람, 이불에 주름이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 이런 수없이 많은 개성이 부부가 되는 순간, 일정 부분을 상대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사랑에 불타오르는 연애시절, 신혼시절엔 자신의 모든 모습을 포기하더라도 상대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행복했지만, 그것이 평생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개인성은 다시 고개를 들고, 파트너의 개인성과 격돌합니다.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의 개인성이 조화롭게 맺어진다면 천생연분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문화적으로 각방을 쓰는 것은 커플의 종말이며,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참고 살라고 압박을 가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각방을 쓰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고 정신-육체 건강을 다 챙기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다고 조언합니다. 침실에서 파트너에게 불만이 있다면, 한 개의 이불에서 두 개의 이불로 바꿔보고, 한 방의 한 개의 침대에서 한 방의 두 개의 침대로 바꿔보고, 그래도 안되면 두 개의 방으로 바꿔도 된다고 말합니다. 상대의 코골이에 스트레스를 받고 화풀이하며 싸우는 것보단, 각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며 사랑의 키스를 나누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파트너에게 사랑을 표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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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에 묻는다. 대형마트의 캐셔, 공장의 노동자, 대학원생, 거리의 청소부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인가? 국회의원의 자격, 대통령의 자격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오직 일정 이상의 나이만이 조건이다. 누구나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불가능하다. 돈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가 국민 전부를 대변할 수 있는가? 국민 다수가 변호사인가? 민주정의 기본적인 원칙은 민중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기본 원칙‘인 자유가 취해야 할 두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유의 한 형태는 다스리고 또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적 자유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재선의 동기가 없는 의원들은 선거로 선출되는 지금의 의원들처럼 국회 업무를 팽개치고 지역구에서 재선 활동에 전념하지도 않을 것이고, 서민들이 하루빨리 처리되기를 바라는 민생 법안을 계속 미루지도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조항이나 지나치게 복잡한 세제 관련 법안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될 것이며, 연말에 도매금으로 수백 건씩 처리되는 법안들은 진지한 심의를 위해 처리 건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의회는 전문가 집단의 특권적 공간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진정한 민주적 권력체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를 생각해보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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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들 - 존엄한 죽음을 위한 안내서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유은실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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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교수는 환자를 병명으로 지칭합니다. 그 순간, 인간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병에 걸린 단순한 생명체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접하고, 그만큼 죽음을 접하는 의사들이 의사생활을 버티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 때 한 학생이 용감하게도 환자에게 직접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환자는 웃으며 답해 줍니다. 그 순간, 다시 한 인간이 그 자리에 살아 숨쉽니다. 영화 패치 아담스의 한 장면입니다.

누구나 죽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에게 판단력과 결정력이 없다고 단정짓고 환자의 삶을 빼앗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 없이 요양원에 보내는 것, 아이의 치료를 부모가 거절하는 것, 환자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거나 환자와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합니다. 우리는 영화 속의 지도교수처럼, 그 사람이 앓고 있는 병이 마치 그 사람 자체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책의 저자 데이비드케슬러는 '죽음의 5단계'로 유명한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제자이자 호스피스 전문가로, 죽음을 대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해 죽음과 마주한 사람의 위엄을 손상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저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책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분명 중환자실적이기보단 호스피스적이지만, 의학적 처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엄 있게 살아야 하듯이 죽을 때도 누구나 위엄을 잃지 않아야 한다. 위엄 있게 죽는다는 것은 삶이 그러하듯이 죽음도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엄 있게 죽는다는 것은 늘 그렇듯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 자신이 된다는 의미다. - p.252


데이비드 케슬러가 말하는 존엄한 인간의 죽음은 환자는 살아 있는 존재로 대우받아야 하며, 어떤 식의 보살핌을 받을지 결정하는 데 참여해야 합니다. 지식이 충분하고 자상하며 배려심 있는 사람이 돌봐줘야 하며, 홀로 외롭게 죽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죽음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아이들도 가족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도록 참여시켜야 합니다. 희망의 대상은 바뀌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며, 완치에서 편안함으로 목적은 바뀌더라도 계속 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명 아름답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죽음의 이야기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봅니다. 구의역 사고에서 우리는 죽음이 존엄하기는 커녕 매우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삶은, 죽음이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손주와 자식들, 파트너가 보는 와중에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것. 사랑을 기반으로 한 죽음은 N포세대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존엄하게 대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최소한 죽음만큼은 평등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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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4-1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주에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면회를 다녀왔어요
여러가지 호수로 목숨만 연명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존엄은 느낄 수 없었고.. 진정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왜 우리는 살았을때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 돈 걱정 없는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부채 관리 전략
백정선.김의수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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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빚쟁이'는 신용카드를 무절제하게 사용하거나, 유흥에 재산을 탕진하거나, 대출을 대출로 막다가 도망다니는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실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시민들은 모두 빚쟁이입니다. 대학생들을 위한 학자금 대출이 있고, 군인을 위한 대출도 있으며, 결혼식을 하기 위한 대출도 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물건을 살 때 할부구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주택을 사기 위해 빚을 졌을 것입니다. 사업을 하며 잘나가는 사람들도 많은 빚이 있습니다. 빚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빚의 일정 부분은 자본주의 사회를 견인하는데 필요한 요소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업을 세울 대출을 받는 것, 자신과 가족이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 주택대출을 받게 해 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 더 나은 미래를 가정하여 빚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지 못하는 현실, 제품을 만들어도 내수시장이 몰락해버린 현실,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택 구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마주한다면, 빚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것입니다.

대출의 어두운 면은 최근 주택시장에서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주택 분야는 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주택 자산 급락의 피해는 주로 저소득층에 집중되었다고 말합니다. 집값이 하락할 때, 자산이 많은 계층은 별 피해를 입지 않는 반면, 자신이 적은 계층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가격 하락으로 인해 가치가 '제로'가 되지 않는 이상 남아있는 가치가 있으며, 남은 자산의 우선권은 금융권, 부자, 정부 등에 있기 때문입니다. 빈자는 몰락하고, 부자는 남은 자본으로 싼 값에 투자를 할 여력이 있습니다. 결국 집값이 요동치면 부의 불평등화는 더욱 가속화됩니다.

역설적이지만,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되는 것이 꼭 부자에게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코스타스 라 파비차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평가하며, 서민들의 빚 때문에 나라, 더 나아가 전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현상은 유례없는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1%의 부자들이 나머지 99%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한국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경제에서 작은 지분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가난하고 직업 없는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자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한 것은, 빈자의 몰락이 결코 부자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암 세포가 사람을 죽이는 법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개개인에게 개인의 소득을 초과하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으며, 저소득층부터 고소득층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우성은 이를 '목돈사회'로 규정합니다. 성인이 되어서 독립하기 위해선 주거보증금, 권리금, 대학등록금 등 한번에 큰 돈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빚을 져야 합니다. 복지 시스템은 선진국 대비 형편없는 수준이다 보니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많은 빚을 지고 대출이자를 간신히 갚아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금리가 오른 순간, 집값이 떨어진 순간이 사망 선고와 다름없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집니다.

생각할 여유와 결심하는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청년 세대의 자립을 방해한다. 개인은 용기를 잃는다. 인간 정신의 세포분열은 활동을 멈춘다. 사회는 활력을 잃는다. 이것은 민주주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민주주의는 본디 통치의 방식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노예제도가 있었다. 노예는 민주주의의 시민이 되지 못한다. -《목돈사회》p.18


많은 젊은이들이 희망과 미래를 포기하는 현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그것을 해결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되서 정년을 보장받거나, 대기업에 들어가 한번에 많은 돈을 쌓아두지 않으면 미래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는 갈수록 벌어져 현재는 무려 3배에 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2등 시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은 강박적으로 스펙 쌓기에 몰입하고 있고, 연애, 결혼 등을 포기합니다.

최근 뉴스에서 가계 대출이자가 이자소득을 추월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5년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갈수록 많은 가계에서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폭탄은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책의 제목처럼, 폭탄돌리기의 한도를 최대 5년으로 봅니다.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서 살아남으라는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광범위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혼이나 대학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바꾸고, 체면 때문에 과도하게 지출되는 경조사비를 줄이고, 사교육비나 부동산 투자, 보험료에 관한 지식을 익혀야 합니다. 가계부채의 폭발과 경기침체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의 흐름을 이해하고, 대출을 최대한 적게 받으며 합리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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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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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의사가 되고자 했다. 단순히 공부를 잘 했다는 이유로, 또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의사가 되지 않았다. 그는 삶을 알고자 했고, 죽음을 알고자 했다. 그는 사람을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더 편하고 돈을 잘 버는 의학분야를 선택할 때, 그는 신경외과의 길을 택했다. 다른 부위의 손상보다도, 뇌나 신경의 손상은 사람의 정체성을 근원적인 관점에서 흔들리게 한다. 훌륭한 동기, 뛰어난 교육, 치열한 노력은 남자를 크게 성장시켰다. 물질적 보상은 그가 바란 목적은 아니였지만, 그의 성취를 나타내는 지표로 삼기엔 충분했다. 그는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가 될 수 있었고, 그 목전에 있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들은, 그리고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이 일한다. 레지던트는 말할 것도 없고, 교수가 되더라도 업무의 강도는 혹독하다. 그런 방식의 성장만이 훌륭한 의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적게 벌면서, 더 여유있는 업무량으로 일할 수 있는 의학 환경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의사들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일하고 있으며, 저자인 폴 칼라니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레지던트 생활을 끝내기 전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혹독한 생활환경이 암을 만들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아니라는 근거도 없다. 단순히 운명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타이밍은 너무나 가혹했다.

폴 칼라니티는 의학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접하고, 삶과 죽음을 보았다. 신경외과를 택한 그의 바램대로 무수히 많은 환자들이 무수히 많은 삶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의학은 결코 질병을 완치시키고 과거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과학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은 초자연적, 혹은 초양자적, 초과학적인 일이었다. 그는 환자에게 자신의 질병을 이해시켜주고, 대비하게 해주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이 의학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이 말하는 그 역할을 폴 칼라니티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의사답게, 현대의학이 암 치료에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했다. 환자이자 동시에 의사로서 자신의 전담의사와 함께 폐암을 맞이했다. 약효의 성능, 부작용, 생존곡선 등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가 의사로서의 정체성에서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더 잘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치료 초기 성과가 좋아지자 그는 환자에서 다시 의사로서 부활을 꿈꿨고, 실행했다. 병이 다시 악화되자 다시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했다. 10년 이상 살지 못하게 된 이상 그가 택한 삶의 정체성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작가로서의 모습이었다.

그가 쓴 이 미완의 에세이는 죽음의 곁에서 쓴 에세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죽음 이후를 말하지는 않는다.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파트너와의 사랑, 부부 사이에 얻은 새로운 찬란한 생명이 그의 죽음 곁에 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함께 있다. 숨결은 생명이 만들어내며, 바람은 자연이 만들어낸다.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바람은 다시 우리의 몸을 통해 숨결이 된다. 아툴 가완디는 의학은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의 삶 역시, 의학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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