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는 의사가 되고자 했다. 단순히 공부를 잘 했다는 이유로, 또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의사가 되지 않았다. 그는 삶을 알고자 했고, 죽음을 알고자 했다. 그는 사람을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더 편하고 돈을 잘 버는 의학분야를 선택할 때, 그는 신경외과의 길을 택했다. 다른 부위의 손상보다도, 뇌나 신경의 손상은 사람의 정체성을 근원적인 관점에서 흔들리게 한다. 훌륭한 동기, 뛰어난 교육, 치열한 노력은 남자를 크게 성장시켰다. 물질적 보상은 그가 바란 목적은 아니였지만, 그의 성취를 나타내는 지표로 삼기엔 충분했다. 그는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가 될 수 있었고, 그 목전에 있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들은, 그리고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이 일한다. 레지던트는 말할 것도 없고, 교수가 되더라도 업무의 강도는 혹독하다. 그런 방식의 성장만이 훌륭한 의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적게 벌면서, 더 여유있는 업무량으로 일할 수 있는 의학 환경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의사들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일하고 있으며, 저자인 폴 칼라니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레지던트 생활을 끝내기 전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혹독한 생활환경이 암을 만들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아니라는 근거도 없다. 단순히 운명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타이밍은 너무나 가혹했다.

폴 칼라니티는 의학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접하고, 삶과 죽음을 보았다. 신경외과를 택한 그의 바램대로 무수히 많은 환자들이 무수히 많은 삶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의학은 결코 질병을 완치시키고 과거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과학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은 초자연적, 혹은 초양자적, 초과학적인 일이었다. 그는 환자에게 자신의 질병을 이해시켜주고, 대비하게 해주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이 의학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이 말하는 그 역할을 폴 칼라니티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의사답게, 현대의학이 암 치료에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했다. 환자이자 동시에 의사로서 자신의 전담의사와 함께 폐암을 맞이했다. 약효의 성능, 부작용, 생존곡선 등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가 의사로서의 정체성에서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더 잘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치료 초기 성과가 좋아지자 그는 환자에서 다시 의사로서 부활을 꿈꿨고, 실행했다. 병이 다시 악화되자 다시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했다. 10년 이상 살지 못하게 된 이상 그가 택한 삶의 정체성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작가로서의 모습이었다.

그가 쓴 이 미완의 에세이는 죽음의 곁에서 쓴 에세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죽음 이후를 말하지는 않는다.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파트너와의 사랑, 부부 사이에 얻은 새로운 찬란한 생명이 그의 죽음 곁에 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함께 있다. 숨결은 생명이 만들어내며, 바람은 자연이 만들어낸다.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바람은 다시 우리의 몸을 통해 숨결이 된다. 아툴 가완디는 의학은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의 삶 역시, 의학을 닮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