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헬렌 매카시 지음, 조성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그는 대단히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세계에서 인정받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지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이 나올 당시의 서구 독자들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헬렌 매카시의《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거장을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줬다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헬렌 매카시는 이 거장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부터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 구성, 제작, 주제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미야자키 하야오는 많은 책들을 읽으며 자랐고, 대학을 졸업한 뒤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작품을 접한 뒤 애니메이션이 지닌 매력과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고, 동화 애니메이터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처음엔 단순작업을 많이 하는 동화작업의 특성 때문에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당시 다카하타 감독의 극장용 작품팀에 들어가면서 작품 스타일과 줄거리 구성에 활발히 참여해 실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다카하타는 선후배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스토리보드와 기획 미팅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사회생활 초기부터 활발한 노조활동을 해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치적 성향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고 훗날 세워질 지브리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애니메이터들은 계약직 노동자들이었는데, 많은 직원들이 일반적인 봉급생활자의 절반 수준의 수입에 불과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하는 수준의 작품 완성도를 위해서는 직원들의 임금체계가 변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직원을 모으고, 훈련하고 우수한 직원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 말은 그들에게 정기적인 급여를 준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전에 월급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도쿠마 서점의 끊임없는 재정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영화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문제이지만, 자신은 본질적으로 단지 관객들이 재미있게 영화를 보아주기를 바라고 작품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감독의 성장배경과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로센의 부품을 만들던 가족기업에서 성장했다보니 그의 작품 곳곳에서 비행기가 등장하며, 일본의 미나마타 항에서 발생한 수은 오염사건은『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웨일스에서 보게 된 공동체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광산노조의 모습은『천공의 성 라퓨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일은 팬을 특정 타입으로만 규정하고, 그 특정 대상만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영화를 만들지도 않고 어떻게 미리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 p.214

다양한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환경주의자적인 모습을, 페미니즘적인 모습을, 반전주의적인 모습을 찾기도 하며, 우익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마녀배달부 키키』가 미국에서 상영될 당시,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영화 상영을 보이콧하며 가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대해서도 미야자키 스타일의 우주전함 야마토이며,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의 감성으로 가득 찬, 강력한 이념적인 작품이라고 평한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이야기 전개와 미술적 재능을 겸비한 천재가 보여주는 인류문명의 기술의 폭주가 가져다주는 경고라는 평도 존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모노노케히메』에서 여주인공 산은 입가에 피를 묻히고 손에 칼을 쥔 채 자신을 지켜보는 이를 바라본다. 야생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어머니로 여기는 늑대 신 모로의 몸에 박힌 총알을 빨아내려고 했던 것뿐이다. 이런 겉모습과 진실 사이의 모순이 영화 속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 p.241

저자 헬렌 매카시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연의 힘, 억압에 맞서는 약자의 투쟁, 이상세계에 대한 추구, 사랑에 대한 영원한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술 장인이라고 말합니다. 극렬한 평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러 갑니다. 그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애니메이션들은 관객들에게 감독이 원하던 애니메이션을 통한 즐거움과 휴식을 제공해주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생각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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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의 역사
엘리자베트 바뎅테 지음, 최석 옮김 / 인바이로넷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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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하지 못하는 일이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과거 남자들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광부나 건설노동자는 물론이고 군인마저도 여성이 참여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술의 발전, 민주주의의 등장 등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여성의 권리는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그것은 곧 오랜 세월 동안 사회를 지배하던 체제인 가부장제가 붕괴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여성의 도전에 남성들은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두려워했습니다. 엘리자베트 바뎅테는 남성이 두려워하는것, 그것은 여성성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배척해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 두려운 여성성이 여성 속에 있는 여성성이 아니라,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이라는 것입니다.

왠만한 욕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남자들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너는 여자같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남성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여자같다는 말은 외형적인, 생물학적인 개념에서 여성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여성성을 의미합니다. 가부장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지배 체제에서 남성이 남성취급을 받지 못하고 여성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삽입 당하는 것, 소유 당하는 것, 성적 객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남성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여성성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어릴적부터 오줌 멀리싸기와 같은 남성성을 과시하는 남성들은 과격한 행동, 여성 멸시, 근육질 몸매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평생동안 남성성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남성들은 두 가지 형태의 여성성을 증오하는데, 하나는 여성이 지닌 여성성에 대한 증오이며, 다른 하나는 남성이 지니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증오입니다. 이 남성의 여성성은 곧 여성적인 남성, 동성애를 의미하며 동성애 공포증, 호모포비아로 이어집니다. 여성화된 남성을 통하여 일반 남성들은 자신들이 허약성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들, 즉 수동성이나 민감한 감수성 등의 여성적인 특성들이 자신 내부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동성애 공포증은 자신이 본래 갖고 있는 동성애 욕망에 대한 은밀한 공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로랑 베그의 실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동성애에 매우 비판적인 남자들을 불러서 동성애 관계를 다룬 영화들을 보여준 결과, 그런 영화를 보면서 발기를 경험할 확률은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폭력에 의한 지배도, 권력에 의한 지배도, 경제력에 의한 지배도 아닌 성에 의한 지배. 게다가 지배를 받는 쪽의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는 지배. 즉 공포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쾌락에 의한 지배야말로 궁극적 지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노그래피의 정석에는 이러한 '쾌락에 의한 지배'가 들어가 있다. 그 이유는 포르노그래피가 포르노 소비자인 남성에게서 모든 사회적인 속성을 제거한 뒤 다시금 남성성을 회복시키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근은 쾌락의 원천으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p.130

여성성에 대한 증오는 여성에 대한 증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증오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부모에게서 출발해 부모에게서 떠나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부모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성성에 대한 증오가 강하게 이어지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양육은 전적으로 여성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남성과 여성 모두는 어머니의 영향력에서만 성장하며, 부성애의 부재는 남성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남성은 어머니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면서도 자신의 여성성을 상처입혀서는 안됩니다. 남성의 여성성은 비록 사회적인 이유로 인해 숨겨야 했지만 없애선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제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등장은 결국 새로운 남성성의 필요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변혁기의 모든 것들이 그러했듯이, 이러한 요구는 다양한 형태의 반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여성들을 성적으로 갈망하면서도 결코 한 여자에 집착하지 않는 남자, 남성 동료들을 시합이나 전쟁 또는 스포츠에서만 만나는 사나이, 여성적인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냉혹한 남자 같은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한,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던 남성성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듯이 대부분의 사회가 이러한 남성의 이상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은 남성성의 전통적인 모델이 쇠퇴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남성은 더이상 여성을 지배하는 객체도 아니고, 남성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여성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사고되는 문화도 아닙니다. 때문에 새로운 남성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받아들이는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엘리자베트 바뎅테는 지적합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순전히 외향적인 사람이나 순전히 내향적인 사람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은 정신병동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순전히 남성성만을 지닌 남성, 순전히 여성성만을 지닌 여성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정신병동에 있을 것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포용하는 것. 그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어렵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닌, 이미 남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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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취약한 노동계층을 얼마나 잘 이야기할 것인지 궁금하다. 마르크스도 미성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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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밥 위에 문화를 얹은 일본음식 이야기
박상현 지음 / 따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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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한국의 거리에서 초밥집, 규동집, 일본식 선술집, 라멘집 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됬습니다. 이런 경향은 현대화와 세계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음식을 즐겨 먹은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일본의 요리에 조선의 관리들이 열광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을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식문화에 있어서는 언제나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한식점에 들려 한국음식을 먹어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본 음식을 접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일본에 가서 먹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어디에 갈 것인가? 저자 박상현은 일본의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규슈에 가라고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나라에서 음식이 가장 맛있는 지역은 수도, 혹은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경기도에 맛집이 가장 많은 것처럼, 일본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은 도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규슈인가? 규슈는 현대일본음식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지형적으로 중국, 한국, 서양의 음식문화가 들어오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고 음식이 발전하는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며 음식을 즐기는 것은 음식 그 이상의 것을 즐기는 방법입니다.

음식의 본질은 섞임과 나눔이다. 모든 음식은 퓨전 음식이며, 음식의 역사는 퓨전의 역사이다. 우리의 혀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음식의 유혹을 좇는다. 음식은 복잡한 통관 절차나 입국 심사 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짜장면뎐》p.256

아프리카TV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마추어 인터넷 방송인들의 이른바 '먹방'에 대해 외국 언론이 '푸드 포르노'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거울뉴런계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보는 포르노 시청은 보는이로 하여금 섹스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섹스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뇌가 포르노에 반응하는 매커니즘은 포르노에 대한 지각이 아니라 포르노 행위 그 자체이며, 뇌의 관점에서는 포르노 시청이 곧 포르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먹방이 푸드 포르노가 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사진들 역시 푸드 포르노와 같은 매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돈가스, 카레, 라멘, 교자, 스시, 우동 등의 음식에서부터 오코노미야키, 잔폰, 게이한, 온타마란돈 등 일본 마니아들만이 알법한 음식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의 역사를 추적하며 일본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생각까지 읽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꽤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오카다 데쓰의《돈가스의 탄생》처럼 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어렵지만, 광범위한 일본 음식을, 규슈 음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찌되었건, 규슈만 해도 그 크기가 경기도의 4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음식에 대한 칭찬을 보다 보면, 일본에 가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음식에 대한 생각도 듭니다. 일본에 대한 경쟁의식 같은건 제쳐두고라도, 식문화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밥을 이렇게 해서 좋은데, 우리나라는 왜 하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다보면 저자는 예리하게도 그러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음식을 홍보하는데 대한 방법론부터 전통시장에 대한 이야기, 일본 음식 프랜차이즈점에 대한 이야기 등 인류학적인 내용을 넘어 사회학적인 분야로까지 진출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음식에 대한 마음이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일본의 밥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아무리 허술한 대중식당이라도 밥을 미리 담아 두는 경우는 없다. 언제나 주문과 동시에 밥솥에서 담아낸다. 그래서 된장국이나 반찬을 담는 그릇에는 뚜껑이 있는 경우가 흔하지만 밥그릇에는 절대로 뚜껑이 없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고 뚜껑을 덮어 보관하는 습관만 개선해도, 우리 대중음식점의 밥맛은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 - p.323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영국요리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영국은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자가 요리하는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문화에 대한 지적을 들은 적 있습니다. 영국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도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기만 해도 부정탄다고 생각하던 문화가 존재했었고, 아직도 어느정도 남아 있습니다. 음식장사는 대충 손맛으로 승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한국 음식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음식점 폐업률 95%에 달하는 기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동네 빵집의 맛이 한국 호텔 빵집보다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한국에서 유래됬다는 기록이 있는 두부가 오늘날 일본두부의 맛이 한국두부보다 월등히 낫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책의 조언이 하나의 교훈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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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 20세기 미국 범죄소설사
레너드 카수토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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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레너드 카수토가 보여주는 장르소설사는 그 답변이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화와 소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발전했으며, 그것은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화약과 피, 연쇄살인범과 그를 추적하는 탐정, 어두운 도시와 시골풍경이 등장하는 장르소설들은 20세기 '하드보일드'로 총칭되어 미국 문화를 자극해 왔습니다. 카수토는 연쇄살인범과 가정적인 터프가이 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과 미국의 감상주의가 결합해 미국 문화의 근본적인 토대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레너드 카수토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태동기부터 현대까지 100년간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석되는 소설들은《몰타의 매》부터《양들의 침묵》까지 매우 다양한데,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미국 장르소설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분석의 묘미를 전부 즐기기 어렵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장르소설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카수토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논의를 충분히 이해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르소설들은 당대의 시대 흐름을 바탕으로 시장 논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내팽겨친 가족의 가치에 이끌리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중산층 가족이라는 이상화된 이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장르소설들은 사회에 만연해가는 공감의 부재, 동료 의식의 결핍, 가정과 직장 혹은 가족과 시장 사이의 균열의 공포를 노래합니다. 이런 현상들 속에서 악에 대항하는 하드보일드적인 주인공들은 건장하고 가부장적이면서도 가족적인, 남성입니다. 그리고 백인입니다. 감상주의와 하드보일드 소설들은 폭력을 포함한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가정을 지켜 내는 남성 원형을 탄생시킵니다. 이 헌신적이고 신사적인 남성들은 전통의 수호자이자 가정의 수호자이며, 사회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보안관이 됩니다.

뉴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세졌고, 전후 반공 정서의 많은 부분이 루스벨트의 국내 정책을 해체하려는 신흥 공화당원들의 욕망과 동일한 흐름을 형성했다. 과도하게 설정된 여성 악당들, 그리고 그들에 맞서 싸우는 감상주의적 액션 영웅들은 모두 갈수록 불안해지는 국내 정국을 반영한 가정적 테마들과, 정체를 숨기고 곳곳에 숨어 있을 불순분자들로 인해 사회질서가 교란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통합되면서 배출된 산물이다. - p.200

이런 보안관들을 위협하는 악당들, 가정과 사회, 도덕을 위협하는 악은 연쇄살인범들이며, 요부들입니다. 도덕적인 사람들의 생명을 연달아 앗아가는 연쇄살인범들, 자신의 쾌락을 쫓아 도덕적인 남성을 버리는 요부들은 하드보일드 소설 속에서 제거되어야 할, 갱생되어야 할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들은 실제 연쇄살인범들과는 다릅니다. 소설의 살인범들은 인간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임을 주장하기 위해 식인습관, 고문, 시간증 같은 성도착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가상의 연쇄살인범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산층 가족의 구성원을 위협합니다. 이 만들어진 악은 백인이 중심이 된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중산층이란 모든 것이 멀고 먼 이상향을 위협하는 상징적인 존재들입니다.

하드보일드 소설들은《양들의 침묵》에서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처럼 사회의 누구와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풍자함으로서, 미국인들의 행동양식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 문화의 근본적인 토대에 씻을 수 없는 자취를 남겼습니다. 이 말초적인 장르소설들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감상적 이미지를 통해 가족을 이해시키고 있으며, 사형제도, 복지제도, 세금제도와 같은 대중의 논의를 반영하고 참여합니다. 레너드 카수토는 한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서 장르소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통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으며,《눈물을 마시는 새》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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