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밥 위에 문화를 얹은 일본음식 이야기
박상현 지음 / 따비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일본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한국의 거리에서 초밥집, 규동집, 일본식 선술집, 라멘집 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됬습니다. 이런 경향은 현대화와 세계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음식을 즐겨 먹은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일본의 요리에 조선의 관리들이 열광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을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식문화에 있어서는 언제나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한식점에 들려 한국음식을 먹어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본 음식을 접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일본에 가서 먹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어디에 갈 것인가? 저자 박상현은 일본의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규슈에 가라고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나라에서 음식이 가장 맛있는 지역은 수도, 혹은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경기도에 맛집이 가장 많은 것처럼, 일본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은 도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규슈인가? 규슈는 현대일본음식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지형적으로 중국, 한국, 서양의 음식문화가 들어오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고 음식이 발전하는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며 음식을 즐기는 것은 음식 그 이상의 것을 즐기는 방법입니다.

음식의 본질은 섞임과 나눔이다. 모든 음식은 퓨전 음식이며, 음식의 역사는 퓨전의 역사이다. 우리의 혀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음식의 유혹을 좇는다. 음식은 복잡한 통관 절차나 입국 심사 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짜장면뎐》p.256

아프리카TV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마추어 인터넷 방송인들의 이른바 '먹방'에 대해 외국 언론이 '푸드 포르노'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거울뉴런계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보는 포르노 시청은 보는이로 하여금 섹스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섹스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뇌가 포르노에 반응하는 매커니즘은 포르노에 대한 지각이 아니라 포르노 행위 그 자체이며, 뇌의 관점에서는 포르노 시청이 곧 포르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먹방이 푸드 포르노가 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사진들 역시 푸드 포르노와 같은 매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돈가스, 카레, 라멘, 교자, 스시, 우동 등의 음식에서부터 오코노미야키, 잔폰, 게이한, 온타마란돈 등 일본 마니아들만이 알법한 음식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의 역사를 추적하며 일본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생각까지 읽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꽤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오카다 데쓰의《돈가스의 탄생》처럼 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어렵지만, 광범위한 일본 음식을, 규슈 음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찌되었건, 규슈만 해도 그 크기가 경기도의 4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음식에 대한 칭찬을 보다 보면, 일본에 가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음식에 대한 생각도 듭니다. 일본에 대한 경쟁의식 같은건 제쳐두고라도, 식문화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밥을 이렇게 해서 좋은데, 우리나라는 왜 하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다보면 저자는 예리하게도 그러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음식을 홍보하는데 대한 방법론부터 전통시장에 대한 이야기, 일본 음식 프랜차이즈점에 대한 이야기 등 인류학적인 내용을 넘어 사회학적인 분야로까지 진출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음식에 대한 마음이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안타깝게도 일본의 밥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아무리 허술한 대중식당이라도 밥을 미리 담아 두는 경우는 없다. 언제나 주문과 동시에 밥솥에서 담아낸다. 그래서 된장국이나 반찬을 담는 그릇에는 뚜껑이 있는 경우가 흔하지만 밥그릇에는 절대로 뚜껑이 없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고 뚜껑을 덮어 보관하는 습관만 개선해도, 우리 대중음식점의 밥맛은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 - p.323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영국요리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영국은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자가 요리하는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문화에 대한 지적을 들은 적 있습니다. 영국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도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기만 해도 부정탄다고 생각하던 문화가 존재했었고, 아직도 어느정도 남아 있습니다. 음식장사는 대충 손맛으로 승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한국 음식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음식점 폐업률 95%에 달하는 기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동네 빵집의 맛이 한국 호텔 빵집보다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한국에서 유래됬다는 기록이 있는 두부가 오늘날 일본두부의 맛이 한국두부보다 월등히 낫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책의 조언이 하나의 교훈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