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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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의 작성을 시작한 시간은 정확히 오후 11시 12분 입니다. 이렇게 확신하는 태도로 현재 시간을 말할 수 있는것은, 노트북에 표시된 시간이 11시 12분이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13분이 되었고, 글쓰기 버튼을 누른지 1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11시 12분이라는 사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자친구가 몰래 제 노트북의 시간을 바꿔놓았거나, 윈도우7에 오류가 생겨서 다른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다면, 저는 당연히 다른 시간에 포스팅의 작성을 시작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저는 컴퓨터에, 스마트폰에 시간을 의존하고, 1분, 1초 간격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만약 조선시대에서 태어났다면 11시 12분이나 15분이나 마찬가지로 자시(子時)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전에 태어났다면 대략적으로 11시라는 것만 알았을 것이며, 석기시대에서 살고 있었다면 태양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정도로만 시간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애덤 프랭크가 쓴 이 책의 원제는 'about time', 제목답게 시간에 대한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며, 우주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은 달과 해라는 우주에 의존해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시간의 끝을 인지했고, 시간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우주와 시간에 대해 내놓은 다양한 답변들은 오늘날 창조신화, 비창조신화와 같은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에 대해 신화 이야기들은 납득할만한 해석을 내놓았고, 자연을, 우주를, 삶 자체를 해석하는 인간의 우주론은 당시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인구 증가, 집약 농업, 환경의 혜택 등과 같은 요인이 아무리 뒷받침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사회논리를 적극적으로 조정하지 않는 한 세습적인 불평등은 생기지 않는다. 말리야우 분파는 자신이 원하는 특권을 다른 분파에게서 빼앗아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주론의 변화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을 것이다. -《불평등의 창조》p.317

우주론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합니다. 채집, 수렵 시절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던 우주론과 달리 농업 시대를 맞이한 인간들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 이야기와 같은 형태로 시간을 이해합니다. 도시가 등장하고 왕국이 건설되면서 우주론은 또 다른 변화를 맞습니다. 도시에서는 경제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력이 필요해졌고, 달력의 등장은 시간의 속성을 추상화해 새로운 시간관념을 가져오게 됩니다. 해와 달을 보며 시간을 이해했던 인간은, 이제 달력을 통해 시간을 이해합니다. 기계 시계가 발명되고 마을 중앙마다 시계가 등장하게 되자, 사람들은 시계를 통해 시간을 이해합니다. 결국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며, 인간과 공진화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계를 보고 식사시간이 되었으면 밥을 먹고, 피곤하지 않아도 시계가 잘 시간을 가리키면 침대로 갑니다.

시간에 대한 경험과 개념은 언제나 인간이 실제적인 물질과 접촉할 때 변화합니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경구는 먼 옛날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생활 등으로 인해 시간 엄수는 질서를 지키는 것과 동일시되었고, 산업혁명 이후엔 시간은 귀중한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17세기 등장한 분침은 사람의 시간을 1분 단위로 쪼개놓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공장의 시간과 일정에 맞춰야 했습니다. 이런 물질적 변화는 인간의 우주론을 재정립하는 학문적 변화를 가져오는데, 증기기관과 열역학, 엔트로피는 당시 우주에 대한 철학을 변화시킵니다. 산업시대에 등장한 뉴턴 역학으로 인해 산업사회의 문화는 인간의 시간을 재설계하여 일과 휴식, 낮과 밤의 경계를 바꿔놓았습니다. 뉴턴 역학은 절대적인 공간과 절대적인 시간을 발명했고, 시간과 공간은 스스로 실재하며, 영원히 변함이 없고, 물질과 물질의 변화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오늘날에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뉴턴 역학이 만들어낸 시간의 개념입니다.

기차와 전보가 등장하면서 점점 더 세계는 좁아졌습니다. 다른 도시까지 하루, 이틀이 걸리던 것이 두세시간으로 변경되면서, 동시성에 대한 논의가 생겨납니다. 동시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완성됩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공간, 절대시간의 개념을 폐기하고, 시공간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시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느려질수도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미래라고 여기는 다음 주 화요일은 이미 존재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습니다. 세탁기와 라디오의 등장은 빅뱅이론과 우주에 시초가 있다고 주장하는 우주론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새로운 우주론은 상상력이 가미된 이해가 필요한데, 사람들이 빅뱅이론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핵폭탄이 가져다준 놀라운 폭발력에 기인합니다.

상당수 인간의 사회적 사고의 핵심에는 오직 하나의 '지금'만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이것을 공유한다는 우리의 뇌에 박혀있는 직관적인 생각이 놓여 있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현재에 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행동한다고 느낀다. 상대성이론에서는 동시성 역시 국소적인 것이 된다. 이런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동시적인 현재, 우주만물이 경험하는 '지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충돌한다. '지금'이 없는 시간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pp.210~211

인간의 시간 변화는 우주의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있었을거란 종교의 가르침은 이제 빅뱅이론에 그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망원경의 등장, 라디오 등을 통해 전파를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은 우주의 팽창, 가벼운 원소의 존재비, 우주배경복사 등을 알아낼 수 있었고, 이는 빅뱅이론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그 이전의 시간을 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계속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이론, 다중우주론, 끈이론, 에크파이로틱 모델 등 다양한 우주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 도전적인 학자들은 시간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줄리언 바버는 시간은 하나의 '지금'에서 다른 '지금'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며, 어떤 '지금'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말합니다.

신의 시간, 뉴턴의 시간을 거쳐 아인슈타인의 시간을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시간을 해석하고, 우주를 해석합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늘날 시간은 권력을 통제하는 가장 핵심적인 능력으로 인지됩니다. 평등성을 초월하는 것은 시간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으며, 현대의 권력이란 말 그대로 시간을 사유물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넓어져 수억광년 너머의 우주를 바라보고, 다중우주나 평행우주의 개념 등이 진지하게 고려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우주론의 변화는 세탁기, 라디오, 인터넷처럼 때론 뜬금없는 변화로 인해 생겨나기도 합니다. 어떤 물질적 변화가 또 생겨난다면, 현대인의 우주론은 또 변화할 것입니다. 어쩌면, '애인을 사귀고 있는 다른 나'가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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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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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ISIL부터 오사마 빈 라덴으로 유명한 알 카에다, 그 외에도 코소보의 KLA, 레바논의 PLO, 아일랜드의 IRA, 콜롬비아의 AUC 등 다양한 무장단체들은 로레타 나폴레오니가 의사(擬似)국가라고 지칭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AK-47, RPG-7, 검은 복면 등의 공통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무력을 통해 지역권력을 행사합니다. 1994년에 멕시코에서 또 하나의 무장단체, '사파티스타 EZLN'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장단체가 흥미로운 점은, 다른 무장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총과 칼로 권력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자신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치아파스 주는 오랜 투쟁의 역사를 지닌 땅입니다. 치아파스 주의 사람들은 500년 전부터 노예제와 투쟁했고, 대 스페인 독립 전쟁에서 싸웠고, 북아메리카의 팽창 정책에 저항했으며, 프랑스인들과의 전쟁에 참여했고,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 정권을 거부했습니다. 옥수수와 커피, 소, 석유 등 매우 풍족한 자원을 생산하는 이 땅은 언제나 약자들이 살아왔고, 언제나 빼앗겼으며, 계속 싸웠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치아파스 주의 사람들 역시 세계적인 착취 구조의 희생양이 되었고, 언제나처럼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자, 치아파스 주민들은 경제적인 생존 가능성 자체가 희박해질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고, 정치조직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결성해 멕시코 독재 정부에 전쟁을 선언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치아파스 주민은 존엄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태어났으며, 1824년의 합병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탈과 반란의 긴 연쇄 고리에 의해 이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다른 사람들과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성직자들과 무장 군인들이 이 땅을 정복한 이래, 이 폭풍이 휘몰아치는 하늘 아래서는 존엄과 반란이 살아 숨쉬며 퍼져 나갔습니다. 집단 노동과 민주적인 사고, 다수결의 원칙은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전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남을 수 있고, 저항할 수 있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이 "나쁜 생각들"은 "소수의 손에 많은 것을" 이라는 자본주의 교훈에 반하는 것입니다. - pp.79~80

사파티스타는 한밤중에 산 크리스토발 광장의 정부 공관에 나타나 '라칸돈 정글의 선언'을 발표하고 정글로 돌아갔습니다. 멕시코 제도혁명당 독재 체제를 거부한 사파티스타는 결코 군사적인 능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사파티스타 공동체로 의심이 가는 마을을 공중폭격했고, 가혹한 탄압과 회유책을 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12일간의 무장투쟁을 통해 그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야 했고, 누가 보더라도 금방 진압당할 작은 해프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려 21년이 지난 2015년에도 존립하고 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펜이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사파티스타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말입니다. 사파티스타는 공동 성명과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편지를 통해 언어의 총알을 만들어내었고, 언어의 전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미디어와 서구 언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반란의 언어를 내보내며 투쟁합니다. 사파티스타는 편지의 말미에 언제나 민주주의와 정의, 자유를 외치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명령하는 사람들이 복종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회적 기획을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인 권리와 기획에 찬동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모든 기획이 지향하는 것은 반드시 정의여야 하는 기본 전제를 만들기 위해 투쟁합니다. 사파티스타가 틀에 박힌 혁명 이론과 가장 분명한 단절을 보인 것은 그들의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인데, 그들의 승리는 국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혁명가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밟아야 할 중요한 단계로 인식했다면, 사파티스타의 혁명은 어떤 특정한 사회적 기획을 가진 당이나 조직, 혹은 제휴 조직들의 승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제안들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민주작 공간의 창출이며, 그 목표에 사파티스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고 중요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기본적인 경험에 반하는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전통이나 관습 또는 권위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충분히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용을 요구하는 확실성이 우리가 경험한 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기표현은 그 뿌리에서부터 방해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자유의 조건은 늘 권력이 강요하는 규범을 광범위하고 일관되게 회의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복종》p.268

사파티스타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이 의회에 참여하고, 명령하며, 복종하는,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 독재 정부 시절보다 더 나은 경제적 환경과 복지를 제공했고, 그 결과 치아피스 주를 자치하는 정치조직이 되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입성해 정부와 아무 충돌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설하고 다시 자신들의 기지로 돌아갔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거부한 검은 복면의 무장단체가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독재적 언어도,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선진 세계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도 거부하며 투쟁하는 사파티스타의 반역적인 상상력은 94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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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창조 - 인류는 왜 평등 사회에서 왕국, 노예제, 제국으로 나아갔는가
켄트 플래너리 & 조이스 마커스 지음, 하윤숙 옮김 / 미지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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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의 기반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냐고 묻는다면, 속 시원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사회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역사의 기록이 시작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지금처럼 헌법상에서나마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인류학적 관점과 고고학적 관점을 동시에 사용해 인간 불평등 기원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혹독한 환경속에서 채집생활을 하던 시절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평등한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개개인은 완력과 지력, 민첩성 등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서로 나누며 살던 삶에서는 그러한 불평등이 불평등한 사회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자들은 평등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로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으면 넉넉하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개인적 성취는 모두의 행복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좋은 성취를 거둔 사람이 자신을 뽐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유머를 사용합니다.

이런 평등의 기반에는 샌델식 논의도 엿보이는데, 비록 인간이 힘과 지능, 민첩성 등에서 타고난 차이는 보이지만, 어떠한 사회적 성취가 개인의 우월성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요구 하는 것, 환경의 차이, 상황의 차이는 사회적 성취를 매번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개인의 우월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세 사회에 각광받는 능력이 있고, 근대사회에 각광받는 능력이 있으며, 현대에 각광받는 능력은 또 다릅니다. 마이클 조던이 말했던 것처럼, 조던의 개인적 능력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농구라는 시스템을 현대사회에서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채집사회가 평등사회를 이루었던데 반해, 농경이 시작되면서 성과 기반 사회가 일반화되었고, 사회적 불평등의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몇몇 인류학자는 풍부한 식량 자원 때문에 집단폭력이 일어난다고 보는데, 식량 자원이 풍부하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나는 공동체의 일원이자 경쟁하는 적으로서, 누가 더 높은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일반인과 명망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성과 기반 지도력 사회를 알려주는 지표는 대부분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남자 숙소의 존재인데, 마치 오늘날 군대처럼 선택받은 남자들끼리 모여 살면서 경쟁하게 됩니다. 성과 기반 사회는 씨족이나 반족이 형성되면서 시작되는데, 씨족 사회의 대표적인 의식제도 젊은이보다 연장자가 더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 전제에서 시작됩니다. 나이와 경제적 부는 개인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됩니다. 성과 기반 사회에선 다른사람을 압도할만한 규모의 파티를 주최함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아바팁 촌락에 관한 해리슨의 연구는 루소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라 할 만한 내용에 힘을 실어 주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우월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런 사람으로 대우받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에서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다. 인구 증가, 집약 농업, 환경의 혜택 등과 같은 요인이 아무리 뒷받침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사회 논리를 적극적으로 조정하지 않는 한 세습적인 불평등은 생기지 않는다. - p.317

성과 기반 사회는 세습적 불평등의 씨앗을 안고 있었고, 사회에 몇 가지 논리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세습 사회로 바뀌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주론의 수정인데, 신성한 존재라는 개념이 처음엔 이타심을 북돋우고 지위 대결을 완화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강화했다면, 그 후엔 세습 상류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조작됩니다. 이 시기의 유적을 보면 남자 숙소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신전이 들어서게 됩니다. 때문에 신전의 등장은 세습 지도력 사회의 지표로 보는데, 종교적 해석을 기반으로 특정인의 지배를 합리화한 것입니다. 성과 기반 사회는 명망가가 죽었을 때 그의 재산을 모두 파괴한 반면, 세습 사회는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도록 허용했고 세대를 거치면서 재산이 불어났습니다. 세습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노예인데, 성과 기반 사회는 포로들을 죽였거나 범죄자들을 추방한 반면, 세습 사회에서는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해 노예로 삼았습니다.

계속되는 세습으로 인해 부가 집중되기 시작했고, 이후 인간의 사회는 왕국으로, 제국으로 나아갑니다. 지위 사회는 계층 사회로 이행되는데, 계급 내혼이라는 행동으로 인해 계층은 고착화됩니다. 평등 사회에서는 빈부 격차를 용인하지 않았고 넉넉한 인심을 베풀라는 사회적 압력이 강했던 반면, 세습 지위는 빈부 격차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귀족 개념이 없는 사회라면 부에 의한 귀족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과 사회에서 개인의 성공은 그 개인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지만, 세습 사회에서 아버지의 성공은 곧 아들의 성공이 됩니다. 성과 기반 사회의 논리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규칙대로 경기를 벌이면 누구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면, 세습 사회는 개인의 노력보단 아버지가 명망가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노력을 이기는 것은 혈통인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로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속박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루소는 선언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수십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상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덕, 사업적 역량, 용맹을 높이 평가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을 용납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특성이 세습된다는 견해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p.905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의 연구는, 채집사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평등한 것도, 성과 기반 사회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불평등의 모습이 바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경우 그러한 구도들은 연결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장기적인 사회 변화, 심화된 불평등을 낳는 원천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평등을 더 중요시한다면, 그만큼 불평등적인 요소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자와 이에 반대하는 자 사이에 지속적인 투쟁이 계속되었으며, 적극적인 소수의 특권은 수동적인 다수가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오늘날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세습이 가져다주는 특권의 폐해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즉 우리 사회가 부에 의한 귀족을 허용하고 있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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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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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던 A씨는 지난해 5월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제자 릴리(가명)양이 수업 중에 질문을 자주 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반 어린이 전체가 "릴리 바보"라고 세 번 크게 외치게 했습니다. 교사 A씨는 이 외에도 릴리 양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고, 릴리양 부모는 뒤늦게 딸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고 A씨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릴리 양은 이후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습니다.

최근에 알려진 이 흥미로운 뉴스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사 A씨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는데, 한국 교육에서 수업 중에 질문을 한다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대학 입시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성공하기 위해선 학생들은 교사가 말하는 것을 그냥 듣고 외우는 기계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대학 입시를 겨냥한 정답 맞히기 교육, 문제풀이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런 식의 교육에 가장 잘 적응한 학생들은 서울대에 모입니다.

저자는 그런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성공한 승리자들 가운데서도 학점 평균 4.0 이상을 놓치지 않는 최우등생들이 과연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서울대의 최우등생들은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리더들이고, 그들은 최고의 교수진과 최고의 환경속에서 번득이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으로 지성을 갈고 닦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의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고등학교때 하던 방식 그대로 공부하면 A+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교육과정에 나오지 않은 망상을 품거나, 자신의 생각을 외쳤던 학생들의 학점은 별볼일 없었습니다.

최우등생들에게 주변 학생들 중에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냐고 물으니 대부분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런 친구들은 학점이 낮다고 증언했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보다 수용적 사고력이 높아야 학점이 높다는 이들의 고백은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높으면 학점이 낮아진다는 역설과 직결되었다. - p.40
박근혜 정부가 국정 핵심 과제로 '창조경제'를 내걸었던 것처럼,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 번득이는 창의력이 미래의 핵심 가치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창업해 새 산업을 일구기 위해, 기존의 산업에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육성하는 것이 한국 교육이 내세우고 있는 제1 목표입니다. 그러나 가장 앞에서 리더가 될 서울대 최우등생들은 A+를 받기 위해선 강의 시간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교수의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받아쓰고, 강의가 끝난 후에 재정리하면서 외우고, 시험 볼 때 그대로 옮겨적는 수용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학생들은 교수가 강의중에 했던 농담과 기침까지도 노트에 기록합니다. 대학교 학점이 졸업 이후 취업 시장에서 가지는 가치를 감안한다면,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버리고 수용적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공부를 즐기는 태도를 가져선 안 되며, 공부를 견디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특정 분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분야만 공부했다간 인생 막장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교수 스타일을 분석해 성적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고, 일정 수준 이상 깊게 공부하지 않으며, 시간배분을 칼같이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수님의 의견에 의문을 가질 시간에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것,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교수님의 의견대로 답변하는 것이 고득점의 비결입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라는 말이 있는데, 의외로 서울대 학생들은 예습은 하지 않고 복습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반해 하버드 학생들은 예습만 하고 복습은 하지 않는다고 답하는데, 이런 차이는 예습을 해야만 하는 수업은 발표나 토론을 많이 하는 종류의 수업이고, 복습을 해야 하는 수업은 교수가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학생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그냥 받아 적기만 하는 종류의 수업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한국은 항상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온 김 군은 학창 시절 우등생이었을 뿐 아니라 대학에서 전공한 신경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 인문학 분야에서 푀펠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실로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두뇌 기능뿐 아니라 신경의 작동방식, 두뇌의 세세한 부분과 그 속에 담긴 비밀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복제 가능한 지식에 지나지 않았으며, 독창적인 지성 면에서는 처참한 낙오자였다. 비정상적인 조합이나 연관성에 대한 상상력이 전무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학문 방식을 고안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형편없었다.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과학자가 실제로는 바보와 다름없는 게 아닌가! -《노력중독》p.33
저자는 만약 대한민국 교육이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진정한 인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서울대와 미시간대의 교차 연구를 통해 한국 교육은 그저 교육자의 지식을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그대로 붙여넣을 뿐인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과거 중세나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어느정도 유효한 방식이겠지만, 오늘날 디지털의 발달로 인해 기존의 지식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검색이 가능해 외우는 것이 필요없어진 상황에선 불합리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학생들은 존재하지만, 그런 가치가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들이 중요한 학창시절의 시간을 낭비하는 '바보'로 취급되는 이상, 그들의 창의성이 사회에 쓰이기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결국 학생들이 창의적이지 않은 이유는 창의적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판적 창의적 학습자는 좋은 성적을 받도록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포기합니다. 이런 수용적 학습은 결코 동양의 문화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하는데, 조선시대만 해도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교육방법을 시행했을 뿐 아니라, 동양권 학생들도 창의적인 의견을 내는것을 허용하는 환경을 만나기만 하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한다는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수가 어떻게 강의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인식은 확연한 변화를 보여준 것입니다.

서울대가 두루두루 100점, 100점, 100점을 받는 사람을 길러야 하느냐, 아니면 50점, 50점, 200점을 받는 사람을 길러야 하는 질문에 교수들의 답은 예외 없이 동일했다. "역사의 리더는 한 분야에서 탁월성을 보이는 사람들이에요. 두루두루 다 100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50점을 받더라도 어느 한 분야에서만큼은 200점을 받는 사람이 진짜 인재인 거죠." 하지만 답은 그렇게 하는 교수들도 자신의 수업에서는 모든 과제에서 100점, 100점, 100점을 받는 학생에게 A+을 주고 있지 않은가. 200점짜리 능력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100점짜리 능력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오히려 50점을 받은 과목 때문에 학점 평균이 낮아져 버려 결국 진짜 인재가 단지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취급받게 된다. - p.160
저자는 한국교육이 창의성을 허용하지 않는 여러 원인을 지목하고 있는데, 대학 교수의 경우 평가 기준에서 연구 실적은 중요하지만 강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강의에 의욕을 낼 수 없는 환경을, 또한 초, 중, 고등학교 수업에는 국가교육과정이 정해 놓은 진도라는 것 때문에 진도를 맞추기 위해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저자는 연구 중심의 교수와 강의 중심의 교수를 동등하게 대접하고, 공교육에서 자율적인 재량으로 수업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국가통합적인 진도 시스템을 버리고 교육청은 거시적인 교육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것을 주장합니다. 진중권은 게임 중독에 대한 토론에서 우리나라는 부모가 교육에 관심이 없으며, 학교에 다 맡겨놓고 학원비 대주면 부모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학교는 교육을 입시교육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진짜 교육이 비어있다고 말합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진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면, 릴리 양은 더이상 상처받지 않고 수업 중에 질문을 자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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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시민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줄여서 '재특회'는 강렬한 헤이트 스피치와 반한정서, 그리고 일본의 일베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공간에서 타자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베와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재특회는 일베와 다릅니다. 재특회는 조직화되어있고, 리더가 있으며, 많은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약자에 대한 공격을 무자비하게 펼치는 재특회와 같은 단체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언제라도 우리나라에 재특회와 같은 강렬한 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스터디 그룹인 동아시아문제연구회에서 시작된 재특회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언설과 행동으로 순식간에 유명한 단체로 부각되었습니다. 조선학교 무상교육 반대, 외국 국적 주민에 대한 생활보호 지원금 지급 반대, 불법 입국자 추방, 핵무장 추진 등 우파적 슬로건을 내건 이들은 길에서 당당히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초등학교에 난입하는 등 과격한 행보를 보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광주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서 전두환을 찬양하는 깃발을 펄럭이며 "홍어새끼들, 다 죽어라" 라고 외치거나, 이화여대에 난입해 여성혐오증을 마음껏 발산하며 학교 시설물을 부수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광경이 펼쳐진다면, 아마 일본에서의 재특회와 비슷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애국'이란 유일한 존재 증명이 되기도 한다. 18세기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 p.142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들이 재특회같은 단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로 무언가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재특회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명확한 적과 목표를 설정해줌으로서 소속감을 주고, 애국심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재특회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을 제공해줍니다. 재특회에는 놀랍게도 한국인도 있는데, 재특회를 위해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재특회 전속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 박신호씨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으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인을 혐오하는 재특회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는 오직 이곳만이 자신을 인정해준다고 말합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일본사회가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적 증오가 생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재특회가 전해주는 진실들은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바탕으로 보수파 잡지 및 미디어의 중국위협론 따위의 언설을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인터넷 정보에 불과했지만, 이를 진실로 믿고 그것을 사회에 알려야 하는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젊은이들에게 자국의 내력으로부터 생긴 문제를 은폐하는 대신 사이비 적을 제공하며 이를 민족주의적 형태로 표출하게 합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존재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저임금 노동자 및 소비자로서 그네들을 적당히 조달하면 된다고 여겨 온 전후 일본의 회사주의와 문화론의 좌우 합작의 결과 같은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우울을 느끼고 있다면, 이는 새로운 거처라 여겼던 문화 영역이 중간층의 상하 분열과 함께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네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p.140

저자가 재특회 회원들을 취재하며 자주 듣는 말은 재특회 회원들은 일반 시민을 자처하며, 재특회는 시민 단체이며, 재특회의 투쟁은 계급투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처럼, 재특회의 회원들은 대부분 번듯한 자기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길에서 마주쳐도, 친구로 지내도 아무 의심이 가지 않는 일반적인 시민들입니다. 또 이들은 기존의 보수단체, 진보단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가진 일반적인 일본 우익단체의 이미지인 군가와 검은색 자동차, 폭력단같은 이미지를 경멸하며, 전통적인 진보단체의 경우 경기호황으로 인해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퇴색해버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나치 독일을 지탱한 것이 결국 일반 시민들이었던 것처럼, 재특회 역시 이름 없는 일반인들의 기반 하에 존재합니다.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면, 30대까지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언젠가는 교외의 작은 전원주택을 살 수 있고, 정년을 맞으면 연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는 미래는 한정된 계층에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이나 하청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 관리하는 부서는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라는 점은, 사람이 물건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경제적 균열과, 전통적 우파, 좌파 단체가 제공해주지 못한 사상적 균열은, 오늘날 재특회와 같은 새로운 시민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체제는 무장을 하게 된다. 빈곤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체제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p.244

저자는 재특회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면 그 폭력적 언어에서 연상되었던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는 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저자는 파시즘에 대한 에리히 프롬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언급하며, 나치를 지탱한 것은 파시스트들이 아니라 일반 독일 시민들이었던 것처럼, 재특회를 지탱하는 것 역시 일반 일본인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람은 파시스트나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길러지며,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일본이 '낳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고는 재특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불법 이민자나 다문화가정, 여성 등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감행하는 재특회와 같은 운동이 등장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평상시에 자신도 모르게 쌓아왔던 증오가 만들어낸 우리의 과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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