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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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의 작성을 시작한 시간은 정확히 오후 11시 12분 입니다. 이렇게 확신하는 태도로 현재 시간을 말할 수 있는것은, 노트북에 표시된 시간이 11시 12분이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13분이 되었고, 글쓰기 버튼을 누른지 1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11시 12분이라는 사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자친구가 몰래 제 노트북의 시간을 바꿔놓았거나, 윈도우7에 오류가 생겨서 다른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다면, 저는 당연히 다른 시간에 포스팅의 작성을 시작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저는 컴퓨터에, 스마트폰에 시간을 의존하고, 1분, 1초 간격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만약 조선시대에서 태어났다면 11시 12분이나 15분이나 마찬가지로 자시(子時)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전에 태어났다면 대략적으로 11시라는 것만 알았을 것이며, 석기시대에서 살고 있었다면 태양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정도로만 시간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애덤 프랭크가 쓴 이 책의 원제는 'about time', 제목답게 시간에 대한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며, 우주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은 달과 해라는 우주에 의존해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시간의 끝을 인지했고, 시간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우주와 시간에 대해 내놓은 다양한 답변들은 오늘날 창조신화, 비창조신화와 같은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에 대해 신화 이야기들은 납득할만한 해석을 내놓았고, 자연을, 우주를, 삶 자체를 해석하는 인간의 우주론은 당시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인구 증가, 집약 농업, 환경의 혜택 등과 같은 요인이 아무리 뒷받침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사회논리를 적극적으로 조정하지 않는 한 세습적인 불평등은 생기지 않는다. 말리야우 분파는 자신이 원하는 특권을 다른 분파에게서 빼앗아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주론의 변화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을 것이다. -《불평등의 창조》p.317

우주론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합니다. 채집, 수렵 시절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던 우주론과 달리 농업 시대를 맞이한 인간들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 이야기와 같은 형태로 시간을 이해합니다. 도시가 등장하고 왕국이 건설되면서 우주론은 또 다른 변화를 맞습니다. 도시에서는 경제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력이 필요해졌고, 달력의 등장은 시간의 속성을 추상화해 새로운 시간관념을 가져오게 됩니다. 해와 달을 보며 시간을 이해했던 인간은, 이제 달력을 통해 시간을 이해합니다. 기계 시계가 발명되고 마을 중앙마다 시계가 등장하게 되자, 사람들은 시계를 통해 시간을 이해합니다. 결국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며, 인간과 공진화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계를 보고 식사시간이 되었으면 밥을 먹고, 피곤하지 않아도 시계가 잘 시간을 가리키면 침대로 갑니다.

시간에 대한 경험과 개념은 언제나 인간이 실제적인 물질과 접촉할 때 변화합니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경구는 먼 옛날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생활 등으로 인해 시간 엄수는 질서를 지키는 것과 동일시되었고, 산업혁명 이후엔 시간은 귀중한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17세기 등장한 분침은 사람의 시간을 1분 단위로 쪼개놓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공장의 시간과 일정에 맞춰야 했습니다. 이런 물질적 변화는 인간의 우주론을 재정립하는 학문적 변화를 가져오는데, 증기기관과 열역학, 엔트로피는 당시 우주에 대한 철학을 변화시킵니다. 산업시대에 등장한 뉴턴 역학으로 인해 산업사회의 문화는 인간의 시간을 재설계하여 일과 휴식, 낮과 밤의 경계를 바꿔놓았습니다. 뉴턴 역학은 절대적인 공간과 절대적인 시간을 발명했고, 시간과 공간은 스스로 실재하며, 영원히 변함이 없고, 물질과 물질의 변화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오늘날에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뉴턴 역학이 만들어낸 시간의 개념입니다.

기차와 전보가 등장하면서 점점 더 세계는 좁아졌습니다. 다른 도시까지 하루, 이틀이 걸리던 것이 두세시간으로 변경되면서, 동시성에 대한 논의가 생겨납니다. 동시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완성됩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공간, 절대시간의 개념을 폐기하고, 시공간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시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느려질수도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미래라고 여기는 다음 주 화요일은 이미 존재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습니다. 세탁기와 라디오의 등장은 빅뱅이론과 우주에 시초가 있다고 주장하는 우주론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새로운 우주론은 상상력이 가미된 이해가 필요한데, 사람들이 빅뱅이론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핵폭탄이 가져다준 놀라운 폭발력에 기인합니다.

상당수 인간의 사회적 사고의 핵심에는 오직 하나의 '지금'만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이것을 공유한다는 우리의 뇌에 박혀있는 직관적인 생각이 놓여 있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현재에 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행동한다고 느낀다. 상대성이론에서는 동시성 역시 국소적인 것이 된다. 이런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동시적인 현재, 우주만물이 경험하는 '지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충돌한다. '지금'이 없는 시간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pp.210~211

인간의 시간 변화는 우주의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있었을거란 종교의 가르침은 이제 빅뱅이론에 그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망원경의 등장, 라디오 등을 통해 전파를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은 우주의 팽창, 가벼운 원소의 존재비, 우주배경복사 등을 알아낼 수 있었고, 이는 빅뱅이론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그 이전의 시간을 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계속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이론, 다중우주론, 끈이론, 에크파이로틱 모델 등 다양한 우주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 도전적인 학자들은 시간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줄리언 바버는 시간은 하나의 '지금'에서 다른 '지금'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며, 어떤 '지금'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말합니다.

신의 시간, 뉴턴의 시간을 거쳐 아인슈타인의 시간을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시간을 해석하고, 우주를 해석합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늘날 시간은 권력을 통제하는 가장 핵심적인 능력으로 인지됩니다. 평등성을 초월하는 것은 시간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으며, 현대의 권력이란 말 그대로 시간을 사유물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넓어져 수억광년 너머의 우주를 바라보고, 다중우주나 평행우주의 개념 등이 진지하게 고려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우주론의 변화는 세탁기, 라디오, 인터넷처럼 때론 뜬금없는 변화로 인해 생겨나기도 합니다. 어떤 물질적 변화가 또 생겨난다면, 현대인의 우주론은 또 변화할 것입니다. 어쩌면, '애인을 사귀고 있는 다른 나'가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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