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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창조 - 인류는 왜 평등 사회에서 왕국, 노예제, 제국으로 나아갔는가
켄트 플래너리 & 조이스 마커스 지음, 하윤숙 옮김 / 미지북스 / 2015년 1월
평점 :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의 기반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냐고 묻는다면, 속 시원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사회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역사의 기록이 시작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지금처럼 헌법상에서나마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인류학적 관점과 고고학적 관점을 동시에 사용해 인간 불평등 기원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혹독한 환경속에서 채집생활을 하던 시절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평등한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개개인은 완력과 지력, 민첩성 등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서로 나누며 살던 삶에서는 그러한 불평등이 불평등한 사회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자들은 평등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로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으면 넉넉하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개인적 성취는 모두의 행복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좋은 성취를 거둔 사람이 자신을 뽐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유머를 사용합니다.
이런 평등의 기반에는 샌델식 논의도 엿보이는데, 비록 인간이 힘과 지능, 민첩성 등에서 타고난 차이는 보이지만, 어떠한 사회적 성취가 개인의 우월성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요구 하는 것, 환경의 차이, 상황의 차이는 사회적 성취를 매번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개인의 우월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세 사회에 각광받는 능력이 있고, 근대사회에 각광받는 능력이 있으며, 현대에 각광받는 능력은 또 다릅니다. 마이클 조던이 말했던 것처럼, 조던의 개인적 능력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농구라는 시스템을 현대사회에서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채집사회가 평등사회를 이루었던데 반해, 농경이 시작되면서 성과 기반 사회가 일반화되었고, 사회적 불평등의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몇몇 인류학자는 풍부한 식량 자원 때문에 집단폭력이 일어난다고 보는데, 식량 자원이 풍부하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나는 공동체의 일원이자 경쟁하는 적으로서, 누가 더 높은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일반인과 명망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성과 기반 지도력 사회를 알려주는 지표는 대부분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남자 숙소의 존재인데, 마치 오늘날 군대처럼 선택받은 남자들끼리 모여 살면서 경쟁하게 됩니다. 성과 기반 사회는 씨족이나 반족이 형성되면서 시작되는데, 씨족 사회의 대표적인 의식제도 젊은이보다 연장자가 더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 전제에서 시작됩니다. 나이와 경제적 부는 개인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됩니다. 성과 기반 사회에선 다른사람을 압도할만한 규모의 파티를 주최함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아바팁 촌락에 관한 해리슨의 연구는 루소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라 할 만한 내용에 힘을 실어 주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우월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런 사람으로 대우받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에서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다. 인구 증가, 집약 농업, 환경의 혜택 등과 같은 요인이 아무리 뒷받침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사회 논리를 적극적으로 조정하지 않는 한 세습적인 불평등은 생기지 않는다. - p.317
성과 기반 사회는 세습적 불평등의 씨앗을 안고 있었고, 사회에 몇 가지 논리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세습 사회로 바뀌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주론의 수정인데, 신성한 존재라는 개념이 처음엔 이타심을 북돋우고 지위 대결을 완화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강화했다면, 그 후엔 세습 상류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조작됩니다. 이 시기의 유적을 보면 남자 숙소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신전이 들어서게 됩니다. 때문에 신전의 등장은 세습 지도력 사회의 지표로 보는데, 종교적 해석을 기반으로 특정인의 지배를 합리화한 것입니다. 성과 기반 사회는 명망가가 죽었을 때 그의 재산을 모두 파괴한 반면, 세습 사회는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도록 허용했고 세대를 거치면서 재산이 불어났습니다. 세습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노예인데, 성과 기반 사회는 포로들을 죽였거나 범죄자들을 추방한 반면, 세습 사회에서는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해 노예로 삼았습니다.
계속되는 세습으로 인해 부가 집중되기 시작했고, 이후 인간의 사회는 왕국으로, 제국으로 나아갑니다. 지위 사회는 계층 사회로 이행되는데, 계급 내혼이라는 행동으로 인해 계층은 고착화됩니다. 평등 사회에서는 빈부 격차를 용인하지 않았고 넉넉한 인심을 베풀라는 사회적 압력이 강했던 반면, 세습 지위는 빈부 격차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귀족 개념이 없는 사회라면 부에 의한 귀족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과 사회에서 개인의 성공은 그 개인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지만, 세습 사회에서 아버지의 성공은 곧 아들의 성공이 됩니다. 성과 기반 사회의 논리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규칙대로 경기를 벌이면 누구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면, 세습 사회는 개인의 노력보단 아버지가 명망가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노력을 이기는 것은 혈통인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로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속박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루소는 선언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수십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상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덕, 사업적 역량, 용맹을 높이 평가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을 용납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특성이 세습된다는 견해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p.905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의 연구는, 채집사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평등한 것도, 성과 기반 사회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불평등의 모습이 바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경우 그러한 구도들은 연결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장기적인 사회 변화, 심화된 불평등을 낳는 원천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평등을 더 중요시한다면, 그만큼 불평등적인 요소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자와 이에 반대하는 자 사이에 지속적인 투쟁이 계속되었으며, 적극적인 소수의 특권은 수동적인 다수가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오늘날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세습이 가져다주는 특권의 폐해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즉 우리 사회가 부에 의한 귀족을 허용하고 있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