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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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던 A씨는 지난해 5월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제자 릴리(가명)양이 수업 중에 질문을 자주 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반 어린이 전체가 "릴리 바보"라고 세 번 크게 외치게 했습니다. 교사 A씨는 이 외에도 릴리 양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고, 릴리양 부모는 뒤늦게 딸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고 A씨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릴리 양은 이후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습니다.

최근에 알려진 이 흥미로운 뉴스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사 A씨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는데, 한국 교육에서 수업 중에 질문을 한다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대학 입시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성공하기 위해선 학생들은 교사가 말하는 것을 그냥 듣고 외우는 기계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대학 입시를 겨냥한 정답 맞히기 교육, 문제풀이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런 식의 교육에 가장 잘 적응한 학생들은 서울대에 모입니다.

저자는 그런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성공한 승리자들 가운데서도 학점 평균 4.0 이상을 놓치지 않는 최우등생들이 과연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서울대의 최우등생들은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리더들이고, 그들은 최고의 교수진과 최고의 환경속에서 번득이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으로 지성을 갈고 닦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의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고등학교때 하던 방식 그대로 공부하면 A+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교육과정에 나오지 않은 망상을 품거나, 자신의 생각을 외쳤던 학생들의 학점은 별볼일 없었습니다.

최우등생들에게 주변 학생들 중에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냐고 물으니 대부분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런 친구들은 학점이 낮다고 증언했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보다 수용적 사고력이 높아야 학점이 높다는 이들의 고백은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높으면 학점이 낮아진다는 역설과 직결되었다. - p.40
박근혜 정부가 국정 핵심 과제로 '창조경제'를 내걸었던 것처럼,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 번득이는 창의력이 미래의 핵심 가치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창업해 새 산업을 일구기 위해, 기존의 산업에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육성하는 것이 한국 교육이 내세우고 있는 제1 목표입니다. 그러나 가장 앞에서 리더가 될 서울대 최우등생들은 A+를 받기 위해선 강의 시간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교수의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받아쓰고, 강의가 끝난 후에 재정리하면서 외우고, 시험 볼 때 그대로 옮겨적는 수용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학생들은 교수가 강의중에 했던 농담과 기침까지도 노트에 기록합니다. 대학교 학점이 졸업 이후 취업 시장에서 가지는 가치를 감안한다면,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버리고 수용적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공부를 즐기는 태도를 가져선 안 되며, 공부를 견디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특정 분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분야만 공부했다간 인생 막장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교수 스타일을 분석해 성적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고, 일정 수준 이상 깊게 공부하지 않으며, 시간배분을 칼같이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수님의 의견에 의문을 가질 시간에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것,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교수님의 의견대로 답변하는 것이 고득점의 비결입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라는 말이 있는데, 의외로 서울대 학생들은 예습은 하지 않고 복습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반해 하버드 학생들은 예습만 하고 복습은 하지 않는다고 답하는데, 이런 차이는 예습을 해야만 하는 수업은 발표나 토론을 많이 하는 종류의 수업이고, 복습을 해야 하는 수업은 교수가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학생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그냥 받아 적기만 하는 종류의 수업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한국은 항상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다. 한국에서 온 김 군은 학창 시절 우등생이었을 뿐 아니라 대학에서 전공한 신경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 인문학 분야에서 푀펠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실로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두뇌 기능뿐 아니라 신경의 작동방식, 두뇌의 세세한 부분과 그 속에 담긴 비밀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복제 가능한 지식에 지나지 않았으며, 독창적인 지성 면에서는 처참한 낙오자였다. 비정상적인 조합이나 연관성에 대한 상상력이 전무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학문 방식을 고안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형편없었다.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과학자가 실제로는 바보와 다름없는 게 아닌가! -《노력중독》p.33
저자는 만약 대한민국 교육이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진정한 인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서울대와 미시간대의 교차 연구를 통해 한국 교육은 그저 교육자의 지식을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그대로 붙여넣을 뿐인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과거 중세나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어느정도 유효한 방식이겠지만, 오늘날 디지털의 발달로 인해 기존의 지식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검색이 가능해 외우는 것이 필요없어진 상황에선 불합리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학생들은 존재하지만, 그런 가치가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들이 중요한 학창시절의 시간을 낭비하는 '바보'로 취급되는 이상, 그들의 창의성이 사회에 쓰이기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결국 학생들이 창의적이지 않은 이유는 창의적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판적 창의적 학습자는 좋은 성적을 받도록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포기합니다. 이런 수용적 학습은 결코 동양의 문화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하는데, 조선시대만 해도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교육방법을 시행했을 뿐 아니라, 동양권 학생들도 창의적인 의견을 내는것을 허용하는 환경을 만나기만 하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한다는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수가 어떻게 강의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인식은 확연한 변화를 보여준 것입니다.

서울대가 두루두루 100점, 100점, 100점을 받는 사람을 길러야 하느냐, 아니면 50점, 50점, 200점을 받는 사람을 길러야 하는 질문에 교수들의 답은 예외 없이 동일했다. "역사의 리더는 한 분야에서 탁월성을 보이는 사람들이에요. 두루두루 다 100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50점을 받더라도 어느 한 분야에서만큼은 200점을 받는 사람이 진짜 인재인 거죠." 하지만 답은 그렇게 하는 교수들도 자신의 수업에서는 모든 과제에서 100점, 100점, 100점을 받는 학생에게 A+을 주고 있지 않은가. 200점짜리 능력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100점짜리 능력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오히려 50점을 받은 과목 때문에 학점 평균이 낮아져 버려 결국 진짜 인재가 단지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취급받게 된다. - p.160
저자는 한국교육이 창의성을 허용하지 않는 여러 원인을 지목하고 있는데, 대학 교수의 경우 평가 기준에서 연구 실적은 중요하지만 강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강의에 의욕을 낼 수 없는 환경을, 또한 초, 중, 고등학교 수업에는 국가교육과정이 정해 놓은 진도라는 것 때문에 진도를 맞추기 위해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저자는 연구 중심의 교수와 강의 중심의 교수를 동등하게 대접하고, 공교육에서 자율적인 재량으로 수업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국가통합적인 진도 시스템을 버리고 교육청은 거시적인 교육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것을 주장합니다. 진중권은 게임 중독에 대한 토론에서 우리나라는 부모가 교육에 관심이 없으며, 학교에 다 맡겨놓고 학원비 대주면 부모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학교는 교육을 입시교육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진짜 교육이 비어있다고 말합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진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면, 릴리 양은 더이상 상처받지 않고 수업 중에 질문을 자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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