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시민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줄여서 '재특회'는 강렬한 헤이트 스피치와 반한정서, 그리고 일본의 일베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공간에서 타자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베와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재특회는 일베와 다릅니다. 재특회는 조직화되어있고, 리더가 있으며, 많은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약자에 대한 공격을 무자비하게 펼치는 재특회와 같은 단체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언제라도 우리나라에 재특회와 같은 강렬한 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스터디 그룹인 동아시아문제연구회에서 시작된 재특회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언설과 행동으로 순식간에 유명한 단체로 부각되었습니다. 조선학교 무상교육 반대, 외국 국적 주민에 대한 생활보호 지원금 지급 반대, 불법 입국자 추방, 핵무장 추진 등 우파적 슬로건을 내건 이들은 길에서 당당히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초등학교에 난입하는 등 과격한 행보를 보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광주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서 전두환을 찬양하는 깃발을 펄럭이며 "홍어새끼들, 다 죽어라" 라고 외치거나, 이화여대에 난입해 여성혐오증을 마음껏 발산하며 학교 시설물을 부수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광경이 펼쳐진다면, 아마 일본에서의 재특회와 비슷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애국'이란 유일한 존재 증명이 되기도 한다. 18세기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 p.142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들이 재특회같은 단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로 무언가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재특회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명확한 적과 목표를 설정해줌으로서 소속감을 주고, 애국심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재특회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을 제공해줍니다. 재특회에는 놀랍게도 한국인도 있는데, 재특회를 위해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재특회 전속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 박신호씨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으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인을 혐오하는 재특회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는 오직 이곳만이 자신을 인정해준다고 말합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일본사회가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적 증오가 생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재특회가 전해주는 진실들은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바탕으로 보수파 잡지 및 미디어의 중국위협론 따위의 언설을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인터넷 정보에 불과했지만, 이를 진실로 믿고 그것을 사회에 알려야 하는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젊은이들에게 자국의 내력으로부터 생긴 문제를 은폐하는 대신 사이비 적을 제공하며 이를 민족주의적 형태로 표출하게 합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존재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저임금 노동자 및 소비자로서 그네들을 적당히 조달하면 된다고 여겨 온 전후 일본의 회사주의와 문화론의 좌우 합작의 결과 같은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우울을 느끼고 있다면, 이는 새로운 거처라 여겼던 문화 영역이 중간층의 상하 분열과 함께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네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p.140

저자가 재특회 회원들을 취재하며 자주 듣는 말은 재특회 회원들은 일반 시민을 자처하며, 재특회는 시민 단체이며, 재특회의 투쟁은 계급투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처럼, 재특회의 회원들은 대부분 번듯한 자기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길에서 마주쳐도, 친구로 지내도 아무 의심이 가지 않는 일반적인 시민들입니다. 또 이들은 기존의 보수단체, 진보단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가진 일반적인 일본 우익단체의 이미지인 군가와 검은색 자동차, 폭력단같은 이미지를 경멸하며, 전통적인 진보단체의 경우 경기호황으로 인해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퇴색해버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나치 독일을 지탱한 것이 결국 일반 시민들이었던 것처럼, 재특회 역시 이름 없는 일반인들의 기반 하에 존재합니다.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면, 30대까지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언젠가는 교외의 작은 전원주택을 살 수 있고, 정년을 맞으면 연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는 미래는 한정된 계층에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이나 하청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 관리하는 부서는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라는 점은, 사람이 물건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경제적 균열과, 전통적 우파, 좌파 단체가 제공해주지 못한 사상적 균열은, 오늘날 재특회와 같은 새로운 시민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체제는 무장을 하게 된다. 빈곤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체제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p.244

저자는 재특회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면 그 폭력적 언어에서 연상되었던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는 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저자는 파시즘에 대한 에리히 프롬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언급하며, 나치를 지탱한 것은 파시스트들이 아니라 일반 독일 시민들이었던 것처럼, 재특회를 지탱하는 것 역시 일반 일본인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람은 파시스트나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길러지며,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일본이 '낳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고는 재특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불법 이민자나 다문화가정, 여성 등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감행하는 재특회와 같은 운동이 등장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가 평상시에 자신도 모르게 쌓아왔던 증오가 만들어낸 우리의 과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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