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프로젝트 1 (양장 합본) 아케이드 프로젝트 1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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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시를 이해함에 있어서 언제나 벤야민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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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존 던 지음, 강철웅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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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고자 한다. 단 하나, 민주주의만 빼고. 민주주의는 왜 성역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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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와 시위의 자유 - 공익과 인권 6
안경환 외 지음 / 사람생각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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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순간엔 언제나 집회와 시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3.1 운동, 4.19 혁명, 부마 민주 항쟁, 6월 항쟁 등 다양한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도전한 프라하의 봄, 인도의 낙살라이트 운동, 1968년으로 대변되는 폭발적인 운동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권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티파티 운동, 월가 점령 시위 등의 수많은 시위는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했고 변화시켰습니다. 시민들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 독재자의 몰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더 나은 경제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고, 인종과 남녀의 평등을 주장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재특회처럼 애국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과 반핵단체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의 불가결하고 기초적인 기능요소에 속하며, 순수한 형식의 민주주의입니다. 때문에 헌법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자유권에 속합니다. 정치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시민의 권리는 민주적 개방성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특히 언론, 출판의 수단인 신문, 방송 등의 매스미디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가지는 역할과 기능은 더 중요해집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대중 봉기의 역사는 압제자에 맞선 반란과 혁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지적처럼 군중들은 공동체의 관습과 권리를 옹호하고, 적법한 행동과 불법적인 행동의 경계를 설정해 집회와 시위를 함으로써 극단적인 환경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대한민국에서 갑과 을의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도가 지나친 갑질을 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시위를 행사합니다. 집회와 시위는 많은 경우 권력에 저항하는 형태를 지니고, 권력은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은 시위대를 공공질서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며, 사회 파괴분자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정부와 언론의 표현과 이미지 만들기는 정부나 기업에 맞서는 집단의 메시지와 적법성을 약화시키며, 시위대를 길들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경찰의 폭행과 군대식 급습은 당연하게도 많은 언론의 관심과 운동가들의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안보를 빌미로 한 탄압은 경찰의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들은 시위대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자유 발언' 구역과 '시위' 구역을 만들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이들을 현장의 정치에서 격리시킨다. -《저항 주식회사》p.34

흡연권과 혐연권이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자유, 건강권과 생명권이라는 주요 권리들로 충돌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기본권의 하나이면서도 집단적이고 외부 표출적 속성으로 인하여 공공질서나 타인의 자유보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흡연권과 혐연권이 둘다 국민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혐연권이 더 우선하는 것처럼,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와, 집회와 시위로 인해 피해받지 않을 권리는,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합니다. 그러나 현재 문제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1962년에 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줄여서 집시법이며, 저자 김도형, 김승환, 권두섭, 정인섭, 정찬모 외 다수의 법학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집시법이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집시법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 대상이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명확성이 결여되어 경찰 당국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에 한총련과 민주노총의 거리행진은 경찰이 허락한 반면, 서울 용산 미8군 앞 집회는 금지통보하겠다고 한 판단은, 허용 여부를 정치적으로 판단해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집시법이 악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의 허락이라는 원칙적으로 위헌적인 문제가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집시법은 과도한 신고사항 요구와 위장집회신고 문제 등 다양한 법적 허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집시법 11조의 외교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 시위 금지 조항은 사실상 서울 도심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킬 수 있습니다. S모 재벌그룹의 경우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 외국 대사관을 건물로 유치해 시위를 원천봉쇄하기도 했습니다.

경찰관청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 시위 현장의 외곽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그곳을 경찰차로 포위하듯이 둘러쌈으로써 외부에서 집회, 시위현장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의사소통 기본권으로서의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경찰작용이다. 집시법에 이러한 침해작용에 관한 명확한 근거규정이 있을 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헌법적으로도 그 정당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 p.71

집회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평화의 기준을 정부가 집시법을 통해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자들은 하나의 집회가 형사법에 위반하는 경우 그것이 곧 비평화적인 집회가 되는 것은 아니며, 소수의 폭력적인 집단의 존재를 통하여 전체 집회가 비평화적으로 전개될 것이 예측되는 경우, 전체 집회는 비평화적 집회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경찰력이 개입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도로의 점거, 교통방해 역시 비평화적이라는 명분 하에 규제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며, 일부의 집회참여자들만이 폭력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이를 이유로 평화적인 집회참여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규모 집회는 사실상 금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의 집시법에 대한 지적 중 일부는, 헌법재판소에서도 받아들여져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결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규제들이 현실적인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집회시 소음기준 강화 적용 문제, 야간시위 문제, 경찰의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요구, 개인초상권 같은 변형적 규제들은 해결되지 못한 숙제들입니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 또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등장한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시위는, 또 다른 법적 해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 성향이나 시민들의 의식에 따라서 시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역사의 순간엔 언제나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미래에도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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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 상쾌! 통쾌한 그 과학.문화.역사로의 나들이
랠프 레윈 지음, 강현석 옮김 / 이소출판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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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를 틀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변기를 내리면 똥이 물과 함께 사라집니다. 거리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을지언정, 똥은 없습니다. 개똥이던, 새똥이던, 사람똥이던 간에 똥은 우리 시선에서 신속하게 사라집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갖춰진 것은 선진국에서도 수십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길에는 언제나 똥이 있었습니다. 상하수도 설비의 보급으로 인해 우리는 똥에 대해 별 인식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는 언제나 똥이 있습니다.

똥은 동물에게 있어서 일종의 개성입니다. 똥은 공 모양, 한쪽 면이 오목한 모양, 시가처럼 긴 원통형의 모양, 말린 모양, 세로로 홈이 패인 모양, 묵주처럼 작은 덩어리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는 모양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으며, 냄새 또한 다릅니다. 사막의 낙타들처럼 똥을 누자 마자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메마른 똥을 눌 수도 있고, 어떤 물고기들처럼 언제나 설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다양한데, 누는 자세도, 똥을 누면서 하는 행동들도 천차만별입니다. 몸은 먹는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말처럼, 똥 역시 어떤 삶을 사느냐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수도 설비를 계획할 때, 부자 동네냐 아니냐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자 동네에서 나오는 똥은 훨씬 기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화석들을 통해 우리는 선조들의 식습관은 물론, 코프롤라이트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알 등을 살핌으로써 그들의 장에 기생했던 기생충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인근의 라퀸타 지역에서 발견된 어느 고대인의 코프롤라이트는 구성 성분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어서, 현대적인 기술로 소량의 DNA표본을 추출, 그 주인공의 성별까지 판별해 낼 정도였다. - p.66

보통 사람들은 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상을 찌푸리지만, 똥은 그 이상으로 친숙한 존재입니다. 아동서적《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처럼 똥은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고양이의 똥을 활용한 커피의 예에서 보듯이 음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직접적으로 똥을 선호하는 스카톨로지는 현대의학에선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자연적인 관점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화장실에 갈때 "손 씻으러 간다" 등으로 에둘러 말하며 똥 싸러 간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걸 꺼리면서도, 똥컴, 똥개, 똥사개 등 비속어적인 요소에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층간소음같은 문제 이상으로 배변권은 사람들에게 민감한 부분입니다. 선진국의 도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슬럼 주민들이나 중간 계층의 주민들 사이에는 배변권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자주 조성됩니다. 실제로 1998년 델리 슬럼 주민 3명이 똥을 누었다는 이유로 총을 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도의 슬럼 여성들은 위생설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숙이라는 엄격한 관습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매일 새벽 2~5시 사이에 쓰레기장이나 숲에서 용변을 봐야 하고, 성추행이나 강간에 노출됩니다. 덕분에 유료화장실 사업은 제3세계 슬럼 전역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각광받습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것중 하나가 똥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십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설사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설사질환은 빈곤국가의 아동들이 가장 큰 피해자이긴 하지만, 똥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하수도 시설 노후화는 점점 심각한 문제이며, 이로 인해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똥은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해를 가져다줍니다. 때문에 똥은 인류가 살아가는 이상 언제나 도전의 대상입니다. 랠프 레윈처럼 똥을 연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똥은, 음식만큼 중요하며, 섹스보다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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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양정숙.고혜림 지음, 허달종 그림 / 콤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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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장애인 복지 시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위를 하던 그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 옵니다. 당신의 자식이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겼다는 전화였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앞에는 휠체어를 탄 자식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제 장애인 복지 시설을 찬성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반전을 기반에 둔 블랙유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인 시설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애인 시설을 반대하는 사람의 가족 혹은 친척, 혹은 친한 친구가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총수는 102만 9천명으로, 이중 88.1%인 91만 명이 교통사고, 산업재해, 불의의 사고 등의 이유로 인해 후전적으로 장애인이 됩니다. 우리나라 인구 50명 중 1명은 장애인입니다. 저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현실입니다.

김종대가 언급한 것처럼, 한국 사회는 소수 약자와 피해자에게 굉장히 가혹합니다.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멸시하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욕합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선 남자 가해자들이 강간한 것은 강간 피해자가 꼬리를 쳤기 때문이므로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소수 약자와 피해자에 대한 과한 증오는 사람들의 불안감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뒤늦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다수의 흐름에서 잠깐이라도 멀어져 자신이 소수 약자가 될 경우 증오의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장님을 꿈꾸며 노동자를 멸시하는 노동자들이 되었고, 완전한 평범을 꿈꾸며 소수자성을 혐오하는 소수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그가 생물학적 인간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나의 동료'로 삼을 수 있느냐 여부이다. 나의 동료가 아니라고 했을 때, 여기서 '나'란 누구인가. 그 '나'란 성적 소수자는 물론 아니며, 오히려 모든 '인간종'을 심판하는 아무 결함 없는 (즉, 아무 '소수자성' 없는) 나이다. 그는 유색인도, 장애인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고, 불임증과 선천적 질병이 있는 사람도 아닐 것이고, 물론 남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왜 수많은 소수자들 혹은 '소수자성'을 가진 '내가' 완전무결한 '그'의 동료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소수자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성적 소수자의 인권》p.40

한 소년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재수 없다.", "더럽다.", "병 옮긴다.", "물 더러워진다." 였습니다. 이 소년은 더럽지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병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물이 더러워지는건 이 소년이나 다른 사람이나 별반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이 소년에겐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이 소년과 어머니는 재활 치료로서의 수영을 원했지만, 수영장에서 매번 쫓겨났습니다. 때론 수영장을 6시간씩 청소해주는 대가로 수영장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명백한 차별이었고, 불법이었습니다. MBC 다큐멘터리『휴먼다큐 사랑』에 나왔던, 세진이와 그의 어머니 양정숙씨의 이야기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없었던 세진이는 친부모가 길에 버린 아이었습니다. 양정숙씨가 그런 세진이를 입양해서 키우기로 결심한 것은, 정말로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세진이는 양정숙씨를 처음 봤을때부터 각인효과에 걸린 오리처럼 잘 따랐고, 양정숙씨 역시 주체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감만으로 살기에 세상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다리가 없는 세진이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편은 다리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딜 가도, 지나가던 사람들은 꼭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들을 합니다. 사람들의 멸시는 의족을 사용하기 위해 받은 수번의 수술이나 재활운동보다 아픈 것이었습니다. 양정숙씨는 세진이가 대한민국에서 장애를 가진 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쁜 엄마'가 되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즐길 권리를 장애인인 세진이가 얻기 위해서는 사회가 주는 온갖 상처를 자신이 맞아 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세진이는 삶의 목표를 일찍 찾았습니다. 재활 치료로서의 수영을 즐겁게 받아들여 수영선수로의 길을 간 것입니다. 수영장을 찾는 것도, 코치를 구하는 것도, 대회에 참석하는 것도 모두 보통의 수영선수보다 고된 길이었지만, 세진이는 훌륭한 결과로 보답했습니다. 각종 장애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400미터 자유형에서 세계 랭킹 1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고, 16살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후원금이 들어왔고, 국내강연과 TED같은 국제강연에서 초청도 받았습니다. 세진이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자 생모라고 주장하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수십명에 달했습니다. 모두 후원금을 노린 사기꾼들이었습니다. 장애인을 혐오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란듯이 성공한 세진이의 이야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줍니다.

우리 사회는 차별을 학습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일반 사람보다 급이 낮다는 편견을 정보로서 입력받고, 장애인을 차별하고 무시해도 된다고 학습합니다. 장애인에게 위해를 가하더라도 괜찮다는 강화 단계에 이르러서 우리 사회는 폭력 사회가 됩니다. 세진이와 나쁜 엄마는 이런 사회를 이겨냈고,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든 장애인 가족들이 세진이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양정숙씨처럼 나쁜 엄마가 되기도 힘들고, 더한 고통을 이겨내더라도 세진이같은 성공을 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세진이와 나쁜 엄마의 기적같은 이야기는 분명 감동적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야기에 감동받는 사회가 아니라 이야기가 필요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즈음 항독전선에 참여했다 죽은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에 저는 끌렸습니다. 불행한 인간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갖고,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힘을 가졌는가의 여부에 인간다움의 자격이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말의 정의》p.14

윌리엄 피터스가 쓴《푸른 눈, 갈색 눈》에 등장하는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은, 차별은 사회가 학습시키는 것이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엘리어트는 차별을 이해하고 막기 위해선 차별하는 가해자와, 차별당하는 피해자 입장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엘리어트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엘리어트의 학생들이 덜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장애인과 일반인이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 받는 통합교육을 실시합니다. 우리나라도 통합교육이 첫 걸음마를 떼려 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특수학교란 이름의 장소에 격리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자신과 다른 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름에 대한 다수 집단의 반응인 것입니다. 다수 집단의 구성원이 다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계속될 것입니다.

장애인 복지 시설을 소재로 한 블랙 유머를 살짝 바꿔 보면 어떻게 될까요? 장애인 학생이 자신의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며 날뛰는 학부모가 있었습니다. 학부모의 항의 때문에 장애인 학생은 이사를 갔고, 그 학부모의 아이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학부모는 병에 걸려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장애인이 된 학부모를 봉양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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