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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 유쾌! 상쾌! 통쾌한 그 과학.문화.역사로의 나들이
랠프 레윈 지음, 강현석 옮김 / 이소출판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수도꼭지를 틀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변기를 내리면 똥이 물과 함께 사라집니다. 거리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을지언정, 똥은 없습니다. 개똥이던, 새똥이던, 사람똥이던 간에 똥은 우리 시선에서 신속하게 사라집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갖춰진 것은 선진국에서도 수십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길에는 언제나 똥이 있었습니다. 상하수도 설비의 보급으로 인해 우리는 똥에 대해 별 인식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는 언제나 똥이 있습니다.
똥은 동물에게 있어서 일종의 개성입니다. 똥은 공 모양, 한쪽 면이 오목한 모양, 시가처럼 긴 원통형의 모양, 말린 모양, 세로로 홈이 패인 모양, 묵주처럼 작은 덩어리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는 모양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으며, 냄새 또한 다릅니다. 사막의 낙타들처럼 똥을 누자 마자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메마른 똥을 눌 수도 있고, 어떤 물고기들처럼 언제나 설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다양한데, 누는 자세도, 똥을 누면서 하는 행동들도 천차만별입니다. 몸은 먹는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말처럼, 똥 역시 어떤 삶을 사느냐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수도 설비를 계획할 때, 부자 동네냐 아니냐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자 동네에서 나오는 똥은 훨씬 기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화석들을 통해 우리는 선조들의 식습관은 물론, 코프롤라이트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알 등을 살핌으로써 그들의 장에 기생했던 기생충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인근의 라퀸타 지역에서 발견된 어느 고대인의 코프롤라이트는 구성 성분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어서, 현대적인 기술로 소량의 DNA표본을 추출, 그 주인공의 성별까지 판별해 낼 정도였다. - p.66
보통 사람들은 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상을 찌푸리지만, 똥은 그 이상으로 친숙한 존재입니다. 아동서적《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처럼 똥은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고양이의 똥을 활용한 커피의 예에서 보듯이 음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직접적으로 똥을 선호하는 스카톨로지는 현대의학에선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자연적인 관점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화장실에 갈때 "손 씻으러 간다" 등으로 에둘러 말하며 똥 싸러 간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걸 꺼리면서도, 똥컴, 똥개, 똥사개 등 비속어적인 요소에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층간소음같은 문제 이상으로 배변권은 사람들에게 민감한 부분입니다. 선진국의 도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슬럼 주민들이나 중간 계층의 주민들 사이에는 배변권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자주 조성됩니다. 실제로 1998년 델리 슬럼 주민 3명이 똥을 누었다는 이유로 총을 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도의 슬럼 여성들은 위생설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숙이라는 엄격한 관습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매일 새벽 2~5시 사이에 쓰레기장이나 숲에서 용변을 봐야 하고, 성추행이나 강간에 노출됩니다. 덕분에 유료화장실 사업은 제3세계 슬럼 전역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각광받습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것중 하나가 똥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십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설사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설사질환은 빈곤국가의 아동들이 가장 큰 피해자이긴 하지만, 똥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하수도 시설 노후화는 점점 심각한 문제이며, 이로 인해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똥은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해를 가져다줍니다. 때문에 똥은 인류가 살아가는 이상 언제나 도전의 대상입니다. 랠프 레윈처럼 똥을 연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똥은, 음식만큼 중요하며, 섹스보다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