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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사냥 -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환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거대 제약회사의 인체 시험
소니아 샤 지음, 정해영 옮김 / 마티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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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최근엔 계급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수저의 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색의 수저들 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금수저의 대표적인 경우라면, 뉴스에 간혹 등장하곤 하는 어린이 주식부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7살, 8살, 10살 정도의 나이에 이미 100억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어린이 주식부자들의 뉴스기사를 보면, 눈에 띄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한미약품입니다. 100억원대 어린이 주식 부자 8명 중 7명이 한미약품 회장의 손주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미약품의 주식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IT업계 못지않게 소위 대박을 낼 수 있는 업계가 바로 제약회사들입니다.
제약회사가 대박을 내기 위해선 신약을 판매해야 하고, 신약을 판매하기 위해선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정부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선 약의 효능을 입증해야 합니다. 효능을 입증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임상시험입니다. 그러나 제약회사가 있는 나라들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기엔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들에겐 인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의 부작용을 전부 설명해줘야 하고, 장기적으로 관리해줘야 하고, 시험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임상시험에서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은, 제약회사의 이윤이 떨어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더 싼 목숨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1달러 이하의 삶을 사는 현실 속에서, 제약회사들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아주 쉽게 피험자들을 찾았습니다.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기업들은 재정적, 의학적 서열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으며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환자와 접촉하는 일은 전혀 없다. 피험자는 데이터를 얻기 위한 실험 대상일 뿐이다. 이 데이터는 의료 제품과 의약품 판매 허가를 받는 데 쓰인다. 환자와 피험자의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임상시험의 관심사가 의학적 발견이나 환자 치료가 아니라 돈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좇는 의료풍경, 임상시험》p.64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이 약을 구할 형편이 안되는 빈곤한 나라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 말대로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약의 혜택을 받는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 중 일부는 위약 처방을 받고 상태가 더 악화됩니다. 임상시험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대조군과의 인상적인 차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소니아 샤는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임상시험들을 말합니다. 그곳엔 약과 의사가 있지만, 환자를 위한 약과 의사는 아니었습니다.
뉴욕 대학의 소아과의사 사울 크루그먼의 팀은 멀쩡한 아이들에게 분변을 통해 전파되어 간에 감염을 일으키는 간염 바이러스를 주사했다. 정신지체아와 다른 장애아들의 수용기관인 윌로우브룩 주립학교에서 일하는 크루그먼의 팀은 간염균이 가득한 분변을 구해서, 그것을 초콜릿 우유와 1대 5 비율로 섞었다. - p.113
인간과 질병의 투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현재 빈곤한 나라의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과 안전한 식품이 부족한 사회보건의 개선이지, 결코 브랜드 신약은 해답이 아닙니다. 설령 신약이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브랜드 의약품 판매는 빈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불평등 자체가 못 가진 자들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브랜드 신약이 빈자들의 몸으로 실험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더욱 빈자들을 만드는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제약회사의 최신 제품들, 값비싸고 효능이 좋다고 선전하는 신약들이 정말로 효과가 좋다면, 의학의 역사를 썼던 페니실린의 반 만큼의 효능만이라도 있었다면, 비인간적인 임상시험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 가난한자들,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약들의 성능은 기본적인, 오래된, 그리고 무엇보다 값싼 약들에 비해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약회사들은 결핵에 찌든 빈민구역이나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구매력이 낮은 시장을 감수하는 대신, 더 돈이 되는 접근법을 선호합니다. 오늘날 의약품으로서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이 많은 무서운 질병을 해결할 의약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질병이 선진국에 만연한다면 무엇보다 큰 돈을 벌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질병은 빈곤한 나라에서 발생하며, 제약회사들의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한미약품이 최근 높은 이익을 올린 분야도 비만 치료 바이오 신약이었습니다. 제약회사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거리들을 약으로 해결하길 원합니다. 그들이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신약의 효과보다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상위12개 제약 회사는 매출의 12.4%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했는데, 마케팅과 관리 비용으로는 34.3%의 비용을 투자했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흡연자, 비만인 사람 또는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금연이나 체중 감량을 하지 않고, 또는 거의 운동을 하지 않고도 그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물 치료만 하면 된다는 암시를 준다. -《질병판매학》p.42
매년 등장하는 신약들, 큰 돈을 벌며 승승장구하는 제약회사의 이면에는, 그 약을 자신의 몸으로 실험하게 해주는 빈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빈곤한 사람들을 지구 저 멀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이 생활비, 등록금이 없어 임상시험에 몰린다고 합니다. 약의 부작용을 다 알지도 못하고, 최악의 경우 죽을 수 있는 이른바 '마루타 알바'마저도 수대 일의 경쟁 끝에 할 수 있다는 뉴스는 계층간 부의 간극을 느끼게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쉽게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비위생적인,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습니다.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 임상시험은 필요합니다. 저자는 의학이 인간을 위한 학문이기 위해선, 그리고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선, 임상시험 시스템이 더 건전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