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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서는 문학
김성곤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수십만 년 전 인간이 대지에 섰을 때와 현대의 인간은 생김새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불과 몇백년 전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시대를 살았고, 여성의 참정권이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변화는 많은 진통을 동반하지만, 결국 우리는 변화합니다. 그 과정이 부정의 변증법이던, 패러다임의 전환이던 간에 우리는 언제나 경계를 넘어왔습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현재 영역을 정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대, 중세, 근세를 넘어 근대가 도래했을 때, 세계는 근대적 합리성과 과학성이라는 새 가치를 받아들였고, 모더니즘이라는 영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가 전세계적인 전쟁의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되자 우리는 다시 변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가치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를 느끼며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주의)이나 포스트콜리니얼리즘(탈식민주의) 등이 등장했고, 새로운 경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서 권력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시민들 스스로 감시하는 규율권력의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처벌 역시 공개되지 않고, 이데올로기는 재생산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야만성을 일정부분 제거한 것으로 보이지만, 맹점은 여전합니다. 여전히 무수한 인종학살이 자행되고, 난민들은 국가를 떠나고 있으며, 다수의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립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처럼, 국가폭력, 자발적 복종, 합리성은 여전히 현대성의 핵심에 있으며, 그것은 언제든지 모더니즘 시대의 홀로코스트를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이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또한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동력입니다. 새로운 사상의 등장이 동력이 될 때도 있고, 사소해보였던 한 사건이 동력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인터넷의 등장 등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많이 있습니다. 문학 또한 그런 동력 중에 하나입니다. 로버트 단턴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반에 반동적이었고, 반신앙적이었고, 음란했던 책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계몽사상가 테레즈》라는 음란소설은, 남녀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귀족이건 평민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든 몸은 궁극적으로 평등하다고 말합니다.《2440년》은 2440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먼 미래에 이뤄질 이상향을 공상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했습니다.《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 왕은 보통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그 시대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서 문학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저자 김성곤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경계를 넘어서는 문학들입니다. 그 시대의 정신은 그 시대의 문학에 깃들며, 문학은 그 시대를 대변함과 동시에 새 시대의 문을 살짝 열어줍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이라는 형태의 경계, 순수문학과 서브컬처,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의 경계는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과 컴퓨터게임에 대한 이야기, 인간과 기계를 다룬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문학은 시대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과감히 경계를 넘어서 열린 마음으로 타자를 포용하는 것이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합니다. 다문화사회, 국제화사회, 인터넷사회는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영역으로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 새로운 시대를 문학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문학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