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배신 - 왜 어떤 이는 빨라도 실패하고, 어떤 이는 느려도 성공하는가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시간은 돈이다'는 격언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격언보다도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돈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현대인의 시간 또한 점차 빨라지기를 강요받습니다. 속도의 중요성은 특히 기업의 세계에서 더욱 요구됩니다. 많은 기업들은 다른 기업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고객과 시장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더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빠른 속도의 추구는 무수히 많은 폐해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불러왔던 월가의 몰락입니다. 결국 '시간은 돈이다'라는 이 격언은 아마도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하는 격언이 되었습니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직업을 고른다면, 테니스 선수나 야구 선수, 펜싱 선수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1000분의 1초인 밀리초의 세계에서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이런 프로선수들이라고 해서 일반인들보다 시각적 반응이 더 빠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선수가 100마일의 공을 칠 수 있는 이유는 신체적 반응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들은 신체적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생각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야구공을 치기 위해선 스트라이크 여부에 관계없이 보는 즉시 휘둘러야 하지만, 프로 야구 선수들은 200밀리초동안 휘두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입니다. 단순히 빠른 반응속도와 빠른 판단의 조합은 빠른 헛스윙과 빠른 삼진아웃을 부를 뿐입니다.

지능의 핵심은 빠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와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 로버트 스턴버그  

주식거래에 고성능 컴퓨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알고리즘 매매의 일종인 초단기 매매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같은 알고리즘으로 경쟁한다면, 컴퓨터가 더 빨리 반응해야 좋은 조건의 주식을 경쟁자보다 앞서 구입할 수 있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초단기 매매는 현재 미국 주식 거래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많은 기업들이 빠르고 새로운 플랫폼에 투자합니다. 하지만 UNX의 사례는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UNX는 새로운 CEO의 취임과 함께 최첨단 컴퓨터 매매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더욱 빠르게 설계되었고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기존에 비해 거래속도는 65밀리초에서 30밀리초로 단축되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0밀리초가 되자 매매 비용이 상승했고 실적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결국 UNX는 다시 65밀리초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을 중시하고 매 초마다 수조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시장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면서 속도는 빨라졌는데 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무슨 조화냐는 말이죠. 속도를 늦추니 다시 상황이 좋아지고 말이죠. 세상에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속도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느려야 더 좋다니, 말이 됩니까? - p.58 

과거에 우리의 행동은 '사건의 시간'에 영향을 받았다면, 현대인들은 '시계의 시간'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계의 시간은 우리의 행동을 조직화하며, 사회 경제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테일러주의는 업무의 분업화와 스톱워치를 통한 작업 시간 중심의 운영을 주장했습니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시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습니다. 가장 낮은 보수를 받는 근로자일수록 더 짧은 기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으며, 이런 사람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시간관을 바꿨습니다. 시간제 보수는 일 자체보다는 일을 하는 데 드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동기를 왜곡시킵니다. 근로자들이 시간과 돈을 해로운 방식으로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 제약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심해집니다. 시간당 수입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시간이 더 가치 있다고 인식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드보의 연구 결과는 사람들이 시간에 구애받을수록 점점 더 일에만 집착하게 되며, 다른 활동을 덜 할 뿐만 아니라 덜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시간을 줄여 주는 각종 행위들은 모순적 결과를 불러옵니다. 패스트푸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지만, 그렇게 해서 아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활동으로부터는 오히려 멀어지게 만듭니다. 더 이상 꽃향기를 맡을 여유가 없게 말이죠. - 샌포드 드보 

현대의 사람들은 하루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인식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대의 직장은 점점 더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이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의 가속화와 숨 가쁜 업무 처리는 단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입증되며 빠름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혁신은 빠름의 추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늦춤으로써 최적이 되는 지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빠르게 반응하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현대 사회는 우리의 빠른 본능을 최대한 이용하지만, 우리는 종종 본능과 기술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더욱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고속 사회일수록 우리의 삶의 결정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기다려라'라는 실존적인 조언을 생각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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