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의 대화 - 유럽은 과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곤도 다카히로 지음, 박경희 옮김 / 역사비평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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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열린 축구 한일전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교과로서의 역사는 다른 것에 비해 가장 실용성이 부족한 학습영역 중 하나이지만, 개개인에게 국민에 대한 일종의 정의를 부여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학문입니다. 오늘날 국민국가라는 사회형태는 구성원에 대해 일정한 국민의식을 요구합니다.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은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근대화를 지탱하는 여러 문화적 구성물 중에서도 역사교육은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도 현재와 같은 국민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한일전에서 걸린 플래카드의 메시지는 경청할 가치는 있습니다.

문제는 국민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 역사교육은 오늘날의 국가를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전제 하에 국가를 가치 있는 것이자 개인이 기꺼이 귀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증명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나라의 이름 하에 세계에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 있는 국민, 문화, 사회적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그에 반하는 사실들은 은폐됩니다. 에드워드 카의 지적처럼 역사는 단순히 객관적인 과거에 일어난 일의 기록이 아닙니다. 역사는 역사가 개인의, 역사가가 살아갔던 사회와 국가의 영향을 받는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자국에 편리한 역사가 교육되며, 그것은 다른 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편견과 적개심을 키웁니다. 이러한 독선적인 역사교육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러셀이나 일부 평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은 역사교육이 낳을 수 있는 전쟁을 우려했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 나라가 치른 전쟁은 모두 방위를 위한 전쟁이고, 외국이 싸운 전쟁은 침략 전쟁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된다. 예상과는 달리 자기 나라가 외국을 정복할 때는 문명을 확대하기 위해,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 높은 도덕이나 그 밖의 고귀한 것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믿도록 교육된다. -《교육과 사회체제》, 버트런드 러셀 

자국사 미화라는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입니다. 국가 단위의 사회체제에서는 이러한 역사교육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존재했습니다. 외국, 외국인이라는 적을 만듬으로써 자국민의 결집을 유도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공동체의식을 발판으로 국가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세계화 현상, 유럽연합의 등장 등은 국민들의 국가관의 변화를 요구했고, 필연적으로 역사교육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국가라는 단위로 독립되어 있던 역사교과서간의 대화가 요구된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특히 발전했고,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제 역사교과서 대화는 무엇보다 독일에서 과거극복이라는 과제와 밀접한 관계를 통해 발전해왔는데, 대다수 독일인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안겨준 나치즘까지 치른 독일 근현대사와, 그 과정에서 요구되었던 역사 이해에 대한 비판적 대응자세가 발전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곤도 다카히로는 역사교과서의 대화에서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인상적인 교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시덕이《그들이 본 임진왜란》에서 과거에 일어난 역사가 국가마다 어떻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처럼,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 역시 동일한 사건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지닌 전쟁당시 벨기에 중립 문제 같은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례였습니다. 그들은 자국과 상대국의 교과서를 검토하고 의견을 나눔으로써 미래의 역사인식을 위한 공통된 기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역사교육이 지니고 있었던 민족주의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각국이 교육을 통해 적대감정을 재생산하고 있었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더 나아가 역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지역의 교과서 회사에서 출판되고 교과서 대화에 전향적이였던 교과서도《독일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그 교과서를 검정했던 앙드레 오페르에 따르면, 역사교과서의 타이틀에 '독일의'라는 형용사를 쓰는 것 자체가 민족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비판은 언뜻 보기에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역사교육의 본질에 다가가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프랑스는 물론 독일에도 역사라는 교과의 틀 속에, 자국사와 외국사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과서에 대해 '독일의'라는 형용사를 굳이 덧붙이는 것은 확실히 이중의 의미로 민족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55 

역사교과서가 국가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서로의 상호이해, 상호존중을 추구하고자 하는 변화는 유럽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진행중입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인식을 같이 해 만든《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한중일 역사교과서는 그러한 변화의 값어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미래를 여는 역사》는 유럽의 사례에 비하면 걸음마단계입니다. 한일전에서 걸린 플래카드가 말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메시지를 다시금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라는 단위 하에 존재하는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이 만들어낸 미래와 세계 전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의 상호존중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교육이 만들어내는 미래는 분명 다릅니다. 역사를 잊어도 미래는 없지만, 역사를 잘못 배워도 미래는 없습니다. 세계를 좀 더 평화적으로 만드는 역사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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