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성평등 공익과 인권 15
양현아 지음 / 경인문화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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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남성중심의 역사였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 있는 남성중심의 문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군대문화입니다. 역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군대는 언제나 남성의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양성에 대한 평등요구가 증가했고, 개인적 평등을 넘어서 집단으로서의 평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많은 법과 제도, 정책이 수정되었고,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평등에 대한 인식은 최근 들어 남성의 전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군대, 병역의무에 따른 성불평등 문제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며,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공익인권법센터와 한국젠더법학회의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던 학술회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군대와 평등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군대문제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군 가산점제도입니다. 정부는 1961년 이후 군사원호대상자고용법에 따라 공무원과 교사 임용시에 군 제대자들의 복무연한에 비례해 3%에서 5% 가산점을 부여해왔습니다. 하지만 1999년 헌법재판소가 재판권 전원 일치로 해당 법안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군 가산점 제도는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가산점 논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만 해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군 가산점제도의 부활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9조 1항에서 국방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를 다 하는 것일 뿐,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상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금하는 것은 병역의무의 이행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즉, 정부는 군대를 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도는 젠더 관계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페미니즘 법학의 판단을 요청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자인 문승숙은 한국의 근대성을 군사화된 근대성으로 특징지으면서, 한국사회에 지배적인 군사화된 남성성과 가정화된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코드의 핵심에 남성 징병제가 있음을 논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73년 병역특례법에 따라 병역 의무자를 중화학 공업에 배치함으로서, 여성의 입장에서 중화학 공업과 관련된 직업과 기술단련을 받을 기회가 배제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존재했던 제대군인 가산점제로 인해 여성은 공무담임권의 수혜로부터 배제되었으며, 군인 경력이 공무원 호봉이나 연금법에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은 차별적 효과를 발생시켰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성만의 징병제도에 의해서 여자와 남자는 현저히 다른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징병제는 시민권 개념과 쌍생아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징병제는 근대화의 중요한 특성인 신분제를 뛰어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계급적 차이를 넘어 집단생활을 하는 경험은 근대화의 미덕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민이 곧 병사라는 정체성과 함께 근대국가 형성과 국가중심의 질서확립에 유효한 제도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징병제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여성의 진입이 자유롭지 않은 남성의 제도입니다. 따라서 징병제가 의미하는 시민은 남성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방의 의무는 성별화된 임무이며, 국민됨의 요건에서 여성은 기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여성배제의 원칙을 유지해 온 징병제는 시민권은 결국 성차별적일 수밖에 없으며, 남성 중심적 사회를 다지고 유지하는 기초제도라고 지적됩니다. 때문에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을 시작으로 김화숙, 이정희, 유숙렬 등은 여성의 징병제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자는 보호받는 자고 남자는 보호하는 자라는 공식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현재의 군대문제가 군가산점제와 같은 논의에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제대군인지원제도는 남성 징병제의 틀을 바꾸지 못하며, 남성만의 징병제가 존재하는 한 군복무를 이유로 채용시 가산점을 부요하는 제도는 헌법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군가산점제와 같은 제대군인 지원제도가 아니라 평등원리라는 큰 틀에서 군인력 충원의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징병제를 포함한 군복무 참여 확대도 고려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스웨덴처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징병제를 둘러싼 고민은 양성평등 획득에서 징병제가 중요한 변수임을 확인시켜줍니다. 군대가 있는 한 여성의 입장에서 군대는 외면하는 것이 최선인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징병제에 여성이 참여하고, 군대의 남성중심성이 극복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사례는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에게 있어서 매우 시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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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 - 공익과인권 3
최대권 외 엮음 / 사람생각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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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 정책은 시행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평준화제도를 시행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최근 4월 5일에 나온 뉴스를 보면 충남도교육청이 지난해 지역 고교평준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후 천안시의회가 공식적으로 평준화 추진을 위한 여론조사를 요구함에 따라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평준화 논의가 다시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연구센터 BK21사업단의 학술대회에서 제출된 논문을 바탕으로 이런 고교평준화 정책에서 제기되는 헌법적합성 검토와 입법정책적 제언, 사회적 여건과 국제적 환경을 바탕으로 찬반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부는 1968년에 중학교 무시험진학 정책을 입안하여 1969년부터 중학교 입시제도를 폐지, 추첨제로 전환하고 세칭 일류 중학교를 폐지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중학교 진학률은 급속히 증가되고 중학교 졸업자들의 고등학교 진학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과열되고 입시 위주 교육의 성행, 과열과외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이에 대한 처방으로 고등학교 평준화제도가 도입되게 됩니다. 이런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는 여러 견해를 낳았는데, 평준화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보면 교육기본권으로서 학교 선택권이 침해되며,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며, 종교의 자유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고, 전체적으로 성적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이기우 인하대학교 교수의 의견을 보면, 교육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육기본권으로서 학교 선택권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헌법 제37조 2항에 의한 제한이 허용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헌법 제37조는 기본권 제한이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기본권 제한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며 제한의 정도가 과잉적이지 않으며,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으면 되는데, 학교 선택권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기본권이라기보다는 헌법 제 31조 제1항인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의 한 내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 선택권의 행사 이외에도 교육프로그램의 선택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등 교육받을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에 대해서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평준화제도를 직접 다루고 있는 판례는 없다. 유사한 사안에 해당되는 것으로 중학교 무시험배정방식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거주지를 기준으로 중,고등학교의 입학을 제한하는 구 교육법 시행령은 과열된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당하며, 획일적인 제도의 운용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보완책이 상당히 마련되어 있으므로 현 상황하에서는 그 입법수단이 정당하며,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침해, 평등권 침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 pp.55~57 

고등학교 평준화가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이기우 교수는 헌법상의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의 보장이 갖는 헌법적인 의미는 능력 이외의 요건에 의하여 교육기회의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유국가적인 이념과 능력에 상응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사회국가적인 이념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는 능력 이외의 요소인 종교, 인종,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등학교 평준화는 모순되는 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란의 요지가 있는 학생들의 성적이 하향평준화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고등학교 평준화가 반드시 하향평준화의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실증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입니다. 이러한 하향평준화론은 재능있는 학생의 수준별학습이 힘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났는데, 평준화정책이 우수학생의 탁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지적, 기능적, 정서적으로 차별화, 개성화를 추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사실적인 현상과 규범적인 요구를 구별하지 않고 같이 취급하는 데서 오는 비논리성이라고 지적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력저하 여부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축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학업성취 수준이 다른 학생들로 구성된 이질학급에서는 수업의 수준과 진도를 중하위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되므로 학력이 하향되고 있다는 식의 교사들의 개별적 체험이 하향평준화의 근거로 주장될 뿐이다. 이에 비해 평균 학력에 의미있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상승되었음을 시사하는 실증적 연구는 일부 존재한다. 실제로 강태중과 성기선(2001)의 연구에 의하면 평준화 지역에서 성적 하위권 고교 신입생들이 3년 후 비평준화 지역보다 높은 학력상승 현상을 보였다. - p.114 

위에서 지적했듯이 고교평준화를 시행하기에 법적으론 무리가 없으며,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교평준화는 명목상 유지될 뿐, 사실상 고교서열화가 정착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많습니다. 정부가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자율형사립고 100개, 기숙형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고, 현재 기숙형고 138개, 마이스터고 28개, 자율형사립고 49개, 자율형공립고 116개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특수목적고등학교인 과학고도 21개, 외국어고는 31개를 운영 중입니다. 이러한 고등학교들은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무기로, 국영수 중심의 편법운영을 하며 공부를 열심히 시켜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학교로 평가받기 때문에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재 최상위권 학생들은 과학고나 외고 등 특목고에 가고, 중학교 내신 50% 이내 학생들은 자율고를 선택하며,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까지 일반고보다 먼저 선발과정을 가지기 때문에 사실상 고교 서열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특목고 열풍은 사립 영훈국제중학교 등과 같은 중학교로 이어졌고,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선 초등학생때부터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교평준화나 고교서열화 모두 보다 나은 교육제도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일 뿐, 고교평준화는 만능도, 신성한 것도 아님을 주지하면 고교평준화 찬반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대권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사회는 집단주의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인맥이 사적 및 공적 영역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제도로서 필기시험제도가 발전해왔다고 지적합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과거시험이나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로 도입된 고시제도의 영향은 정신적인 면에서 평준화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물론 이 지적이 학생들의 교육현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 영향력이 없다고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독일의 대학평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평준화에는 대체로 동등하게 수준 높은 시설이 요구되며, 우리나라는 정부나 교육당국, 국민적인 차원에서 이런 점이 미흡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기우 교수는 고교평준화가 위협받고 공교육이 불신을 받게 된 배경에는 교육당국과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좋은 학교를 만들려는 노력은 게을리하고 위에서 좋은 학교 제도를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려 온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때문에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이제 국민이 넘겨받아야 하며, 더 나은 미래는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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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 미국산쇠고기를 둘러싼 무서운 음모와 충격적인 진실! 미스터리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광우병 다큐멘터리!
콤 켈러허 지음, 김상윤.안성수 옮김, 김현원 감수 / 고려원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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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맞는 죽음.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이 병은 병이 진행되며 걷는게 불안정해지고, 제어할 수 없을만큼 몸을 떨었으며 미소는 바보스러웠고 표정은 일그러졌습니다. 대부분 넋이 나간 채로 있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말하기도 했으며 음식을 거부합니다. 이 병을 본 가이듀섹 박사는 의학용어로 pathological laughter(병적으로 웃는 자)라고 불렀는데, 이 병의 이름은 쿠루병 이였습니다.

이 병은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에 한정되어 발병했으며 포레족 지역의 음식을 먹어도 외부인은 발병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죽은 환자들은 열이 나거나 염증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뇌를 해부해본 결과 뇌에 수많은 구멍이 나는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과 유사함이 밝혀집니다.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을 조사하던 린덴바움 박사는 몇개월의 교류 끝에 쿠루병의 원인을 밝혀냅니다. 20세기초부터 식인풍습이 있었는데, 주로 여성들이 남성의 시체를 파내 먹는 것이였습니다. 이때 익히지 않은 두개골의 뇌를 날것으로 먹었던 것입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발생한 쿠루병과 관련된 사진들은 런던에서 전람회로 공개됩니다. 이 사진을 본 병리학자 해드로는 이 사진의 증상이 자신이 연구하던 스크래피와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스크래피는 염소의 뇌에 구멍이 나는 병인데, 이 병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세기 초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들은 공격적 성향으로 변하며 자신의 몸을 피가 나도록 비비고, 무리로부터 격리되고 먹이를 먹지 않습니다.

이런 스크래피 증상은 오래동안 방치되었지만 1939년 실험을 통해 감염된 양의 뇌를 으깨서 다른 양에게 주사할 경우 전염시킬 수 있음을 확인합니다. 또한 스크래피에 걸린 양들이 풀을 뜯어먹은 장소에서 건강한 양이 풀을 뜯어먹기만 해도 전염됨이 밝혀집니다. 이와 유사한 병이 밍크에게도 발견됩니다. 이런 CJD 증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했고, 곧 여러 특징이 나타납니다. 이 물질은 기존의 물질과 다르게 DNA가 존재하지 않았고, DNA가 없음에도 생체의 복제가 가능했으며, 방사선과 자외선 살균 등으로 죽일수 없었습니다. 후에 프루시너 박사는 이를 프라이온(단백질로 구성된 전염성 입자) 라고 명명합니다.

프라이온이라 불리워지게 된 물질은 영국의 광우병 사태를 통해 일약 유명해지게 됩니다. 소해면상뇌증(BSE)라 불리우는 광우병은 프라이온이 원인이 되는 질병중 하나로 영국에서 1985년 존 퀼이라는 이름의 암소가 최초의 광우병 소로서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초기에 발생한 소를 검사한 웰스 박사는 광우병으로 명명하고 영국정부에 대응을 요구합니다. 이후 와일스미스 박사는 다른 동물을 갈아 만든 육골분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1974년 니프로 공장의 산업사고 이후 용해제에 대한 안전성 기준이 강화되자 육류가공업체는 용해제로 불순물을 제거하던 과정을 중지하고 모두 육골분으로 만들게 됩니다. 이런 육류가공 방법의 변화가 이유임을 밝혀내고 정부에 대응을 요청했지만, 영국정부는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보고 이후 3년이 지나자 BSE가 언론에서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국정부는 광우병의 위험도를 부인하며 계속적으로 광우병 소를 소각, 매립하기 시작합니다. 1992년에 달하자 매주 631건의 광우병 소가 발견된다고 발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정부는 계속적으로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해 들어 영국뿐만이 아닌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광우병소가 보고되기 시작했고, 영국산 소고기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감염된 소의 영향으로 사람이 CJD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됩니다. 이는 변형 CJD, vCJD로 명명되었고 광우병과 CJD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후 2004년까지 약 150명이 영국 및 유럽에서 변형 크로이츠펠트로 사망합니다.

이러한 유럽의 사태에 미국 또한 영향을 받았는데, 광우병 뿐만이 아니라 사슴과 엘크에게서도 비슷한 병이 발견됩니다. 이를 만성소모성질환(CWD)로 명명했는데, 미국 여러 지역에서 이 CWD가 보고됩니다. 또한 이 CWD 역시 사슴을 섭취한 사람중에서 CJD에 걸려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었고, 현재 광우병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미국의 사슴 산업은 한국,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통약재 등으로 많이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 전염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 동물들(양,소,사람,밍크,사슴 등)의 CJD를 유발하는 이런 프라이온의 특징은 여러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먼저 광우병 전염인자인 프라이온은 뇌 뿐만 아니라 심장, 비장에도 축척되며 근육 등 살코기에도 전염인자가 존재함이 확인됬습니다. 또한 혈액에 존재하고 장기이식, 헌혈과 수혈 등에도 전염될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모든 인간광우병 질환이 나타난 사람들은 프라이온 단백질 염기서열 129번이 동질접합체를 가졌는데, 유럽의 평균은 동질접합체가 전체 인구의 49%, 쿠루병이 나타났는 포레부족은 56%였으며, 전 세계에서 드물게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우 동질접합체가 92% 이상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서 광우병이 전염될 경우 다른 곳보다 질병의 진행속도가 빠름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은 여러 이유로 인해 조사가 힘들고, 그 때문에 전체 환자수에 비해 적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CJD환자가 그 원인이 CJD로 밝혀지기 위해선 사후 부검이 필연적인데, 전체 부검비율이 낮을 뿐더러 부검비용을 환자의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 때문에 죽음의 이유가 CJD인지 밝혀지기 힘듭니다. 예일대와 피츠버그 대학의 연구 결과에서 알츠하이머 병으로 죽은 환자를 부검해본 결과 이중 5~13%는 알츠하이머가 아닌 CJD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는 현재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그 원인중 하나가 CJD 환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현재 이러한 프라이온 전염병은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고 연구중에 있으며 많은 질문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인지, 프라이온이 사실은 질환을 촉진할뿐 다른 원인이 또 있는것은 아닐지, 현재 발견된 것 외에 또 위험한 것은 없는지. 이러한 감염의 역사가 50여년이 지났지만, 저자는 아직 시작단계에 있으며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소비자가 먹는 소의 검증을 일본의 경우 100%, 유럽은 50%를 검사하는 반면 현재 1%에도 못 미치고 있는 미국 소의 광우병 검증을 강화하고, 치매, 알츠하이머 병 및 CJD를 포함하는 CJD 감시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제의합니다. 또한 시민들을 무작위로 검사를 해 현재 전염인자를 보균하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수혈과 외과수술, 치과도구 등에서 CJD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할 것을 제의하고 있습니다. 영국정부가 20년동안 벌인 과오로 인한 광우병을 통해 얻은 자료와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한 것처럼 시민들의 인식을 넓혀나간다면 아직 희망은 있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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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질병 구제역
아비가일 우즈 지음, 강병철 옮김 / 삶과지식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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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2011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구제역 파동으로 300만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도살되었습니다. 구제역은 가축의 식욕과 젖 생산량이 감소하며, 단기간 앓고 회복됩니다. 또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열에 의해 쉽게 파괴됩니다. 과연 구제역이란 무엇이길래 그토록 강한 대처를 했던 것일까요. 구제역이란 병 자체만으로 보면 굳이 도살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것은 당연합니다. 저자는 이런 의문에 대해 구제역 도살정책이 구제역이란 자연적 질병 그 자체를 생물학적 견지에서 바라보는 정책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임을 지적합니다.

구제역이 대수롭지 않은 질병에서 외래 전염병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를 통제하기 위한 법안이었던 것 같다. 흔히 질병 통제 조치는 그 임상 증상과 전파 경로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마련된다. 지식이 먼저고 행동은 나중이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구제역의 경우, 이 과정이 반대였다. 1869~1884년에 걸쳐 시행된 구제역 통제법의 형식과 방법은 질병에 대한 대중의 경험과 인식에 예상외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구제역에 대한 공포는 점점 커져 마침내 우역에 버금갈 정도로 전염성이 강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최악의 가축 전염병으로 인식되었다. 구제역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전염병으로서의 구제역은 본질상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계몽된 사람들에게 '발견'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였으며, 통제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었다. 그리고 구제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힘을 얻어감에 따라 본래의 사회적 기원은 점차 가려져 결국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연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 p.37

19세기까지만 해도 구제역은 매우 흔하고, 별 걱정없는 가축 돌림병이였습니다. 1848년의 목축업자 홀 키리가 쓴 글에 따르면 구제역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홍역이나 백일해, 감기처럼 일상적인 질병이 되어 모든 소가 한번은 앓고 지나가는 병으로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농부들이 이익률이나 생산성 등에 덜 민감했을 뿐더러 혼합 영농 시스템의 일환으로 가축을 길렀기 때문에 문제거리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한달도 되지 않아 다시 회복되는 병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요인들로 인해 구제역은 점차 심각한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당시 사회에서 영향력있는 가축 소유주들, 상류층 육종가들과 토리당 의원들은 구제역이 박멸되기를 원했고, 영농환경이 점차 대규모화되고 날씨의 영향으로 불황이 시작되자 경작을 통해 축산에서 생기는 손실을 벌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로 인해 구제역으로 인한 식육과 우유 생산 감소가 주목받으며 경제적 중요성으로 부각됩니다.

상류계층이 기르던 가축들은 도살하지 않고 격리시킨 후 자연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공식적으로는 영국 농업 전반의 이익을 표방한 도살 정책은 사실상 해외로 수출되어 큰돈을 벌어다 줄 자신들의 가축이 구제역에 걸리지 않도록 '일반' 가축의 신속한 도살을 지지하는 상류계층 육종가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셈이였다. - p.65

이러한 도살 정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반발을 가져옵니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가축이 도살당하는 농부들부터, 지방 당국 등에서는 도살이 아닌 격리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는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없던 시설이라 구제역 도살 정책으로 가축을 전부 잃어버린 농부들은 그자리에서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빈민으로 전락하다 보니 그 저항은 더욱 격렬했습니다. 당시 구제역에 대한 심의회가 시작되자 200~300명의 성난 농부들이 회의장에 들이닥치기도 했습니다.

농수산부의 조치가 지연되는 바람에 64명의 농부들이 진단 후 14일이 넘도록 도살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해 수의사의 권고를 따랐다. 가축의 발을 깨끗이 씻긴 후 소독하고, 영양가 있는 사료를 먹이자 며칠 후 대부분의 가축이 회복되는 것을 본 농부들은 깜짝 놀랐다. 도살을 면한 몇몇 순종 가축 소유주들 역시 비슷한 보고를 했고 나이 많은 농부와 수의사들은 1870~1880년대에 가축들이 쉽게 구제역에서 회복되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러한 보고는 구제역이 스토크만이 주장한 것처럼 끔찍하고 파괴적인 유행병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했고 도살 정책에 대한 더욱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 p.73

구제역에 대한 도살정책은 영국의 지리적 환경에도 영향을 받았는데, 유럽 본토 등에서는 잦은 가축이동이 가능해 도살정책이 사실상 의미가 없고 백신정책으로 방향을 돌린 반면, 섬나라인 영국은 도살정책으로도 구제역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제역을 막기 위해선 수입제재를 할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정치적으로 큰 무기가 됩니다. 당시 영국에 식육용 가축을 수출하던 아일랜드, 아르헨티나와의 관계에서 이 구제역은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구제역으로 인해 아일랜드의 자치에 먹구름이 끼었고, 아르헨티나와의 관계에서 무역보복이 생겨나는 등의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농수산부가 백신 정책을 거부했던 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내부 토론 내용을 보면 정책 결정의 이면에 자리잡은 깊은 도덕적, 문화적, 국가주의적 신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도살을 질병 통제 방법으로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원칙적, 교육적 원동력 및 백신 접종국에 대한 영국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기억 속에 생생한 시대에 개인의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순종적이고 강인한 국민이 지닌 미덕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이였다. 도살정책 옹호자들에게 도살정책을 채택한 국가들은 병원균을 박멸하고 국가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면에서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자동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이었다. 반면 백신은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함께 사는 행위로 구제역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살만이 계몽된 정부가 이끄는 절도 있고 질서 잡힌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 p.164

구제역은 영국에겐 군사 방위적인 요소로도 인식되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구제역이 일반화되고 백신정책 위주였던 유럽 본토와 달리 도살정책을 실시하던 영국에게 있어서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쟁에 필요한 식량을 감소시키는 매우 유용한 화학무기로서의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군사적 필요성 외에도 사회적으로도 백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회적 담론이 형성됩니다. 2001년엔 무려 천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도살되자 농촌 지역사회, 여행 산업계, 상당수의 농민들은 백신을 지지한 반면 전국농민연합과 정부는 여전히 도살정책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2001년에도 대량 도살에 의해 광범위한 유행을 통제할 수는 있었지만, 이 정책의 심각한 사회적 및 심리적 후유증과 경제적 비효율성이 명백히 드러났다. 질병을 통제하는데 농부들에게 지급된 보상금, 관광 및 연관산업의 손실 등 영국 경제 전반에 걸쳐 80억 파운드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도살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했던 가축 및 관련 상품 수출 분야의 규모는 연간 13억파운드에 불과했다. 모든 조사단은 향후 통제 정책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어느 때보다도 안전해진 백신을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 p.237 

결국 구제역이란 질병을 대함에 있어서 도살정책을 실시한 것은, 구제역이 가축을 죽여야 하는 병이라서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죽이는 것이 더 이익이였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좀더 수월하게 팔기 위한 청정국 자격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정치적 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회적으로 도살정책이 이익인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더이상 도살정책이 아닌 백신정책으로의 전환할것을 요구합니다. 세계화된 교역 패턴으로 볼때 도살정책은 이제 비효율적이며, 백신 기술의 발달로 백신 사용에 대한 과거의 기술적, 과학적, 문화적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001년 구제역 유행에 대한 앤더슨 청문회의 주장대로 우리는 '역사의 실수를 되풀이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았다'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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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 51개의 질문 속에 담긴 인간 본성의 탐구, 동식물의 생태, 진화의 비밀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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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채식주의자로 태어났을까? 새의 깃털은 무슨 용도일까? 얼룩말의 무늬는 어째서 존재할까? 생물학자인 요제프 H. 라이히홀프는 이러한 흥미로운 관점에서 독자들을 호기심의 세계로 유혹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 의미에까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연에도 역사와 스토리가 있으며, 그러한 역사를 알수록 더욱 많고 다양한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간혹 등장하는 묵시록적인 녹색 이데올로기를 벌이는 사이비 상태학적 환경단체들에 대한 경고 또한 잊지 않습니다.

책은 51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중에는 '왜 사람은 머리에만 털이 났을까?' 처럼 단순히 자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토막상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반면, '강자는 언제나 이긴다는 말은 왜 맞지 않는가?' 와 같은 정보처럼 자연의 변화를 이해함으로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까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편견이였음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식물의 생태를 이해하고, 진화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인간 본성의 탐구에 다다릅니다.

지난 20년간 진행된 방식으로 열대우림이 계속 사라진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 기후 변화 때문에 멸종되는 생물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인류의 오수보다 세 배나 오염도가 높은 비료의 과다 사용을 지금처럼 계속 묵인한다면 단 한 종의 동식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할 것이다. - p.226

책이 던지는 생태학적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TV에서 외래종인 황소개구리가 토종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전국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외래종이 섞이는 것이 정말로 생태계의 문제인가? 이 땅의 소속이라는 구분이 과연 정당한가? 황소개구리의 사례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다양한 생물 종이 서식하는 곳은 도시일까, 농촌일까? 인류가 환경을 보호한다며 진행해온 빽빽하게 나무를 심는 산림계획은 과연 숲에 사는 동물과 식물들이 원하는 방식일까? 와 같은 질문들은 종의 감소라는 현실에서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천을 평가할 때는 오직 사람과 관련된 기준만 적용한다. 학술적인 조사의 목적은 물고기나 새, 조개, 잠자리, 작은 게의 생존환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미역을 감을 수 있는 수준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수생동물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생존환경과 먹이 자원을 박탈한 것이다. - p.215

1970년대 생태학그룹을 결성해 독일의 환경운동을 이끌었고, 세계자연보호기금의 의장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저자는 동식물의 종이 위축되는 가장 큰 원인은 농업이라고 지적합니다. 질소비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토양의 영양과잉 상태는 종의 다양성 면에서 명백히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천을 관리함에 있어서 사람의 하수와 가축의 배설물을 완벽할 정도로 정화하고, 깨끗해진 하천은 아름다워졌지만 새들의 울음소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류의 선택은 자연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자연의 선택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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