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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 - 공익과인권 3
최대권 외 엮음 / 사람생각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고교평준화 정책은 시행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평준화제도를 시행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최근 4월 5일에 나온 뉴스를 보면 충남도교육청이 지난해 지역 고교평준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후 천안시의회가 공식적으로 평준화 추진을 위한 여론조사를 요구함에 따라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평준화 논의가 다시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연구센터 BK21사업단의 학술대회에서 제출된 논문을 바탕으로 이런 고교평준화 정책에서 제기되는 헌법적합성 검토와 입법정책적 제언, 사회적 여건과 국제적 환경을 바탕으로 찬반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부는 1968년에 중학교 무시험진학 정책을 입안하여 1969년부터 중학교 입시제도를 폐지, 추첨제로 전환하고 세칭 일류 중학교를 폐지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중학교 진학률은 급속히 증가되고 중학교 졸업자들의 고등학교 진학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과열되고 입시 위주 교육의 성행, 과열과외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이에 대한 처방으로 고등학교 평준화제도가 도입되게 됩니다. 이런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는 여러 견해를 낳았는데, 평준화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보면 교육기본권으로서 학교 선택권이 침해되며,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며, 종교의 자유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고, 전체적으로 성적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이기우 인하대학교 교수의 의견을 보면, 교육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육기본권으로서 학교 선택권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헌법 제37조 2항에 의한 제한이 허용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헌법 제37조는 기본권 제한이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기본권 제한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며 제한의 정도가 과잉적이지 않으며,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으면 되는데, 학교 선택권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기본권이라기보다는 헌법 제 31조 제1항인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의 한 내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 선택권의 행사 이외에도 교육프로그램의 선택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등 교육받을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에 대해서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평준화제도를 직접 다루고 있는 판례는 없다. 유사한 사안에 해당되는 것으로 중학교 무시험배정방식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거주지를 기준으로 중,고등학교의 입학을 제한하는 구 교육법 시행령은 과열된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당하며, 획일적인 제도의 운용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보완책이 상당히 마련되어 있으므로 현 상황하에서는 그 입법수단이 정당하며,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침해, 평등권 침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 pp.55~57
고등학교 평준화가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이기우 교수는 헌법상의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의 보장이 갖는 헌법적인 의미는 능력 이외의 요건에 의하여 교육기회의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유국가적인 이념과 능력에 상응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사회국가적인 이념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는 능력 이외의 요소인 종교, 인종,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등학교 평준화는 모순되는 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란의 요지가 있는 학생들의 성적이 하향평준화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고등학교 평준화가 반드시 하향평준화의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실증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입니다. 이러한 하향평준화론은 재능있는 학생의 수준별학습이 힘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났는데, 평준화정책이 우수학생의 탁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지적, 기능적, 정서적으로 차별화, 개성화를 추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사실적인 현상과 규범적인 요구를 구별하지 않고 같이 취급하는 데서 오는 비논리성이라고 지적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력저하 여부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축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학업성취 수준이 다른 학생들로 구성된 이질학급에서는 수업의 수준과 진도를 중하위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되므로 학력이 하향되고 있다는 식의 교사들의 개별적 체험이 하향평준화의 근거로 주장될 뿐이다. 이에 비해 평균 학력에 의미있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상승되었음을 시사하는 실증적 연구는 일부 존재한다. 실제로 강태중과 성기선(2001)의 연구에 의하면 평준화 지역에서 성적 하위권 고교 신입생들이 3년 후 비평준화 지역보다 높은 학력상승 현상을 보였다. - p.114
위에서 지적했듯이 고교평준화를 시행하기에 법적으론 무리가 없으며,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교평준화는 명목상 유지될 뿐, 사실상 고교서열화가 정착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많습니다. 정부가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자율형사립고 100개, 기숙형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고, 현재 기숙형고 138개, 마이스터고 28개, 자율형사립고 49개, 자율형공립고 116개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특수목적고등학교인 과학고도 21개, 외국어고는 31개를 운영 중입니다. 이러한 고등학교들은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무기로, 국영수 중심의 편법운영을 하며 공부를 열심히 시켜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학교로 평가받기 때문에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재 최상위권 학생들은 과학고나 외고 등 특목고에 가고, 중학교 내신 50% 이내 학생들은 자율고를 선택하며,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까지 일반고보다 먼저 선발과정을 가지기 때문에 사실상 고교 서열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특목고 열풍은 사립 영훈국제중학교 등과 같은 중학교로 이어졌고,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선 초등학생때부터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교평준화나 고교서열화 모두 보다 나은 교육제도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일 뿐, 고교평준화는 만능도, 신성한 것도 아님을 주지하면 고교평준화 찬반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대권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사회는 집단주의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인맥이 사적 및 공적 영역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제도로서 필기시험제도가 발전해왔다고 지적합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과거시험이나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로 도입된 고시제도의 영향은 정신적인 면에서 평준화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물론 이 지적이 학생들의 교육현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 영향력이 없다고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독일의 대학평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평준화에는 대체로 동등하게 수준 높은 시설이 요구되며, 우리나라는 정부나 교육당국, 국민적인 차원에서 이런 점이 미흡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기우 교수는 고교평준화가 위협받고 공교육이 불신을 받게 된 배경에는 교육당국과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좋은 학교를 만들려는 노력은 게을리하고 위에서 좋은 학교 제도를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려 온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때문에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이제 국민이 넘겨받아야 하며, 더 나은 미래는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