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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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을 쓰지 않고 기르는 농작물은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의 경우 농약을 쓰지 않고선 수확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농약을 안 썼을 경우 병충해로 인해 사과 수확량이 90퍼센트 이상 줄어든다고 합니다. 평년의 10퍼센트 이하 수확이라는 큰 피해를 입은 나무는 이듬해에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무농약 재배를 2년간 계속하면, 사과 수확은 거의 제로가 된다는 뜻입니다. 과거 사과의 야생종은 지금보다 작고 신맛과 떫은맛이 강했습니다. 꾸준한 품종개량과 농약의 발명이라는 쾌거에 힘입어 19세기 미국의 조니 애플시드는 현재의 사과인 크고 단 사과 품종을 선보임으로서 세계적인 붐을 일으킵니다. 과거엔 아무리 달고 크더라도 병충해에 약하면 재배할수 없는 품종이 되었지만, 농약은 그 한계를 뛰어넘게 했습니다. 야생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고 큰 과일이 되었지만, 동시에 농약의 도움 없이는 병충해와 싸울 수 없는 식물이 된 것입니다. 농약을 토대로 개량된 품종, 사과는 농약에 크게 의존하는 현대 농업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농약을 쓰지 않고 사과를 기르는 것. 그것이 기무라 아키노리씨의 꿈이였습니다.

기무라씨는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차남이였기에 굳이 가업을 이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기계를 분해하고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결국 도시에 나가 회사원이 되었지만, 형의 입대 때문에 본가로 돌아갑니다. 훗날 다시 형이 돌아와 가업을 이었지만, 중학교 시절 동급생이던 미치코씨와 결혼해 데릴사위로 들어갑니다. 평범한 농부가 되던 어느날 농업 전문 서적을 서점에서 찾던 도중 그의 인생을 바꿔놓게 될 책을 보게 됩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쓴 '자연 농법' 이였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농업에 기무라씨는 큰 매력을 느낍니다. 거기다 아내 미치코씨는 농약에 매우 약한 체질이였던 터라 농약사용을 없앨수만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당시 평균적인 농가는 반년에 13회정도의 농약을 뿌렸는데, 기무라씨는 그런 과정을 전부 없애고 무농약 사과 재배의 길로 들어섭니다.

처음엔 농약 대신 해충을 막아줄 식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밀가루를 뿌려보기도 하고, 고추냉이를 뿌려보기도 하고 우유나 달걀흰자를 뿌려보기도 했습니다. 흑설탕, 후추, 마늘, 간장, 소금, 술, 식초.. 하지만 이런 식품들은 별 효과가 없었고, 병충해에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하다 4년째에 접어들자 기무라씨의 가족은 극도의 가난상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세금이 밀려 사과나무에 차압딱지가 붙기도 하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빚을 얻고, 소비자금융에서 돈을 빌리기도 합니다. 당시 버블경제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이웃들이 보기엔 기무라 집안은 괴이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웃들과의 불화, 가족들의 고통에 괴로워하던 기무라씨는 무농약 사과에 도전한지 6년이 접어들 해에 자살을 결심하고 산에 오릅니다.

이제껏 농약 대신 벌레나 병을 없애 줄 물질만 찾아 헤맸다. 퇴비를 뿌리고 잡초를 깎으며, 사과나무를 주변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다. 사과나무의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농약을 쓰지 않았어도 농약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158

자살을 하기 위해 산의 나무에 밧줄을 던졌지만 너무 세게 던지는 바람에 밧줄이 산비탈 밑으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죽기 전의 상황에서도 실수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산비탈 길을 내려간 기무라씨는 달빛 아래에 있는 과일나무를 보게 됩니다. 처음엔 사과나무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도토리나무였습니다. 농약을 안 썼는데도 어쩌면 저렇게 잎이 많이 달렸을까 하며 넋을 잃고 있던 기무라씨는 문득 눈앞의 나무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사과나무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흙이였습니다. 지금껏 사과나무의 보이는 부분만 신경썼을뿐, 지하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 부드러운 흙은 벌레와 미생물, 균과 잡초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기무라씨는 이후 풀베기를 끊었고, 콩을 뿌려둡니다. 콩과 잡초가 자라고 곤충들과 개구리와 뱀들이 다시 사과농장으로 돌아옵니다. 간간히 식초만을 뿌리며 관리를 한 결과, 8년째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말라가던 나무들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살아남는 잎도 많아졌습니다. 800그루였던 나무중 단 한그루에서 7개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 7개의 꽃 중 두개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년째, 사과나무들을 일제히 꽃을 피워 재생의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처음 수확한 사과는 크기는 탁구공만했고, 모양도 좋지 않아서 중개인에게 찌꺼기 사과 취급을 받았습니다. 결국 도매상에게 넘기지 못하고 오사카의 음식 축제를 찾아갑니다. 오사카의 음식 이벤트에서 극소수의 관심을 보인 사람들에게 전부 쥐어다 주다싶이 한 사과의 반응은 몇 주가 지난 후에야 도착했습니다. 편지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사과는 처음 먹어 봤습니다. 보내 주세요." 그 후 점점 사과관리에 능숙해지면서 당도관리에도 개선이 이루어졌고, 크기 또한 점점 커졌습니다. 몇년의 연구 끝에 가을에 한번 풀베기를 하는 것, 그리고 식초의 양을 조절하는 법, 잎맥을 살피며 가지치기를 하는 법 등은 그의 사과에 상업적 가치를 부여했고 결국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하게 됩니다. 농약을 안 뿌렸는데도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기무라씨는 아마 밭에 충분한 영양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화학 비료든 유기 비료든 비료는 사과나무에 여분의 영양을 주고, 그것은 해충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충분한 영양은 사과나무로 하여금 깊에 뿌리를 뻗을 필요성을 상실하고, 결국 운동도 하지 않고 먹을것만 풍족하게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황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자연적인 저항력을 잃어 농약에 더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1970년대 이래로 독일의 토양은 수확으로 빠져나가는 것 이상으로 식물의 영양소가 잔존해 있다. 그 결과 자연의 순환현상이 이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목초지와 농지에는 연간평균으로 볼 때 헥타르당 100킬로그램으로 지나치게 많은 질소가 뿌려지고 있다. 집약농업이 이루어지는 많은 지역에서는 과잉 수확량이 두 배 이상에 달한다. 인류의 오수보다 세 배나 오염도가 높은 비료의 과다 사용을 지금처럼 계속 묵인한다면 단 한종의 동식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할 것이다.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문명을 누리고 있는 처지에서는 농약을 사용한 농업을 비판하기가 어렵습니다. 본래 존재해야 할 재래 식물이나 곤충, 동물들을 없애고 자리잡은 농업은 지구상의 60억이 넘는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선 필연적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자연이 인류의 사정을 헤아려 줄리 없기도 합니다. 기무라씨는 자신의 꿈을 통해 그 중간에 있는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무농약 무비료로 농작물을 재배하면 손이 많이 갈 뿐더러 농약을 사용하는것에 비해 수확량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농약 농가들은 높은 가격에 팔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농약 재배 식물은 언제까지고 사치품으로 남을 뿐이라고 기무라씨는 말합니다. 현재는 어려울 지 몰라도 점점 더 개량해서 농약으로 만든 농작물과 경쟁할 수 있는 싼 가격에 출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부르는 말 '기적'. 농업에 농약은 필수적이라는 사회적 상식에 도전하고 결과를 만들어낸 '기적의 사과', 그 전리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기무라씨의 새로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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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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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됩니다. 이 빅 뉴스는 어린 3학년 아이들에게도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져 아이들은 다음날 그들의 학교선생님이였던 제인 엘리어트에게 묻습니다. "그들이 왜 킹 목사에게 총을 쏘았어요?" 질문을 받은 엘리어트는 아이들에게 흑인에 대해 아는 것들을 물어봅니다. 엘리어트의 학교가 있는 라이스빌은 인구 천명이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 마을엔 흑인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교과서에도 흑인을 언급하지 않았고, 흑인이 등장하는 그림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답변은 놀랍게도 흑인은 백인보다 똑똑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다, 자주 싸운다, 문명화되지 않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와 같은 것들이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일종의 반감 혹은 멸시에 가까웠습니다.

CNN의 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 아이들이 흑인 아이들보다 훨씬 강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 차이는 부모의 태도 때문입니다. 백인 부모는 살아가면서 피부색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자녀에게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면 흑인 부모는 피부색 때문에 사회의 차별과 편견으로 자녀가 상처받을 가능성을 의식하기에 아이들과 인종 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엘리어트는 학생들을 위해 편견과 차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교육을 시작합니다

실험의 등식은 아주 간단해요. 집단을 선택하고 그들을 차별합니다. 그들이 열등하게 보이고 열등하게 행동하도록 몰고 갑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보이고 행동하는 방식을 열등함의 증거라고 지적합니다. - p.134

엘리어트는 아이들을 푸른색과 갈색 두개의 눈동자 색의 그룹으로 나눕니다. 금요일은 갈색 눈이 우월한 그룹이 되고, 월요일은 푸른 눈이 우월한 그룹이 된다고 미리 알려 줍니다. 엘리어트는 우월한 그룹이 훨씬 똑똑하다고 강조하며 열등한 그룹에 속한 아이들의 실수를 지적합니다. 우월한 그룹은 식수대를 사용할 수 있었고, 쉬는 시간을 5분 더 가졌으며, 점심식사를 먼저 그리고 많이 먹을수 있었습니다. 열등한 그룹은 운동장의 큰 놀이 기구를 이용할 수 없었고, 교실 앞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아이들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월한 그룹의 아이들은 행복해했고 눈이 초롱초롱했으며, 학업 능률이 크게 오릅니다. 반면 열등한 그룹의 아이들은 그들의 자세, 표정, 태도적인 면에서 패배자와 같은 모습을 합니다.

노던 아이오와 대학의 학자의 연구결과 라이스빌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의 학생들에 비해 덜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스빌 학생 중 엘리어트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엘리어트의 학생들이 덜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보였다. - p.143

실험의 결과는 아주 놀라웠습니다.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를 모두 경험한 아이들은 그들의 글과 그림에서 차별에 대해 대단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아이들은 차별에 대해 기분이 더러웠다, 역겨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와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였고 실험 전에 가지고 있었던 흑인에 대한 편견적 사고를 부정합니다. 월요일의 경우 우월한 그룹의 아이들이 열등한 그룹의 아이들에 대한 괴롭힘이 금요일보다 줄어든 점도 인상적입니다. 실험이 끝난 후 실시한 스탠퍼드 학업 성취도 검사에서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태도가 친구들에게도 전염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회적 실험이 아이들에게 끼친 긍정적 영향이 일시적이지 않았습니다. 실험이 끝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의 모습을 보면 학생들이 역할극에서 겪은 개인적 상처와 거부당하는 경험은 이후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그들의 능력에 계속 긍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사회적 기관, 특히 학교가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와 학대를 멀리하도록 가르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름에 대한 다수 집단의 반응이죠. 다수 집단의 구성원이 다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 연령주의의 문제는 지속될 겁니다. - p.211

아이들이 쉽사리 역할극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열등함과 우월함을 나누는 기준이 권위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엘리어트는 권위를 상징했고,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속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아이들이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반응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동일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성인들의 연구에서 엘리어트가 그들에게 쳐놓은 딜레마에 보인 반응은 미국 흑인이나 다른 소수 집단의 반응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차별받은 사람 대다수는 가만히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 전형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블랙 라이크 미》p.404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은 차별과 편견의 위험, 그리고 공감의 필요성을 의식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피부색의 차이로 사람을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갖기 마련이며 성인이 되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감은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상대방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내 안에서 상대방을 인식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과 공감할 수 없습니다.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공감 무능력자,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라고 불리우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적 태도는 다수 집단의 영향력이 클수록 극복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의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은 어쩌면 미국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1년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조사한 연구결과는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 차별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문화가정이란 단어는 더이상 아이들에게는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쓰이지 않고 단순히 푸른 눈 그룹과 같은 차별적 근거가 되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은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에 필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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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여우! 넌, 꼬리가 몇 개니?
연제은 지음 / 무한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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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 연제은씨가 대학교를 중퇴하고 6년간 부자 사냥꾼이 되어 부잣집 남자와 데이트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신데렐라 프로젝트를 서민혁명 이라고 부릅니다. 부잣집 남자를 사귀어야 하는 이유는, 성공한 남자들이라는 점에서 섹시하며, 경제적인 자유와 데이트는 환상적인 경험이며, 모든 여성은 이러한 환상적인 즐거움을 누릴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데이트를 위해선 먼저 백마 탄 왕자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중요합니다. 명문대 도서관과 국회 도서관, 호텔 나이트클럽, 고급 레스토랑과 고급 바, 호텔 라운지, 헬스클럽, 골프장, 수영장, 테니스장, 공항의 항공사 VIP전용 라운지와 비즈니스 클래스석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자 남자를 만날 기회가 높은 직업도 소개하고 있는데, 백화점의 명품관 직원, 면세점 직원, 개인 비서, 고급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기자, 스튜어디스, 나이트클럽 물 관리사, 모델이나 아나운서 혹은 작가나 시인 등의 연예직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회는 세 번이다. 따라서 남자 친구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만약 그가 당신의 경제적 요구를 거절한다면, 다른 대화를 이어나간다. 잠시 후에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자기야, 정말 자금이 딸리는거야? 나에 대한 사랑이 딸리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은 두 사람 관계에서 당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런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달콤한 데이트나 섹스에만 관심 있는 남자라면? "굿바이!" - p.258

독특한 점은, 부자들의 특징에 좋은 점수를 주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상당한 부와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이 있다(114쪽)'고 지적하는가 하면, '돈이 많을수록, 상류층에 가까운 억만장자를 만날수록 점점 더 고약한 성격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재수 없는 남자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116쪽)', '사실 의심이 심한 부자남자들은 결혼상대로는 꽝이다. 결혼 후에도 당신이 받아야 할 스트레스는 돈으로도 전부 보상받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125쪽)'고 평가합니다.

신데렐라가 지녀야 할 세상에서 가장 냉혹한 진실은, 당신의 가치가 오르내리는 것은 왕자님이 당신을 위해 돈을 얼마나 쓰느냐에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 p.253

하지만 그런 평가와는 대조적으로 만나는 부자가 재수 없을수록 신데렐라의 꿈은 현실로 다가오니 놀부 같은 남자가 당신에게 데이트를 청하면 허락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결혼상대로는 최악이며, 결혼 후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남자를 결혼상대로 고르는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저자는 돈이 매력적인 것은 무형의 것들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며, 돈은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고,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괴로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사랑의 척도임을 강조합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하지만 배신의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터이니 가시는 길에 준비하소서. 아파트 세 채와 B와 P브랜드 자동차 두 대, 미용사업, 그리고 당신이 선물한 보석들과 시계들, 현금은 100억 안으로 변호사와 상의 중이오니 사랑하는 당신, 너무 염려하지는 마소서. - p.284

책에는 저자와 데이트한 매우 다양한 형태의 부자들이 나옵니다. 저녁 한 끼 가격이 1,210,600원이 나왔던 건축 예술가 박씨와의 데이트, 요트를 타고 서해 바다를 유람한 30대 초반의 명문가 귀족 형 백만장자인 노 씨, 은색 벤츠와 펜트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 강 씨 등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저자가 주장했던 부자들을 만나기 위한 조건들의 예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만나서는 안되는 부자들도 제시하고 있는데, 유부남인 부자들, 섹스관계를 요구하는 부자들, 술과 담배, 히로뽕 등을 좋아하는 부자들, 조폭과 같은 조직의 부자들, 돈은 많지만 여자들에게 돈을 쓰지 않는 워너비 부자들은 '당신이 부자를 만나기 위하여 투자하는 것처럼 이들도 부자 여성을 만나거나 사기를 치기 위하여 투자하는 것이니(210쪽)'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주변에서 이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산이 없어 500만원밖에 받지 못한 불우한 여성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자신의 결혼 철학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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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삶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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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나왔던 영화〈즐거운 인생〉은 독특한 록 밴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밴드는 젊은 시절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영화에서 밴드를 결성한 주인공들은 젊은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하고, 택배운전과 대리운전을 하며, 중고차를 팔던 주인공들은 삶에 몸부림치는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음악을 시작합니다. 이들의 선택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타를 다시 잡음으로서 인생을 다시 한번 즐겁게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이 말하고 있는 삶도 바로 그런 삶입니다.

현재 우리의 기대수명은 80세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엔 52세 정도였습니다. 불과 50년만에 수명이 30세 가까이 증가한 것입니다. 이 말은 50년 전의 세대에 비해 지금 세대의 사람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평균수명이 수십 년 길어진 것은 단순히 노년의 삶이 길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생 전체의 행로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공간이 열린 것입니다. 단순히 나이의 뒷부분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단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자는 성년기가 기존에 비해 크게 길어졌으며,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년기의 뒷 부분을 저자는 제2 성년기라고 부르는데, 이 제2 성년기는 지금까지 살면서 꿈꾸던 일들을 상당 부분 이루었지만 무언가를 더 하거나 다른 일을 하기에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시점입니다. 영화〈즐거운 인생〉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이 바로 이 시기인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밴드를 할 열정과 체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발달심리학 전문가인 에릭 에릭슨은 생애주기 이론이라는 것을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 생애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위기와 강점이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제2 성년기의 강점으로 능동적 지혜를 말합니다. 과거의 노인들처럼 어느정도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사회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으며, 상상력이 존재하고, 무언가를 새로 배울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삶을 인터뷰합니다. 그들은 모두 제2 성년기에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담담하게 말할 뿐이지만, 저자는 이들의 삶에서 지혜를 찾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지켜야 할 원칙과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이러한 제2 성년기 시점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회문화적으로 제2 성년기를 인정하지 않고 바로 노년기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열정과 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노년기라도 받아들이게 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남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두려움이 노인들의 영혼을 침식합니다. 나이드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다른 노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기존의 노인이라는 나이의 개념과, 노인을 바라보는 상투적 시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제2 성년기에 도달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칠순잔치를 마쳤다고 이제 노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답은 각자의 판단이지만, 어쩌면 아직 성년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제대로 둘러보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유용한 판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때론 도전적이며, 두려운 것이 될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저자는 제2 성년기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 줍니다. 이들의 삶을 따라할 수는 없지만, 제2 성년기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적지 않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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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가방 - 여자의 방보다 더 은밀한 그곳
장 클로드 카프만 지음, 김희진 옮김 / 시공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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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방은 사전적인 의미론 어떤 물건을 옮기기 좋게 하거나, 또는 잡다한 여러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운반하는 용도로 쓰이는 용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가방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이자 남자인 저자 장 클로드 카프만은 여자의 가방이라는 신비한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추적합니다. 여자들은 왜 가방에 집착하는가? 여자의 가방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왜 여자들은 가방에 모든 것을 갖고 다닐까? 왜 여자들의 가방 속은 항상 어지러울까? 왜 여자들은 명품 가방에 집착할까? 이런 다양한 의문에 가방은 답해줍니다. 가방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여자라는 존재의 한 단면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친한 이들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더 관계지향적인 존재입니다. 여자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자기들의 작은 세상을 돕고, 보살피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여자의 가방에서는 이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물건들은 모두 가방에 들어갑니다. 밖에 나갔는데 심심해질 수도 있으니 책을 넣습니다. 혹시 모르니 휴지도, 손수건도, 아스피린도 넣습니다. 가방에는 자신을 위한 물건 뿐 아니라, 혹시 모를 타인을 위한 물건까지 들어갑니다. 여자들은 남을 위한 물건을 갖고 다니는 것을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런 역할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자처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여자들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떠맡으며, 가방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쓸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부탁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남편에게 필요할 만한 물건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남자란 워낙 준비성이 없는지라 그에게만 맡겨두면 태평스럽게 주머니에 두 손만 달랑 찔러 넣은 채 외출할 수 있다. 마르졸리마망은 매번 '늘 잊어버리는 우리 남편 양반을 위한 티슈 한 팩'을 챙긴다. 티슈 한 팩, 지갑 하나 정도가 무거워 봐야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쯤이야! - p.57

가방은 실존적 맥락 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니면 문제를 사라지게 하기 위할때도 가방은 매우 유용한 파트너가 됩니다. 마음을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하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물건이 있다면, 가방에 넣습니다. 또한 평소 전혀 쓸모가 없지만 자신에게 굉장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있다면, 가방에 넣습니다. 가방은 때론 쓰레기통이 되기도 하며, 아이들의 장난감 박스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물건, 혹은 언젠가는 막연하게 쓸모 있을지 모를 물건들과 쉽게 헤어지지 못합니다. 때문에 가방은 삶의 사건들과 맞서게 해주는 물건들의 수호자임과 동시에 애정과 내밀한 기억들로 이루어진 작은 박물관이 됩니다. 더 나아가 가방은 여자에게 있어서 확장된 자아가 됩니다.

삶이 쌓여갈수록 관계를 맺는 사람도 늘고, 의미있는 물건도 늘어 갑니다. 이는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방을 정리하거나, 가방을 새로 사는 것입니다. 가방을 산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때론 사소한 변화가 가방의 구입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의 크기가 커진다면, 가방도 큰 가방이 필요해집니다. 큰 가방이 없다면, 큰 가방을 삽니다. 새로운 옷과 구두를 샀다면, 그에 걸맞는 가방이 필요해집니다. 때론 가방과 운명적인 만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느낌은 첫사랑과 비슷합니다. 이럴땐 가방이 주인이 됩니다. 이 가방을 위해 옷과 구두가 바뀝니다. 첫눈에 반한 가방이 실용적이기까지 한다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할 삶의 파트너가 됩니다.

역사적인 면에서 가방은 귀족들의 사치품과 귀중품 영역에서, 남들과 구별되려는 의지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여전히 유지됩니다.《안경의 에로티시즘》에서 안경이 언제나 사람과 붙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유한 이미지로 승화되었음을 언급하듯이, 가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방은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자기 이미지의 외면성을 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가방의 겉모습, 형태, 스타일, 소재, 상표입니다. 가방은 개성적이여야 하고, 독창적이여야 하며, 남보다 우월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가장 쉽게 만족하는 방법은 명품 가방으로 유명한 유명 브랜드의 가방을 사는 것입니다. 샤넬이나 프라다라는 이미지는, 가방의 곁을 떠나 주인에게 이식됩니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를 위협하는 것도 있습니다. 구별 기준이 브랜드 그 자체보다는 미적인 면이나 독창성 쪽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명품에 대한 제 생각은, 명품을 갖고 다닌다는 걸 의식하되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전 브랜드를 내보이고 과시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껴요. 그건 어떤 상처와도 비슷해요. 브랜드 제품이 성공과 소속과 구별을 말해주는 메시지인지, 저는 몰라요. 제가 보기에 그건 연약함이고, 인정해달라는 요구에요. 제 가방은 말하죠. 나 자체로 인정해줘, 라고요. - p.174

여성들은 가방을 사랑합니다. 가방은 공구상자인 동시에 보물이 숨겨진 동굴이며, 자아의 확장입니다. 가방은 주인의 내면에 철학적 논쟁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방을 정리하고 비우거나, 혹은 그 반대로 내면의 세계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한 여성의 삶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여자들은 가방을 통해 가벼움과 모험에 대한 이상을 택할 수도, 안전과 안락함에 대한 이상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가방에 수없이 담겨있는 추억과 애정과 관계에 대한 것들은 여자에게 내밀한 동반자가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여자들에게 있어서 가방은 천이나 가죽으로 된 단순한 소품이 아닌 본질적인 필수품, 자신만의 세계이자 다른사람을 향한 사랑의 세계, 물건 그 이상의 물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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