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사기다
스메들리 버틀러 지음, 권민 옮김 / 공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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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전쟁이 없던 때는 전체의 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체첸, 소말리아, 수단 등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를 밥먹듯이 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전쟁을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며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의 역사만큼,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의 역사도 오래되었습니다. 스메들리 버틀러의《전쟁은 사기다》역시 수많은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을 담은 책 중 하나입니다. 인상적인 점이라면, 스메들리 버틀러는 해병대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라는 점입니다.

스메들리 달링턴 버틀러는 16살에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필리핀, 중국, 쿠바, 파나마, 온두라스, 니카라과, 멕시코, 아이티, 도미니카의 전투에 참여했고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위치한 미군 상륙 기지의 지휘관을 맡기도 했습니다. 121회의 전투에 참여하면서 16개의 훈장을 받았으며, 그 중 하나는 해병대 최고 훈장인 브레빗 훈장이었고, 두 개의 명예 훈장을 수훈했습니다. 48살에는 역사상 최연소로 소장으로 진급합니다. 파시즘을 증오했던 버틀러는 무솔리니를 공개석상에서 비판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이탈리아가 강하게 항의하자 후버 대통령은 버틀러를 군사법정에 세웁니다. 이 일을 계기로 버틀러는 50의 나이에 퇴역합니다.

나는 가장 역동적인 군대인 해병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했다. 소위부터 소장까지 해병대의 모든 지휘관 계급을 거쳤다. 그런데 나는 그 기간의 대부분을 '빅 비즈니스(대기업)'와 월스트리트와 은행을 위해 일하는 고위 폭력배로 보냈다. 요컨대 나는 자본주의를 위해 일한 사기꾼이자 폭력배였다. 나는 그 시절 내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내가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모든 직업 군인들처럼 나도 현역을 떠나기 전까지는 자신만의 생각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상부의 지시에 복종하는 동안 내 정신 능력이 정체되어 있었다. 이것은 모든 현역 직업 군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p.52 

1차 세계대전 이후 참전군인들은 직업을 구할 수 없었고, 정부에서 약속한 상여금을 바라보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 회복이 둔화된다는 이유로 상여금 지급을 거부합니다. 참전군인들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이런 병사들을 지원한 최고의 후원자가 병사들의 장군으로 불리웠던 버틀러였습니다. 상여급 지급안이 계속 부결되자 시위는 계속되었고, 후버 대통령은 육군에게 참전군인들을 해산시키라고 명령합니다. 더글러스 맥아더와 패튼은 연대와 탱크를 끌고 와 시위대를 공격했고, 시위대는 4명의 사상자와 1000명의 부상자를 냅니다.

퇴역 후 버틀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반전 평화주의 연설을 합니다. 버틀러가 보기에 전쟁은 시민들의, 더 좁은 의미로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서 자본가들이 돈을 버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참전했던 전투 지역은 모두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전투는 미국 정유사들의 안전을 위함이었고, 아이티와 쿠바에서의 전투는 은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설탕 제조업을 지키기 위해 도미니카에 쳐들어갔고, 안정적인 바나나 수입을 위해 온두라스를 공격했습니다.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지키기 위해 니카라과를 공격했고 지배했습니다.

어느 용의주도한 애국 기업은 엉클 샘에게 48인치 렌치를 144개나 팔아넘겼다. 물론 그것들은 아주 훌륭한 렌치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렌치로 돌릴 만큼 커다란 크기로 만들어진 너트가 지금까지 한 개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는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에 설치된 발전기 터빈을 고정하는 너트였다. - p.92 

버틀러는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보면서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건 기업뿐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전쟁은 정부로 하여금 비효율적인 지출을 강요했고, 결국 기업가들에게 평상시보다 엄청난 부를 약속해주는 구조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버틀러는 전쟁에 들인 돈이 총 520억 달러였는데, 그 중 실제로 전쟁 자체에 쓰인 돈은 390억달러였다고 말합니다. 그 차액은 고스란히 기업가들에게 돌아갔고, 소수의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이 생겨납니다. 전쟁으로 생겨난 이득이 소수에게 집중된 반면에 전쟁으로 인해 생긴 빚은 일반인들의 세금으로, 그 중에서도 군인들이 가장 많은 빚을 갚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도중에 군인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봉급을 받았는데, 그 봉급마저도 정부에 다시 돌려줘야 했습니다. 군인들은 상해 보험료를 자기 봉급으로 내야 했고, 지급받은 탄약과 군복과 식량에 대한 비용도 내야 했습니다. 일자리를 버리고 참호 속에서 자고 전투 식량을 먹고 옆에서 폭탄이 터지며 죽이고 죽이고 죽어야 했던 군인들이 전쟁 빚의 대부분을 갚았습니다. 그들이 살아 돌아왔을때는 이미 육체, 혹은 정신이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1914년 8월 유럽인들이 빠져 있던 저 열광은, 12월에 사망자 수가 총 백만을 넘어서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전쟁은 시체를 생산했다. 900만 명 이상이 대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변소. 질 낮은 식사. 피 냄새. 썩는 냄새, 인간과 쥐와 말 냄새, 수류탄 타는 냄새. 시체 위에서 양귀비가 피어났다. 전쟁은 악취를 풍긴다.『데일리 미러』의 한 필자가 쓴 글은 게재되지 못했다. "병사의 마음속에는 증오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쟁의 이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단합된 힘으로 모두 함께 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사실 그들은 총알받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알고 있다. 개개인은 전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오는 오히려 후방에 자리잡고 있다. 병사들은 전투가 미친 짓이라는 점을 분명히 본다. 그래서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버틀러는 전쟁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구조가 전쟁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전쟁을 막기 위해선 특정 그룹이 전쟁에서 이득을 볼 수 없게 해야만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득을 낼 수 있는 여타 온갖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체, 은행과 투자업체 등의 임원과 관리자와 고위 경영자를 징용하고,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모든 사람들의 수입이 참호 속의 군인에게 지급되는 월급보다 많지 않게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을 선포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때 제한된 국민 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데, 이 투표는 모든 유권자가 아닌 전쟁에 소집돼 나가서 싸우고 죽을 사람들, 즉 젊은이들만 참여하는 국민 투표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버틀러는 미국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모습을 경계하면서 군사력을 자국 방어용으로만 제한해 군함은 해안선 200마일을, 공군은 500마일 이상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나온 이 책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피를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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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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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인도의 최하층 신분인 달리트 출신의 나렌드라 자다브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상 책은 나렌드라 자다브의 부모님인 다무와 소무의 일기이며, 바바사헤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하던 시기에 카스트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바바사헤브와 그에 감명받은 다무와 소무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무와 소무의 계층은 카스트의 4단계, 사성제의 노예계층인 수드라 계층보다도 낮은 아웃카스트, 불가촉천민입니다. 1950년 인도헌법은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했지만, 아직도 뿌리깊은 카스트제도의 차별은 남아있습니다. 그에 대항해 불가촉천민 계급의 해방을 이끈 인물로 바바사헤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는 뛰어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로, 훗날 인도정부 초대 법무장관을 지내게 됩니다.

다무는 전형적인 달리트로, 그의 역할은 마을의 하인 역할입니다. 가축의 시체를 치우고, 귀빈의 방문을 노래로 찬양하며 신발을 신을수 없고, 오로지 남이 주는 음식을 빌어먹는것만이 허락된 노예입니다. 그런 그가 살던곳에서 도망쳐 일자리를 구하던중 얻게된 바바사헤브 운동단체에서의 일은 그의 자긍심과 인권을 향상시켰고, 그로인해 부모님과 아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을 겪게 됩니다. 그는 변함없이 바바사헤브가 주장한 인간의 평등에 대해 주장했고 결국 그의 아내인 소무 또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게 됩니다.

다무와 소무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면서 삶은 변화했습니다. 여전한 계급차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그 결과중 하나로 저자인 나렌드라 자다브처럼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신은 불가촉천민들에게 있어서 족쇄에 불과했습니다.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내치는 것임을 다무와 소무는 삶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일기를 바탕으로 씌여졌기 때문에 읽는이로 하여금 몰입도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다무와 소무라는 한 가정이 노예계급에서 인권을 깨닫고 사회활동을 하고 참정권을 행사하고 종교를 바꾸는 과정이나 개인적인 결혼이나 직장을 얻었던 일, 다투는 일 등을 보며 우리네 1950~70년대즈음 가정도 이러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은 당연스레 생각하는 시민의 권리, 남녀평등, 계급평등, 종교의자유 등이 이루어질수 있었던 과정을 느낄수 있기에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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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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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신경정신과의 교수 출신으로 수용소에 생활하면서 그의 직업다운 관점으로 수감자들을 바라봅니다. 수용소생활을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은, 수감사들을 죽음으로 이끈것은 단순히 가혹한 강제수용소의 환경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인한 자포자기가 사망률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제시합니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가혹한 노동조건,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닌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의 상실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저자 빅터 프랭클을 비롯한 생존자들의 공통점은 아내를 보고싶다는 상상,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싶다는 상상, 글을 쓰고싶다는 상상 등의 삶의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믿음의 유무는 가스실로 가는것을 결정하는 장교의 손과는 상관이 없었지만요.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 이라는 사실이였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였다. 수용소에서 우리는 이를 닦을수 없었고 모두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잇몸이 그 어느때보다도 건강했다. 세수는 고사하고 손하나 씻을수 없는 환경에서 찰과상을 입어도 - 동상에 걸린 경우만 제외하면 - 상처가 곪는 법이 없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라고 묻는다면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 pp.46~48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생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프로이트 정신학 -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춘 정신학 - 과는 다른 로고테라피 -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정신학 - 을 창안합니다. 이 책의 2부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기본 개념이 씌여져 있는데, 기존의 정신분석이 환자가 의사에게 회고하고 성찰하는 방식이라면 로고테라피는 의사가 환자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데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3가지 방법으로 찾을것을 권고하는데,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하는것, 자연과 문화 등을 체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체험하는것, 시련을 받아들이는것 을 권고합니다.

인간은 여러개의 사물속에 섞여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였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것을 취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이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 p.215  

로고테라피를 통해 기존의 정신질환을 치료할수 있음을 직접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으며 정신질환 치료를 하나의 테크닉이 아닌 환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으로 변화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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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티베트 - 눈보라를 헤치고 히말라야를 넘으며
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김화경 옮김 / 하얀연꽃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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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14개의 8000미터 봉우리의 산이 있는 곳,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바로 그곳을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등산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고, 낮에는 바위 아래서 눈을 붙이고, 밤에는 어둠의 보호를 받으며 걷습니다. 얼음폭포와 빙하를 건너고 해발6000미터가 넘는 설산을 넘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고, 동상으로 손발을 잃기도 합니다. 그들은 중국이 불법으로 무장점령한 티베트를 탈출하는 티베트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혹한 히말라야 산맥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승려들은 믿음의 자유를 찾아, 청년들은 미래를 찾아, 아이들은 학교를 찾아 중국을 탈출합니다. 국경을 넘다 체포되면 가혹한 고문과 수감생활을 해야 합니다.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었고, 피란민들 절반은 어린아이들입니다.

눈이 녹았을 때, 독일계 이란 등반가 미샤 살레키(Mischa saleki)는 산 속에서 티베트와 네팔 국경을 넘다 얼어 죽은 아이들을 발견합니다. 등반가는 목격한 슬픈 광경을 사진에 담았고, 몇 달 후인 1998년 6월 30일, 사진은 ZDF 뉴스매거진 프로그램 프론탈에서 방영되었고, 1999년 3월 22일엔 잡지 포쿠스의 화보면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과 사진은 저자 마리아 블루멘크론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녀는 히말라야를 넘는 탈출과정을 찍고, 전 세계에 중국의 만행을 알리겠다는 의지로 티베트로 날아갑니다. 그러던 과정에서 중국공안에 발각되 취조를 당했고, 감금도 당했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결국 여섯 명의 티베트 아이들과 국경을 넘고 그 과정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또한 티베트의 전설적인 국경 가이드 켈상 직메의 인생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엄마는 틴레가 떠나기 전에 머리를 빗겨 주었다.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도 딸이 예쁘게 보이길 바랬다. 빨간색 머리핀은 딸아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였다. "티베트에서 탈출하면 넌 학교에 갈 거야. 감색 교복하고 책가방, 귀에 꽂을 커다란 보라색 꽃을 받게 될거야." 틴레는 웃었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산맥은 틴레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가이드 켈상은 얼어붙은 틴레 손을 잡았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건넨 세개의 사탕 가운데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는 사탕을 끝까지 남겨 두었다. 틴레가 소리를 냈다. 짧고 아주 나지막한 소리였다. 그리고 아이는 숨을 거뒀다. 산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얼마나 쓸쓸한지를 생각하며 가이드 켈상은 울었다. 사람들은 49일동안 틴레를 위해 기도를 올리기로 했다. 너무 일찍 둥지에서 떨어진 작은 새처럼 틴레는 산 속에 남겨졌다. 

켈상은 아주 유능한 탈출 가이드로, 그의 인생은 중국의 불법점령이 어떠한 것인지를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켈상이 어렸을 무렵 중국이 티베트로 침공을 했습니다. 마오쩌둥의 군대는 불교 사원을 부수고, 티베트 사람들을 총과 칼로 점령합니다.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책은 금기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납치, 고문합니다. 켈상은 그런 만행을 보며 자랐고, 성인이 된 후 인도로 떠납니다. 그 후 켈상은 티베트 사람들을 위해 수없이 국경을 넘어 티베트 사람들을 탈출시켰고, 티베트 사람들에게 달라이 라마의 소식과 책 등을 전해줍니다. 저자 마리아 블루멘크론과 국경을 넘으려던 켈상은 중국 경찰에 체포됩니다. 마리아는 이틀 밤낮을 심문받은뒤 추방되었고, 켈상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습니다. 감옥에서 석방된 켈상은 마리아와 함께 국경 통로인 낭파 패스에 다시 한 번 가기로 합니다. 켈상 직메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국 티베트 땅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굿바이, 티베트."

2006년 9월 30일, 일흔세 명으로 이루어진 피란민 일행과 가이드가 국경경찰의 총격을 받았을 때 국경은 거대한 비극의 무대가 되었다. 마흔한 명의 피란민은 네팔 쪽 국경을 넘어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서른 명은 체포되었다. 그 가운데 청소년과 어린이가 열네 명이었으며 가장 어린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스무 살의 쿤상 남걀(Kunsang Namgyal)은 다리에 두 발의 총상을 입었다. 청년은 상처로 인해 며칠 후에 사망했다고 한다. 열일곱 살 여승 켈상 남초(Kelsang Namtso)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무장한 중국인민경찰이 쏜 총알 단 한발에. 초유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던, 세계 전역에서 온 등반가들이 그 죽음의 총격 현상을 목격했다. 루마니아 산악인 세르규 마테이가 사건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 p.279

책을 통해 삶에 대한 희망과 내일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티베트 사람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아마, 제국주의가 만연했을 당시의 식민지 사람들, 그리고 독재자에 저항하던 사람들 또한 이 티베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의 소중함이란 가치에 대해 이 책은 극명한 상징물을 제시함으로서 그 가치의 소중함을 말해 줍니다. 스스로에게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해 봅니다. 해발 6000미터의 눈덮힌 산맥에 제대로 된 복장도 갖추지 못하고 가야 한다면? 그것도 성인도 아닌 어린 시절에 수많은 국경 경찰들의 눈과 총을 피해서?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사람들이 실제로 수없이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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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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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차별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책의 저자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고 일약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할 당시에 흑인의 삶을 체험했고 그의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남겼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눈동자색이 검다는 이유로, 혹은 머리카락이 검다는 이유로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을 두고 5km나 떨어진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거나, 취직을 거부당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제대로 살수 없다면 어떨까요? 그러한 차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자는 흑인으로 분장을 하고 흑인차별이 가장 심한 미국 남부 지역을 7주동안 여행합니다. 그에게 비춰지는 미국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미국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로 다가옵니다. 그가 매일 아침을 즐겼던 레스토랑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금단의 식당이 되었고, 밝은 햇빛과 대로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어둠과 골목길에서 바라보는 도시가 됩니다. 그가 찾아갈때마다 활짝 웃으며 농담을 건네던 여자 직원은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버스를 타다 휴게소에 들려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흑인이 되었기 때문에 길거리의 백인 여자를 쳐다보는 행동을 해서도 안되며, 심지어 영화 포스터에 그려진 백인 여자마저 쳐다봐선 안됩니다. 그 모든 이유는 그의 피부가 검정색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비록 그때와 다름없는 식욕과 미각을 가졌고, 심지어는 지갑 사정까지도 똑같았지만 이 지구상에 아무리 힘 있는 자가 와도 나를 이 유명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여보내 식사를 하도록 해 줄 수는 없다. 예전에 한 흑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여기서 평생 살 수는 있지만 주방 잡일꾼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멋진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겁니다" - p.90 

아이러니한 점은 저자가 여행하던 당시의 미국사회도 겉으로는 인종차별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인종차별 금지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고, 백인들은 흑인들을 예의바르게 대합니다. 하지만 이런 예의는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예의바르게 대한다 해도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 흑인들은 그 일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차별을 자기 개인을 향한 것이라 느끼며 화를 느낍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흑인은 백인에 대해 일정한 견해를 갖게 되며, 반대로 백인은 흑인이 왜 자기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백인은 항상 개인으로 존재하고 절대로 자신이 흑인을 차별하는 행동을 했을리 없다고 부정합니다. 항상 자기는 친절하고 공정하려 했기 때문에 흑인들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흑인을 점잖고 착하게 대했지만 집단으로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어 흑인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은 분위기는 남부를 여행하던 도중 발생한 맥 파커 납치 린치 살인 사건에 대한 판결로도 알 수 있습니다. FBI는 린치를 가해 살해한 사람들의 정보를 모두 제공했지만, 배심원단은 서류를 검토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인이 흑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미국의 사법부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게 되고, 그것은 흑인 사회에 깊은 절망감을 안겨 줍니다.

우리는 저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돌려주고 정의로운 평등을 다짐해 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아무런 간섭도 하지 말고 모든 이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우리는 온정주의를 베푸는 과정에서 편견을 드러낸다. 온정적인 태도는 저들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 -p.240

여행을 하며 만나는 흑인들의 노래는 시끄럽고 경쾌합니다. 어떻게 그들은 사회적 지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환희에 찬 삶을 살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저자는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웃음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커다란 노래는 삶의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흑인의 지독한 우울은 시끄러운 소음이나 와인, 섹스, 폭식으로 감각을 무디게 해 삶을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웃음소리는 흐느낌으로 바뀌고, 흐느껴 울면 깨닫고, 깨달으면 절망하게 됩니다. 사회적 차별을 견디기 위해 유대감을 강화하고, 같은 흑인끼리 더 많은 정을 줍니다. 저자의 피부색을 바꾼 순간, 그의 정체가 백인임을 아는 흑인들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우리' 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우리 처지'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백인들은 흑인들이 소리치고, 술에 취하고, 엉덩이를 흔드는 것의 의미를 모릅니다. 그 단순한 시각은 곧 흑인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집니다. 그 편견은 또다시 흑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흑인은 전부 섹스머신이라던지)과 잘못된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흑인에게 또다른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흑인으로 변한 저자와 차에 태워주는 백인들간의 대화에서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나이,배움의 정도에 관계없이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 p.404 

그는 이 흑인으로 살아가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인간을 판단하는데 있어 피부색이나 우연한 어떤 것으로 판단하는 상황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인 실험은 미국 흑인인권 상향에 기념비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책이 나온 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증오 대상자 명단에 올랐고, 10년뒤 KKK단의 구타를 받아 죽을 뻔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저자 존 하워드 그리핀은 책을 쓴 후에도 마틴 루터 킹, 딕 그레고리, 사울 알린스키, 로이 월킨스와 같은 세계적 인권운동가들과 활동을 함께 해 인권운동가로서의 명성을 날립니다. 단순히 실험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 그의 책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위대한 책의 하나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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