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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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을 쓰지 않고 기르는 농작물은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의 경우 농약을 쓰지 않고선 수확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농약을 안 썼을 경우 병충해로 인해 사과 수확량이 90퍼센트 이상 줄어든다고 합니다. 평년의 10퍼센트 이하 수확이라는 큰 피해를 입은 나무는 이듬해에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무농약 재배를 2년간 계속하면, 사과 수확은 거의 제로가 된다는 뜻입니다. 과거 사과의 야생종은 지금보다 작고 신맛과 떫은맛이 강했습니다. 꾸준한 품종개량과 농약의 발명이라는 쾌거에 힘입어 19세기 미국의 조니 애플시드는 현재의 사과인 크고 단 사과 품종을 선보임으로서 세계적인 붐을 일으킵니다. 과거엔 아무리 달고 크더라도 병충해에 약하면 재배할수 없는 품종이 되었지만, 농약은 그 한계를 뛰어넘게 했습니다. 야생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고 큰 과일이 되었지만, 동시에 농약의 도움 없이는 병충해와 싸울 수 없는 식물이 된 것입니다. 농약을 토대로 개량된 품종, 사과는 농약에 크게 의존하는 현대 농업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농약을 쓰지 않고 사과를 기르는 것. 그것이 기무라 아키노리씨의 꿈이였습니다.

기무라씨는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차남이였기에 굳이 가업을 이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기계를 분해하고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결국 도시에 나가 회사원이 되었지만, 형의 입대 때문에 본가로 돌아갑니다. 훗날 다시 형이 돌아와 가업을 이었지만, 중학교 시절 동급생이던 미치코씨와 결혼해 데릴사위로 들어갑니다. 평범한 농부가 되던 어느날 농업 전문 서적을 서점에서 찾던 도중 그의 인생을 바꿔놓게 될 책을 보게 됩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쓴 '자연 농법' 이였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농업에 기무라씨는 큰 매력을 느낍니다. 거기다 아내 미치코씨는 농약에 매우 약한 체질이였던 터라 농약사용을 없앨수만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당시 평균적인 농가는 반년에 13회정도의 농약을 뿌렸는데, 기무라씨는 그런 과정을 전부 없애고 무농약 사과 재배의 길로 들어섭니다.

처음엔 농약 대신 해충을 막아줄 식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밀가루를 뿌려보기도 하고, 고추냉이를 뿌려보기도 하고 우유나 달걀흰자를 뿌려보기도 했습니다. 흑설탕, 후추, 마늘, 간장, 소금, 술, 식초.. 하지만 이런 식품들은 별 효과가 없었고, 병충해에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하다 4년째에 접어들자 기무라씨의 가족은 극도의 가난상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세금이 밀려 사과나무에 차압딱지가 붙기도 하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빚을 얻고, 소비자금융에서 돈을 빌리기도 합니다. 당시 버블경제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이웃들이 보기엔 기무라 집안은 괴이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웃들과의 불화, 가족들의 고통에 괴로워하던 기무라씨는 무농약 사과에 도전한지 6년이 접어들 해에 자살을 결심하고 산에 오릅니다.

이제껏 농약 대신 벌레나 병을 없애 줄 물질만 찾아 헤맸다. 퇴비를 뿌리고 잡초를 깎으며, 사과나무를 주변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다. 사과나무의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농약을 쓰지 않았어도 농약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158

자살을 하기 위해 산의 나무에 밧줄을 던졌지만 너무 세게 던지는 바람에 밧줄이 산비탈 밑으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죽기 전의 상황에서도 실수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산비탈 길을 내려간 기무라씨는 달빛 아래에 있는 과일나무를 보게 됩니다. 처음엔 사과나무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도토리나무였습니다. 농약을 안 썼는데도 어쩌면 저렇게 잎이 많이 달렸을까 하며 넋을 잃고 있던 기무라씨는 문득 눈앞의 나무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사과나무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흙이였습니다. 지금껏 사과나무의 보이는 부분만 신경썼을뿐, 지하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 부드러운 흙은 벌레와 미생물, 균과 잡초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기무라씨는 이후 풀베기를 끊었고, 콩을 뿌려둡니다. 콩과 잡초가 자라고 곤충들과 개구리와 뱀들이 다시 사과농장으로 돌아옵니다. 간간히 식초만을 뿌리며 관리를 한 결과, 8년째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말라가던 나무들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살아남는 잎도 많아졌습니다. 800그루였던 나무중 단 한그루에서 7개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 7개의 꽃 중 두개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년째, 사과나무들을 일제히 꽃을 피워 재생의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처음 수확한 사과는 크기는 탁구공만했고, 모양도 좋지 않아서 중개인에게 찌꺼기 사과 취급을 받았습니다. 결국 도매상에게 넘기지 못하고 오사카의 음식 축제를 찾아갑니다. 오사카의 음식 이벤트에서 극소수의 관심을 보인 사람들에게 전부 쥐어다 주다싶이 한 사과의 반응은 몇 주가 지난 후에야 도착했습니다. 편지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사과는 처음 먹어 봤습니다. 보내 주세요." 그 후 점점 사과관리에 능숙해지면서 당도관리에도 개선이 이루어졌고, 크기 또한 점점 커졌습니다. 몇년의 연구 끝에 가을에 한번 풀베기를 하는 것, 그리고 식초의 양을 조절하는 법, 잎맥을 살피며 가지치기를 하는 법 등은 그의 사과에 상업적 가치를 부여했고 결국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하게 됩니다. 농약을 안 뿌렸는데도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기무라씨는 아마 밭에 충분한 영양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화학 비료든 유기 비료든 비료는 사과나무에 여분의 영양을 주고, 그것은 해충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충분한 영양은 사과나무로 하여금 깊에 뿌리를 뻗을 필요성을 상실하고, 결국 운동도 하지 않고 먹을것만 풍족하게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황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자연적인 저항력을 잃어 농약에 더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1970년대 이래로 독일의 토양은 수확으로 빠져나가는 것 이상으로 식물의 영양소가 잔존해 있다. 그 결과 자연의 순환현상이 이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목초지와 농지에는 연간평균으로 볼 때 헥타르당 100킬로그램으로 지나치게 많은 질소가 뿌려지고 있다. 집약농업이 이루어지는 많은 지역에서는 과잉 수확량이 두 배 이상에 달한다. 인류의 오수보다 세 배나 오염도가 높은 비료의 과다 사용을 지금처럼 계속 묵인한다면 단 한종의 동식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할 것이다.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문명을 누리고 있는 처지에서는 농약을 사용한 농업을 비판하기가 어렵습니다. 본래 존재해야 할 재래 식물이나 곤충, 동물들을 없애고 자리잡은 농업은 지구상의 60억이 넘는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선 필연적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자연이 인류의 사정을 헤아려 줄리 없기도 합니다. 기무라씨는 자신의 꿈을 통해 그 중간에 있는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무농약 무비료로 농작물을 재배하면 손이 많이 갈 뿐더러 농약을 사용하는것에 비해 수확량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농약 농가들은 높은 가격에 팔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농약 재배 식물은 언제까지고 사치품으로 남을 뿐이라고 기무라씨는 말합니다. 현재는 어려울 지 몰라도 점점 더 개량해서 농약으로 만든 농작물과 경쟁할 수 있는 싼 가격에 출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부르는 말 '기적'. 농업에 농약은 필수적이라는 사회적 상식에 도전하고 결과를 만들어낸 '기적의 사과', 그 전리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기무라씨의 새로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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