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 시온 감독이 젊을 적 인디영화 시절에 착안했다고 알려진 [지옥이 뭐가 나빠]는 한마디로 천진한 치기와 낭만이 어울어진 영상 광시곡이다. 영화적 활력으로 넘쳐나는 영화에 관한 영화 - 메타무비 - 이면서 소위 '마이너 뽕끼' 작렬, B급 무비의 한 경지를 보여주는 '미친 영화'다.
야쿠자 보스 무토(쿠니무라 준)를 암살하러 온 반대파 야쿠자들이 되려 무토의 여장부 아내에게 황당하게 도륙되고 홀로 살아 남은 이케가미(츠츠미 신이치)는 피칠갑 난장 속에서 깜찍한 CM송을 곁들여 율동을 펼치는 무토의 딸이자 아역배우 미츠코(하라 나노카)에게 반한다. 한편 아마추어 영화광 히라타(나카지마 타츠야)를 비롯한 '퍽 보머스(Bombers)' 패거리들은 그날도 미친 듯이 온동네를 휘저으며 영화를 찍어대다 이소룡과 닮은 불량배 사사키(사카구치 타크)를 새로운 멤버로 영입하고, 도주중이던 이케가미까지 카메라에 담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출소를 앞둔 아내의 소원대로 어찌 해서든 장성한 딸 미츠코(니카이도 후미) 주연의 영화를 만들어 보여주려는 보스 무토의 살벌한(?) 후원 하에, 이제 청년이 된 히라타(하세가와 히로키)와 '퍽 보머스' 영화패는 꿈에도 그리던 장편영화를, '세상에 길이 남을 액션 명작'을 찍게 된다. '무토'파와 그 철천지 원수 '이케가미'파의 사지절단 하드고어 실전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있는 그대로.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인간군상, 그들의 과거와 현재, 욕망과 열정이 '영화'를 구심점으로 한데 엮여 모인다.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복잡한 구도와 얼개를 이루지만 결국 절절한 '영화 사랑'이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 '사랑'이 [시네마 천국]에서 지향했던 양지바른 주류 클래식 필름들에 비해 온당히 대접받지 못했던 이른바 '싸구려' B급 취향에의 애정이고 헌사이며 찬가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내 경우엔 감상 도중 작품 정서와 주제가 절묘하게 확장되는 체험을 했다. 실존주의 부조리극으로 봐도 무방하리만치 시종 난무하는 억지와 우연, 피와 내장의 잔혹한 카니발이 소노 시온 감독의 엽기 코드 속에서 재기발랄 어울어져 빛을 발하는, 차라리 순수하다고 할만한 이 한 편의 '영화광의, 영화광에 의한, 영화광을 위한' 아수라 판타지를 넋놓고 즐기다 보니 역설적으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 있었던 것이다. 망각의 저편에 두고 온, 지금은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무엇. 그건 아마도 그 대상이 비단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은 어떤 무모한 갈망, 간절한 발악, 지극한 그리움, 회한 같은 것 아니었을까. 나 자신, 실컷 웃고 보다가 작품 세계를 시적으로 축약했다 할 수 있을 엔딩 주제곡 끝소절에 문득 숙연해진 건 분명코 그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태어나 세상에 떨어진 날부터 애초에 있을 곳 따윈 없어. 단지 지옥을 헤쳐 가는 이가 슬픈 기억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