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 덧씌워진 여러 치장들, 그리고 언제부턴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며 그 치장들을 하나씩 거둬내고 있는 진화생물학 지식들... 그에 대해 나는 종종 학부 시절 투신했던 회계학의 역분개를 떠올리곤 한다. 발생주의에 입각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는 기업의 실체를 이상적인 이론대로 드러내줄 수 있되 흑자도산을 감지 못한다. 그에 재무제표의 이론적 치장을 거둬내는 역분개의 현금흐름표가 진화생물학 이론, 가설들이나 마찬가지다. 허나 현금주의 회계만으로 한 경제 주체의 본질을 파악하려다간 배가 산으로 가 버림에.


젊을 적 겉멋든 실존을 찾으며 속된 행복이나 희망 따위 개념 자체를 부정했었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해왔다. 나는 씁쓸한 현실 인식, 자각만으론 살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돌이켜 보면 행복이란 개념 자체를 내 생에서 배제하고 해체하려던 몸부림 역시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행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금 다른 신작을 몇 편 더 챙겨볼까 하다가 저절로 손이 옮겨간 [사요나라 이츠카]를 또다시 플레이, 뻘려들다시피 보았다. 도대체 이 작품은 왜 열 번을 넘게 거듭봐도 나를 이토록 사로잡는 걸까. 서재혁이 작곡한, 황홀할 정도로 파고들어 혼을 뒤흔들어 놓는 음악이.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나카야마 미호의 마성이. 무엇보다 젊었을 적 가지 않은 아니, 가지 못한 길에 서린 초로의 회한이... 점점 이렇게 현실 도피, 혼자만의 세계에 나를 두고서 행복을 찾는다. 그런 나를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하지 않으려 한다. 얼싸안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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