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전에도 말했듯이 공기 맑은 시골이라 무지개도 가끔 볼 수 있고, 달팽이도 자주 볼수가 있다.
특히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화단같은 데서 조용히 살던 달팽이들이 무더기로 길거리로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즉 화단 밖의 인도로 기어나오는 것이다. 왜인지는 정말로 알길이 없다.
더욱 이해가 안가는 것은 많은 수의 달팽이가 무신경한 사람들의 신발바닥에 깔려 무수히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빠각하면서 집이 깨지고 온몸이 터져 죽는 것이다. 아이고 너무 끔찍하다. 밟지 않으려고 바닥을 상세히 쳐다보고 지나가는 나로서는 그 죽은 잔해들을 다 봐야만한다는 무서운 현실에 봉착하고 마는 것이다.
이상하다.
여기는 잔디밭도 많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잔디깎는 기계가 지나고 나면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하고 좋은지 모른다. 잔디밭의 많은 데이지 꽃, 민들레 꽃도 이쁘다. 너무 이뻐서 자세히 관찰을 했다. 민들레는 잡초라고 홀데받고 있기는 하지만.
보니까 영리하게도 이 데이지와 민들레가 잔디깎기에 꽃모가지가 댕강댕강 짤려버리고 마는 주기적 지옥체험을 하면서, 점점 더 키를 줄인다는 것이었다. 즉, 댕강댕강 짤려나가도 굴하지 않고 또 바로 바로 꽃을 생산해내시는데 금새 환경에 적응을 해서는 아주 땅바닥에 딱 붙어서 피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키를 줄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식물은 그렇게 한다. 변화를 한다.
우낀 것은 유사한 현상이 인체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여자분들 중에서 다리에 좀 복실하다 싶은 털을 가지신 분들은 바쁜 와중에도 그 털 제거에 또 한 힘 쓰게된다. 가끔 심심할 때, 혹은 여름에 진하다 싶은 것만 골라서 뽑곤 했었는데, 얼마전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 털이 새로 자라나면서 피부 밑으로 났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피부를 뚫고 밖으로 나와 바람에 휘날려야할 털이 상쾌한 바람을 맞을 것이냐 뽑혀 죽을 것이냐의 기로에서 바로 이런 선택을 내린 것이다. 투명한 피부의 가장 바깥 층 아래에 검은 털이 비쳐 보이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의 털이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생존을 위해서 선택을 한 것이다. 나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또 다른 세포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라는 삶터를 이루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세포들이 살아가는 삶터이다.
아. 사진을 찍어놓았어야했는데.
어쨌거나. 그렇다는 것이다. 데이지도, 민들레도, 내 다리의 털도 환경이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면 그것을 학습하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변화한다. 그런데 이 바보같은 달팽이는 왜 전혀 학습하지 못하고 매번 무수히 죽어나가냐는 것이다. 정말 매번 일어나는 일인데. 지나가다가 다른 달팽이의 사체를 넘어가 생존한 달팽이들이 분명 있을 것인데. 즉,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달팽이들이 알터인데.
혹은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 생태계 혼란으로 종이 전멸될 것을 염려한 달팽이들의 자살일까? 그렇다면 얼마나 숭고한 죽음인가. 인간보다 낫구만.
열등한 것인지, 너무 우월한 것인지. 나로서는 그 깊은 속을 알 수가 없다.
신비.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