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작은 발견 -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
공혜진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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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늘, 작은 발견]의 부제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이자 '내게로 와서 특별한 '의미'가 된 반짝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쓰여있다. 사실 엄청난 의도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책들이 끌릴 때도 있지만 계절이 바뀌는 지금, 서늘한 바람사이로 무언가 빈틈이 느껴질때면 소소하게, 덤덤하게 마음을 다녀가는 책들이 더 끌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차분히 내려놓고 프롤로그를 읽다가 아! 뜻밖의 보물발견! 이라고 마음속에서 외치게 되었다.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은 완전체이기보다는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분이어서 상처가 있거나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다. 평소라면 그것 자체에 눈길을 주거나, 따로 떼어서 바라볼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길 위에 있는 것들은 대개 사연이 있는 것들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가 길에서 주은 것들을 모아 기록하는 작업을 해온정도의 노력은 없었지만 미련이 많고, 잔정이 많은 내게도 길위에 버려지거나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을 '조각의 일부'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좋게말하면 이런 수준이고 다소 확대해석하면 집착이 강한 유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렇듯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작업'으로까지 여겨온 공혜진 저자와 같은 사람의 글을 읽게 된 것이 정말 기뻤다. 저자가 길에서 만난 '친구'들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고 어쩌면 그런 친구들까지 길위에서 방황을 하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값진'것도 많았다. 아! 그리고 반드시 길 위에 떨궈진 것들에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란 점도 말해둬야겟다. [효능은 밝혀졌다!]편에서 등장하는 약 봉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었다.


약국을 가지 않고서도

약의 효능이 밝혀졌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같은 약을 먹겠구나....  -1월 4일-


생각해보니 같은 동네에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서 내려준 처방이 아닌 이상 거의 유사한 구성의 약을 먹겠구나, 특히 지금은 약국에서 제조하는 것의 규정이 별도로 있지만 그마저 없었던 20여년 전 내가 어릴 때는 거의 대부분 병원보다는 약사에게 처방을 받았었다. 아마 그당시에는 그야말로 같은 약을 먹었을게 분명하다. 왠지 만화속의 한장면처럼 아스라이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가하면 아마도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게 되는 '머리끈'. 저자의 짐작처럼 엄마에게 이끌려 서둘러 일어서 버스에 오르는 사이 머리끈이 아이에게서 떨어졌을 것이다. 여기에 나의 짐작을 좀 더 덧붙이자면 집에 돌아가 머리끈을 잃어버린 것을 알아차린 아이는 아마 밤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속상하고 아쉽고, 버려진 머리끈이 그 밤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것 만 같아서 말이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뒤에서

'툭툭' 어깨를 쳤다.

놀라 돌아보니 낙엽이다. -10월 28일-


대입 수험시절 친구들과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몸은 피곤하면서도 '떨어진 낙엽을 손으로 잡으면'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미신때문에 30분 이상을 낙엽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저자는 해당 글 마지막에 '바람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낭만가득 마무리 했지만 내게 낙엽은 낭만보다는 수험생 시절 무엇에라도 '믿는 구석'이 필요했던 어리석고 철없던 때의 내가 떠오른다. 그렇다고 매번 낙엽을 볼 적마다 좌절하거나 자학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가 만났던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가졌었던 추억을 꺼내보거나 지금의 내 마음상태를 차분차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 정말 책 [오늘, 작은 발견]은 그야말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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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엘버트 허버드 지음, 송정은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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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엘버트 허버드 / 나무생각



독자에게 무한한 신뢰를 던지며 시작하는 [적당히 살아가는 당신에게]는 타이틀과 달리 내용 자체가 차분하고 다정하다. 읽으면서 뜨끔하는 내용은 거의 없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뭔가 비뚤어질테다! 하고 덮어버리고 싶은 의견차이도 보였지만 그런것은 어디까지나 저자와 나의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거지 이 책의 단점이라던가 저자가 괴팍 혹은 옹고집이라서 빚어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 종교가 설사 다르더라도 편안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우연찮게 옆 좌석에 동석한 나이든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될 것이다.


건강 습관

공부 습관

노동 습관


당신이 이 습관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이런 습관을 지닌 이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이미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27쪽


그 어떤 말보다 마음에 확 와닿았던 세 가지 습관. 건강, 공부, 노동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이성으로나 동성친구로도 완벽하게 멋진 사람일거라고 확신한다. 우선 건강 습관이라는 것은 적절한 운동과 지나치게 과식, 과음하지 않는 절제된 삶을, 자기통제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배움은 우리가 평생 안고가야 하는 부분인데 회사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개발에 소홀히 하는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순간을 열심히 사는 사람일 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꿈 핑계대면서 일하지 않는 사람, 이런 경우는 미래뿐 아니라 현재도 불투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꿈이란 것을 운명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것에 올인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긴 내용을 저렇게 심플하게 응축할 수 있는 것, 그런 이성을 만나고 있다면 저자 말처럼 이미 천국이 아닐까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험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브레이크 타임 중에나 회식자리에서 자리피하기가 두렵다는 사람들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엘버트 허버드의 조언을 듣고 나면 더이상 자리를 비우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를 험담하는 사람은 그저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이 약한 사람일 뿐 나에게 심각하게 악의를 품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등 뒤에서 험담하는 살마은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험담꾼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적입니다. 37쪽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 딱 이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둔하게도 난 험담꾼이 아니라 말을 전한 사람이 용기내어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람을 제외한 모두와 등을 돌린적이 있다. 물론 이제와서 그것을 후회하거나 아쉬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진짜 적이 누군지를 몰랐었던 아둔함은 반성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나를 험담하는 사람이 또 나타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이런일이 생기면 안되겠지만 혹시라도 겪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적을 구분해 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서두에 밝혔던 저자와 나의 가치관이 달라 생겨나는 '종교'부분을 언급할까 한다. 몇 달 전 읽었던 [걱정마, 안죽어]저자 분과 유사한 의견을 표명한 엘버트 허버드. 신학의 경우 천국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지금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죽음뒤에 있을 '재판'으로 인해 두려움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어설프게 신학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지 죽음 이후에도 행복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멋대로 살게 되면 그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이 신학 이론에 더 가깝다. 죽음을 공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꼭 밝혀두고 싶다. 지금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면 그만큼 아쉬움이나 두려움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들어와서 이론을 확인하지 않고 제대로 믿지 못하는 일부 신앙인들의 모습만 보고서 특정 종교 자체를 마치 '유해하고 무익한 것'으로 몰고가는 비상식적인 논리를 펴는 사람의 조언을 전부 다 옳게 바라보기가 쉽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약한 모습이 있다. 어떻게 인간이 완벽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러했다면 신의 존재자체가 발딛을 틈도 없이 부정되고 그 정의조차 사라졌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크게 공감했던 내용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다름아닌 '질투'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인데 질투라는 것이 단순히 상대와 나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심각하게 들어가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증오라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질투가 심해지면 스스로를 망치기까지 하는데 열차의 기관사를 예화로 들었던 부분은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내의 다른 애인에게 질투를 느낀 나머지 업무중에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해 사고를 낸 기관사의 이야기는 질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얼마전 보았던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에서 사건조사협회에서 설리에게 가정내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까지 조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으니 자기 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평화로우면 세상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겁니다." 101쪽


나부터 행복해야 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자꾸 타인의 행복을 비방하게 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사회에 대한 원망만 커져가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나부터 행복해지자.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자. 어떻게? 건강 습관, 공부 습관, 노동 습관부터 차분하게 기르다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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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 -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오민석 지음 / 살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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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오민석/살림


2015년 10월부터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서 소개한 작품들과 일간지 특성상 저자의 바람과 달리 실릴 수 없었던 몇 작품을 더해 [아침 시]가 출간되었다. 1부 인생 2부 사랑 그리고 3부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별 마음이 머물던 작품들을 두고 이야길 전해본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문구는 친숙할 것이다. 사월만되면 자꾸자꾸 떠오르던 이 작품은 t.s. 엘리엇의 [황무지]란 시다. 20여년 전 처음 이 시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그다지 잔인할 만한 사건이 없었는데도 늘 사월은 내게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이 시를 두고 오민석 교수는 '누구나 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란 말로 이야기를 건넨다. 동감한다. 봄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시작해야 하고 깨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말처럼 '관(棺)'속의 삶을 원하는 이들에게 너무 피곤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굳이 관속의 삶을 원하지 않더라도 흐드러지게 피는 꽃 때문에, 그 향기 때문에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들 맘 여린 사람들에게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그런 사월이다. 이 작품을 알고 난 이후 4월이 되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김창재 시인의 [카타콤]이란 시는 '밥' 우리고 어쨌든 매일 같이 먹지 않으면 안되는 '밥'이 화두가 된다. 최근에 웹툰에 이어 웹드라마로 까지 나왔던 들개이빨 작가의 작품 [먹는 존재]가 떠오르기도 했다. 삶이 고단해도, 정겨워도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밥'을 거를 수는 없다. [카타콤] 마지막 줄의 '징그러운'이란 표현이 그야말로 와닿는 부분이다. 1부 인생 편에서 이 두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면 2부 사랑편은 좀 더 많은 시가 눈에 들어왔다. 박후기 시인의 [격렬비열도]는 그야말로 시 전체에 온몸이 후둘거릴 정도로 공감을 표한다.


격렬비열도


격렬과

비열 사이


어딘가에

사랑은 있다


-박후기, [격렬비열도],2015 // 아침 시 114쪽


격렬하다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이는 사랑의 단면이라면 비열은 그보다 더 포괄적이고 실체적인 개념으로 사랑의 진면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첫사랑을 보내고 사랑을 거듭할 수록 상대방의 비열함보다 내 자신의 비열함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비열함 그 자체가 어쩌면 사랑이 격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비열할 때 만큼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서 격렬하게 생각하는 때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 사랑의 실체보다 여전히 사랑은 가만가만 나를 다듬어주고 보듬어준다는 의미에서 고영민 시인의 [구구]라는 작품도 맘에 들어왔다. 어느 봄날 저녁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스트로폼 안에 '돌멩이'를 넣어줌으로써 흔들리던, 불안했던 끝난 사랑의 중심을 잡아주는 행위는 오민석 교수의 해석처럼 결국 시작과 끝 모두 우리는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봄날과 같은 흔들리는 사랑, 돌멩이처럼 내 안에 들어와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사랑, 아, 결국 사랑이다.


3부 풍경편에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가루]라는 작품을 담아본다.


까마귀가

솔송나무 가지를 흔들어

내게 눈가루를

떨어뜨리니


내 가슴의

기분이 달라지고

내가 후회했던 날의

어떤 부분을 구해주었네


로버트 프로스트 [눈가루] 오민석 옮김 //아침 시 206쪽


오민석 교수가 직접 번역한 프로스트의 시 [눈가루]는 우리가 그 무엇도 아닌 원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 벅차오를 만큼의 치유를 경험했던 이라면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꽤 오래전 스위스 융푸라우 산맥에 올랐을 때 영하40도 설원에서 마주했던 자연은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식의 자괴감이 아니라 '너도 나도 지금 이렇게 공존하고 있다, 살아있다.'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져주었다. 그때 그곳에서 너무 추워 내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마음과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고 자신한다. 마지막으로 최광임 시인의 [도요새 요리]편에서 언급된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마리]의 일부인 다음의 문장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가져왔다. 시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해석보다 그저 이렇게 동일한 주제로 큐레이션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뎁혀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팔 밑에 낡은 책을 끼고

나는 센 강변을 걸었네

강물은 내 고통과 같아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마리]중에서 // 아침 시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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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파리
목수정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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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의 경우 호불호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호'에 해당한다. 20대 후반에 처음 저자의 작품을 읽고 인생을 살게 된다면 이렇게 '솔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다고 저자의 모든 글이 내 마음에 들었다거나 적극 공감한다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줄 아는 멋스러움에 반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당신에게, 파리]는 맘에 드는 저자의 맘에 드는 주제가 만난 그야말로 맘에 들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출간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책은 내게 있어 '반드시'읽어야 할 책이었기 때문이다.


변신을 위해선 두 개의 세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건너갈 '저기'가. 변신을 꿈꾸는 분께, 당신의 '거기'를 선사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최근 저자의 말 혹은 프롤로그를 꼭 챙겨서 읽는다는 이야기를 어느 리뷰에서도 적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변신'은 아니지만 과거의 내게 좋지 않았던, 혹은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벗어던져야 할 시기는 맞았다. 심리적 측면에서 '여기'에서 건너갈 '거기'를 찾고 있던 내게 저자는 서두에 밝혔던 '반드시'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끄집어 낸 셈이다. 고작 2번 밖에 안가본 도시인데다 마지막으로 갔을 당시 집시와 소매치기로 인해 휴대폰은 커녕 카메라도 제대로 꺼내들지 못했던 기억이 여전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에 유럽을 간다면 역시나 빼놓지 않고 들리고 싶은 여행지도 파리였다. 분실할 만한 모든 것을 내려두고 다녔던 곳이기에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아닌 마음에 '담아'둘 만한 곳을 다녔던 이유도 있었고, 그 긴장마저 풀릴 만큼 멋진 에펠탑과 미술관에서의 추억들이 그럴 것이다. 소매치기에 관한 저자의 귀뜸을 그야말로 제대로 새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 저자가 소개해준 것중에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29번 버스 여행이다. 사실 파리 여행중에 버스를 한 번도 타지 못했다. 지하철 문을 여는 재미도 쏠쏠 했고 무엇보다 지하철역 위주로 안내되어있는 가이드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다 다들 '버스'타는 것을 만류했던 이유가 가장 크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전혀 엉뚱한데로 가는데다 심지어 버스기사가 종착지도 아닌 곳에서 버스를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서 들려주는 저자의 귀뜸, 다른 파리 여행책에서 들을 수 없었던 소소한 일상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분명 [당신에게, 파리]가 맘에 쏙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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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용도 (양장)
니콜라 부비에 지음,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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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부비에의 [세상의 용도]를 읽는 내내 든 생각. 우리는 지금 과연 저자가 말해주고 있는 '세상의 용도'를 맘껏 쓸 수 있기는 한 걸까. 용도를 용도에 맞게 혹은 만큼 사용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싶은 안타까움이었다. 더더군다나 여자로 태어난 '죄'아닌 죄로 더더욱 그런 생각의 골이 깊어졌다. 사실 그들의 여행이 평탄하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떠나지 못한 핑계를 어쩌면 이렇게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자괴감도 들었다. 여행을 떠났다기 보다 그야말로 세상을 경험하러 다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렇게 내게 아쉬움반, 반성하게 만드는 마음 반을 함께 느끼게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그의 손이 떨렸다. 틀림없이 프랑스에서 공부를 엄청 잘했을 그는, 신이나 본원에 대한 사랑으로 주어진 문제조차 제대로 이해 못하는 대학생들의 엉망진창인 논술 답안지를 고치느라 여기서 밤을 새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도시에 더 이상 환상 같은 걸 품고 있지 않았다. 211쪽


여행자에게 여행지란 '환상'을 품을 수 있는 장소 그 자체일 것이다. 그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만약 자신들과 같은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더없이 들뜨게 되고 여행의 목적과 상관없이 좋았던 장소로 추억할 수 있다. 하지만 왠지모를 서글픔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무언가 이 여행의 의미자체를 다시 되새겨 보게 만들지도 모른다. 만화책으로 출발,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키노의 여행]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그 만화속에서는 하나같이 우울하고,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도 등장한다. 가상의 픽션이었던 그 만화속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상황이 실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르베 수사와의 만남이 꼭 그런 느낌을 들게 했다.


세상의 용도는 니콜라 부비에가 여행 혹은 머물던 나라 이야기를 전부 담은 것은 아니었다. 이 책 이후에도 여러권의 책을 출판했고, 심지어 한국여행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세상의 용도는 저자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내용의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일부이면서도 어쩌면 전부가 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여행에 대한, 세상에 대해 다른 시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색다른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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