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엘버트 허버드 지음, 송정은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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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엘버트 허버드 / 나무생각



독자에게 무한한 신뢰를 던지며 시작하는 [적당히 살아가는 당신에게]는 타이틀과 달리 내용 자체가 차분하고 다정하다. 읽으면서 뜨끔하는 내용은 거의 없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뭔가 비뚤어질테다! 하고 덮어버리고 싶은 의견차이도 보였지만 그런것은 어디까지나 저자와 나의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거지 이 책의 단점이라던가 저자가 괴팍 혹은 옹고집이라서 빚어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니 종교가 설사 다르더라도 편안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우연찮게 옆 좌석에 동석한 나이든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될 것이다.


건강 습관

공부 습관

노동 습관


당신이 이 습관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이런 습관을 지닌 이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이미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27쪽


그 어떤 말보다 마음에 확 와닿았던 세 가지 습관. 건강, 공부, 노동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이성으로나 동성친구로도 완벽하게 멋진 사람일거라고 확신한다. 우선 건강 습관이라는 것은 적절한 운동과 지나치게 과식, 과음하지 않는 절제된 삶을, 자기통제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배움은 우리가 평생 안고가야 하는 부분인데 회사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개발에 소홀히 하는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순간을 열심히 사는 사람일 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꿈 핑계대면서 일하지 않는 사람, 이런 경우는 미래뿐 아니라 현재도 불투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꿈이란 것을 운명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것에 올인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긴 내용을 저렇게 심플하게 응축할 수 있는 것, 그런 이성을 만나고 있다면 저자 말처럼 이미 천국이 아닐까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험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브레이크 타임 중에나 회식자리에서 자리피하기가 두렵다는 사람들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엘버트 허버드의 조언을 듣고 나면 더이상 자리를 비우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를 험담하는 사람은 그저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이 약한 사람일 뿐 나에게 심각하게 악의를 품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등 뒤에서 험담하는 살마은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험담꾼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적입니다. 37쪽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 딱 이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둔하게도 난 험담꾼이 아니라 말을 전한 사람이 용기내어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람을 제외한 모두와 등을 돌린적이 있다. 물론 이제와서 그것을 후회하거나 아쉬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진짜 적이 누군지를 몰랐었던 아둔함은 반성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나를 험담하는 사람이 또 나타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이런일이 생기면 안되겠지만 혹시라도 겪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적을 구분해 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서두에 밝혔던 저자와 나의 가치관이 달라 생겨나는 '종교'부분을 언급할까 한다. 몇 달 전 읽었던 [걱정마, 안죽어]저자 분과 유사한 의견을 표명한 엘버트 허버드. 신학의 경우 천국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지금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죽음뒤에 있을 '재판'으로 인해 두려움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어설프게 신학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지 죽음 이후에도 행복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멋대로 살게 되면 그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이 신학 이론에 더 가깝다. 죽음을 공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꼭 밝혀두고 싶다. 지금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면 그만큼 아쉬움이나 두려움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들어와서 이론을 확인하지 않고 제대로 믿지 못하는 일부 신앙인들의 모습만 보고서 특정 종교 자체를 마치 '유해하고 무익한 것'으로 몰고가는 비상식적인 논리를 펴는 사람의 조언을 전부 다 옳게 바라보기가 쉽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약한 모습이 있다. 어떻게 인간이 완벽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러했다면 신의 존재자체가 발딛을 틈도 없이 부정되고 그 정의조차 사라졌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크게 공감했던 내용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다름아닌 '질투'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인데 질투라는 것이 단순히 상대와 나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심각하게 들어가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증오라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질투가 심해지면 스스로를 망치기까지 하는데 열차의 기관사를 예화로 들었던 부분은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내의 다른 애인에게 질투를 느낀 나머지 업무중에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해 사고를 낸 기관사의 이야기는 질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얼마전 보았던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에서 사건조사협회에서 설리에게 가정내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까지 조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으니 자기 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평화로우면 세상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겁니다." 101쪽


나부터 행복해야 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자꾸 타인의 행복을 비방하게 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사회에 대한 원망만 커져가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나부터 행복해지자.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자. 어떻게? 건강 습관, 공부 습관, 노동 습관부터 차분하게 기르다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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