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 -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오민석 지음 / 살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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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오민석/살림


2015년 10월부터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서 소개한 작품들과 일간지 특성상 저자의 바람과 달리 실릴 수 없었던 몇 작품을 더해 [아침 시]가 출간되었다. 1부 인생 2부 사랑 그리고 3부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별 마음이 머물던 작품들을 두고 이야길 전해본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문구는 친숙할 것이다. 사월만되면 자꾸자꾸 떠오르던 이 작품은 t.s. 엘리엇의 [황무지]란 시다. 20여년 전 처음 이 시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그다지 잔인할 만한 사건이 없었는데도 늘 사월은 내게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이 시를 두고 오민석 교수는 '누구나 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란 말로 이야기를 건넨다. 동감한다. 봄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시작해야 하고 깨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말처럼 '관(棺)'속의 삶을 원하는 이들에게 너무 피곤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굳이 관속의 삶을 원하지 않더라도 흐드러지게 피는 꽃 때문에, 그 향기 때문에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들 맘 여린 사람들에게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그런 사월이다. 이 작품을 알고 난 이후 4월이 되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김창재 시인의 [카타콤]이란 시는 '밥' 우리고 어쨌든 매일 같이 먹지 않으면 안되는 '밥'이 화두가 된다. 최근에 웹툰에 이어 웹드라마로 까지 나왔던 들개이빨 작가의 작품 [먹는 존재]가 떠오르기도 했다. 삶이 고단해도, 정겨워도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밥'을 거를 수는 없다. [카타콤] 마지막 줄의 '징그러운'이란 표현이 그야말로 와닿는 부분이다. 1부 인생 편에서 이 두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면 2부 사랑편은 좀 더 많은 시가 눈에 들어왔다. 박후기 시인의 [격렬비열도]는 그야말로 시 전체에 온몸이 후둘거릴 정도로 공감을 표한다.


격렬비열도


격렬과

비열 사이


어딘가에

사랑은 있다


-박후기, [격렬비열도],2015 // 아침 시 114쪽


격렬하다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이는 사랑의 단면이라면 비열은 그보다 더 포괄적이고 실체적인 개념으로 사랑의 진면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첫사랑을 보내고 사랑을 거듭할 수록 상대방의 비열함보다 내 자신의 비열함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비열함 그 자체가 어쩌면 사랑이 격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비열할 때 만큼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서 격렬하게 생각하는 때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 사랑의 실체보다 여전히 사랑은 가만가만 나를 다듬어주고 보듬어준다는 의미에서 고영민 시인의 [구구]라는 작품도 맘에 들어왔다. 어느 봄날 저녁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스트로폼 안에 '돌멩이'를 넣어줌으로써 흔들리던, 불안했던 끝난 사랑의 중심을 잡아주는 행위는 오민석 교수의 해석처럼 결국 시작과 끝 모두 우리는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봄날과 같은 흔들리는 사랑, 돌멩이처럼 내 안에 들어와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사랑, 아, 결국 사랑이다.


3부 풍경편에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가루]라는 작품을 담아본다.


까마귀가

솔송나무 가지를 흔들어

내게 눈가루를

떨어뜨리니


내 가슴의

기분이 달라지고

내가 후회했던 날의

어떤 부분을 구해주었네


로버트 프로스트 [눈가루] 오민석 옮김 //아침 시 206쪽


오민석 교수가 직접 번역한 프로스트의 시 [눈가루]는 우리가 그 무엇도 아닌 원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 벅차오를 만큼의 치유를 경험했던 이라면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꽤 오래전 스위스 융푸라우 산맥에 올랐을 때 영하40도 설원에서 마주했던 자연은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식의 자괴감이 아니라 '너도 나도 지금 이렇게 공존하고 있다, 살아있다.'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져주었다. 그때 그곳에서 너무 추워 내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마음과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고 자신한다. 마지막으로 최광임 시인의 [도요새 요리]편에서 언급된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마리]의 일부인 다음의 문장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가져왔다. 시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해석보다 그저 이렇게 동일한 주제로 큐레이션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뎁혀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팔 밑에 낡은 책을 끼고

나는 센 강변을 걸었네

강물은 내 고통과 같아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마리]중에서 // 아침 시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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