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두 달은 어떤가요
규영 글.그림 / 사물을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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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는 나의 열두 달을 생각할 시간.

새로운 열두 달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294쪽



책의 맨 뒷페이지에 적힌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책을 이미 다 읽었으니 이제 리뷰를 쓰면서 나의 열두 달을 녹여내면서 읽었던 내용들을 조금씩 꺼내볼 생각이다. 근래들어 그림과 짤막한 코멘트가 함께 실린 책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혹시나 해서 바로 답하자면 반갑고 또 반갑다. 많은 말들, 엄청나게 공감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풀이해놓은 듯한 문장들도 멋지지만 때로는 뭉클해지는 그림과 그 보다 더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이 결코 호흡이 긴 다른 방식과 비교해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책<당신의 열두 달은 어떤가요>도 그렇게 만났다. 둥글둥글 선과 마치 김이 모락모락 나는듯한 느낌의 색감을 더한 따뜻한 그림이 눈에 들어오고, 한 줄의 코멘트는 아니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그들의 열두 달 이야기가 참 일상적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했던 책 속 문장들을 먼저 꺼내본다.



언젠간 하루에 한 번도 네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어서 그날이 오면 좋겠다. 25쪽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내게 투자된 교육비 정도는 회수하는 어른이고 싶다. 131쪽


왜 소개팅은 내 맘이 네 맘 같지 않고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냐. 159쪽



위의 공감했던 문장들만 봐도 나의 열두 달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치만 내 마음을 가장 훈훈하게 해준 열두 달은 아기의 열두 달이었다.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개와 아이가 함께 세상을 만나는 과정을 담았는 데 꼬리를 흔들며 자신과 같은 사이즈의 아기를 발견한 개의 표정이 정말 귀여웠다. 함께 식사를 하며 음식물을 흘리는 그림도 귀여웠고, 무엇보다 아기가 병원에서 몇 날을 보낸 뒤 돌아왔을 때 이제는 아이가 개보다 더 커진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이어지는 개의 열두 달을 보면 뭉클했던 마음에 직격탄을 쏘듯 눈물이 핑그르르 맺혔다. 아, 우리 뭉치는 잘 지내고 있겠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두 번째 문장, 새로운 열두 달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해본다. 책속에 만났던 일들이 내게 벌어질 수도 있고, 내가 왜 이런 문장에 공감했었을까 오히려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열두 달을 여러 해 마주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내용들도 분명 있었다. 2016년 12월도 이제 거의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이거 사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절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열두 달은 어쩌면 사람때문에 울고 울었던, 그러면서도 단 한 분 덕분에 위로를 받았던 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열두 달은 어땠나요? 저자가 내게 물었듯 나도 이 리뷰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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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지비키 이쿠코 지음, 권효정 옮김 / 유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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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 지비키 이쿠코 지음


요요가 와주긴 했지만 지난 여름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체중이 감소했다. 내 노력에 비해 살이 많이 빠져서 가지고 있던 여름옷을 거의 대부분 버리고 새옷으로 옷장을 채웠다. (강조하지만 요요가 왔다. 쉽게 빠진 것은 쉽게 찐다는 진리는 불변이다.) 문제는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동절기 옷까지 함께 버린데에 있었다. 내게는 요요가 오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겁없이 해버린 것이다. 막상 가을이 되고 요요가 본격화되면서 내가 그옷을 왜 버렸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겨울이 왔을 때는 외투로 가릴 수 있지만 코트안에 있는 옷을 또 구매하자니 살이 빠져 옷을 구매할 때와는 기분부터가 달랐다. 버리지 않았으면 될 일을 왜 버렸을까 하는 후회, 살이 다시 쪘다는 비애가 동시에 다가온 것이다. 책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를 만약 여름에 만났더라면 당연한 소릴 한다며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이 책만큼 필요한 책이 또 있을까.


버려야 할 옷과 버리지 말아야 할 옷이 무엇일까.

우선 이 책은 시작부터 내 마음을 잡아놓기 시작했는 데 초등학교 시절, 나는 단 하루라도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면 차라리 그날 결석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아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우리집이 부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옷은 잘 사주는 집일거라고 생각했고, 막상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본 친구들이 곧잘 의외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내 앞에서 했었다.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고 다행히 그냥 내가 옷을 매일같이 다르게 입긴했구나 하는 위안으로 착각한 덕에 지금껏 사는 데 큰 불편은 없지만 책에서는 이렇게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주'라고 말한다.


한때 '매일 다른 코디'로 찬사를 받았던 나조차도 한 달에 이틀 정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옷차림을 하는 날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3쪽

'오늘도 이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또 입고 왔다고 생각할 거야.' 이런 스트레스에서 제발 벗어나자. 43쪽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은 경우에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모 여자 연예인은 편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일주일에 같은 샌들을 두 번 신고나갔더니 자신의 기사에 구두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다시는 그 샌들을 신지 않게되었다고 한다. 보여주는 것이 직업인 그녀에게는 매일 같이 다른 옷을 입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그러니 저자말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고 우릴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미움받을 용기'까지 낼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사야할 옷,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저자의 조언은 무엇일까. 우선 유행에 민감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가령 트렌치코트가 유행이라고 해도 막상 잡지를 보면 다양한 디자인과 브랜드의 트렌치코트가 수십 번 등장하는 데 그중 한 벌을 사입는다고 패피가 되지 않는다. 무리해서 옷에 투자하면 이제는 신발과 가방이 신경쓰인다. 패피들을 따라가고자 하면 끝도 없다. 밥이야 매일 매끼 먹어야하니 SNS 경쟁에 동참할 수 있다지만 옷은 그렇지 않다. 결코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옷을 다양하게 갖춰야 하는 그들과 대적할 수 없다. 그러니 내 몸에 맞는 옷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내 몸에 맞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가격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자주 입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가성비의 좋고 나쁨은 그 옷을 면 번이나 입을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몇 년'이 아니라 '몇 번'인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입었거나, 거의 입지 않고 20년 동안 보관 중인 옷은 본전을 뽑았다고 말 할 수 없다. 110쪽

궁극의 평생 아이템이라고 하면, 에르메스의 버킨백, 샤넬의 퀼팅백 같은 것이 있다. 이것들은 수십년 동안 같은 디자인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기 때문에, 색이나 모양이 크게 바뀔 일은 거의 없다. 142쪽

정리하자면 평생 입어도 좋은 옷이 우리에게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왜냐면 우리의 몸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기 때문이다. 반면 위의 발췌문에 언급된 백들의 경우는 브랜드가 직접 해당 라인을 꾸준히 약간의 변화만 시도할 뿐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는데다 실제 중고시세를 보더라도 다른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새것과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 애초에 비싸고 좋은 백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그 비싸고 좋은 것을 구매하기 위해 10년 이상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백을 안들고 다닐 수 없고, 옷을 안입을 수 없기 때문에 저렴한 옷을 사입을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워야한다.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싸다고 무작정 많이 사들이거나 진짜 원하는 것과 가격을 절충한다고 착각하여 어정쩡한 상품을 구매하는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정리를 해보자.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깨닫는다면, 그때는 정리할 체력도 기력도 없을지 모른다. 할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벼워지기 가장 좋은 때이다. 76쪽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 바로 이거다. 밤새 책을 읽고 싶어도 이제는 체력이 안따라줘서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읽다가, SF소설 속 환상의 섬에 빠져있다가도 허리가 쑤셔서 자세를 고치거나 눈이 침침해서 책장을 덮어야 했다. 옷도 마찬가지다. 정리할 수 있는 체력과 기력이 있을 때 정리하자. 어떻게? 이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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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배
히라노 타로 지음, 방현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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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배 / 히라노 타로


사진가 히라노 타로가 일본잡지 <포파이>에 동일한 제목으로 연재한 '나와선배'는 인생선배, 그러니까 취재를 했던 저자조차 한번 만나본 적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이따금 들었던 라디오 진행자를 만나러 가기도 하는 데 아쉽게도 그 방송은 현재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취재당시에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심지어 아흔이 넘으신 분들도 계셨기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되신 '선배'분들도 계시다. 그래서 이 책은 인터뷰 본문도 읽어야 하지만 '더하는 말'도 꼬박꼬박 챙겨서 읽어줘야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저자가 소개해주는 인생선배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안자이 미즈루. 이분의 에세이는 국내에도 번역본이 출간될 만큼 하루키의 에세이 속 일러스트를 통해서도 친숙한 분이시다. 약주를 좋아하는 평소 취향이 인터뷰속에서도 묻어나는 데 안타깝게 한 잔 하자는 그 약속을 지키시기 전에 작고하셨다고 하며 저자는 아쉬워했다. 저자에게 게자리 특성을 이야기 해주면 '자네 앞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카메라맨이 될 거지? 그런 느낌이 들어."(37쪽)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선배가 정말 나도 계셨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고1 담임선생님이 생일선물로 주셨던 클리어화일 맨 앞 메모지에 유사한 내용을 남겨주셨던게 기억이 났다. 내가 입학 할 무렵에는 평준화 이전이라 입시를 치뤄야 했는데 원하던 고등학교가 아니었기에 초반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의욕없는 내 성적이 좋을리 없는 데 그런 내게 담임 선생님은 더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잠재력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이런 멘트는 누구라도 해줄 수 있고, 누구에게라도 해주셨을 줄 알지만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안자이 미즈루가 저자에게 건넨 그 말처럼 내게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가 인터뷰 하면서도 멋쩍어 했던 '매거진하우스'최고 고문인 기나메리 요시히사 인터뷰 기사도 실려있다. 이게 왜 멋쩍은가 하면 연재되고 있는 잡지의 모회사이기 때문이다. 자화자찬라 할 수 있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저자에게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생선배라고 할 수 있다.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채용을 했을테지만 당시 저자가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 뚜렷한 목적도 없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러다니거나 혹은 그런 사진들만 찍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저자를 채용해 준 사람이니 어찌 인생선배 코너에서 빼놓을 수 있었을까.


"스무 살이 넘으면 다 동갑이니까."라고 말하는 대선배에게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 이 사람이 바로 매거진하우스였구나, 나 같은 아웃사이더를 동료로 받아들여 준 것은 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60-61쪽


<인생선배>를 읽고 이 분이야말로 내 인생선배라 할 만한 사람을 꼽자면 프로듀스 센터 대표이사 '하마다 데쓰오'선배다. 자신이 갈 만한 대학이 없다고 생각했던 스물두 살, 그는 스스로 있어야 할 곳을 만들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의욕만 앞서지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는 나란 사람에게 이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희망이 된다. 이따금 이런 유사한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었다. 맘에 드는 회사가 없어서 직접 회사를 차리는 사람들, 최근에 보았던 영화 [라라랜드]의 경우 세바스찬과 미아 모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뽐낼 수 있는 재즈클럽과 무대를 직접 만들어낸다. 세상이 나를 안받아준다고 화를 내고만 있을것이 아니라 세상을 내 안으로 초대하는 역발상, 진취적인 사고를 1968년 하다마 데쓰오는 '애플하우스'를 열면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인터뷰 내용이 그리 길지가 않다. 어떤면에서 보자면 선배들의 수(?)를 줄이고 내용을 좀 늘렸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짧은 내용을 통해서 내가 찾던 선배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찾고 있던 선배를 만날 수 있도록 하려면 역시 이런 구성이 최적이라고 본다. 먼 이국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분명 우리 주변에 닮고 싶은 선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부모님, 스승님, 학교와 직장 선배들. 중요한 것은 우리도 누군가에게 인생선배가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즐겁고 열심히 사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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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글 트레킹 - 플라톤부터 러셀까지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
게리 헤이든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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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글 트레킹 / 제리 헤이든 지음 & 곽성혜 옮김



'플라톤부터 러셀까지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 걷기와 생각하기(철학)이란 단어는 어떤 이들에게는 개별적으봐도 지나치게 지루한 단어들이다. 걷는 것도 지루한데 게다가 철학자의 이야기까지 들으라는건가 싶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제리 헤이든도 팔굽혀펴기라면 모를까 긴 시간 등반하거나 걷는 것은 좋은 줄은 알아도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고 여러차례 강조한다. 그런 저자가 조글(존오그로츠를 시작으로 랜드엔드까지)트레킹을 강행한 것은 아내 웬디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렇게 책으로 나온 것처럼 그에게 넘치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내게도 엄청 큰 만족감을 주었다. 지금껏 읽어왔던 철학책 중에서 이만큼 재미난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 8개 코스로 나눠 철학자들을 다룬 것처럼 목차에는 나오지만 한 코스에 여러명의 철학자, 문학 속 아포리즘이 등장하며 에피쿠로스나 러셀등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어찌보면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라기 보다는 읽었을 때 좋았던 경구를 몸소 체험하고 비로소 깨달은 종단기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조글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은 고행을 시작으로 점점 더 걷기에 수월하고 볼거리도 많은 방향으로 걷는코스로 쉽게 말해 '매를 먼저 맞는'격이다. 그렇다보니 첫 시작부터 엄살이 장난이 아니다. 사실 엄살이라고 표현했지만 100km걷기대회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 내게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물집이 너무 크게 생겨서 발가락 사이에 빈틈이 없어지고 양말에 핏물이 고인 경험 덕분에 뜻하지 않게 중간 중간 예상보다 늦어지고 더뎌지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하루종일 걷고 난 후 마시는 맥주라던가 따뜻한 커피한잔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야기에 더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빵과 물은 배고픈 입에 들어갈 때 최고의 쾌락을 선사한다네. 51쪽

에피쿠로스가 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이해가 되는 것이 '시장이 반찬'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저자의 말처럼 매일같이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이에게 산해진미라는 것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하루종일 땀흘리고 겨우 허락된 한끼를 먹게되면 물과 빵이 전부라고 해도 어찌 맛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진정한 쾌락을 위해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저자가 이해할 수 있었던것도 긴 시간 순례하듯 걷고 또 걸었던 경험덕분에 깨닫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문학작품이나 작가들에 이야기도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우리가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모든 감각이 내 안에 상이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테면 즐거운 공포, 끔찍한 기쁨 같은 감정을. 그리고 무한히 기쁜 동시에, 나는 떨렸다 142쪽.

위의 문장은 영국의 비평가이자 극작가인 존데니스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쓴 것으로 저자가 트레킹 중 어느 날 밤 벤치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드는 기분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5시간이 넘는 등반 후 정상에 올랐을 때 바로 위와 같은 떨림, 기쁨이 동시에 들었던 경험이 있다. 하산할 걱정도 전혀 들지 않고 그저 올라와서 내려다볼 때의 그 벅찬 감동, 그러면서 자연와 창조주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 끝에는 결국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단 한번이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깨닫게 되고, 삶이란게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뜨거운 불위를 걷다가 어느 순간 아주 잠시나마 서늘한 곳을 만나는 여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국 그 모든것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조글 트레킹이란 제목이 처음에는 참 멋지고 부러웠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와 유사한 경험이 내게도 충분히 넘치도록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창하게 철학자와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산을 오르며, 100km걷기를 하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부터 한강을 왕복하면서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고,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렸고 아주 가끔 철학자의 말도 떠올렸던 경험이 비단 나만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렇게 떠올렸던 추억을 이내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저자처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오래도록 그 소중한 경험을 '곱씹는'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곱씹는 버릇을 미처 버리지 못했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덕분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이 책 덕분에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어졌을 만큼 문체가 정말 맘에 들었다. 다만 이 문체가 실제 저자의 문체일지 아니면 역자의 노력일지 원서를 보기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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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 메인, 알라디너의 선택!에 올라온 Agalma님의 글을 보고,

덩달아 제게 Thanks to 해주셨던 분들께 감사 인사 남깁니다.

 

 

 

 

 

리뷰를 알라딘 외에 다른 서점에도 거의 동일하게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재미난 건 알라딘과 타서점과 비교했을 때,

Thanks to 도서가 달라요. 게다가 평균 한 달에 2회 정도로 적다보니 제가 리뷰를 잘써서 누르시는 게 아니라 눌러주시는 분들이 그저 친절하신분들! 하고 느낍니다. 그래서 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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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2-0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를 오픈하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한데, thanks to 해 주신 분께 감사 인사 전할 방법이 이렇게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베비쥬님은 착실한 마이 리뷰로만 땡스투 받으셨네요. 좋은 책들 많이 읽으시던데 꾸준히 땡스투 받으실 만 하십니다/

에디터D 2016-12-11 22:48   좋아요 0 | URL
아핫^^;;착실하다고 표현을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감사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
여러모로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