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 트레킹 - 플라톤부터 러셀까지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
게리 헤이든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조글 트레킹 / 제리 헤이든 지음 & 곽성혜 옮김



'플라톤부터 러셀까지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 걷기와 생각하기(철학)이란 단어는 어떤 이들에게는 개별적으봐도 지나치게 지루한 단어들이다. 걷는 것도 지루한데 게다가 철학자의 이야기까지 들으라는건가 싶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제리 헤이든도 팔굽혀펴기라면 모를까 긴 시간 등반하거나 걷는 것은 좋은 줄은 알아도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고 여러차례 강조한다. 그런 저자가 조글(존오그로츠를 시작으로 랜드엔드까지)트레킹을 강행한 것은 아내 웬디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렇게 책으로 나온 것처럼 그에게 넘치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내게도 엄청 큰 만족감을 주었다. 지금껏 읽어왔던 철학책 중에서 이만큼 재미난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 8개 코스로 나눠 철학자들을 다룬 것처럼 목차에는 나오지만 한 코스에 여러명의 철학자, 문학 속 아포리즘이 등장하며 에피쿠로스나 러셀등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어찌보면 철학자들과 함께한 영국 종단기라기 보다는 읽었을 때 좋았던 경구를 몸소 체험하고 비로소 깨달은 종단기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조글 방향으로 걷는다는 것은 고행을 시작으로 점점 더 걷기에 수월하고 볼거리도 많은 방향으로 걷는코스로 쉽게 말해 '매를 먼저 맞는'격이다. 그렇다보니 첫 시작부터 엄살이 장난이 아니다. 사실 엄살이라고 표현했지만 100km걷기대회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 내게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물집이 너무 크게 생겨서 발가락 사이에 빈틈이 없어지고 양말에 핏물이 고인 경험 덕분에 뜻하지 않게 중간 중간 예상보다 늦어지고 더뎌지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하루종일 걷고 난 후 마시는 맥주라던가 따뜻한 커피한잔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야기에 더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빵과 물은 배고픈 입에 들어갈 때 최고의 쾌락을 선사한다네. 51쪽

에피쿠로스가 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이해가 되는 것이 '시장이 반찬'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저자의 말처럼 매일같이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이에게 산해진미라는 것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하루종일 땀흘리고 겨우 허락된 한끼를 먹게되면 물과 빵이 전부라고 해도 어찌 맛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진정한 쾌락을 위해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저자가 이해할 수 있었던것도 긴 시간 순례하듯 걷고 또 걸었던 경험덕분에 깨닫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문학작품이나 작가들에 이야기도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우리가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모든 감각이 내 안에 상이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테면 즐거운 공포, 끔찍한 기쁨 같은 감정을. 그리고 무한히 기쁜 동시에, 나는 떨렸다 142쪽.

위의 문장은 영국의 비평가이자 극작가인 존데니스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쓴 것으로 저자가 트레킹 중 어느 날 밤 벤치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드는 기분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5시간이 넘는 등반 후 정상에 올랐을 때 바로 위와 같은 떨림, 기쁨이 동시에 들었던 경험이 있다. 하산할 걱정도 전혀 들지 않고 그저 올라와서 내려다볼 때의 그 벅찬 감동, 그러면서 자연와 창조주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 끝에는 결국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단 한번이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깨닫게 되고, 삶이란게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뜨거운 불위를 걷다가 어느 순간 아주 잠시나마 서늘한 곳을 만나는 여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국 그 모든것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조글 트레킹이란 제목이 처음에는 참 멋지고 부러웠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와 유사한 경험이 내게도 충분히 넘치도록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창하게 철학자와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산을 오르며, 100km걷기를 하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부터 한강을 왕복하면서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고,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렸고 아주 가끔 철학자의 말도 떠올렸던 경험이 비단 나만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렇게 떠올렸던 추억을 이내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저자처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오래도록 그 소중한 경험을 '곱씹는'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곱씹는 버릇을 미처 버리지 못했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덕분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이 책 덕분에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어졌을 만큼 문체가 정말 맘에 들었다. 다만 이 문체가 실제 저자의 문체일지 아니면 역자의 노력일지 원서를 보기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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