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삼일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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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를 읽었다. 표제작인 「눈 내리는 삼일포」도 좋았지만, 유독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은 파리외방선교회 사제가 조선에 들어와 상복을 입고 선교활동을 하며 사전을 만들어가는 짧은 이야기였다.

당시 선교사들이 상복을 입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상복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예의였고, 혹 말을 걸더라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무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색도 피부색도 다른 외국인 사제에게 상복은 실제 선교사들이 주고 받은 편지에 적혀 있던 것 처럼 “천사의 날개”와 같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섬세하게 재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들이 주님의 뜻이라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나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식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선뜻 보내줄 수 없었을 그 마음.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고, 만류하고 싶어도 끝내 그러지 못하는 부모의 애틋함이 짧은 대화 몇 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형식을 빌렸지만, 오히려 그 짧음이 부모의 마음을 더욱 절절하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먼 이국땅, 그것도 박해와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까지 찾아온 사제에게 조선은 어떤 곳이었을까.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보다 새롭게 꽃이 피어난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하려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런 소박한 마음이야말로 어떤 기록보다 더 사실적인 당시 조선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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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오는 길에 본 눈송이들이 떠오르더군요. 눈송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때가 되면 기꺼이 낙하에 순종하지요. 그게 제가 가려는 사제의 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용인에서 보낸 편지,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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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이 아닌 실제 조선 땅까지 찾아온 사제분들이 남긴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닐까.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의 마음에도, 낯선 이방인과 꽃이 피어난 기쁨을 함께 나누려 했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었다. 서로 다른 모습과 언어, 종교를 가졌지만 그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아들의 선택을 끝내 받아들여야 했던 부모의 사랑, 그리고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찾아온 낯선 이를 향한 조선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 어쩌면 사제가 전하려 했던 주님의 사랑은 그렇게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피어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김연수 #눈내리는삼일포 #소설 #이수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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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쓰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 지나온 시간을 선물로 바꾸는 기록의 힘
김현주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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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의 나이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에 남은 선택과 상실, 그리고 뒤늦게 발견한 소중함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정해진 대입의 길에서 벗어나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시를 치르지 않겠다는 결정은 분명 스스로 내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꿈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이어 가는 동안 생활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해 보고 싶은 갈망이 자리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엄마라는 이름은 늘 비껴가는 것이라는 것을, 한 박자 늦거나 빠르다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제때 당도하기 어렵다는 것을.(...)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 우리는 어쩜 그렇게 서로 어긋남 속에서, 아쉬워하고 서운해하며 각자의 몫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07쪽


아이를 키우면서도 퇴근 후 여러 가지를 배우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지만, 어느 하나를 오래 붙들지는 못했다. 그러다 IMF로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고, 저자는 이를 단순한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품어 온 바람을 따라 학원을 운영하고 카페 경영에도 도전했다. 다만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채 시작한 일은 사기로 이어졌고, 넉넉했던 경제적 형편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모든 것을 잃은 경험은 고통스러웠겠지만, 동시에 무엇을 움켜쥐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했다. 저자는 비움의 삶에 눈을 돌리며 돈의 가치와 그것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힘을 잃는 일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 바뀌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돌봄을 받는 아이였던 내가, 오래도록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이제는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삶의 순리를 깨닫게 됩니다. 50-51쪽


저자의 성장 배경과 가족 이야기도 인상 깊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이사로 어린 시절을 할머니 댁에서 보낸 저자는 시골의 자연과 꽃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그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 있지만, 형제들과 함께한 시간이 적었고 어머니와도 친밀한 관계를 쌓지 못했다. 이후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며 딸을 키울 때도 충분히 함께하지 못했고, 딸은 대학에 들어간 뒤 교회활동에 몰두하다 결혼하면서 모녀가 각별한 시간을 쌓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일흔이 된 저자는 가까움이 반드시 자주 만나고 모든 것을 나누는 모습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 또한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깨달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물질적 채움보다 마음의 넉넉함과 여유가 아닐까 합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매 순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행복입니다. 265쪽


저자는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놓친 것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발견했고, 그 끝에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지나온 시간을 글로 정리하는 일은 후회만을 되짚는 일이 아니라, 경험 속에 묻혀 있던 마음과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에게도 자서전 쓰기를 권한다. 특별한 업적이 있어야만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하루와 선택, 상처와 기쁨을 문장으로 남기다 보면 자신도 몰랐던 삶의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이 책은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돌아보고 새롭게 배울 수 있으며, 비워 낸 자리에 비로소 무엇이 소중한지 보일 수 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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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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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다시 만난 내가 기다리고 좋아했던 #무라카미하루키 소설.

일러스트레이터 가호가 담당 편집자의 소개로 ’사하라‘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을 못생겼다고 대놓고 말하면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클리셰를 다행 혹은 당연하게도 따르지 않는다. 헌데 난데없이 개미핥기 부부가 나타나 이사를 강하게 권고한다. 가본 적도 살기에 좋다고 알려진 동네도 아닌, ‘너구리가 표를 받는’ 동네로 이사 한 후 브라질 숲속에 살던 존재들이 그녀를 향해 다가온다. 이때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애니메이션처럼 황당과 실재 가능한 ‘자아찾기’ 모험(?)이 시작된다.

이야기의 시작이 ‘못생긴 얼굴’이다. 얼굴은 나를 제일 먼저 알리는 혹은 보이게 되는 신체로 그 사람의 습관이나 직업 어쩌면 삶을 짐작케 한다. 자아찾기 란 말 대신 ‘얼굴 찾기‘를 위한 떠남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자아를 찾는다는 말보다 더 납득이 된다. 화장을 하는 것,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을 바꾸는 것 그리고 성형시술이나 수술을 감행하는 것 모두 내가 바라는 혹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맞추는 ’얼굴 찾기‘다. ’가호‘의 이야기는 그녀가 창작하는 그림책이자 그녀가 살아내는 ’현재의 삶’이다. 부모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위해 과거를 청산하든 화해를 하든 어쨌거나 ‘헌 부대’, 를 찢듯 자신이 직접, 칼로 죽여야 만 가능하다.

헌데 죽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게 나쁜 것은 재발하지 못하도록 ‘죽여 없애야’ 하고,
내게 좋은 것은 ‘여전히’ 좋은지 가려야 한다.
좋지 않은 일들이 나를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읽는 내내 드라마 #멋진신세계 신서리 가 오버랩되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숨지말고,
포기도 말고 결국은 내 손으로.

난 아직도 하루키가 좋다.
와타나베도 다자키 쓰쿠루도 그리고 가호까지 나를 찾아오는 수호천사처럼 느껴지니까.

#색채가없는다자키쓰쿠루와그가순례를떠난해 #노르웨이숲 #가호 @munhakdon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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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문장이 나를 만든다 - 소통의 고수 한석준 아나운서가 뽑은 인생 문장
한석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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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문장이 나를 만든다

한석준 아나운서가 뽑은 인생 문장

이 책의 저자가 내게는 아나운서 한석준보다 유튜브 <지식인사이드>에서 게스트를 초대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치 내가 던지고 싶었던 혹은 듣고 싶던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끌어내는 ‘소통의 고수’로 인지되는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저자가 추린 ‘인생 문장’이 궁금했고, 또 문장만 던지지 않고 그 문장이 왜 좋았는지, 독자는 또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는지 건네는 길지 않은 코멘트가 마치 유튜브를 볼 때 느꼈던 그 섬세함이 전해져서 좋았다. 순차적으로 적었던 날들만 읽은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따금 무례한 말들로 상처받는 날들이 있다. 혹은 그런 일들로 속상했다는 지인들의 하소연도 듣는다. 그때 꼭 필요한 문장을 찾았다.

▌무례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나에게 집중하며 상처를 예방합니다. _김재원, 《말꽃》

이 문장 코멘트에 저자는 자신 역시 처음에는 ‘무시’라는 방법부터 시도했지만 저 문장을 통해 무례한 말로 상처받은 사람을 먼저 위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자의 저서에서 꼽은 문장들도 등장한다. 모든 문장이 좋았지만 초반부터 강하게 뇌리에, 마음에 새긴 문장은 “내가 나에게 한 말이 곧 내 인생이 된다는 것” 이다. 삶이 힘들 때 마다 미처 깨닫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를 부정하는 말들이 나왔다. 결혼 후 출산하고 아이를 양육하며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게 될 때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졌다. 말의 힘을 모르지도 않았기에 자책은 또 다른 자책으로 이어졌다. 이 문장은 그랬던 내게, 혹은 또 어디선가 그렇게 상처받고 있을 이들에게 몇 번이고 전해주고 싶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내가 타인에게 해주었던 그 위로와 응원을 해주라는 코멘트까지 정말 완벽했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 더 소개하자면, 이번에도 저자의 저서에서 뽑은 인생 문장이다.

▌그 자신감은 평소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좌우됩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이 중요한 진짜 이유입니다. _한석준,《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책에 마련된 공간이 다 채워지면 노트를 옮겨서 적고, 또 적어가며 나를 칭찬해주고, 위로하고 응원해줄 생각에 필사하는 페이지가 늘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 다른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말을 통해 ‘나를 만들어 가는 문장’을 소중한 이들과 나누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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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ㅣ 암실문고
브라이언 딜런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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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eulyoo

브라이언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어린 시절 살았던 아일랜드의 집과 그곳에 놓여 있던 물건들, 어머니의 병과 죽음, 아버지와 나눈 대화와 함께 들었던 음악 등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가는 책이다. 하나의 기억은 다른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 철학자나 작가들의 문장이 놓인다. 어머니가 필사한 성경 구절과 아버지가 쓰던 크리스털 재떨이처럼 사소한 사물들 사이에서 한때의 삶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던 아버지와의 대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자신이 했던 행동,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했던 일. 집을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남은 물건을 확인하려는 듯 홀로 빈집 곳곳을 둘러보았던 순간까지. 기억은 그렇게 구체적인 장면과 사물들을 거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가 무리를 해서라도 루르드에 가려 했던 이유가 병자들에게 기적을 안겨준다는 루르드의 성모님께 기도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헤아려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기억은 그 자체로 일종의 공간이다. 그 안에는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뿐 아니라 차라리 잊고 싶은 기억까지, 꼭 필요하기도 쓸모없기도 한 온갖 사무들이 무더기로 쌓이거나 감추어져 있다.23쪽

자신의 이야기를 곧장 꺼내기보다 다른 이들의 문장을 빌려 돌아가기도 하고, 기억의 한 귀퉁이를 더듬다가 문득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미처 알지 못했는지, 지금에 와서야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기억을 다루는 글의 형식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마침내 이 성경책은 나에게 익숙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오릴게 해 준다. 저녁에 차분히 앉아, 전보다 느린 속도로, 자신의 구원이 되었을지 모를 구절들을 옮겨 적던 모습을.139쪽

사라져버린 기억들, 그것은 결국 장소와 사물을 너머 ‘사람’,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서도 그 시절을 뒤늦은 후회로만 채우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는 사람의 시선과 그 기억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지나간 시간은 쉽게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필사한 성경 구절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전에 묵상했던 말씀들이 생각났고, 어쩌면 자신의 고통에서 비롯되었을 나의 어머니의 성경 필사도 함께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성경 구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견디기 위한 간절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같은 말씀을 읽더라도 그것을 적어 내려간 사람의 시간과 마음까지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아직 건강하게 곁에 있는데도 본가에 갈 때마다 한 권 한 권 가져왔던 엄마의 성경필사 노트, 다이어리를 꺼내보았다. 엄마는 내가 가져가려 할 때마다 여러가지 감정을 보이곤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보다 이렇게 펼쳐 볼 수 있는 물성을 가졌다는 것에 안도했다.

▌우리가 고집스레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증거일 뿐이다.375쪽

읽는 동안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조용히 일었다. 오래전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기보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기억의 먼지가 빛 속에서 잠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것들을 붙잡으려 몇 번이고 손을 뻗게 되지만, 막상 손안에 남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기억 속에 남은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뒤늦게나마 머물러 보고 싶어서.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기억 #서민아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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