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만든 그릇 - 편한 쓰임새와 아름다운 형태의 그릇 300점 그리고 31명의 목공예가 이야기
니시카와 타카아키 지음, 송혜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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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그릇.

 

타이틀 참 심플한데 더 좋은 타이틀도 없다. 가장 좋은 디자인이란 더이상 더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란 게 맞는말이다. 재료만 나무일 뿐 방법도 참 다양하다. 흔히 생각하는 물레로 둘레를 돌려가며 속을 파내는 방법 부터 물레가 아닌 조각칼로 만들 때 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방법 그리고 한가지 색이 아닌 다른색의 나무를 잘라서 합판을 만들고 그 합판을 다시 깎아서 만든 그릇 등 책을 보기 전엔 그저 색을 덧칠하는 차이겠거니 했다가 미안할 만큼 화려하고 정교한 그릇이라 놀랐다.

 

 

 

 

 

"무엇가를 마음껏 깎아보고 싶었어요."

-음식을 담으면 표정이 확 달라지는 타원형 대접시 작가 사카이 아츠시.


"마디가 있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가구에는 쓰지 않는 묵재를 가져다 소품을 만들어요."

-나무의 질감과 색채를 즐길 수 있는 다리 그릇 작가 이와사키 히사코.

 

 나무그릇을 만드는 사람들의 대다수의 이력은 디자인 혹은 예술전공인 분들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릇을 만들게 된 사람들도 있다. 버려진 나무를 활용할 방법으로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고 아내가 탁자나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토막을 모아 만든 사람들도 있다. 아에 사용하지 못하는 재료나 갈라지고 벌레 먹은 나무를 가지고 화병을 만드는 작가까지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듯 만드는 이의 이야기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릇을 만들 때의 마음가짐은 모두 같았다. 내가 쓰고 싶고 그릇의 용도에 맞게 사용이 쉬워야 한다는 것, 그야말로 심플 그자체다.

 

 

 

 

 

 

신기한게 분명 나무그릇인데 흙으로 빚은 듯 투박하면서도 진한 흙내음이 풍기는 그릇이 있다. 손을 가져다 대면 금속의 차가운 성질이 느껴질 것처럼 쨍한 그릇도 있고 흔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자기처럼 곱고 윤이 나는 그릇도 있다. 하지만 세가지 모두 재료는 나무다. 나무로 만든 그릇이다. 작가마다 음식을 담고 거의 대부분 식사하는 모습까지 책에 실려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늘 먹는 모습 그대로 소박하게 자신의 그릇에 밥을 담아 먹었다. 물에 약해서 뒤틀리면 어쩌지, 세월이 지나 나무결이 파여 상처를 내면 어쩌나 싶었던 걱정도 작가 한사람 한사람의 식탁을 보고 있자니 조심하면 되겠지 싶다가 이내 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사용하기 편해야 하고 실용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거듭 강조해주니 어느 순간 일본가서 이 그릇을 사와야겠다, 국내에도 있을텐데 책을 다 읽고나면 찾아봐야겠다 하는 소비계획만 늘어났다.

 

'오케토의 초등학교에서는 급식에 쓰는 식기들도 모두 오케크라프트의 목제품들이다. 사토 씨의 자녀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계쏙 집에서도 나무그릇을 써왔다.'

 

작가별로 챕터가 나뉘고 한부가 끝날 때마다 본문에서 소개되었던 방식이나 추가적으로 만들기 쉬운 제작방식을 토대로 DIY페이지도 수록되어있는데 글로만 봐서는 솔직히 갑자기 변한 것도 같고 책만봐서는 따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간단하게는 조각칼 하나 들고서 나무토막 하나 주워가지고 와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주의사항, 나무를 파낼 때 중간중간 어느 한 면만 깊게 파내지 않도록 수평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확실하게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정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이곳을 더 팠다고 다시 디자인을 바꾸거나 하면 뭐랄까, 조각품은 될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담는 '그릇'은 포기해야되지 않을까싶다.

 

'V자형 개미지옥이 되지 않도록 주의!'

"나뭇조각을 도려내어 만들 때는 너무 파버리면 끝장이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작가들의 작품이라 쉽게 구매하기도 수업을 청강할 기회도 희박하지만 나무로 만든 그릇이 이렇게나 다양하구나, 참 늦은 나이에도 그저 나무그릇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 가장 놀라운건 대부분 4~5년정도 근무한 뒤 자신만의 공방을 차린다는 점이다. 직업 특성도 있겠지만 도전도 어렵고 공방으로 먹고사는게 녹록치 않은 환경에 사는 우리에게는 부럽고도 개선되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여러가지 탐나는 그릇이 많았지만 그래도 꼭 하나 갖고 싶은 그릇을 고른다면 쓰유키 키요타카씨의 , 흰밥만 담아도 입안이 황홀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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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존재감은 어디서 오는가 - 실력을 성공으로 바꾸는 최고의 비결
실비아 앤 휴렛 지음, 황선영 옮김 / 진성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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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존재감은 어디서 오는가.

보통 리더라고 하면 그룹 CEO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30대 중후반즘 팀내에서 겨우 오를 수 있는 제법 권위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첼리스트에게도 리더의 존재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 실비아 앤 휴렛의 강조는 틀리지 않다. 물론 현재 난 그룹내의 리더가 아니다. 하지만 리더였던 적은 물론 있었다. 추억해보자면 맨 처음 리더로 선출될 때 그리고 중반까지는 스스로 만족했고 제법 인정까지 받는 리더였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신뢰를 잃어버렸고 마지막에는 오히려 리더가 아니었다면 더 좋은 관계로 남았을것 같은 아쉬움만 커졌다. 대내외적으로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실하지 않았던 경우도 없었는데 그랬다. 내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결론적으로 무엇이 원인이었든 난 존재감이 없는 리더였던 것이다.

 

리더의 존재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감이라고 명명해서 그렇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다.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상을 주다'라는 표현이다. 리더의 존재감은 실적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중적으로 알 수 있는 존재감 있는 리더는 책에 등장하는 오바마대통령, 안젤리나 졸리, 넬슨 만델라 등이다. 그들은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으며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로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단순히 살인미소를 갖춘것으로도 부족하고 '좋은 실적'만 올려서도 안된다. 이런 존재감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크게 3가지다.

 

행동하는 방식(진지함), 말하는 방식(의사소통) 그리고 보이는 방식(외모)이다. 이 세가지를 설명하면서 유명인사들을 대거 등장시켰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동자 출신에서 권위있는 교수가 된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고백한다. 우선 행동하는 방식, 진지함은 뒤에 2가지보다 쉽지 않다. 화술 그리고 자기관리는 후천적인 노력, 금전적인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만 진지함의 경우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표현하기 쉽지 않은 특성을 가진다. 하지만 분명 진지함이 있는 사람은 리더로서 눈에 띈다.

 

'이런 사람은 일련의 가치와 인생의 비전에 이끌려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리더에게 끌리는 것은 리더가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초반에 리더들은 모두 의욕에 넘쳐 사람들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혹은 여러 좋은 방법을 참고하여 이끈다. 하지만 문제가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의 방법의 확신을 잃고 방황하면서 문제를 더 크게 확대시킨다. 언변이 좋은 사람의 경우 요리조리 잘 감출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하지 못하는 소위말하는 결정장애라도 생기게 되면 더이상 그를 신뢰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이부분이 나역시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다.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하고 발표할 기회가 잦다보니 보여지는 모습과 의사소통은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룹의 목적과 개인의 목적이 다르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목적을 그룹의 목적 위에 두었던게 문제가 되지 않았나 깨닫게 된것이다. 물론 외모나 의사소통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한데 저자의 경험담을 보자면 대학 면접시험에서 여우털을 달고 등장하는 것으로 떨어질일 없는 면접에서 떨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세가지의 영향력을 그 어느하나 부족해서도 뒤쳐져서도 안된다. 결국 어느것 하나 빠짐없이 채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리더의 존재감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위기가 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들을 담았다. 리더가 아니라면 혹은 리더이고 싶지 않은 이들이라면 굳이 이 책을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상태로 그저그런 자기개발서라며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더의 존재감이 아닌 '존재감'그 자체를 갖고 싶은 사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가까운 가족, 친구 그리고 직장내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 보통의 누구라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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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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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력, 글 사진 김상규.

작년 봄, 파스텔 핑크 바탕에 오래된 독수리표 카세트 사진이 실린 책이 있었다. 책 제목은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 였는데 보통의 저자가 과거로 부터 현재까지 즐겨 듣던 음악, 책 그리고 영화와 같은 문화상품들을 추억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책을 읽으면서 실제 본적없던 그 카세트가 어찌나 가고 싶었던지. 또 누군가 훔쳐가거나 망가져서 내 곁을 떠난 소니 휴대용 카세트를 한참이나 그리워했었다. 그 그리움을 다시 상기시키게 된 건 책, 사물의 이력 덕분이다. 조금은 낡은 제품이거나 단종된 제품에 미련이 많은 편이라 이 책 역시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타자기며 볼마우스 그리고 필카등등 소장하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라 첫 페이지부터 설렘과 기대가 컸다.

"아마 내가 디스켓과 카세트테이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기록 매체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기대에 아랑곳 없이 부제는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많이 특별했던 사물이야기는 총6개의 구성으로 나뉜다. 앞서 언급했던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가 1장의 주제로 한권을 묶었다면 그보다 더 다양한 주제로 사물의 이야기를 듣게되는 셈이다. 아마 80년 이전 태생들에게는 1장이 가장 반가울 수도 있다. 아에 단종되어 구하기 어려운 상품도 있지만 리어카 그리고 지게는 여전히 건실하다. 작가는 사라진다고 했지만 사라졌다기 보다는 하나의 장소 혹은 역할로 축소 혹은 집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 넘어 2장에서는 동물의 모양을 본 뜨거나 상징성을 가진 사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이 챕터부터 이전과 달리 새로운 사물의 성격을 접하게 되는데 까치발하면 떠오르는게 무엇인가. 무언가 부정하거나 부끄러운 행동 등을 뒤로하고 물러날 때 까치발을 하고 라는 표현을 쓴다. 이 까치발이 사물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선반의 수평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부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간의 행동과 만나면 다소 위축되었던 까치발이 사물의 수평과 버팀목 역할을 지지하면서 제법 쓸모있는 자격을 갖는것이다. 3장에서는 공장 혹은 산업화의 산물이라 보이는 것들의 이야기인데 컨베이어 벨트를 언급하자면 이 기계가 어디에 설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각이 다르게 반응한다. 회전초밥집에서는 그야말로 기다림의 미학을 깨우치게 된다. 내가 주문한 것 혹은 타인이 주문한 다양한 초밥이 눈앞에서 계속 지나간다. 심지어 지갑사정만 고려하지 않는다면 눈앞에서 어떤 것이라도 내것으로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외의 공장 혹은 쇼핑몰등에서 만나면 그것은 '노동' 그자체로 씁쓸해진다. 

"오래된 기술과 도구에 대한 문제로 집중해서 보자면 새로운 것에 대한 로망 때문에 그동안 잘 사용하던 것도 쉽게 버려왔음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정보를 얻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대단한 기술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 한 것 같다."

몇가지 사물의 이력만 끌어냈지만 읽으면서 신기하네를 연발하게 되는 이야기가 참 많다. 남들은 다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궁금증도 자아내며 사람이 아닌 사물에게도 애착이 심하면 삶이 피곤해지는구나 하고 살짝 깨달음도 느낀다. 제법 두꺼운 책에 몰랐던 사물의 능력까지 목차를 한번 보고 관심가는 사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꽤나 전문적인 해설도 있으니 디자인을 전공하는 이들도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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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토마스 바셰크 지음, 이재영 옮김 / 열림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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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바셰크의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노동은 인간에게 형벌인가 아님 축복일까.
토마스 바셰크의 경우 당연 후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수없이 쏟아져 나온 노동은 인간의 삶을 갉아먹고 노동으로 착취당한 자유시간을 보상해야 한다는 이론과는 정반대되는 그야말로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란 타이틀로 책이 나왔다. 노동에 대해 잘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걱정마시라. 이 책은 친절하게도 노동에 대힌 기본적인 역사와 이론까지 알려준다. 다만 노동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조금의 역설과 앞으로의 노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조차 하루를 쉴만큼 노동은 힘겨운 일이며 죄로 인해 평생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워커홀릭이란 것은 정말이지 스스로 자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노예를 두고 워커홀릭이다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다. 저자 역시 스스로가 워커홀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배반하지 않은 상태, 누군가로 부터 억압되거나 마지못해 하는 노동은 결코 아니다. 그때문에 자급자족과 자유시간이 최대로 보장된 부족사회와 같은 곳에서는 아에 노동이란 단어가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노동은 언제부터 인간에게 괴로움이 되었는지 구체적인 역사적 시기가 궁금해진다. 
"고도로 조직된 형태로 실천된 노동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했는데 이때 불법노동자 또한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무와 책임의 노동또한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리스 시대의 경우 귀족사회와 그와 반대되는 사회를 떠올려보면 노동이 더욱더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리스 사회는 여가시간 즉, 비노동적인 시간에 행해지는 활동에 대해 높이 평가되어왔다. 상대적으로 그런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귀족이었고 그렇지 못한 쪽은 천시받고 그들이 하는 노동적인 활동또한 같은 의미로 여겨지게 된다.  이런 노동에 대한 이론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인물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18세기에 등장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일 년 동안 소비하는 모든 필수적이로 편리한 생활 물자들을 조달해주는 원천적인 기원은 그 국민이 일년 동안 수행하는 노동에 있다." 
국부론의 첫 시작이며 성스러운 노동이며 모든 일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활동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노동은 여러이론을 거쳐 점차 발전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자유시간을 침해하고 때때로 노동의 댓가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들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일을 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스스로가 사물이 되어버리는 '사물화' 의 상태까지 일어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권리로서 행해지는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노동이 아닐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지 '노동자체'가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어떤가. 노동자란 말에 우리는 크게 상처받고 스스로 위축된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이 어째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되어야하는가. 스스로 원하는 노동, 삶과 사랑과 분리되지 않은 노동이 실현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노동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노동하고 사랑하는 법을 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동하고 나의 노동을 사랑하는 법을 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멋지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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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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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리. 죽음을 기억하라. 
데쓰세이빙.
친화력 그리고 자연.

이 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이자 그 자체가 주제다. 자신의 이름을 그리고 위치를 그대로 등장시킨 소설 마음은 대놓고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이런 구성의 소설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 독자와 함께 저자도 치유를 받고 있구나 하는 기운이 들었다.

절친 요지로를 잃은 나오히로는 무작정 강상중 교수에게 편지를 전해준다. 친구의 죽음이 너무 헛되지 않았냐고, 그렇게 일찍 세상을 등질꺼라면 애초에 그의 탄생과 삶 전부가 무의미 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온다. 젊은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친구들의 죽음을 전해 들을 때 난 한번도 그들의 삶 자체가 무의미 했던게 아닌지를 의심해보지 못했다. 그들은 살아있었고 더 살지못한, 어차피 더 산다고 행복과 행운의 미래가 손내미는 것도 아닌데 그러지 못한 것에 아쉬움과 살아남은 나는 그나마 운이 좋구나 하는 어느정도의 이기적인 생각만 들었던 것이다.  살면서 삶은 무엇인지, 의미있는 삶 혹은 가치있는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고 혹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것만 같은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삶은 무엇이냐고. 반대로 죽음은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다. 다만 죽음 너머 영혼의 존재여부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을 뿐 죽음 그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이야기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인의 죽음은 그대로 전해져 열심히 살아야지, 그들의 몫까지 혹은 그들의 바람까지 살아야겠다 다짐하고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소멸해버리곤 했다. 이야기 초반에 친구 요지로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나오히로의 편지들은 마치 내가 쓴듯한 착각에 빠지고, 이 편지에 답장을 쓰는 강교수의 답변에 위로를 받았던 것은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오히로가 대지진 이후 그곳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나오히로와 보통의 나는 극명하게 갈린다. 죽음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나오히로와 죽음은 숭고하지만 그 이상은 알고 싶지 않은 비겁하고 초라한 내가 남는것이다. 만약 나오히로가 나와 같은 성격이었다면 소설 마음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오히로처럼 죽음의 의미를 정면으로 맞딱들일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주어지진 못한다. 교수는 마치 그런 우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듯 그리고 자신의 상처도 치유할 목적으로 마음을 집필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단순히 죽음과 삶만을 철학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괴테의 친화력이라는 작품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온다. 나오히로는 대학 연극부에 속해있고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짝사랑하는 모에코에게 들려줌으로써 친화력을 각색한 한편의 극을 탄생시킨다. 모에코는 죽은 요지로에게도 연정의 대상이었다. 요지로가 죽기 직전 모에코에 대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나오히로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편지를 전달해주지 못한 일로 더욱더 괴로워 한다. 이런 이야기가 모에코가 괴테의 친화력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극화로 각색되어 가는 과정은 읽으면서도 상당히 놀라웠다. 1차적으로 현대극으로 옮겼을 때 보다 대지진이라는 사건과 결합하여 실제 무대로 올려지는 과정은 작가의 필력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정말 무심하면서도 이렇듯 핵심을 제대로 보고 있는 이 사람은 마치 모든 것을 알면서도 상처받고 그 상처속에 자신이 치유받을 수 있음도 꿰뚫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소설소게서는 나오히로가 치유되는 과정이 주가 되고 마지막에야 비로소 작가가 먼저 간 아들로 인해 받은 상처와 그로인해 피폐해진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결국 이 한편의 소설자체가 그의 마음속에서 떠오른것이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은 무엇일까.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리 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 단어와 함께 데쓰세이빙이란 단어도 반복된다. 죽음을 걷어올리는 것.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잊는 것도 절절하게 상기시켜 생채기를 내는 것도 아닌 자연 그대로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양분으로 더욱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코 죽음과 삶은 반대의 뜻도 아니고 어느것이 선한것도 옳은 것도 아닌 함께 가는 것, 더이상 삶을 중시하고 죽음은 무섭고 두렵고 더러우니 구석으로 치워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죽음만을 떠올린다. 마치 주문처럼 죽음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하지만 거듭말하지만 단순히 이것만을 말하는 작품은 아니다. 더 큰 것을 혹은 이외의 이야기를 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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