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눈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저우바오쑹 지음, 취화신 그림, 최지희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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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은 책에는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담겨있다. 6쪽


빨간머리 앤, 보노보노, 해리포터 등 만화나 소설 속 인물과 상황을 자신의 상황과 결부시켜 고민했던 작가들의 에세이를 심심치 않게 만나왔다. 저우바오쑹의 <어린왕자의 눈>이 앞서 열거한 작품들과 다른게 있다면 개인만의 위로에서 벗어나 사회에 관심, 사회가 개인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반대로 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일 것 같다. <어린왕자의 눈>도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장미와 어린왕자가 서로 사랑하면서도 왜 왕자는 행성을 떠나야했고, 거짓말은 물론 잔꾀까지 부려가며 어린왕자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던 장미가 정작 떠나겠다는 왕자를 놓아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는지 고민한다. 생각해보니 어린왕자를 몇 번이나 읽었으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떠난 것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가 쌓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51쪽


너무 어려서, 너무 몰라서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게, 결혼하고서도 이별없이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그들은 어떻게 처음인데도 그토록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별과 함께 우리를 찾아오는 상처와 좌절감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깊이 사랑하면 할수록 헤어짐의 여파는 강력하다.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지는 것'에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여우는 이에 대한 답도 함께 알려준다. 떠난다는 어린왕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여우가 하는 말은 '얻은 게 있어. 밀밭의 색깔이 있잖아." -94쪽- 였다. 슬프긴 해도 얻은게 있다라는말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추억이 있고, 추억으로 살아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여우가 하려던 말은 추억을 뜻한게 아니었다는 것을 저우바오쑹의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밀밭의 색이 바로 그거다. 사랑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기피하려는 것의 기저에는 마치 설사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치있는 것일지라도 눈앞에 고통이 싫어 회피하려는 데 있다. 사랑에 있어서조차 기회비용을 따지려는 것,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우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어린왕자가 돌아가기로 선택한 건 장미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책임으 다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장미를 신경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가슴 아픈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존중하는 법 또한 알려주었다. 138-9쪽


어린왕자가 장미를 떠난 것이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면 여우를 만난 뒤에 장미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까닭은 사랑을 잘 알아서였을까? 그보다는 책임을 지기위해서 였을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여기서부터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사랑 뿐 아니라 우정에도 돈으로 대치할 수 없는 시간과 노력, 즉 책임이 뒤따른다. 여우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행성으로 돌아가려는 어린 왕자를 보내줄 수 있었고 슬퍼서 눈물마저 흐르는데도 그를 응원해 줄 수 있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제도 역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식주가 위협받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시를 쓰고 싶은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꿈만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사회가 어느정도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아이가 맘껏 꿈을 꿀 수 있다면, 돈벌이와 결부시키지 않고 그럴 수 있다면 동심을 잃어버린 부모, 어른들도 더이상 아이들의 꿈을 외면하거나 가로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자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국가는 국민이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중략- 정부는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예기치 못한 리스크와 대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건강한 사회 보장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196쪽


개인의 책임을 사회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개인의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린왕자가 행성을 계속 이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어린왕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우 곁에서 머물수도 있었다. 혹은 자신을 받아주는 행성 한 곳에서 머물러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헤어짐의 아픔과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행성을 이동했던 것은 자신의 방문이 그들에게 있어 변화의 기회, 성장의 매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떠남으로써 유약하기만했던 장미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국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작품 중 <나의 단 한가지 요구>는 1시간 45분 정도의 제법 긴 비디오작품이다. 집회에 모였던 사람들을 시간이 흐른 뒤 찾아가서 그들이 자신의 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인터뷰 하듯 연결지어 보여주는 내용인데 결국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사회참여가 더 나은 사회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어린 왕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내가 어린왕자를 몇 번씩 읽으면서도 동심을 잃고 꿈꾸기를 포기한 어른이 된 나를 반성하는 데에 그쳤던 내게 <어린왕자의 눈>의 저자 저우바오쑹은 감상적인 깨달음에서 벗어나 좀 더 실질적으로 이 시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 동심을 잃지 않고 어린 왕자가 그러했듯 다른 이들과 길들여지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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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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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300페이지가 안되는 얇은 소설이다. 아니 적당한 소설이다. 미혼이든 돌싱이든 어쨌든 혼자나와서 독신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에는 사족이라고는 없을만큼 적당하다. 가나와의 오랜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난 후 아내에게 이혼통보를 받게된 다다는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 눈치보느라 하지 못했던,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 기쁘기까지 하다.

 

 결혼은 친척을 두 배로 늘리고, 짐을 두 배로 늘리고, 싸움을 네 배로 늘린다. 26쪽

 

그렇게 도심 한가운데 오래된 소노다씨의 단독주택을 임대받고, 수리까지 허락받은 후 마치 누군가 짜놓은 것처럼 가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무렵 집 여기저기가 수리되는 기쁨과 함께 혼자라는 외로움도 커질때라, 더군다나 아쉬움을 남겼던 가나와의 재회는 기쁘기 그지없다. 마치 이혼도, 이곳으로 이사오게 된 것도 가나와의 재회를 위한 것처럼 느낀다. 집을 보러왔던 날 잠시 보았던 고양이 후미도 그를 맘에 들어했으므로 다다시에게 더이상 외로움은 없다. 후미와 함께 있을때면 그냥 그렇게 평생을 혼자 살아도 상관없고, 더이상 누군가와의 연애 혹은 결혼은 없을거라며 별일아니라는 듯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우아한 독신남의 모습으로 고쳐서 깨끗하고 편리해진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자전거로 장을 보러가는 우아한 꽃중년이라고나 할까.

 

"오카다는 우아하군."

"오카다는 아직 사십대잖나.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지.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76-7쪽

 

가나와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도우미까지 필요로 할 정도로 약해진 가나아버지의 등장이 둘의 관계를 힘들게 하진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가나가 다다시를 찾게 하는 매개가 되어준다. 집도 안정이 되어가고 소노다시의 메일을 통해 전해듣는 그녀의 일상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질병으로 크게 문제만 없다면 혼자인 노년도 크게 나쁘지 않고 오히려 우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해주어 다다시는 스스로의 삶에 어느정도 만족한 것처럼 느낀다. 이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들 히사히코의 느닷없는 커밍아웃에 당황은 해도 성내거나 반대하지 않는 다다시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식을 소유물로, 자기마음대로 하려는 부모일수록 삶의 대한 만족도가 적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다다시의 경우처럼 충분히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있을경우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들이 행복한 것이 우선이며 무엇보다 자식은 더이상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의 진짜 모습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66쪽

히사히코는 행복해 보였다. 167쪽

 

이렇게나 '우아한' 다다시도 가나앞에서는 마치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하고 싶은 20대 청년과 다를바 없다. 가나에게 반하게 된 것은 그녀 자신도 모르는 매력덕분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혼자된 다다시에게 있어 가나의 모습은 아버지를 돌봐주는 성숙한 여인이며, 인간으로치자면 여든이 다되어가는 고양이 후미나 소노다씨를 통해 다다시가 느끼는 것은 안정감, 대지와 같은 여성의 품이다. 하지만 가나가 그러했듯 나조차 이런 다다시의 모습이 미덥지가 않다. 그렇게 품어주던 아내를 떠나, 가정을 떠나 혼자만의 '우아한 삶'을 즐기고 있는 다다시가 과연 언제까지고 가나곁에서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아한, 빈틈없는 생활에 여자가 끼어드는 건 쉽지 않아. 자기가 잡음이랄지, 이물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216쪽

"그런 남자는 자기가 이뤄놓은 혼자만의 생활이 숨 막히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어딘가에서 그걸 깨부수고 싶어지거든." 217쪽

 

깨부수고 싶어진다는 다다시의 말이 내게는 때가되면 다시 완벽하게 짜맞추고 싶어질 때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가나의 아버지와 함께 셋이서, 가능하다면 귀국하게 되는 소노다씨까지 함께 넷이서 살아도 좋겠다는 다다시. 주변의 30-40대 미혼 여성인 지인들을 보면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 결혼자체에 관심이 덜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운명처럼, 드라마처럼 다가올 사랑에 대한 로망만 남았을 뿐 결혼은 '현실'이었다. 결혼은 곧 '우아함'을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가나역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에 어느정도 적응해서였을까. 결혼 혹은 동거로 한집에서 다다시와 함께하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원했다.

"나도 다다시씨의 우아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편이.....훨씬 더 도움이 될거야."249쪽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우아함을 버리고서라도 가나와 함께 하고 싶은 다다시의 마음이 과연 맞는걸까. 가나의 말처럼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의 적당한 선의 유지가 낫지 않을까 싶다. 한 때는 결혼을 해야하는 것이 사랑이 식었을 때, 잠깐의 흔들림으로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어책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헤어져야 할 사람은 결국은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상태는 위험하다. 둘이 함께여도 충분히 '우아하다'라고 자신할 수 있을 때까지 다다시가 가나를 기다려주길 바란다. 그 자신이 설사 우아하다는 말에 몸서리를 치게 될 지라도.

몇 번이고 가나와 이야기하자.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늦지 않다.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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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 - 일주일에 한 번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수업
쉐릴 리처드슨 지음, 김현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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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객에게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만, 목표는 모두 같았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소중한 가치를 반영하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6쪽

이 일주일 단위의 과정은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라는 코칭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1쪽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읽고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것이다. 12쪽

 

셰릴 리처드슨의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은 자기개발서 + 플래너 라고 말할 수 있다. 매 주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행동, 실천에 관한 조언을 들려주고 그 기록을 적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 그 중요성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 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조언처럼 책을 펼쳐서 맘에 드는 것 부터 실천해도 되는데 이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왜냐면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를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해놓고 첫 주 과제부터 자괴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과제가 '나의 성취 적어보기'인데 지난 1년간 가장 잘한 일을 스무가지를 적으라고 되어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적다보면 꽤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트집잡는게 아니라 '가장'잘한일이 어떻게 스무가지나 나올 수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잘한일이 없어서 나를 토닥여주고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당 책을 펼친사람들, 그야말로 과거의 나를 바꾸고자 이 책을 집어든 사람한테는 지나치게 잔인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한참 우울해있다가 페이지를 넘겨 4주차, '나를 기록하는 힘'부터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과제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를 근거로 설명해준다. <아티스트웨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만났던 책이다. 책은 물론 5권 가량의 모닝페이지 노트도 여전히 소장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아침 시간 나를 기록하는 것은 꽤나 보람을 가지게 하고 뿌듯하게 만든다. 만약 지난 해 내가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작성했더라면 첫 번째 과제, 내가 가장 잘한일에 적어넣으면서 기분좋게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계절이 되면 사람들은 건강하고 멋진 몸매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신체 단련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방면에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았다. 90쪽

 

위의 발췌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몸매가꾸기가 아니라 저자가 전문가를 찾아나섰다는 부분이다. 사실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과 같은 책을 집필하는 전문가에게 내가 배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고작 한번 해봤을뿐이다>리뷰에도 적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악기연주처럼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고선 더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무언가를 책으로 배우려는 성향도 마찬가지다. 셰릴은 서문에도 말하지만 누군가 만나는 것, 조언을 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깨닫게 된 나의 약점이나 두려운 점은 26주차 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한 주의 과제를 마치고 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은 이미 다른 자기개발서에서 질리게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강점은 '나를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과 그것이 단 한 페이지일지라도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 있다. 다시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닐지라도 꼬박꼬박 펼쳐보고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래서 52주차가 되는 때에 나는 1주차 과제를 꼭 하고 싶다. 이 책대로만 따라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라도 나를 한해 동안 돌봐준다면 스무가지가 대수랴. 52두가지도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문에 어쩌면 이 책의 리뷰는 지금은 미완성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책 한권을 사고, 저자의 말처럼 예쁜 노트, 일년 내내 볼거니까 다소 과하게 준비해도 좋을 것이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거창하게 자격증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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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에디션 D(desire) 14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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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소설을 읽기 전이었던 2년 전 겨울 영화로 먼저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만났다. 정식 개봉을 하던 때에는 미성년자라서 볼 수 없었고, 대략적인 줄거리만 들었기 때문에, 그것도 원작인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라 영화의 줄거리만 알았기에 영화가 시작되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여운이 오래갔다. 다만 영화에서는 해나의 비중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녀가 영국인 환자를 그렇게까지 보살피려했는지, 어째서 남자들 뿐인 빌라에서 별다른 두려움 없이 머물렀는지, 그저 전쟁에서 연인을 잃었기 때문에 삶의 애착이 소멸해버렸기 때문일거라 대략적으로 짐작만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섰을 때 내 마음속에서 동굴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어둠속에서 죽어가던 여인에 대한 잔상이 크게 자리잡았을 뿐이다.


소설의 중심축은 영국인 환자, 해나 그리고 카라바조 그리고 킵. 기억이 불분명한데 영화에서는 카라바조와 해나의 관계가 소설과 달랐다. 무엇보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말하자면 다음의 문장을 예로 들면 될 것 같다.


그녀는 책을 덮고 도서관으로 내려가 그 책을 책장 위 높은 선반에 숨겨놓는다.  -본문-


위의 문장속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책을 덮는 행위라던가, 도서관이라는 장소라던가, 그리고 소중한 책이라는 암시인 듯 선반에 숨겨놓는 행위까지 단순히 한 장면에 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마음을 흔든다. 그렇다고 영화는 별로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속에서 테니스화를 신고 퐁당 퐁당 뛰어다니는 해나의 모습은 스무 살이 가질 수 있는 천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의 인생 중 이 시기는 책만이 감방을 벗어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16쪽

이제 빌라 산 지롤라모에는 영국인 환자와 그녀밖에 살고 있지 않았다. 17쪽


영국인환자는 엄청나게 박식하다. 외국어도 능통하다. 정작 자신이 누군지는 모르는 그에게 사람들은 관심이 가고 호감을 느낀다. 영리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보통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거부감마저 특유의 친화력, 이미 삶의 저편 어딘가에 머무는 듯하다. 전쟁속에서 누구나 '생' 그 자체에 집착하게되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모두가 바라는 무언가에 욕망을 가지지 않는 존재라서 어쩌면 더 매력을 느꼈던것일지도 모른다. 


카라바지오는 도서관에 들어간다. 그는 대부분의 오후를 여기서 보냈다. 언제나처럼 책들은 그에게 신비로운 피조물이다. 113쪽


인물들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치 그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중스파이로 의심과 호기심이 많은 카라바지오에게 책은 신비 그자체이고, 해나에게는 일생의 어느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호흡기가 되어주고 영국인 환자에게는 자신의 전부가 그 안에 녹아들어있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독자인 나는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고 유사한 상황속에 놓인 적이라곤 단 한 순간도 없었음에도 깊게 몰입하게 된다.



그는 침대에 누운 남자를 바라본다. 사막에서 온 이영국인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해나를 위해서 이 사람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람을 위해서 피부를 발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탄닌산이 화상 입은 남자의 감추어주고 있듯이. 168쪽


영국인환자가 어떤 일을 했는지가 책의 절반을 읽어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조급하게 그의 정체를 캐묻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 어떤것에도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카라바지오가 당하는 고문, 해나가 병사들과 함께 있었을 때의 일들, 영국인환자가 어떤 까닭으로 화염에 갇혔었는지에 대한 일들은 긴장 그자체다. 한쪽에서는 지뢰가 터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야기 속에서 낯선 것은 그저 전쟁을 원한 사람은 없는데

전쟁이란 이유로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야했던 사람들이 실재했다는 사실 뿐이다.


영국인환자가 누구인지는 어느순간 이미 머릿속에서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저 어느 한 때 누군가를 사랑했던 때만 그리워졌다. 전쟁중이 아닌데도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서 나는 마치 책이 전부인듯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보다 나은 상태로,

환자복을 벗을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사랑, 그래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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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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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41쪽

소설 라이프 오어 데스는 호주 제1의 범죄소설가로 불리는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이다. 내가 읽은 저자의 첫 작품인 라이프 오어 데스는 '오디 파머'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오디파머. 출소 하루 전 탈옥을 감행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감옥 내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 남은 하루조차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 실제 감옥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감옥내 폭력이 과연 전부일까 싶을 정도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테니까. 어찌보면 오디가 살아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의 지인들의 표현처럼 억세게 불운하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나는 운좋은 인간이 바로 오디였다.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만화 속 가장 불쌍한 캐릭터가 누구인지 순위를 매긴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때 1위가(그다지 영광스럽지 않은) <베르세르크>의 베르세르크였다. 절친에게 배반당하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는 그야말로 모든 불운을 다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였다. 그런 베르세르크나 오디 파머나 별차이가 없다. 그의 평소 성격이나 태도만 보더라도 애초에 그가 감옥에 억울하게 수감되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근데 그 상황을 다 알게되면 진짜 한숨밖에 안나온다. 갑자기 내가 안고 있는 문제, 견뎌야 할 상황이나 고통이 부끄러워질 정도가 되어버린다. 반면 오디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했던 일들을 보자면 지금껏 나는 나의 연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인물. 데지레.


성장기에 부모님은 "진짜 좋은 선물은 작은 상자에 들어 있는 법이야."

그리고 "사람들은 삶에서 작은 것들에 감사한단다." 같은 말을 들려주곤 했다. 51쪽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에서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보는이로 하여금 불안할 정도의 킬힐을 신고서도 160cm가 되지 않은 데지레의 작은 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정도로 작은 키를 가진 데지레의 직업은 연방수사요원이다. 그것도 연방수사국 아카데미를 1등으로 졸업했다. 그녀에게 작은 건 오로지 키 하나 뿐인 것이다. 데지레의 등장으로 나는 다시금 자괴감을 느꼈다. 소설 속 인물, 허구의 인물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다니 소심하군 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소설보다 더 한 상황은 얼마나 많으며 오디와 데지레보다 더 극한상황에서도 멋지게 살아가는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꾸 옆길로 새는 데 아무래도 새벽에 쓰는 리뷰라서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리뷰를 굳이 검색해서 읽고 있는 분들에게 나의 자괴감 따위를 더이상 늘어놓진 않겠다.


오디는 십여년 전 폐기될 예정인 지폐를 훔치고 경관을 포함한 4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의 주범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때 훔쳤던 어마마한 금액은 그 이후 소식을 감췄고, 오디의 형이 마치 그 돈을 가지고 동생마저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카더라 통신은 떠들어댔지만 그런 이야기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갔다. 영리한 독자가 아니라면 중반까지도 아마 오디가 나쁜 형 때문에 억울하게 대신 감옥에 간것이라고, 형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을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출간한지 1년이 훨씬 더 지났으니 결말을 이야기한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테지만 왠지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결말이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전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쓴 소설이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짊어진 채 가고 있다.

통근객들, 쇼핑객들, 관광객들, 사업가들, 야구모자 쓴 소년들, 넝마를 입은 거지들.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

오디는 그저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262쪽

오디가 왜 탈옥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금새 알 수 있게 되지만 어떻게해서 오디가 사건에 연류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에 소설인데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은 줄은 알면서도 그랬다. 마치 소설<HHhH>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보는 것 같았다. 그토록 다정한 한 집안의 가장이 다른 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진짜 범인의 가족들의 태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범죄자를 극도로 혐오하거나 처단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이 어색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중반까지만 해도 오디의 불우한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린 사랑이 안타깝고 자괴감마저 들게 만들었지만 결말을 접하고 마지막 페이지마저 다 읽고났을 때 나를 괴롭힌 것은 범죄자 가족의 태도와 그 태도를 납득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었던 것 같다.


율리케와 아이몬이라는 영국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작품이 있다. 작품의 내용은 폭력적인 성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던 서독 극좌파 율리케와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마찬가지로 공격적으로 테러를 감행했던 아이몬이라는 인물을 다룬 내용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관람객에게 묻는다. 과연 자신 혹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폭력을 가한 상대를 대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느냐고.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라고 우리는 머리로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오디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나의 아버지가 누군가를 억울하게 죽였다면 피해자가 아닌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내게 던져주었다. 물론 이 책의 주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짧다.

사랑은 무한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550쪽


오디 파머가 그토록 지옥같던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이것이 그야말로 스포중의 스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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