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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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41쪽

소설 라이프 오어 데스는 호주 제1의 범죄소설가로 불리는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이다. 내가 읽은 저자의 첫 작품인 라이프 오어 데스는 '오디 파머'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오디파머. 출소 하루 전 탈옥을 감행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감옥 내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 남은 하루조차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 실제 감옥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감옥내 폭력이 과연 전부일까 싶을 정도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테니까. 어찌보면 오디가 살아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의 지인들의 표현처럼 억세게 불운하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나는 운좋은 인간이 바로 오디였다.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만화 속 가장 불쌍한 캐릭터가 누구인지 순위를 매긴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때 1위가(그다지 영광스럽지 않은) <베르세르크>의 베르세르크였다. 절친에게 배반당하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는 그야말로 모든 불운을 다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였다. 그런 베르세르크나 오디 파머나 별차이가 없다. 그의 평소 성격이나 태도만 보더라도 애초에 그가 감옥에 억울하게 수감되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근데 그 상황을 다 알게되면 진짜 한숨밖에 안나온다. 갑자기 내가 안고 있는 문제, 견뎌야 할 상황이나 고통이 부끄러워질 정도가 되어버린다. 반면 오디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했던 일들을 보자면 지금껏 나는 나의 연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인물. 데지레.


성장기에 부모님은 "진짜 좋은 선물은 작은 상자에 들어 있는 법이야."

그리고 "사람들은 삶에서 작은 것들에 감사한단다." 같은 말을 들려주곤 했다. 51쪽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에서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보는이로 하여금 불안할 정도의 킬힐을 신고서도 160cm가 되지 않은 데지레의 작은 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정도로 작은 키를 가진 데지레의 직업은 연방수사요원이다. 그것도 연방수사국 아카데미를 1등으로 졸업했다. 그녀에게 작은 건 오로지 키 하나 뿐인 것이다. 데지레의 등장으로 나는 다시금 자괴감을 느꼈다. 소설 속 인물, 허구의 인물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다니 소심하군 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소설보다 더 한 상황은 얼마나 많으며 오디와 데지레보다 더 극한상황에서도 멋지게 살아가는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꾸 옆길로 새는 데 아무래도 새벽에 쓰는 리뷰라서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리뷰를 굳이 검색해서 읽고 있는 분들에게 나의 자괴감 따위를 더이상 늘어놓진 않겠다.


오디는 십여년 전 폐기될 예정인 지폐를 훔치고 경관을 포함한 4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의 주범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때 훔쳤던 어마마한 금액은 그 이후 소식을 감췄고, 오디의 형이 마치 그 돈을 가지고 동생마저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카더라 통신은 떠들어댔지만 그런 이야기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갔다. 영리한 독자가 아니라면 중반까지도 아마 오디가 나쁜 형 때문에 억울하게 대신 감옥에 간것이라고, 형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을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출간한지 1년이 훨씬 더 지났으니 결말을 이야기한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테지만 왠지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결말이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전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쓴 소설이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짊어진 채 가고 있다.

통근객들, 쇼핑객들, 관광객들, 사업가들, 야구모자 쓴 소년들, 넝마를 입은 거지들.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

오디는 그저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262쪽

오디가 왜 탈옥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금새 알 수 있게 되지만 어떻게해서 오디가 사건에 연류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에 소설인데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은 줄은 알면서도 그랬다. 마치 소설<HHhH>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보는 것 같았다. 그토록 다정한 한 집안의 가장이 다른 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진짜 범인의 가족들의 태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범죄자를 극도로 혐오하거나 처단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이 어색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중반까지만 해도 오디의 불우한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린 사랑이 안타깝고 자괴감마저 들게 만들었지만 결말을 접하고 마지막 페이지마저 다 읽고났을 때 나를 괴롭힌 것은 범죄자 가족의 태도와 그 태도를 납득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었던 것 같다.


율리케와 아이몬이라는 영국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작품이 있다. 작품의 내용은 폭력적인 성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던 서독 극좌파 율리케와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마찬가지로 공격적으로 테러를 감행했던 아이몬이라는 인물을 다룬 내용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관람객에게 묻는다. 과연 자신 혹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폭력을 가한 상대를 대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느냐고.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라고 우리는 머리로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오디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나의 아버지가 누군가를 억울하게 죽였다면 피해자가 아닌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내게 던져주었다. 물론 이 책의 주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짧다.

사랑은 무한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550쪽


오디 파머가 그토록 지옥같던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이것이 그야말로 스포중의 스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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