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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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300페이지가 안되는 얇은 소설이다. 아니 적당한 소설이다. 미혼이든 돌싱이든 어쨌든 혼자나와서 독신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에는 사족이라고는 없을만큼 적당하다. 가나와의 오랜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난 후 아내에게 이혼통보를 받게된 다다는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 눈치보느라 하지 못했던,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 기쁘기까지 하다.

 

 결혼은 친척을 두 배로 늘리고, 짐을 두 배로 늘리고, 싸움을 네 배로 늘린다. 26쪽

 

그렇게 도심 한가운데 오래된 소노다씨의 단독주택을 임대받고, 수리까지 허락받은 후 마치 누군가 짜놓은 것처럼 가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무렵 집 여기저기가 수리되는 기쁨과 함께 혼자라는 외로움도 커질때라, 더군다나 아쉬움을 남겼던 가나와의 재회는 기쁘기 그지없다. 마치 이혼도, 이곳으로 이사오게 된 것도 가나와의 재회를 위한 것처럼 느낀다. 집을 보러왔던 날 잠시 보았던 고양이 후미도 그를 맘에 들어했으므로 다다시에게 더이상 외로움은 없다. 후미와 함께 있을때면 그냥 그렇게 평생을 혼자 살아도 상관없고, 더이상 누군가와의 연애 혹은 결혼은 없을거라며 별일아니라는 듯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우아한 독신남의 모습으로 고쳐서 깨끗하고 편리해진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자전거로 장을 보러가는 우아한 꽃중년이라고나 할까.

 

"오카다는 우아하군."

"오카다는 아직 사십대잖나.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지.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76-7쪽

 

가나와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도우미까지 필요로 할 정도로 약해진 가나아버지의 등장이 둘의 관계를 힘들게 하진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가나가 다다시를 찾게 하는 매개가 되어준다. 집도 안정이 되어가고 소노다시의 메일을 통해 전해듣는 그녀의 일상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질병으로 크게 문제만 없다면 혼자인 노년도 크게 나쁘지 않고 오히려 우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해주어 다다시는 스스로의 삶에 어느정도 만족한 것처럼 느낀다. 이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들 히사히코의 느닷없는 커밍아웃에 당황은 해도 성내거나 반대하지 않는 다다시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식을 소유물로, 자기마음대로 하려는 부모일수록 삶의 대한 만족도가 적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다다시의 경우처럼 충분히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있을경우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들이 행복한 것이 우선이며 무엇보다 자식은 더이상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의 진짜 모습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66쪽

히사히코는 행복해 보였다. 167쪽

 

이렇게나 '우아한' 다다시도 가나앞에서는 마치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하고 싶은 20대 청년과 다를바 없다. 가나에게 반하게 된 것은 그녀 자신도 모르는 매력덕분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혼자된 다다시에게 있어 가나의 모습은 아버지를 돌봐주는 성숙한 여인이며, 인간으로치자면 여든이 다되어가는 고양이 후미나 소노다씨를 통해 다다시가 느끼는 것은 안정감, 대지와 같은 여성의 품이다. 하지만 가나가 그러했듯 나조차 이런 다다시의 모습이 미덥지가 않다. 그렇게 품어주던 아내를 떠나, 가정을 떠나 혼자만의 '우아한 삶'을 즐기고 있는 다다시가 과연 언제까지고 가나곁에서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아한, 빈틈없는 생활에 여자가 끼어드는 건 쉽지 않아. 자기가 잡음이랄지, 이물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216쪽

"그런 남자는 자기가 이뤄놓은 혼자만의 생활이 숨 막히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어딘가에서 그걸 깨부수고 싶어지거든." 217쪽

 

깨부수고 싶어진다는 다다시의 말이 내게는 때가되면 다시 완벽하게 짜맞추고 싶어질 때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가나의 아버지와 함께 셋이서, 가능하다면 귀국하게 되는 소노다씨까지 함께 넷이서 살아도 좋겠다는 다다시. 주변의 30-40대 미혼 여성인 지인들을 보면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 결혼자체에 관심이 덜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운명처럼, 드라마처럼 다가올 사랑에 대한 로망만 남았을 뿐 결혼은 '현실'이었다. 결혼은 곧 '우아함'을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가나역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에 어느정도 적응해서였을까. 결혼 혹은 동거로 한집에서 다다시와 함께하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원했다.

"나도 다다시씨의 우아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편이.....훨씬 더 도움이 될거야."249쪽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우아함을 버리고서라도 가나와 함께 하고 싶은 다다시의 마음이 과연 맞는걸까. 가나의 말처럼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의 적당한 선의 유지가 낫지 않을까 싶다. 한 때는 결혼을 해야하는 것이 사랑이 식었을 때, 잠깐의 흔들림으로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어책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헤어져야 할 사람은 결국은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상태는 위험하다. 둘이 함께여도 충분히 '우아하다'라고 자신할 수 있을 때까지 다다시가 가나를 기다려주길 바란다. 그 자신이 설사 우아하다는 말에 몸서리를 치게 될 지라도.

몇 번이고 가나와 이야기하자.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늦지 않다.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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