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눈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저우바오쑹 지음, 취화신 그림, 최지희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작은 책에는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담겨있다. 6쪽


빨간머리 앤, 보노보노, 해리포터 등 만화나 소설 속 인물과 상황을 자신의 상황과 결부시켜 고민했던 작가들의 에세이를 심심치 않게 만나왔다. 저우바오쑹의 <어린왕자의 눈>이 앞서 열거한 작품들과 다른게 있다면 개인만의 위로에서 벗어나 사회에 관심, 사회가 개인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반대로 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일 것 같다. <어린왕자의 눈>도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장미와 어린왕자가 서로 사랑하면서도 왜 왕자는 행성을 떠나야했고, 거짓말은 물론 잔꾀까지 부려가며 어린왕자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던 장미가 정작 떠나겠다는 왕자를 놓아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는지 고민한다. 생각해보니 어린왕자를 몇 번이나 읽었으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떠난 것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가 쌓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51쪽


너무 어려서, 너무 몰라서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게, 결혼하고서도 이별없이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그들은 어떻게 처음인데도 그토록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별과 함께 우리를 찾아오는 상처와 좌절감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깊이 사랑하면 할수록 헤어짐의 여파는 강력하다.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지는 것'에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여우는 이에 대한 답도 함께 알려준다. 떠난다는 어린왕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여우가 하는 말은 '얻은 게 있어. 밀밭의 색깔이 있잖아." -94쪽- 였다. 슬프긴 해도 얻은게 있다라는말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추억이 있고, 추억으로 살아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여우가 하려던 말은 추억을 뜻한게 아니었다는 것을 저우바오쑹의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밀밭의 색이 바로 그거다. 사랑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기피하려는 것의 기저에는 마치 설사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치있는 것일지라도 눈앞에 고통이 싫어 회피하려는 데 있다. 사랑에 있어서조차 기회비용을 따지려는 것,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우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어린왕자가 돌아가기로 선택한 건 장미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책임으 다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장미를 신경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가슴 아픈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존중하는 법 또한 알려주었다. 138-9쪽


어린왕자가 장미를 떠난 것이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면 여우를 만난 뒤에 장미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까닭은 사랑을 잘 알아서였을까? 그보다는 책임을 지기위해서 였을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여기서부터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사랑 뿐 아니라 우정에도 돈으로 대치할 수 없는 시간과 노력, 즉 책임이 뒤따른다. 여우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행성으로 돌아가려는 어린 왕자를 보내줄 수 있었고 슬퍼서 눈물마저 흐르는데도 그를 응원해 줄 수 있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제도 역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식주가 위협받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시를 쓰고 싶은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꿈만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사회가 어느정도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아이가 맘껏 꿈을 꿀 수 있다면, 돈벌이와 결부시키지 않고 그럴 수 있다면 동심을 잃어버린 부모, 어른들도 더이상 아이들의 꿈을 외면하거나 가로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자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국가는 국민이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중략- 정부는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예기치 못한 리스크와 대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건강한 사회 보장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196쪽


개인의 책임을 사회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개인의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린왕자가 행성을 계속 이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어린왕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우 곁에서 머물수도 있었다. 혹은 자신을 받아주는 행성 한 곳에서 머물러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헤어짐의 아픔과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행성을 이동했던 것은 자신의 방문이 그들에게 있어 변화의 기회, 성장의 매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떠남으로써 유약하기만했던 장미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국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작품 중 <나의 단 한가지 요구>는 1시간 45분 정도의 제법 긴 비디오작품이다. 집회에 모였던 사람들을 시간이 흐른 뒤 찾아가서 그들이 자신의 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인터뷰 하듯 연결지어 보여주는 내용인데 결국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사회참여가 더 나은 사회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어린 왕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내가 어린왕자를 몇 번씩 읽으면서도 동심을 잃고 꿈꾸기를 포기한 어른이 된 나를 반성하는 데에 그쳤던 내게 <어린왕자의 눈>의 저자 저우바오쑹은 감상적인 깨달음에서 벗어나 좀 더 실질적으로 이 시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 동심을 잃지 않고 어린 왕자가 그러했듯 다른 이들과 길들여지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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