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디자인 2 Design Culture Book
조창원 지음 / 지콜론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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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위로의 디자인 첫호를 접했을 때 디자인을 내 스스로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해왔는지를 느끼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좀 더 예쁘고 그렇기 때문에 일상 소품이나 가구, 전자제품 등의 가격을 높이는 요소라고만 생각했지 우리가 미처 보지못하는 부분까지 관찰하면서 얻어낸 '결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던 것이다. 2016년 1월, 3년 만에 돌아온 두번째 책은 저자도 바뀌면서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느낌을 그대로 옮기자면 우리가 미처 알지 알아봐주지 못했던 디자인 영역을 위로했던 것이 1권 이라면 이번 2권은 그야말로 누구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스토리텔링에 가까운 방식처럼 다가왔다.


이제 웹톤이 아닌 만화책을 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수십 편씩 연재되는 만화책도 처리할 걱정 없이 사들일 수 있다. 이야기와 그림을 담은 책장 사이로 생명이 피어나는 경이를 맛보기 위해서라면 일부러라도 만화책을 읽고 싶다.


만화책 텃밭 편에 실린 글로 현대미술작가이자 아트디렉터, 책을 장정하는 전문가인 가와치 고시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일이지만 만화책에 열광한 적이 있어서 방에 딸려있는 베란다에 만화책을 거의 천정까지 채울만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엄마한테 크게 혼난 뒤 정리하면서 몇 권을 남겨 직사각형 플라스틱 통에 물을 넣고 남긴 책을 마구 뜯어서 물기를 흡수 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채웠다. 그렇게하면 벽돌만큼은 아니더라도 단단하게 굳어서 유사한 기능을 해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을 제대로 흡수한 그 물체를 다양하게 활용하긴 했는데 만약 '만화책 텃밭'수준의 아이디어를 내가 떠올릴 수 있었다면 좀 더 많은 만화책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그럴 수 있었다면 일부러라도 만화책을 읽고 싶었을지 모른다. 뿐만아니라 버리라고 화를 내시던 엄마도 베란다에 예쁜 꽃 혹은 채소가 자라는 풍경을 보였더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성냥을 위인화하는 것을 유치하다고 폄하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삶을 밝히는 것은 유아적인 발상이나 엉뚱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혀 유치하지 않게, 그럴 듯하게 재현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며 힘이다.


코케시의 '성냥 제작소'라는 작품에 달린 저자의 코멘트로 성냥 머리에 얼굴 표정을 그려넣은 작품이다. 성냥갑을 열었을 때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적색 머리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 병아리, 아저씨 등의 얼굴이 등장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작품으로 성냥 머리의 색만 노란색, 파란색으로 칠해도 색달랐던 것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있을 분위기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만약 이런 생각이나 발상을 그것이 과연 디자인일까? 하며 무시했다면 이런 소소한 기쁨, 진정한 의미의 '디자인 상품'을 우리는 다양하게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유일한 단점이 사용하기 아까울 만큼 귀엽고 장난감스러운 것으로 어쩌면 이런 상상 이들보다 먼저 했었던 사람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같은 기간에 읽은 [넨도nendo문제해결연구소]의 저자 사토 오오키처럼 역시나 디자인은 '결단력'이 중요한 것 같다.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위로의디자인2편은 내게 있어 이런저런 추억들, 내가 생각했던 발상들을 떠올리게 하며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디자인 책이라고 하면 전공서적 혹은 비전공자에게는 부럽지만 흉내내거나 차마 소유할 수 없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책으로만 느껴졌는데 이 책만큼은 디자인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활의 소소함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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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도nendo의 문제해결연구소 - 세계적인 브랜드의 "문제해결사" 사토 오오키의 번뜩이는 디자인 사고법!
사토 오오키 지음, 정영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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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오오키의 이전 책 [넨도 디자인 이야기]는 넨도에서 개발한 더이상 뺄것이 없는 디자인으로서는 완벽한 제품들의 탄생 전후에 관한 이야기, 넨도 사의 방침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고 디자인 상품 이미지컷도 많아 소유욕을 불태웠었다. 신간 [넨도nendo의 문제해결연구소]는 부제에 적혀있는 것처럼 '디자인 사고법'에 대해 알려준다. 그동안 우리는 자기개발서를 통해 다양한 방법의 사고, 생각말하기, 구체화하기 등에 관해 접했지만 디자이너에게 듣는 디자인 사고법은 다소 생소했다. 도서분류만 봐도 이전 책이 예술이나 경제경영이었다면 이번 신간은 당당하게 '자기계발'에 속해있다. 사토 오오키가 들려주는 넨도만의 디자인 사고법이 다른 기업과 브랜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주었는지를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능력'에  대해 물으면 제일 먼저 '독창성'이나 '기발한 발상'같은 것을 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결단력'이죠.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그렸어도 결단력이 없으면 그것을 손에 잡히는 것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의 다른 의견도 놀라웠지만 위의 내용은 다들 머리가 띵해지는 경험을 받았을것 같다. 디자이너에게 독창성이나 발상이 아닌 '결단력'이라니. 결단력은 리더의 자질이라고만 배웠고 그동안 우리는 한 그룹의 리더이긴 보단 구성원으로서 모나지 않는 성품, 리더를 잘 받춰줄 수 있는 '비서'의 능력만 배웠으니 여러모로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얼마나 결단력 없이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한가지 더 마음을 크게 두드렸던 것은 흔히 작가들이 부러운 이유가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독자로 하여금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기시감'에 가까운 능력을 느기게 하기 때문인데 디자이너는 그런 감을 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일을 따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2d의 평면일지라도 '눈에 보이게'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디자인 사고법으로 업무 혹은 학습처리를 할 때 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디자이너의 역할을 그동안 몰랐던 것이 아니었는데 문제해결 방식과 연결짓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디자인의 목적은 단순히 무언가를 멋있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 대해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죠.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논리적인 것을 직감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이것이 디자인의 본질입니다.


예를 들어준 애플사의 경우 사토 오오키가 필요로하는 디자인 사고법에 넨도사를 제외하면 가장 적합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출간당시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가 된 애플사 전현직 디자이너의 자서전이 화제를 모으는 것도 결국 그들의 마인드, 사고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던 거라 생각된다. 제법 두꺼운 그 책들을 모두 볼 수 없다면 우선 넨도nendo의 문제해결소 지층부터 찬찬히 밟고 올라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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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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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지음



 

 

표지에 성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파란색 스웨터를 입은 아이가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그레이스'다. 바람에 나부끼는 듯 보이지만 표지만 자세히 보아도 아이의 머릿결이 헝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람 때문이 아니라 약물에 취해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몇 페이지만 넘겨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아이가 밖에 나와있는 이유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지만 엄마와 떨어지는 것은 그레이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빌라 현관에서 저렇게 매일 가로등 불이 켜지기 전 까지 앉아있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커튼뒤에 숨어 몰래 그레이스를 쳐다보기도 하고 현관을 오가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이 아이가 원하는 도움을 물어보진 않는다.


동병상련. 같은 아픔을 가졌을거라 예측되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어느정도 자립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면 먼저 손내밀기 쉽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시간이나 비용적 측면을 떠나 가슴이 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약물로 방치하긴 했어도 그레이스가 엄마곁에 있길 원하고, 무엇보다 위탁기관이라는 곳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훈훈'하기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레일린은 무턱대고 그레이스의 보모역할을 떠안는다. 레일린이 용기를 내긴 했지만 빌라에 사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덩치만 어른이 되었을 뿐 마음속에는 그레이스처럼 보호받거나 치유되어야 할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어린 그레이스를 통해 '키카 큰'사람들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보이는 과정이 과장되지 않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조금씩 열린다. 초반에 입주자 한명이 갑자기 죽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는데 그의 이름은 후반부에도 다양한 이유로 계속 언급된다. 마치 그가 그레이스에게 베풀었던 온정이 그만큼 크고 값진 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의 이야기는 최근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학교에서 사라져버린 아이들 중 유사한 상황이 분명 있으리라 짐작될 만큼 현실적이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아이의 분명하고 큰 목소리를 귀찮아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스의 말처럼 어른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몇 마디 말로 시간을 끌더라도 결국 되돌려 보낼 '엄마'의 부재가 성가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아이를 어디까지 돌봐야 할지도 고민인데다 그레이스의 엄마가 마치 자신의 아이를 빼앗겼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화를 감당할 여력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한 사람이 돌봐야 할 때를 말한다. 빌라 전체가 그레이스를 위해 서로의 손을 마주 잡기로 했을 때 무모하고 허술한 계획이었지만 가능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계산없이 본능적으로 먼저 나섰던 레일린 덕분이기도 하다. 누가먼저인지도 중요하고 누군가 시작했을 때 동참할 수 있는 '키만 큰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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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수녀들 - 1858년 하느님의 성전에서 벌어진 최초의 종교 스캔들
후베르트 볼프 지음, 김신종 옮김 / 시그마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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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묻혀져있던 가톨릭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보스턴 글로브지 특종팀 기자들에 의해 세상밖으로 나오게되는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수녀들]이란 책을 본 순간 이 영화를 떠올린 사람들이 나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책의 내용은 100년도 더 지난 1850년대 성 암브로시오 성당 수도원을 배경으로 있었던 일로 그 이후에도 종교단체가 가지는 보수성과 폐쇄성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제대로 응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그저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 인 것 처럼 보인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감추려고 하는 이들을 묵인해주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타리나를 다루는 역사 서술 또한 그녀의 인생과 그 후에 있었던 재판 과정을 비밀로 하는 경향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공식 전기 작가인 카를 테오도어 친겔러의 텍스트도 이 추세를 따랐다. 564쪽


카타리나 폰 호엔촐레른은 성 암브로시오 성당에서 루이사 마리아란 이름으로 15개월 동안 예비수녀로 지낸다. 그녀는 수도원의 다른 수녀들과는 달리 귀족이며 로마 출신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그녀가 수도원에서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을거라 짐작할 수 있고, 그녀의 고발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마치 그녀가 젊고 아름다운 수녀원장 대리를 질투해서 거짓된 증언을 한다고 오해받았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하지만 초반에 그녀가 예비수녀로 정착하기 전 무려 6개월간 수도원에서 사건의 중심인 마리아 루이사를 아주 호의적인 인물로 보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카타리나가 보았을 때도 마리아 루이사는 '성녀'로 보여졌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예비수녀로서 생활하는 동안 그녀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심지어 그녀가 알고있는 진실을 외부에 알리고자 했을 때 수도원의 수녀들은 그녀를 독살하려는 시도까지 감행한다. 그녀가 독살 등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할 때 조차 그녀의 가족력과 병력 등을 앞세워 사건은 물론 그녀에게 가해진 위협조차 그녀의 착각인 것 처럼 몰고 갔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그 이후 사촌의 도움으로 카타리나가 수도원에서 탈출, 재판에 서기까지의 내용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이 사건은 무려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문서가 1998년이 되서야 비로소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영화속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다름아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기록한 문서들이 법에 의해, 혹은 가톨릭 교구의 요청에 의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묻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단체, 그것도 종교단체에서 이런 일들이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어째서 교회를 다닐 수 있느냐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곳은 어쨌든 사람이 주관하는 단체에서 발생하고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비단 종교단체 뿐 아니라 학교, 문화기관, 공기관 등에서도 사건은 일어난다. 다만 일어난 사건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실수를 한 사람만큼 모른 척 하거나 아예 눈감아주는 사람 역시 잘못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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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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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그녀의 전작을 떠올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만약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만났다면 뒷표지에 추천사라도 한 번 보았을텐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혹은 누군가에게 우연찮게 리베카 솔닛의 신간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대부분 '페미니즘' 혹은 '맨스플레인'을 떠올리며 머뭇거렸을 것 같다. 그랬을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의 리뷰는 한 편 한 편 모두 소중할 것 같다. 이 책은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와의 추억을 들려줄 뿐이다. 그러므로 미리 밝혀두자면 이 리뷰는 이 책은 어떤 이야기가 닮겨있고, 어떤 부분이 감동이었어! 등의 소개보다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는 기억을 떠올리고 기술한 내용에 가깝다.

 

어머니게에 당신의 동화를 골라 보게 했다면, 아마도 [신데렐라]를 골랐을 것이다. 관심받지 못하고, 과소평가되었던 여자아이, 섬세했지만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해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 45쪽

 

쌍둥이 여동생이 있지만 동생에 비해 자신이 덜 예쁘다고 생각한 저자의 엄마는 외할머니가 많이 의존했던 큰 딸이었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가 몸이 아프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동생들을 돌보거나 집안 살림을 돕게 하려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지는 바람에 외할머니도 일을 시작하면서 엄마는 두 번 버려지게 되었다고까지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예쁨받고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거라고 까지 말하며 과연 엄마의 삶이 행복과 불행중 어디에 가깝냐고 한다면 불행이었을거라고 말한다. 이후로 엄마의 외형적인 묘사부터 자신을 키울 때 드러나는 성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엄마도 큰 딸이었다. 위로 큰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병으로 엄마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실질적으로 외할머니가 의지를 많이 하시긴 했다. 작가의 엄마가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것과는 달리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확할지는 모르지만 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가부장적인 할머니였지만 '큰 딸'이었기에 외삼촌들과 함께 유일하게 할머니 사랑방에서 맛있고 좋은 것들을 다른 이모들과는 달리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엄마는 우리 자매를 키울 때에도 외할머니가 아닌 엄마의 친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옛날이야기 등을 자주 들려주시곤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히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가 저자의 엄마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기억속에 외할머니가 늘 차갑고 무뚝뚝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후에 '체'는 헝클어진 머리에 사령관을 상징하는 별이 하나 박힌 베레모를 쓴 채, 열정에 불타는 얼굴을 상징하는 불멸의 이미지로 기억된다.(중략) 1960년 3월 5일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그 사진이 이제 체 게바라의 삶보다 훨씬 많이 알려졌다. 그건 모든 것을 의미하며,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다. 168쪽

 

책을 읽다보면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아이슬란드 울피르 이야기, 체 게바라가 쓴 동명의 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등 다양한 작품들을 불러들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미 읽거나 본 작품들도 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있어 연쇄독서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프랑스어나, 영어 단어 중 그 의미가 변화거나 확장된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노처녀에 해당하는 단어가 왜 비하적인 표현까지 이르렀는지, 북극제비갈매기가 왜 제비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는가 등 이 책의 부제인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란 표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분명 첫 챕터인 [살구]편을 읽을 때만해도 '엄마' 와 유년시절 기억을 쫓는가 싶었는데 그녀의 아이슬란드 여행기와 불교에 빠져든 이야기까지 듣다보면 서문에 밝힌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와 더불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겪어왔던 이야기로 덮어졌다. 그렇기에 만약 길고 긴 여행길을 떠나야하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워 단 한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주저없이 선택할 것 같다.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유익한지보다 결국 얼마나 나를 즐겁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 줄 책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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