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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저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그녀의 전작을 떠올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만약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만났다면 뒷표지에 추천사라도 한 번 보았을텐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혹은 누군가에게 우연찮게 리베카 솔닛의 신간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대부분 '페미니즘' 혹은 '맨스플레인'을 떠올리며 머뭇거렸을 것 같다. 그랬을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의 리뷰는 한 편 한 편 모두 소중할 것 같다. 이 책은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와의 추억을 들려줄 뿐이다. 그러므로 미리 밝혀두자면 이 리뷰는 이 책은 어떤 이야기가 닮겨있고, 어떤 부분이 감동이었어! 등의 소개보다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는 기억을 떠올리고 기술한 내용에 가깝다.
어머니게에 당신의 동화를 골라 보게 했다면, 아마도 [신데렐라]를 골랐을 것이다. 관심받지 못하고, 과소평가되었던 여자아이, 섬세했지만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해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 45쪽
쌍둥이 여동생이 있지만 동생에 비해 자신이 덜 예쁘다고 생각한 저자의 엄마는 외할머니가 많이 의존했던 큰 딸이었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가 몸이 아프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동생들을 돌보거나 집안 살림을 돕게 하려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지는 바람에 외할머니도 일을 시작하면서 엄마는 두 번 버려지게 되었다고까지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예쁨받고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거라고 까지 말하며 과연 엄마의 삶이 행복과 불행중 어디에 가깝냐고 한다면 불행이었을거라고 말한다. 이후로 엄마의 외형적인 묘사부터 자신을 키울 때 드러나는 성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엄마도 큰 딸이었다. 위로 큰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병으로 엄마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실질적으로 외할머니가 의지를 많이 하시긴 했다. 작가의 엄마가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것과는 달리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확할지는 모르지만 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가부장적인 할머니였지만 '큰 딸'이었기에 외삼촌들과 함께 유일하게 할머니 사랑방에서 맛있고 좋은 것들을 다른 이모들과는 달리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엄마는 우리 자매를 키울 때에도 외할머니가 아닌 엄마의 친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옛날이야기 등을 자주 들려주시곤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히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가 저자의 엄마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기억속에 외할머니가 늘 차갑고 무뚝뚝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후에 '체'는 헝클어진 머리에 사령관을 상징하는 별이 하나 박힌 베레모를 쓴 채, 열정에 불타는 얼굴을 상징하는 불멸의 이미지로 기억된다.(중략) 1960년 3월 5일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그 사진이 이제 체 게바라의 삶보다 훨씬 많이 알려졌다. 그건 모든 것을 의미하며,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다. 168쪽
책을 읽다보면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아이슬란드 울피르 이야기, 체 게바라가 쓴 동명의 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등 다양한 작품들을 불러들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미 읽거나 본 작품들도 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있어 연쇄독서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프랑스어나, 영어 단어 중 그 의미가 변화거나 확장된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노처녀에 해당하는 단어가 왜 비하적인 표현까지 이르렀는지, 북극제비갈매기가 왜 제비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는가 등 이 책의 부제인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란 표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분명 첫 챕터인 [살구]편을 읽을 때만해도 '엄마' 와 유년시절 기억을 쫓는가 싶었는데 그녀의 아이슬란드 여행기와 불교에 빠져든 이야기까지 듣다보면 서문에 밝힌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와 더불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겪어왔던 이야기로 덮어졌다. 그렇기에 만약 길고 긴 여행길을 떠나야하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워 단 한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주저없이 선택할 것 같다.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유익한지보다 결국 얼마나 나를 즐겁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 줄 책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