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 - 일주일에 한 번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수업
쉐릴 리처드슨 지음, 김현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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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고객에게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만, 목표는 모두 같았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소중한 가치를 반영하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6쪽

이 일주일 단위의 과정은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라는 코칭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1쪽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읽고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것이다. 12쪽

 

셰릴 리처드슨의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은 자기개발서 + 플래너 라고 말할 수 있다. 매 주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행동, 실천에 관한 조언을 들려주고 그 기록을 적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 그 중요성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 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조언처럼 책을 펼쳐서 맘에 드는 것 부터 실천해도 되는데 이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왜냐면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를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해놓고 첫 주 과제부터 자괴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과제가 '나의 성취 적어보기'인데 지난 1년간 가장 잘한 일을 스무가지를 적으라고 되어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적다보면 꽤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트집잡는게 아니라 '가장'잘한일이 어떻게 스무가지나 나올 수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잘한일이 없어서 나를 토닥여주고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당 책을 펼친사람들, 그야말로 과거의 나를 바꾸고자 이 책을 집어든 사람한테는 지나치게 잔인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한참 우울해있다가 페이지를 넘겨 4주차, '나를 기록하는 힘'부터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과제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를 근거로 설명해준다. <아티스트웨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만났던 책이다. 책은 물론 5권 가량의 모닝페이지 노트도 여전히 소장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아침 시간 나를 기록하는 것은 꽤나 보람을 가지게 하고 뿌듯하게 만든다. 만약 지난 해 내가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작성했더라면 첫 번째 과제, 내가 가장 잘한일에 적어넣으면서 기분좋게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계절이 되면 사람들은 건강하고 멋진 몸매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신체 단련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방면에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았다. 90쪽

 

위의 발췌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몸매가꾸기가 아니라 저자가 전문가를 찾아나섰다는 부분이다. 사실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과 같은 책을 집필하는 전문가에게 내가 배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고작 한번 해봤을뿐이다>리뷰에도 적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악기연주처럼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고선 더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무언가를 책으로 배우려는 성향도 마찬가지다. 셰릴은 서문에도 말하지만 누군가 만나는 것, 조언을 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깨닫게 된 나의 약점이나 두려운 점은 26주차 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한 주의 과제를 마치고 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은 이미 다른 자기개발서에서 질리게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강점은 '나를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과 그것이 단 한 페이지일지라도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 있다. 다시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닐지라도 꼬박꼬박 펼쳐보고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래서 52주차가 되는 때에 나는 1주차 과제를 꼭 하고 싶다. 이 책대로만 따라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라도 나를 한해 동안 돌봐준다면 스무가지가 대수랴. 52두가지도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문에 어쩌면 이 책의 리뷰는 지금은 미완성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책 한권을 사고, 저자의 말처럼 예쁜 노트, 일년 내내 볼거니까 다소 과하게 준비해도 좋을 것이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거창하게 자격증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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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에디션 D(desire) 14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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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잉글리시 페이션트

 


소설을 읽기 전이었던 2년 전 겨울 영화로 먼저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만났다. 정식 개봉을 하던 때에는 미성년자라서 볼 수 없었고, 대략적인 줄거리만 들었기 때문에, 그것도 원작인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라 영화의 줄거리만 알았기에 영화가 시작되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여운이 오래갔다. 다만 영화에서는 해나의 비중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녀가 영국인 환자를 그렇게까지 보살피려했는지, 어째서 남자들 뿐인 빌라에서 별다른 두려움 없이 머물렀는지, 그저 전쟁에서 연인을 잃었기 때문에 삶의 애착이 소멸해버렸기 때문일거라 대략적으로 짐작만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섰을 때 내 마음속에서 동굴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어둠속에서 죽어가던 여인에 대한 잔상이 크게 자리잡았을 뿐이다.


소설의 중심축은 영국인 환자, 해나 그리고 카라바조 그리고 킵. 기억이 불분명한데 영화에서는 카라바조와 해나의 관계가 소설과 달랐다. 무엇보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말하자면 다음의 문장을 예로 들면 될 것 같다.


그녀는 책을 덮고 도서관으로 내려가 그 책을 책장 위 높은 선반에 숨겨놓는다.  -본문-


위의 문장속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단어들로 가득하다. 책을 덮는 행위라던가, 도서관이라는 장소라던가, 그리고 소중한 책이라는 암시인 듯 선반에 숨겨놓는 행위까지 단순히 한 장면에 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마음을 흔든다. 그렇다고 영화는 별로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속에서 테니스화를 신고 퐁당 퐁당 뛰어다니는 해나의 모습은 스무 살이 가질 수 있는 천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의 인생 중 이 시기는 책만이 감방을 벗어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16쪽

이제 빌라 산 지롤라모에는 영국인 환자와 그녀밖에 살고 있지 않았다. 17쪽


영국인환자는 엄청나게 박식하다. 외국어도 능통하다. 정작 자신이 누군지는 모르는 그에게 사람들은 관심이 가고 호감을 느낀다. 영리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보통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거부감마저 특유의 친화력, 이미 삶의 저편 어딘가에 머무는 듯하다. 전쟁속에서 누구나 '생' 그 자체에 집착하게되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모두가 바라는 무언가에 욕망을 가지지 않는 존재라서 어쩌면 더 매력을 느꼈던것일지도 모른다. 


카라바지오는 도서관에 들어간다. 그는 대부분의 오후를 여기서 보냈다. 언제나처럼 책들은 그에게 신비로운 피조물이다. 113쪽


인물들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치 그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중스파이로 의심과 호기심이 많은 카라바지오에게 책은 신비 그자체이고, 해나에게는 일생의 어느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호흡기가 되어주고 영국인 환자에게는 자신의 전부가 그 안에 녹아들어있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독자인 나는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고 유사한 상황속에 놓인 적이라곤 단 한 순간도 없었음에도 깊게 몰입하게 된다.



그는 침대에 누운 남자를 바라본다. 사막에서 온 이영국인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해나를 위해서 이 사람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람을 위해서 피부를 발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탄닌산이 화상 입은 남자의 감추어주고 있듯이. 168쪽


영국인환자가 어떤 일을 했는지가 책의 절반을 읽어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조급하게 그의 정체를 캐묻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 어떤것에도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카라바지오가 당하는 고문, 해나가 병사들과 함께 있었을 때의 일들, 영국인환자가 어떤 까닭으로 화염에 갇혔었는지에 대한 일들은 긴장 그자체다. 한쪽에서는 지뢰가 터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야기 속에서 낯선 것은 그저 전쟁을 원한 사람은 없는데

전쟁이란 이유로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야했던 사람들이 실재했다는 사실 뿐이다.


영국인환자가 누구인지는 어느순간 이미 머릿속에서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저 어느 한 때 누군가를 사랑했던 때만 그리워졌다. 전쟁중이 아닌데도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서 나는 마치 책이 전부인듯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보다 나은 상태로,

환자복을 벗을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사랑, 그래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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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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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41쪽

소설 라이프 오어 데스는 호주 제1의 범죄소설가로 불리는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이다. 내가 읽은 저자의 첫 작품인 라이프 오어 데스는 '오디 파머'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오디파머. 출소 하루 전 탈옥을 감행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감옥 내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 남은 하루조차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 실제 감옥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감옥내 폭력이 과연 전부일까 싶을 정도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테니까. 어찌보면 오디가 살아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의 지인들의 표현처럼 억세게 불운하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나는 운좋은 인간이 바로 오디였다.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만화 속 가장 불쌍한 캐릭터가 누구인지 순위를 매긴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때 1위가(그다지 영광스럽지 않은) <베르세르크>의 베르세르크였다. 절친에게 배반당하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는 그야말로 모든 불운을 다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였다. 그런 베르세르크나 오디 파머나 별차이가 없다. 그의 평소 성격이나 태도만 보더라도 애초에 그가 감옥에 억울하게 수감되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근데 그 상황을 다 알게되면 진짜 한숨밖에 안나온다. 갑자기 내가 안고 있는 문제, 견뎌야 할 상황이나 고통이 부끄러워질 정도가 되어버린다. 반면 오디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했던 일들을 보자면 지금껏 나는 나의 연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인물. 데지레.


성장기에 부모님은 "진짜 좋은 선물은 작은 상자에 들어 있는 법이야."

그리고 "사람들은 삶에서 작은 것들에 감사한단다." 같은 말을 들려주곤 했다. 51쪽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미에서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보는이로 하여금 불안할 정도의 킬힐을 신고서도 160cm가 되지 않은 데지레의 작은 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정도로 작은 키를 가진 데지레의 직업은 연방수사요원이다. 그것도 연방수사국 아카데미를 1등으로 졸업했다. 그녀에게 작은 건 오로지 키 하나 뿐인 것이다. 데지레의 등장으로 나는 다시금 자괴감을 느꼈다. 소설 속 인물, 허구의 인물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다니 소심하군 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소설보다 더 한 상황은 얼마나 많으며 오디와 데지레보다 더 극한상황에서도 멋지게 살아가는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꾸 옆길로 새는 데 아무래도 새벽에 쓰는 리뷰라서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리뷰를 굳이 검색해서 읽고 있는 분들에게 나의 자괴감 따위를 더이상 늘어놓진 않겠다.


오디는 십여년 전 폐기될 예정인 지폐를 훔치고 경관을 포함한 4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의 주범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때 훔쳤던 어마마한 금액은 그 이후 소식을 감췄고, 오디의 형이 마치 그 돈을 가지고 동생마저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카더라 통신은 떠들어댔지만 그런 이야기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갔다. 영리한 독자가 아니라면 중반까지도 아마 오디가 나쁜 형 때문에 억울하게 대신 감옥에 간것이라고, 형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을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출간한지 1년이 훨씬 더 지났으니 결말을 이야기한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테지만 왠지 결말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결말이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전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쓴 소설이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짊어진 채 가고 있다.

통근객들, 쇼핑객들, 관광객들, 사업가들, 야구모자 쓴 소년들, 넝마를 입은 거지들.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

오디는 그저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262쪽

오디가 왜 탈옥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금새 알 수 있게 되지만 어떻게해서 오디가 사건에 연류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에 소설인데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은 줄은 알면서도 그랬다. 마치 소설<HHhH>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보는 것 같았다. 그토록 다정한 한 집안의 가장이 다른 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진짜 범인의 가족들의 태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범죄자를 극도로 혐오하거나 처단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이 어색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중반까지만 해도 오디의 불우한 삶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린 사랑이 안타깝고 자괴감마저 들게 만들었지만 결말을 접하고 마지막 페이지마저 다 읽고났을 때 나를 괴롭힌 것은 범죄자 가족의 태도와 그 태도를 납득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었던 것 같다.


율리케와 아이몬이라는 영국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작품이 있다. 작품의 내용은 폭력적인 성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던 서독 극좌파 율리케와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마찬가지로 공격적으로 테러를 감행했던 아이몬이라는 인물을 다룬 내용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관람객에게 묻는다. 과연 자신 혹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폭력을 가한 상대를 대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느냐고.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라고 우리는 머리로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오디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나의 아버지가 누군가를 억울하게 죽였다면 피해자가 아닌 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내게 던져주었다. 물론 이 책의 주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짧다.

사랑은 무한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550쪽


오디 파머가 그토록 지옥같던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이것이 그야말로 스포중의 스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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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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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작품을 완독하기는 처음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소설 몇 편을 읽은 적은 있지만 완독은 못했다. 그냥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별다른 이유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꿀벌과 천둥을 읽으면서, 그것도 엄청 몰입하며 읽는 내 자신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를 다뤘던 <양과 강철의 숲>과 표지도 유사해서 그런지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보다 더 자주 비교하며 읽었는데 세 작품을 두고 점수까지 매겨보는 무례함을 범하기도 했는데 굳이 그 점수를 여기에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은 적었다가 지웠다^^;;)


<꿀벌과 천둥>을 이끌어가는 피아노 천재들의 이름을 나열하자면, 비평가들에게, 그리고 음악인들에게 폭탄이자 선물이 될 만큼 놀라운 실력의 벌꿀소년 가자마 진, 어릴 때 이미 천재소녀로 이름을 알렸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피아노를 치는 목적을 상실하고 무대를 버린 에이덴 아야, 피아노 실력은 물론 잘생긴데다 언변에 사업가 기질까지 갖춘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이름이 긴 이유는 책을 보면 나옴),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지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콩쿨에 도전한 다카시마 아카시가 주인공이다. 물론 다카시마 아카시는 두 번째 경연에서 떨어지지만 어쨌든 끝까지 나오긴 한다.


하지만 딱 한가지, 우리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게 있잖아.

마유미가 조금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음악은 통해. 언어의 장벽이 없어.

작가와 음악가의 유사한 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음악과 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온다 리쿠 작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부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 그래 음악은 언어의 장벽이 없다. 예술가들이 종종 음악과 춤을 텍스트와 비교하며 '장벽의 유무'를 논하는 까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에코가 아무리 악기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한다고 푸념을 늘어놓아도 저만한 장점이 어디있을까.




하지만 이 아이들은 찍지 않는다.

그사실이 또 가나데에게 작은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아이들은 굳이 일부러 인생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보잘것 없는 인생을 기록 속에 붙잡아둘 필요도 없다. 그들의 인생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기록되어 남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으므로.

 

단 한 번도 천재라고 느낀적도 타인에게 그런 느낌을 들게 한 적도 없기에 어쩌면 나는 아야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나데에게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특히 맘에 맞는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것도 엄청나게 좋은 순간에 머무는 동안 세 명의 천재 피아니스트들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 보니 가나데의 착각이었고, 세 사람모두 너나할 것 없이 가나데를 시작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평범한 나로선 가나데가 들었던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루는 보폭과 호흡을 맞춰 온몸에 산소가 운반되는 상상을 했다.

그는 조깅을 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도도한 바흐가 흐른다. 아침의 음악은 바흐다. 1차 예선 과제이기도 한 평균율 클라비어.

오늘 아침은 굴드가 아니라 레온하르트의 연주로.

음악을 듣지 않고도 특정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도대체 어느정도의 음악성을 혹은 부지런함을 가져야 하는것일까 고민해봤다. 책을 읽는 내내 수없이 감탄했다. 심지어 이를 표현해내는 온다 리쿠란 작가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오늘 아침은 굴드가 아니라 레온하르트의 연주라니. 같은 음악을 매번 들으면서도 외우지 못하는 나같은 클알못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아무리 다들 부러워하는 행복의 정점에 있어도,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도, 역시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을 등에 업고 있다.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단 깨닫게 되면 절망밖에 없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보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피해왔던 근원적인 '고독'을.


 

나처럼 절망하는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였을까. 하긴. 작가의 배려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고독을 즐길 줄 아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나뉜다는게 맞을 것이다. 이런내용도 위의 발췌문 이후로 쭈욱 나열된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믿으며(561쪽)라면서.  



천재들의 이야기라 그들만의 리그인가 싶다가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책에 그토록 몰입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리뷰를 찾아서 읽다보니 어떤 분은 온다 리쿠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말이다. 읽다가 그만둔 온다 리쿠의 소설들을 다시금 읽어볼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전작주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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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 운명을 바꾸는 "한번 하기"의 힘
김민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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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참 이상한 아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시킨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가족신문을 만들겠다며 당시 사정이 있어 잠시 함께 살던 사촌오빠에게까지 신문제작비용을 달라고 졸랐다. 인당 100원. 고작 단 한부 제작하기를, 그것도 이미 가지고 있는 색연필, 싸인펜과 풀 등을 이용하면서 무슨 염치로 소위말해 펀딩까지 시도했는가 의아하기만 하다. 그랬던 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그 무엇하나 시도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실패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의미에서는 첫 회사라고 할 수 있었던 마케팅 회사에서 기획서를 작성할 때 무조건 '안되는 이유'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사수의 여파도 꽤 오래갔다. 그렇다고 고작 한번 해보는 시도까지 아예 접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저 '한번'만 하고 그쳤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 문제의 답을 김민태PD의 책,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에서 찾아보았다.


시작은 미비했고, 무수히 많은 작은 도전 중에 어쩌다 작은 성공이 걸려든 것이다. '어쩌다'가 그들을 폄하하는 말이 아닌 이유는 '무수히 많은' 도전이 그 가치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55쪽


기회라는 문은 무수히 작은 실천을 통해 마치 우연인 듯 열린다.

그래서 작은 실천의 시작, 무엇이든 '한번' 하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엄밀히 말해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70쪽


무수히 실천했어야 했다. 한 번에서 그치지말고 일단 한번했으니 두 세번까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고 이 책이 내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그 작았던 시도조차 나이들면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실천-후동기부여'란 말에 크게 공감했는데 그것이 아무리 작은 실패라도 반복되면 좌절하는 것처럼 반대로 작은 성공이 연이어 벌어지면 무엇이든 자신감이 생기고, 성공하는 일 자체가 습관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작은 실천이 중요했다. 오늘 10분 걷기가 저자에게 왜 중요했고, 책까지 집필하게 되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래리 킹은 '지금' 자기가 할 수 있을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86쪽


​몇 년전에 들었던 자기개발 관련 명언 중 하나는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보고, 그렇게 되기 위해 현재 해야하는 것을 역으로 계획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이와 유사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렇다고 당장 숨쉬기가 가능하니까 숨쉬기만 일년 내내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당장 마트에 나가 10분을 걸어본다던가, 퇴근 길에 한 정거장을 걷는 것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이 맞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이렇게 작은 실천을 끝낸 후에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것, 소위말해 상을 내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러가지 실험 사례를 들어주며 그 이유를 말해주는 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보상에 눈이 멀어 좁은 시야를 갖게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단순업무나 작업에 있어서는 인센티브 제도가 도움이 되었지만 창의력을 요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먼저 경험한 선배, 먼저 나온 발명품에서 배우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결'할 때 비로소 창조의 씨앗이 움튼다. 115쪽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라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장 많이 뉘우친 부분이 이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혼자서 살 수 있는 것만도 아닌데 왜그렇게 '선'을 그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었던 선은 적당한 '선'이 아니라 '어쩌면 '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은 실천만큼이나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연결'이란 생각이 들었다. 뻔한 이야기가 적혔다고, 제목만 봐도 다 알 것 같던 책에서 다시금 또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작은 것 부터 실천하기, 그리고 스스로 민폐란 생각에 선을 긋지말고 일단 한번 부탁해보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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