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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온다 리쿠의 작품을 완독하기는 처음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소설 몇 편을 읽은 적은 있지만 완독은 못했다. 그냥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별다른 이유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꿀벌과 천둥을 읽으면서, 그것도 엄청 몰입하며 읽는 내 자신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를 다뤘던 <양과 강철의 숲>과 표지도 유사해서 그런지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보다 더 자주 비교하며 읽었는데 세 작품을 두고 점수까지 매겨보는 무례함을 범하기도 했는데 굳이 그 점수를 여기에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은 적었다가 지웠다^^;;)
<꿀벌과 천둥>을 이끌어가는 피아노 천재들의 이름을 나열하자면, 비평가들에게, 그리고 음악인들에게 폭탄이자 선물이 될 만큼 놀라운 실력의 벌꿀소년 가자마 진, 어릴 때 이미 천재소녀로 이름을 알렸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피아노를 치는 목적을 상실하고 무대를 버린 에이덴 아야, 피아노 실력은 물론 잘생긴데다 언변에 사업가 기질까지 갖춘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이름이 긴 이유는 책을 보면 나옴),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지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콩쿨에 도전한 다카시마 아카시가 주인공이다. 물론 다카시마 아카시는 두 번째 경연에서 떨어지지만 어쨌든 끝까지 나오긴 한다.
하지만 딱 한가지, 우리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게 있잖아.
마유미가 조금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음악은 통해. 언어의 장벽이 없어.
작가와 음악가의 유사한 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음악과 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온다 리쿠 작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부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 그래 음악은 언어의 장벽이 없다. 예술가들이 종종 음악과 춤을 텍스트와 비교하며 '장벽의 유무'를 논하는 까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에코가 아무리 악기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한다고 푸념을 늘어놓아도 저만한 장점이 어디있을까.
하지만 이 아이들은 찍지 않는다.
그사실이 또 가나데에게 작은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아이들은 굳이 일부러 인생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보잘것 없는 인생을 기록 속에 붙잡아둘 필요도 없다. 그들의 인생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기록되어 남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으므로.
단 한 번도 천재라고 느낀적도 타인에게 그런 느낌을 들게 한 적도 없기에 어쩌면 나는 아야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나데에게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특히 맘에 맞는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것도 엄청나게 좋은 순간에 머무는 동안 세 명의 천재 피아니스트들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 보니 가나데의 착각이었고, 세 사람모두 너나할 것 없이 가나데를 시작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평범한 나로선 가나데가 들었던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루는 보폭과 호흡을 맞춰 온몸에 산소가 운반되는 상상을 했다.
그는 조깅을 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도도한 바흐가 흐른다. 아침의 음악은 바흐다. 1차 예선 과제이기도 한 평균율 클라비어.
오늘 아침은 굴드가 아니라 레온하르트의 연주로.
음악을 듣지 않고도 특정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도대체 어느정도의 음악성을 혹은 부지런함을 가져야 하는것일까 고민해봤다. 책을 읽는 내내 수없이 감탄했다. 심지어 이를 표현해내는 온다 리쿠란 작가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오늘 아침은 굴드가 아니라 레온하르트의 연주라니. 같은 음악을 매번 들으면서도 외우지 못하는 나같은 클알못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아무리 다들 부러워하는 행복의 정점에 있어도,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도, 역시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을 등에 업고 있다.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단 깨닫게 되면 절망밖에 없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보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피해왔던 근원적인 '고독'을.
나처럼 절망하는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였을까. 하긴. 작가의 배려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고독을 즐길 줄 아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나뉜다는게 맞을 것이다. 이런내용도 위의 발췌문 이후로 쭈욱 나열된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믿으며(561쪽)라면서.
천재들의 이야기라 그들만의 리그인가 싶다가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책에 그토록 몰입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리뷰를 찾아서 읽다보니 어떤 분은 온다 리쿠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말이다. 읽다가 그만둔 온다 리쿠의 소설들을 다시금 읽어볼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전작주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