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딘 스테어 지음, 김혜남 옮김, 고가라시 퍼레이드 그림 / 가나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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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은 그다지 많은 텍스트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한 편의 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일 뿐이다. 작품처럼 저자 나딘 스테어에 관한 정보도 그리 많지 않다. "경영의 신 피터 드러커가 노녀에 썼다'는 설이 인터넷에 나돌정도라고 한다. 원저자가 85세의 할머니 나딘 스테어든 혹은 피터 드러커든은 중요하지 않다. 인생을 먼저 살다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혹은 스스로 느꼈던 아쉬움 그자체로도 충분히 우리는 느끼는 바가 생기기 때문이다.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좀 더 즐겁게, 좀 더 철없이 살겠다고 다짐한다. 좀 더 어른스럽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는 것이 아니라 더 철없이 굴지 못했던 것이 후회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보면 그만큼 어른스럽게, 깎듯하게 최선의 자세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철없이 살지 못했노라고 후회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최선으로 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특권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대책없이 살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시를 읽고 더 제멋대로 살기 보다는 그와 반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와 함께 어우러진 일러스트를 보면 처음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느 순간 젊은 시절 아리따운 아가씨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마치 할머니가 시를 지을 때 상상속에서 혹은 추억속의 과거를 떠올리며 행복하게 미소짓는 듯한 장면을 목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콩을 덜 먹고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먹을 거야.'라는 구절만 봐도 할머니는 정말 모범적으로, 부모님이 좋다고 하는 것을 위주로 살아오셨구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콩'은 기피하고 싶은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훌륭한 단백질 식품으로 엄마가 꼭 먹이고 싶어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스크림은 콩과는 정반대다. 많이 먹으면 감기에 걸린다는 동요가 있을만큼 아주 더운 한여름이나 칭찬받을 만한 어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짧은 문장을 통해서도 할머니의 삶을 옅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부모님 혹은 관습에 맞추기 보다는 자기 의지로 살아보겠다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할머니의 삶이 바르고 정리된 책상서랍같았을 거란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구절도 있다. '나는 매일매일을 순간순간을 바르게 사록자 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지.' 구절 뒤에는 그렇게 살았던 삶안에서도 즐거운 시절이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산다면 좀 더 즐겁게 살겠다고 더욱 강조해서 말한다. 즐겁게 산다는 것이 할머니가 이야기 한 것처럼 회전목마를 더 많이 타는 것, 강에서 수영을 하는 것, 춤을 더 많이 춰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보겠다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삶일 것이다. 이 시를 읽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후회가 없이 현재를, 원하는 것을 충분히 즐겨보라는 할머니의 이토록 짧은 시가 누군가의 수첩에, 지갑속에 넣어져 오랜 시간 간직하고 이어지고 사랑받는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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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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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직 사랑만을 이야기해요.

의지할 곳 없는 사랑, 이름 없고 미래도 없고 증인도 없는 사랑의 이야기죠."


소설 [오 봉 로망]은 타이틀 그대로 '좋은 소설 있는 곳'에 관한 이야기다. 수식어 '좋은'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단순히 흥미만을 이끌거나 출판업자들의 마케팅으로 한순간을 풍미하고 사라지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소설'의 기준이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점 [오 봉 로망]은 좋은 소설을 찾는 독자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서점이 개점된 이후 오 봉 로망의 운영방식이 못마땅한 출판업자, 좋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작가군단, 출판흐름을 오 봉 로망이 바꿔놓을까 전전긍긍하는 서점관계자 및 이들이 풀어놓은 미끼를 물고 이유없이 오 봉 로망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의해 피해받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치 스릴러처럼 처음 오 봉 로망을 공격한 사람은 누구인지, 위원회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람 혹은 조직을 쫓는 에프너 형사의 수사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읽은, 그리고 내가 느낀 오 봉 로망의 주된 이야기는 프란체스카가 위원회 중 한 사람인 폴 네앙의 소설을 평가한 맨 첫 문장과 일치한다. [오 봉 로망]은 오직 사랑만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다른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고, 문학과 삶은 다르다고, 소설 나부랭이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할 테지. 그 사람들이 틀렸단다.

 

문학은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단련시켜준단다."


프란체스카의 할아버지는 현실참여적인 지식인으로 그녀의 부모가 그저 향락만을 쫓으며 돈을 낭비할 때 유일하게 그녀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알려준 중요한 인물이다. 할아버지 덕분에 프란체스카는 제대로된 문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어도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의 삶의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동업자인 장 역시 좋은 소설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책을 판매하게 되면서 어느 곳에 오랜시간 정착하지 못했던 과거의 생활를 버리고 [오 봉 로망]에 정착할 수 있게 된 인물이다.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이 지난 방황을 이겨내고 뜻을 한 곳에 모았을 때, 두 사람의 성별이 다른데다 매력적이라면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짐작이 소설에서 현실이 될지는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질까, 안 빠질까, 그 물음이 2세기 이상 유럽 소설의 원동력이 되었었지요.

이 책 역시 그 물음이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대답이 마지막 줄에서 나오고요."


서점 [오 봉 로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심지어 소중한 가족이나 연인을 잃었을 때 조차 찾고 싶은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소설에서 언급되는 작가들과 작품이 실재하는지를 찾아보는 등 책을 읽다보면 500여 페이지의 분량이 결코 길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출판계의 어두운 면, 좋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등 각자 느끼거나 생각케 하는 바가 다 다를 것이다. 물론 나처럼 이 책을 처음 부터 끝까지 연애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 봉 로망]에서 원하는 책을 만난 것처럼 정말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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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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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렸을 때, 두통으로 괴로울 때 똑같은 약을 먹지 않는 것처럼 서점'종이약국'의 주인 페르뒤는 고객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책을 권한다. 고객이 원하는 책이라 할지라도 상처를 덧나게 하거나 치료할 수 없는 책이라면 과감하게 손에서 빼앗아버린다. 어찌보면 제법 낭만적인 서점 주인처럼 느껴지지만 당사자가 되어 자신의 상처, 숨기고 싶은 내면을 들켜버린다면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하진 않을 것 같다. 아마 나라면 불쾌해서 다시 그 서점을 가진 않을 것 같다.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이 왠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르뒤가 거주하는 건물 사람들이나 주변인들은 그가 권해주는 책을 통해 삶의 휴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거는 이웃도 있을정도다. 그런 페르뒤 자신도 20년 전 말없이 떠난 여인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하며 심지어 그녀와 함께 머물렀던 방은 아예 들어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만큼 그가 가진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치유도서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생활이 어느정도 가능해질 만큼 위로를 건네준 책은 있지만 더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거나 과거를 털털 털어버릴 만큼은 아니었다. 타인에게 책을 통한 치료를 해주면서 페르뒤 스스로도 자신을 위한 치유도서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남편에게 버림받아 당장 사용한 제대로된 가구도 없는 카트린을 위해 식탁을 전해 주었을 때 그가 과거속으로 묻어버렸던 '마농'의 편지를 카트린이 보고만다. 그 어떤 변명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읽지 않으려 마농과 함께 완전하게 봉인했던 편지였다.

 


책의 초반은 마농이 떠난 후 자신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하면서 주변사람들의 상처만 돌보는 쉰 살의 페르뒤 일상을 보여준다. 고객이 아닌 고객의 상처를 파악해서 책을 권하는 센 강위에 떠 있는 '서점'주인 이란 설정은 낭만적인데다 키가 크고 나이에 비해 군살도 거의 없는 외모는 로맨틱 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마농이 그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금새 밝혀지는 데 진부하긴 하지만 '불치병'으로 인한 죽음이 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었다. 사랑하니까 떠난 다는 '아름다운 이별'. 사실 마농이 떠난 이유가 죽어가는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떠나온것을 후회하며 고향에서 페르뒤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란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는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마농을 기다리게 했다며 서점이었던 배의 엔진을 가동시켜 무작정 떠나는 부분에서 다시금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 첫 책을 발표한 뒤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방황하던 조당도 덩달아 페르뒤의 모험에 가담하고, 마농이 처음 약혼자와 고향을 떠나 장, 페르뒤를 만나게 되는 과거 이야기까지 등장하면서 책을 읽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초반에 페르뒤가 운영하는, 고객의 마음을 꿰뚫는 서점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유한한 삶속에서 내가 읽고서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책만 골라주는 서점이라면 잠시의 부끄러움과 불쾌함이 대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약국이 센 강 위에 떠있는 배위에 있었던 까닭도, 그가 스무살 되기 전에 운항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도 당시에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30여년이 지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스토리 역시 눈앞에 결과와 상황만 보고 낙담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과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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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음, 김혜연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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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지의 제왕>,<호빗>을 보면서 북유럽 신화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지만 그리스신화와 비교했을 때 거의 무지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를 읽고서야 깨달았다. 게임을 즐겨하면서도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관련 용어는 물론 우리가 매일 같이 달력을 통해 마주하는 요일의 근원도 다름아닌 북유럽 신화와 관련이 있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하나의 존재가 태어나고 신들의 왕이라 부를 수 있는 '오딘'의 탄생을 시작으로 우리가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토르, 로키, 프레이야 등 아스에서 사는 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사형식을 갖추긴 했지만 신들이 가지고 있는 별개의 작은 스토리는 별도로 덧붙여지는 형식이다.  오딘의 이야기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태가 되기도 하고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하토 주교 이야기 역시 오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개별적인 신들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오딘이 모든 역할을 주도 한다. 생명의 신이자 대지의 신이고, 또 유령사냥을 관리하는 어둠과 전쟁의 신이기도 한 오딘은 그 능력만큼이나 여러 아내와 결혼했다. 신화의 특성상 후대 연구자들의 설에 의하면 자신의 딸과도 혼인하였으며 프레이야의 경우 드워프가 만든 목걸이가 탐이나서 부정한 행동을 할 만큼 납득되지 않는 신들만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반지의 제왕 속 드워프는 그렇게 간교하고 어두운 존재들은 아니지만 북유럽 신화속에 등장하는 드워프는 마법을 다루는 존재로 신들이 어떤 주문이나 문제를 해결 할 때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할 만큼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드워프와 트롤 그리고 요정과 페어리가 같은 물질에서 탄생했다는 점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드워프나 트롤이 사악한 어둠의 기운을 가진 존재라면 요정과 페어리는 순수하고 이로운 작은 생명체로 여겨져 신들에게 호의를 받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했던 신들의 이름과 영향력은 잉글랜드의 언어와 문학등 여러분야에 미쳤으며 독일의 경우 북유럽 신화와 관련된 축제와 행사가 여전히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가깝게 다가온 북유럽 신화가 그리스 신화에 비해 덜 알려지고 감춰져있었던 까닭은 기독교 문화가 북유럽에 전파되면서 이교도로 내몰리면서 신들도 악마나 마녀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절을 상징하는 달걀의 유래도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축제일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비교했을 때 색다른 점이 몇 가지 더 있는데 좀 더 인간적인 성향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신들의 제왕인 오딘조차 더 뛰어난 지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한 쪽 눈을 희생해야 했고 자신의 아들 역시 신들에게 위협이 될 늑대를 묶어두기 위해 한 쪽 팔을 희생해야 했다. 무언가 중요하고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신들조차 인간처럼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신들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요정 이든의 젊음을 가져다주는 사과를 먹지 않으면 조금씩 나이를 먹기까지 했다.


본문만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이 지루할 것도 같고 읽기에 버겁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막상읽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운문 형식의 옛 에다와 산문 형식의 새 에다를 적절하게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실제 에다에서 표현된 내용, 후대 작가들에 의해 탄생된 북유럽 신화에 쓰여진 내용을 교차시켜 배치하는 등 딱딱한 설명문처럼 느껴지지 않는데다 신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문학작품속 사건 묘사 등이 풍성하게 담겨있어 좀 더 빠른 이해를 돕는다. 영화속 인물들과 비교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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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
김어진 지음 / 지콜론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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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년이 지났지만 출판사에서 편집디자인 인턴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쪽 분야를 업으로 삼고자 했었던 때라 무엇이든 열심히 했었는데 실제 관리자분들의 기억에는 어떻게 남아있을지 확신할 순 없다. 그때 담당했던 업무가 매주 발행되는 신문 광고와 브로슈어, 팜플렛 디자인 이었는데 팀장님께 별도로 받았던 개인교습외에는 나의 창의력이 들어간 틈은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내게 디자이너가 될 만한 소양이나 자질이 없음을 누구보다 내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에 인턴을 마치고 정사원으로의 길을 포기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디자이너 라는 직함은 늘 내게 로망이자 희망사항이었고 부러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역시 그런 맥락으로 고른 책이었다. 두 눈에 하트를 띄우며 책을 넘겼을 때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살짝 당황은 했지만 어쩌면 이상이 아닌 디자이너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모습이 담겨 있다. 먼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개인의 막연한 고민과 갈등, 선택에 대한 어려움과 결정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작업자의 모습이다. -중략- 그리고 작업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환경과 관계들 역시 함께 그리고자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스튜디오에 입사하면 어떤 기분일까? 자기 손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작업물을 마주할 때 느끼는 희열은 어느정도일지 궁금했었다. 저자 역시 처음 자신의 작품이 마주했을 때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 수 있는 기한인 최소 5년 동안은 버텨낼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업체의 작업을 해야하는 결국 '월급을 받는'위치에 놓여있다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는 고민이 많아지고 과연 내가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되어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다. 내가 원하는 회사와 요청들만 수락하고 작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주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업체로 부터 들어온 작업까지 해야하는 것이 '창조'를 기반으로 해야하는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이였을까.  단순하게 크레이티브한 사고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고 괴롭다는 이야기가 아니였기에 초반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것같다. 총 10팀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작업물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배경과 작업할 때 도움을 받는 장소, 매체등에 관련된 이야기도 함께 실려있었다. 디자이너인 저자의 필력이 솔직히 예상보다 너무 뛰어나서 읽는 내내 놀라긴 했는데 디자이너 강경택의 말처럼 '글 쓰는 디자이너'라는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을 다루지 않는 사람은 언어에 둔감해도 된다거나, 그들이 하는 일은 인문적인 사고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바라는 이상향이 있다면 아마도 '김가든'의 김강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시작은 어머니의 병간호로 인해 가평의 게스트하우스를 꾸리게 된 것이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업실 겸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는 모습, 집앞 정원에서 작물을 재배하며 '농부'의 모습까지 갖추고 있는 디자이너 김강인의 이야기는 덕분에 여러 잡지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해서 책을 읽기 전 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김가든의 모습외에 그가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꺼내놓는 등 진지한 이야기는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통해 접하게 되어 읽는 보람이 느껴졌다.


인터뷰 질의내용은 공통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업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구성으로 보자면 편집물들의 사진을 뒤쪽에 몰아놓은 것이 일률적이고 편리했겠지만 내용을 읽다말고 뒷페이지를 넘겨봐야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다. 나중에는 귀찮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텍스트를 다 읽은 뒤 순서대로 작품과 관련 사진을 보기도 했는데 아쉬움이 남긴 마찬가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편집 부분의 아쉬움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디자이너들의 속내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왜냐면 이 책을 읽고나니 아, 역시 내겐 무리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작업과 마인드가 부럽기 때문이다. 예비디자이너, 방황중인 디자이너는 물론 막연하게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도 좋은 메세지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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