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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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렸을 때, 두통으로 괴로울 때 똑같은 약을 먹지 않는 것처럼 서점'종이약국'의 주인 페르뒤는 고객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책을 권한다. 고객이 원하는 책이라 할지라도 상처를 덧나게 하거나 치료할 수 없는 책이라면 과감하게 손에서 빼앗아버린다. 어찌보면 제법 낭만적인 서점 주인처럼 느껴지지만 당사자가 되어 자신의 상처, 숨기고 싶은 내면을 들켜버린다면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하진 않을 것 같다. 아마 나라면 불쾌해서 다시 그 서점을 가진 않을 것 같다.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이 왠지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르뒤가 거주하는 건물 사람들이나 주변인들은 그가 권해주는 책을 통해 삶의 휴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거는 이웃도 있을정도다. 그런 페르뒤 자신도 20년 전 말없이 떠난 여인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하며 심지어 그녀와 함께 머물렀던 방은 아예 들어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만큼 그가 가진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치유도서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생활이 어느정도 가능해질 만큼 위로를 건네준 책은 있지만 더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거나 과거를 털털 털어버릴 만큼은 아니었다. 타인에게 책을 통한 치료를 해주면서 페르뒤 스스로도 자신을 위한 치유도서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남편에게 버림받아 당장 사용한 제대로된 가구도 없는 카트린을 위해 식탁을 전해 주었을 때 그가 과거속으로 묻어버렸던 '마농'의 편지를 카트린이 보고만다. 그 어떤 변명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읽지 않으려 마농과 함께 완전하게 봉인했던 편지였다.

 


책의 초반은 마농이 떠난 후 자신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하면서 주변사람들의 상처만 돌보는 쉰 살의 페르뒤 일상을 보여준다. 고객이 아닌 고객의 상처를 파악해서 책을 권하는 센 강위에 떠 있는 '서점'주인 이란 설정은 낭만적인데다 키가 크고 나이에 비해 군살도 거의 없는 외모는 로맨틱 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마농이 그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금새 밝혀지는 데 진부하긴 하지만 '불치병'으로 인한 죽음이 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었다. 사랑하니까 떠난 다는 '아름다운 이별'. 사실 마농이 떠난 이유가 죽어가는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떠나온것을 후회하며 고향에서 페르뒤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란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는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마농을 기다리게 했다며 서점이었던 배의 엔진을 가동시켜 무작정 떠나는 부분에서 다시금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 첫 책을 발표한 뒤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방황하던 조당도 덩달아 페르뒤의 모험에 가담하고, 마농이 처음 약혼자와 고향을 떠나 장, 페르뒤를 만나게 되는 과거 이야기까지 등장하면서 책을 읽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초반에 페르뒤가 운영하는, 고객의 마음을 꿰뚫는 서점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유한한 삶속에서 내가 읽고서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책만 골라주는 서점이라면 잠시의 부끄러움과 불쾌함이 대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약국이 센 강 위에 떠있는 배위에 있었던 까닭도, 그가 스무살 되기 전에 운항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도 당시에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30여년이 지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스토리 역시 눈앞에 결과와 상황만 보고 낙담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과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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