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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오직 사랑만을 이야기해요.
의지할 곳 없는 사랑, 이름 없고 미래도 없고 증인도 없는 사랑의 이야기죠."
소설 [오 봉 로망]은 타이틀 그대로 '좋은 소설 있는 곳'에 관한 이야기다. 수식어 '좋은'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단순히 흥미만을 이끌거나 출판업자들의 마케팅으로 한순간을 풍미하고 사라지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소설'의 기준이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점 [오 봉 로망]은 좋은 소설을 찾는 독자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서점이 개점된 이후 오 봉 로망의 운영방식이 못마땅한 출판업자, 좋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작가군단, 출판흐름을 오 봉 로망이 바꿔놓을까 전전긍긍하는 서점관계자 및 이들이 풀어놓은 미끼를 물고 이유없이 오 봉 로망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의해 피해받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치 스릴러처럼 처음 오 봉 로망을 공격한 사람은 누구인지, 위원회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람 혹은 조직을 쫓는 에프너 형사의 수사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읽은, 그리고 내가 느낀 오 봉 로망의 주된 이야기는 프란체스카가 위원회 중 한 사람인 폴 네앙의 소설을 평가한 맨 첫 문장과 일치한다. [오 봉 로망]은 오직 사랑만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다른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고, 문학과 삶은 다르다고, 소설 나부랭이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할 테지. 그 사람들이 틀렸단다.
문학은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단련시켜준단다."
프란체스카의 할아버지는 현실참여적인 지식인으로 그녀의 부모가 그저 향락만을 쫓으며 돈을 낭비할 때 유일하게 그녀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알려준 중요한 인물이다. 할아버지 덕분에 프란체스카는 제대로된 문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어도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의 삶의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동업자인 장 역시 좋은 소설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책을 판매하게 되면서 어느 곳에 오랜시간 정착하지 못했던 과거의 생활를 버리고 [오 봉 로망]에 정착할 수 있게 된 인물이다.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이 지난 방황을 이겨내고 뜻을 한 곳에 모았을 때, 두 사람의 성별이 다른데다 매력적이라면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짐작이 소설에서 현실이 될지는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질까, 안 빠질까, 그 물음이 2세기 이상 유럽 소설의 원동력이 되었었지요.
이 책 역시 그 물음이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대답이 마지막 줄에서 나오고요."
서점 [오 봉 로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심지어 소중한 가족이나 연인을 잃었을 때 조차 찾고 싶은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소설에서 언급되는 작가들과 작품이 실재하는지를 찾아보는 등 책을 읽다보면 500여 페이지의 분량이 결코 길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출판계의 어두운 면, 좋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등 각자 느끼거나 생각케 하는 바가 다 다를 것이다. 물론 나처럼 이 책을 처음 부터 끝까지 연애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 봉 로망]에서 원하는 책을 만난 것처럼 정말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