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
김어진 지음 / 지콜론북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벌써 10여년이 지났지만 출판사에서 편집디자인 인턴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쪽 분야를 업으로 삼고자 했었던 때라 무엇이든 열심히 했었는데 실제 관리자분들의 기억에는 어떻게 남아있을지 확신할 순 없다. 그때 담당했던 업무가 매주 발행되는 신문 광고와 브로슈어, 팜플렛 디자인 이었는데 팀장님께 별도로 받았던 개인교습외에는 나의 창의력이 들어간 틈은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내게 디자이너가 될 만한 소양이나 자질이 없음을 누구보다 내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에 인턴을 마치고 정사원으로의 길을 포기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디자이너 라는 직함은 늘 내게 로망이자 희망사항이었고 부러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역시 그런 맥락으로 고른 책이었다. 두 눈에 하트를 띄우며 책을 넘겼을 때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살짝 당황은 했지만 어쩌면 이상이 아닌 디자이너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모습이 담겨 있다. 먼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개인의 막연한 고민과 갈등, 선택에 대한 어려움과 결정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작업자의 모습이다. -중략- 그리고 작업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환경과 관계들 역시 함께 그리고자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스튜디오에 입사하면 어떤 기분일까? 자기 손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작업물을 마주할 때 느끼는 희열은 어느정도일지 궁금했었다. 저자 역시 처음 자신의 작품이 마주했을 때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 수 있는 기한인 최소 5년 동안은 버텨낼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업체의 작업을 해야하는 결국 '월급을 받는'위치에 놓여있다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는 고민이 많아지고 과연 내가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되어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다. 내가 원하는 회사와 요청들만 수락하고 작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주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업체로 부터 들어온 작업까지 해야하는 것이 '창조'를 기반으로 해야하는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이였을까.  단순하게 크레이티브한 사고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고 괴롭다는 이야기가 아니였기에 초반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것같다. 총 10팀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작업물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배경과 작업할 때 도움을 받는 장소, 매체등에 관련된 이야기도 함께 실려있었다. 디자이너인 저자의 필력이 솔직히 예상보다 너무 뛰어나서 읽는 내내 놀라긴 했는데 디자이너 강경택의 말처럼 '글 쓰는 디자이너'라는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을 다루지 않는 사람은 언어에 둔감해도 된다거나, 그들이 하는 일은 인문적인 사고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바라는 이상향이 있다면 아마도 '김가든'의 김강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시작은 어머니의 병간호로 인해 가평의 게스트하우스를 꾸리게 된 것이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업실 겸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는 모습, 집앞 정원에서 작물을 재배하며 '농부'의 모습까지 갖추고 있는 디자이너 김강인의 이야기는 덕분에 여러 잡지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해서 책을 읽기 전 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김가든의 모습외에 그가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꺼내놓는 등 진지한 이야기는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통해 접하게 되어 읽는 보람이 느껴졌다.


인터뷰 질의내용은 공통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업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구성으로 보자면 편집물들의 사진을 뒤쪽에 몰아놓은 것이 일률적이고 편리했겠지만 내용을 읽다말고 뒷페이지를 넘겨봐야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다. 나중에는 귀찮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텍스트를 다 읽은 뒤 순서대로 작품과 관련 사진을 보기도 했는데 아쉬움이 남긴 마찬가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편집 부분의 아쉬움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디자이너들의 속내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왜냐면 이 책을 읽고나니 아, 역시 내겐 무리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작업과 마인드가 부럽기 때문이다. 예비디자이너, 방황중인 디자이너는 물론 막연하게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도 좋은 메세지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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