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혁신의 아이콘 마스다 무네아키 34년간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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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는 일본 기업 CCC그룹의 사내블로그에 등록되었던 글 일부를 편집한 책이다.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을 10여년 전 당시 도쿄에서 살고 있던 언니손을 잡고 따라간 게 처음이었다. 도쿄는 서울시와 비교했을 때 차비가 꽤 비싼편이라 꽤 긴 거리를 걸어서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책을 좋아하는 나를 떠올리며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만큼은 나를 데려오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럴만했다. 동화책에서 보던 서점들은 유럽여행중에 만날 수 있었지만 미술관처럼 건물부터가 취향을 제대로 관통했던 서점은 츠타야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CCC가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의 약자인 것이 결코 과하지 않다. 이곳을 보면서 자본만 있다면, 투자자만 있다면 그대로 한국에 옮겨와도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치 이런 안일한 생각을 이미 다 안다는 듯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PART01 경영편에서는 이부분에 관해 여러차례 반복한다.

 

 

 

고객을 보지 않는,

혹은 일하는 사원의 설렘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매장은

사람이 모일 리 없고 일하는 사원도 즐겁지 않다.

성공 체험은 그런 기본적인 것에서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2호점은 실패하는 일이 많다. 59쪽

 

 츠타야의 창업자 마스다가 강조하는 경영방침의 주요내용은 고객이 니즈를 파악하는 것 만큼 기획자의 소신또한 굽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소신을 가지고 했을 때 고객뿐 아니라 거래처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남탓을 하지 않는 경영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스다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1호점의 영광을 그대로 2호점에 재현했을 때 실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스다역시 단골집 주인에게서 "매장을 늘리는 것은 회사 마음이지만 그 때문에 소중한 고객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91쪽-과 같은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발이 빠른 선수라도

공을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열심히 뛰지 않고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 때 걸어버린다. 144쪽

 

 파트2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원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애정이었다. 급여를 무조건 많이 주는 쪽으로 일하게 하는게 아니라 창의성과 하고싶은 이들에게 업무를 맡김으로써 마치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듯 사원역시 스스로 일하고 싶게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파트3에서는 어쩌면 이 책을 '실용서' 혹은 '업무용'으로 읽으려는 독자들이 집중하게 되는 파트일 것이다. 바로 기획에 관한 것으로 앞에서도 해당 부분에 대해 수차례 조언하듯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파트1에 등장했던 주변상권, 멋진 손님으로 매장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화등을 좀 더 상세하게 들려준다. 사실 츠타야1호점을 보고 다른 매장을 가보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오키나와 오모로마치 역 인근 매장에 갔을 때 적잖게 놀랐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매장을 가도 1호점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길 바라지만 현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지갑을 가볍게 하고 들리고 싶을 때도 있고, 마트에 잠시나온 김에 아이들 책을 사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호점의 분위기만 고집한다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파트4와 파트5는 일상기획자로 살아가는 마스다의 삶과 기획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선배로서 들어도 좋을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읽다보면 반드시 마스다의 선택이나 의견이 옳다고 볼 수 없는 상황도 있고 원론적으로 말한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어 황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기업인의 자기자랑이 아니라 일상기획자인 선배가 들려주는 기분이 드는 이유가 있었다.

 

 

 

필사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기획을 생각한다.

 

"NO"라는 말을 듣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한다.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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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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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막내딸에게 붙이기로 최종적으로 합의한 그 이름은 약자가 아니다. 그것은 나와 그애 아버지와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9

 

 

 

이야기의 시작은 소설의 화자인 '에츠코'의 둘째 딸 니키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딸, 자녀는 흔히 '미래' 혹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형용사는 다름아닌 창백하다는 다소 부정적이고 암울한 상태를 의미한다. 에츠코가 살았던 과거 한 때는 그토록 '창백한'풍경이었을 수 있으나 마치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저자가 독자에게 던져주고 싶은 바는 '희망'이라고 말하는 듯 싶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원폭이후 재건되어 가는 나가사키의 모습과 그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시골의 한 황무지 인근의 아파트와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은 오두막에 살던 사츠코와 그녀의 딸 마리코상을 추억하는 에츠코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함께 에츠코의 첫 번째 남편이자 자살한 게이코의 친부인 지로와 그의 아버지 오가타상 그리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또 달리 이야기하자면 전쟁 이전에 부귀영화까지는 몰라도 명예와 안정적 삶을 살았던 아버지 세대와 전쟁이후 실질적으로 재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친 아들세대간의 대립도 그려진다.

 

 

 

"아이는 어른이 되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지." 171쪽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부모님을 이해하기 전에 사회인이 되거나 혹은 자신의 가정을 꾸려 '가장'이 된다. 결국 위의 저 말을 건넨 오가타상도 그의 아버지 눈에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변함없이 고집센 혹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로만 보일 것이다. 이 소설을 에츠코의 시각에서 보자면 엄마의 딸의 관계, 혹은 1950년대 전후의 아시아 여성들의 굴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지만 내 시선을 끈 것은 오가타상과 지로, 오가타상과 게이오의 관계에 더 머물게 되었다. 모처럼 휴가라는 명목으로 아들지로와 며느리 에츠코상 집에 머무르지만 지로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도, 체스게임도 진지하게 함께하지 못한다. 그런 지로를 따끔하게 혼내기는 커녕 계속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오가타상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과 크게 다투지 않으려는 약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글의 배경은 1950년대인데 내용만 봐서는 70년 가까이 지난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가타상과 게이오와의 관계만 보더라도 학창시절 존경받던 교장 오가타상은 그의 제자이자 아들의 친구인 게이오에게 기성세대, 자신의 능력을 옳은 일에 쓰지 못한 편협한 지성인으로 평가된다. 열심히 살아온 것밖에는 없던 오가타상은 게이오의 변명을 곱씹기 보다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의 성실성과 노력을 부정하는 것으로만 들리며 '젊은 사람들'이란 표현을 거듭사용하며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해. 237쪽

 

 

 

앞서 이 책의 서두가 딸 '니키'의 이름과 관련되고, 자녀의 이야기로 시작됨은 희망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밝혔다. 위의 말은 에츠코가 이미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런던에서 살고 있는 니키에게 해주는 말이다. 단순히 최선을 다해 살라고 하는 말이 오가타상 세대의 이야기라면 그 이후 세대, 게이코가 이국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재혼한 에츠코의 말은 좀 더 희망적이다.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국가 혹은 사회와 같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에츠코의 저 말을 보면서 저자가 적어도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전쟁이든 취업난이든 혹은 4포 세대로 살아가는 현실이든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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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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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은 '조 피킷'이라는 와이오밍 주 수렵감시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에코 스릴러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릴러, 사건을 추리하고 범인을 쫓는 괴상하면서도 천재적인 여타의 주인공들과 비교하자면 조 피킷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내 메리베스 앞에서는 제 의견을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어벙한 사내이기도 하고 두 딸앞에서는 엄격하지만 일요일 마다 펜케이크를 굽는 멋진 아빠이기도 하다. 다만 업무에 있어서나 총을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는 우유부단하고 어리숙한 면도 있다. 하지만 리뷰 타이틀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 조 피킷'이라고 적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업무에 있어서 우유부단하다고는 했지만 미심쩍거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 현실세계나 사회에서는 '따'당하기 딱 좋은 '착한 사람,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우선 오픈 시즌이란 책제목의 의미는 평소에는 제한되었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사냥이 가능해지는 시기다. 하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존재할 경우 해당 구역은 수렵은 물론 개발까지 제한된다. 바로 이 오픈시즌에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데 발단은 모두 인간의 '욕심'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가 개발권을 따냈을 때 얻게되는 수입을 욕심내는 사람, 보안관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 평생 사냥만 하며 살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 등이 그렇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조 피킷의 아내인 메리베스나 그녀의 엄마 미시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면 좋겠다던가, 내 딸이 적어도 매년 이사를 다니지 않을 정도의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자와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런가하면 조 피킷 보다는 그의 딸 셰리든의 활약이 두드러진 작품이기도 하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나이에 오히려 멸종위기의 동물을 지켜주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협박까지 당하는 상황을 잘도 견뎌낸다. 오픈 시즌이 조 피킷 시리즈의 첫 편이고 현재 십여편이 나온 상태라고 하니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셰리든의 분량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 작품이 놀라운 이유는 일반적이지 않은 '조 피킷'의 성향이 신선함을 준 까닭도 있지만 어떤 시선으로 읽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거듭 강조하게 되는 어린 셰리든의 성장소설로 봐도 좋고, 살인사건이 등장하니 당연 범죄스릴러라 해도 좋고 서두에 밝힌 것처럼 조의 직업이 수렵감시관인 만큼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에코스릴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와닿는 것은 가정폭력에 길들여진 아이들을 향한 저자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메리베스가 자신과 가족들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간 오티킬리의 딸을 데려왔을 때, 또 그 아이를 이해하는 셰리든을 보면서 사건은 욕심으로 인해 벌어지지만 화해와 용서는 결국 따뜻한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자면 '오픈 시즌'은 가족애가 진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독자가 어느 상황, 어느 누구라도 엄지를 척하고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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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논
폴 하딩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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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첫 문단에서 찰리의 입을 통해 그녀의 딸 케이트의 죽음을 알려준다. 돌려말하지도 않는다.  케이트의 죽음을 계기로 찰리는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는데 시간상으로 정렬되어 있지 는 않다. 다만 그 모든 추억들이 '에논'이라는 장소에서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자신이 케이트 만한 나이였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왕진가방을 들고 출장을 나가 시계를 수리하던 때를 추억하기도 하고, 케이트와 함께 새모이를 주고, 신문을 읽거나 낚시를 하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추억을 읽고, 상상하며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다녀간 사람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아빠'였다. 종종 지인들과 아빠와의 추억을 나눌때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초, 중학교 시절 이른 새벽 거실에 앉아 조간신문을 읽던 추억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흔한 추억이 아닐 수 있는데 아빠와 사냥도 다녔다. 사냥만 다녔겠는가. 낚시도 다녔다. 아빠는 분명 내가 '딸'이란 사실을 잊은적도 없고 아들처럼 키울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딸이라서 해서는 안된다거나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 또한 알려주신 분이다. 좋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과거에 사는 것도 문제지만 찰리는 다친 손의 통증을 핑계로 약에 의지하게 된다. 그나마 이성을 찾으려했던 아내마저 곁에 없기에 찰리가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에논>인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찰리가 에논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물고, 케이트가 죽기 전까지 에논의 역사를 공부했던 찰리였다.

나는 피터 로드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에논을 누비며 쏘다니던 밤들을 떠올렸다. 사실 알고 보면 야생에서의 모험이라고 할 만한 면은 조금도 없었지만 떠들썩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케이트와 함께 마을 곳곳으로 긴 산책을 다니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리고 케이트가 좀 더 어렸을 때 조금 너무 멀리 나갔다가 어두워진 후에 집에 돌아오게 될 때 아이가 얼마나 신나했는지도 떠올렸다. 319쪽 


케이트가 죽은 뒤 1년동안 찰리의 모습을 두고 도저히 원망도 비난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회복되는 모습을 말미에 보여주어서도 아니다. 찰리가 케이트를 잃었던 것처럼 이와 반대로 내가 나의 아빠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나 밉고 같이 있으면 불편한 아빠인데도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마음과는 달리 난 또 아빠가 아주 사소한 무언가를 묻거나 부탁하거나 얼굴 보고 싶으니 집에오라고 하면 싫은티를 내며 짜증낼거란 사실이다. 케이트가 죽지 않고 지금의 나처럼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케이트도 나도 각자의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랑합니다.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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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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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출간기념으로 초판한정으로 보틀을 주었다. 몇 번을 담고 빼기를 반복하다 더 귀여운 사은품을 끼어주는 책들을 담느라 결국 이 책은 당시에 구매리스트에서 밀렸다. 그 댓가로 좀 더 단단하게 삶을 껴안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던 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지난 봄에 읽었더라면, 적어도 여름에라도 읽었더라면 덜 울고, 덜 아파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던거다. '후기, 혹은 구름 저 너머'공간에 저자 공작가님 말하길,

 

당신이 홀로, 이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의 가슴속으로 희디흰 매화가 푸르르, 푸르르 떨어져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픈 것을 당신이 아파하고 당신의 아픔이 미세한 바람결에 내게로 전해져, 아마도 펼쳐진 책장 앞에 모두가 홀로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따스할 것이니까요. 229쪽

 

저자의 글이 조금의 여지도 없는 소설일 때보다 긴가민가스러운 어찌되었건 '소설'분류로 나뉘어져 세상에 나올 때가 가장 좋다. 적확한 예는 아니지만 케이스가 예뻐 구매한 과자도 아닌데 다 먹은 뒤 저금통이나 소지품함으로 기대이상의 역할을 해줄 때의 느껴지는 기분같은거다. 소설로 읽어도 좋은데 마치 저자의 개인사, 작가도 별다르지 않네 하는 그런 동질감까지 느껴지는 것. 저자의 바람처럼 홀로 이 책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와 함께 들어가고파도 그럴사람이 없다는 것이 쓸쓸하지만 어쨌든 홀로 읽고 중간중간 커다란 체구로도 감당되지 못할 만큼 울었다. <월춘 장구>는 오랜기간 글을 쓰지 못했던 작가가 고통스럽도록 긴 겨울을 부딪히고 견뎌낸 뒤에 비로소 삶을 산다는 게, 운명이란게 피할 수 있는것도 견뎌보겠다고 애쓴다고 될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여정이 담긴 작품이다. 작품 속 화자는 자신에게 있어 봄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예비하는 '월춘 장구'가 '쓰기, 읽기 웃기, 기도하기 아닐까.(42쪽)'이라 하는데 아마도 내게는 걷기, 읽기, 잠자기 그리고 기도일 것 같다.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웃으며 읽다가 순간순간 소름돋았지만 말미에 이르서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내용임을 깨닫고 급 우울해하며 울었다. 젊은 아들, 며느리 심지어 고용인과 기르던 개의 목숨을 잡아먹듯 죽을듯 말듯 죽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은 굳이 현실의 누구와 같다고 예를 들지 않아도 납득할만했다. 문제는 지금껏 나란 사람이 결코 '할머니'의 입장은 될 수도 없고, 그저 욕심을 버리지 못해 제 목숨마저 저당잡히는 쪽이라는 것을 겨울 밤 소설책을 통해 재확인해야 한다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편도 늘어놓자면 할 말이 많다. 작품 속 공작가처럼 나 역시 유아적 사진이 없어 엄마를 꽤 오랜시간 의심했었다. 은근 부잣집 딸일지도 모른다는 벼락맞을 상상을 즐기기까지 하다가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겨 세례를 받을무렵 비로소 깨달았다. 천사란 날개를 달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거나 위험에서 구해주거나 신의 전달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같은 걸 딸이라고 수십년간 사랑해준 내 부모야말로 천사 중의 천사였다. 물론 이런 나의 고백과 이 작품의 내용과 전혀 무관하다. <부활 무렵>은 오로지 내 기준으로 전형적인 '한국소설'에 등장하는 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할머니는 죽지않는다>편에 잠시 등장했던 쓸쓸하게 죽어버린 파출부 아줌마의 처지와 별차이가 없어보이는 '순례'의 삶은 형편좋게 살아온 것만도 아닌 나를 덩달아 우울케했다. 다만 그녀의 손에 닿으면 여린 생명들이 소생하는 것이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순례의 말처럼 "한번 살게만 해주면 어떻게든 사는 거거든. 한번 살게만 해준다면....."(161쪽) 식의 용서를 신에게 나는 얼마나 많이 요구했던가 싶어 또 울었다. 아까의 서러운 눈물마저 죄스러워 울었다. 후기를 제외한 마지막 작품<맨발로 글목을 돌다>편은 앞서 들려준 이야기들, 화자로서 혹은 저자로서 하고팠던 이야기를 응집해놓은 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간략의 줄거리나 내용조차 언급하지 않겠다. 조금 보태자면 이 작품은 나를 울리진 않았다. 오히려 이제껏 울었던 나를 다독이며 재워주려는 듯한 기분이 들게했다.

 

나는 욕조의 미지근한 물속에서 벌거벗고 웅크린 채로 운명의 부름에 답하겠다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희망을 버리고 가보겠다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부르니까 내가 대답하겠다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잎이 지듯 그렇게 단순하고 단순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208쪽

 

나역시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로 리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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