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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논
폴 하딩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소설은 첫 문단에서 찰리의 입을 통해 그녀의 딸 케이트의 죽음을 알려준다. 돌려말하지도 않는다. 케이트의 죽음을 계기로 찰리는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는데 시간상으로 정렬되어 있지 는 않다. 다만 그 모든 추억들이 '에논'이라는 장소에서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자신이 케이트 만한 나이였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왕진가방을 들고 출장을 나가 시계를 수리하던 때를 추억하기도 하고, 케이트와 함께 새모이를 주고, 신문을 읽거나 낚시를 하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추억을 읽고, 상상하며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다녀간 사람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아빠'였다. 종종 지인들과 아빠와의 추억을 나눌때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초, 중학교 시절 이른 새벽 거실에 앉아 조간신문을 읽던 추억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흔한 추억이 아닐 수 있는데 아빠와 사냥도 다녔다. 사냥만 다녔겠는가. 낚시도 다녔다. 아빠는 분명 내가 '딸'이란 사실을 잊은적도 없고 아들처럼 키울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딸이라서 해서는 안된다거나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 또한 알려주신 분이다. 좋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과거에 사는 것도 문제지만 찰리는 다친 손의 통증을 핑계로 약에 의지하게 된다. 그나마 이성을 찾으려했던 아내마저 곁에 없기에 찰리가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에논>인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찰리가 에논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물고, 케이트가 죽기 전까지 에논의 역사를 공부했던 찰리였다.
나는 피터 로드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에논을 누비며 쏘다니던 밤들을 떠올렸다. 사실 알고 보면 야생에서의 모험이라고 할 만한 면은 조금도 없었지만 떠들썩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케이트와 함께 마을 곳곳으로 긴 산책을 다니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리고 케이트가 좀 더 어렸을 때 조금 너무 멀리 나갔다가 어두워진 후에 집에 돌아오게 될 때 아이가 얼마나 신나했는지도 떠올렸다. 319쪽
케이트가 죽은 뒤 1년동안 찰리의 모습을 두고 도저히 원망도 비난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회복되는 모습을 말미에 보여주어서도 아니다. 찰리가 케이트를 잃었던 것처럼 이와 반대로 내가 나의 아빠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나 밉고 같이 있으면 불편한 아빠인데도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마음과는 달리 난 또 아빠가 아주 사소한 무언가를 묻거나 부탁하거나 얼굴 보고 싶으니 집에오라고 하면 싫은티를 내며 짜증낼거란 사실이다. 케이트가 죽지 않고 지금의 나처럼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케이트도 나도 각자의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랑합니다.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