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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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1년이 넘는 기간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하면 다들 부러운 마음으로 쳐다보기 마련이다. 하물며 100년전에는 어떠했을까. 그것도 남편만 바라보며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있는 여성이라면 지금시대에도 분명 여행중에 혹은 귀국 후 여행에세이 한 권은 충분히 출판할 수 있을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여길만한 여행을 다녀온 이는 다름아닌 나혜석. 그림 뿐 아니라 글솜씨마저 뛰어났던, 어쩌면 너무나 뛰어나 시대가 그녀의 삶과 열정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부산을 출발 해 경성, 하얼빈, 모스크바, 바르샤바, 베른, 파리, 브뤼셀, 베를린, 런던, 뉴욕, 하와이, 요코하마 등을 걸쳐 그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당시의 여행길이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너무나 생생하면서도 미술관을 포함한 건축양식을 소개할 때의 그녀의 지성이 두드러져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신기한 것은 1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여행기가 지금 읽어도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제가 된 '꽃의 파리행'에 해당되는 파리기행은 특히나 시대적 차이가 적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파리는 마치 <말테의 수기>의 말테가 본 파리처럼 보는 순간 화려함이 느껴지는 도시는 아니었다.



파리는 누구든지 화려한 곳으로 연상한다. 그러나 파리에 처음 도착하면 누구든지 예상 밖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공기가 어두침침한 것과 여자의 의복이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때 첫인상은 화려하지 않았다. 사실은 오래 두고 보아야 화려한 파리를 조금씩 알 수 있다. 69쪽


파리의 첫 인상이 <말테의 수기>를 떠올리게 했다면 오래보아야 화려한 파리를 알 수 있다는 구절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야 말로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엮은이의 서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하기만 한 그녀의 삶, 신여성, 페미니스트, 그 시대의 이혼을 당당하게 글로써 밝힌 독립여성이었던 그녀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엮은이의 말처럼 그 화려한 이면뒤에는 시대에 부합되지 않은 자신의 열정과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고 나약해진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이 결국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행려병자로 사망하게 된 것만 보더라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기 속 그녀의 삶은 어떤가. 자신이 생각했거나 예상했던 각 국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그 차이를 발견하면서 신기해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려는 지금시대의 '인플루언서'와 같은 위치도 자각하고 있는 것 처럼 느꼈다. 그런가하면 진정한 자유만이 참 사랑을 얻을 수 있음을 유럽인들의 연애관을 통해서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본격적인 미술여행, 이태리 여행기를 보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는 호기심 가득한 나혜석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파리에 이어 그녀의 관련 지식이 만발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나혜석이 가지는 관심과 그녀의 노력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정도다.


실로 르네상스기의 이태리 회화는 인간 능력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므로 미술사상 만은 폐지를 점령하는 것이 이태리 르네상스기 회화요, 세계적 제작품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 그때 회화요, 역대의 명화가들이 그때 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오, 지금 화가들이 이태리를 찾아가는 것이 모두 그때 그림을 보기 위함이다. 121쪽


<꽃의 파리행>을 읽기전까지는 당시의 보통여성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녀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컸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또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자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이 아닌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마음이 들었다. 서두에도 적었지만 만약 그녀가 100년전이 아닌 지금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좋은 글들, 멋진 작품들을 한 작품 한 작품 다 만나보고 싶어진 것은 물론이다.

 

내게 늘 불안을 주던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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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윤수현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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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일요일 아침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라고 중얼거리고 싶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점점 늘어난다


<식탁에 커피향 흐리고> 중에서


이바라기 노리코. 공선옥 작가의 소설 표제시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잘 알려진 일본시인으로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작가의 시를 한 편 한 편 접할수록 윤동주를 혹은 한국을 사랑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더는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패전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 그야말로 가장 예뻤을 그 나이에 그녀는 참혹한 세상을 마주했고, '아무도 그녀에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던'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그녀는 시를 썼고 희망을 보았다. 자신과 조국의 희망만 본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피폐한 삶과 억울함도 그녀의 시선안에 들어왔다. 왜 불쌍한 저들(조선인들)탓이 되고 그로인해 희생되어야 하고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녀는 삶 그자체에 대한 깊은 관심이 느껴졌다. 글 서두에 발췌한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중 일부는 저자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평일 오후, 주말 아침이란 키워드를 넣고 SNS를 검색하면 그 안에는 늘 한 잔의 커피가 흐르고 그것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경제적 여유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인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간단하고 그리 어렵지도 수고롭지도 않은 그 장면하나가 그토록 여유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패전이후나 지금이나 사람이 온전하게 평화롭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살아있는 나라 죽어있는 나라

그것을 어떻게 간파할까

쏙 빼닮은 학살의 오늘에서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둘은 다가서서 나란히 선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모습을 감추고


모습을 감추고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중에서


이바라기 노리코를 떠올렸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란 사람은 과연 그녀의 작품 중 어떤 시를 먼저 떠올리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앞서 언급한 시도,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리뷰안에 스며들었던 <장 폴 사르트르에게>에게일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단 한 편의 시를 꼽으라면 위의 시,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의 저 부분이 떠오를 것이다. 살아있는 사과인지, 죽어있는 요리인지, 혹은 마음이 죽고살았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는가. 내 나라가 그러한지 이웃나라가 그러한지는 판단할 수 있을만큼 이성적이고 현명한지가 궁금해졌다. 물론 시인은 내게 그런 현명함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불문명하니 잘 보라고, 혹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도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하는 듯 싶었다. 마치 윤동주시인의 <아우의 인상화> 속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를 두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동생을 걱정하여 썼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윤동주시인이 동생을 걱정하듯 그녀도 자국민을 포함한 누구라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걱정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인의 사랑]속 시인이 말하길 누군가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분명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인'으로서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시인'으로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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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내는 믿음의 글들 세계기독교고전 43
새뮤얼 러더퍼드 지음, 이강호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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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게 있어 언변이 좋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친다.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교회 혹은 목회자를 자랑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설교말씀이기 때문이다. <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의 저자인 러더퍼드의 경우는 뛰어난 학식도 학식이지만 늘 주님안에서 머물던 사람이었기에 그가 설교하던 교회사람들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 였다. 어린 시절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흰옷을 입은 사람이라고 할 만큼 러더퍼드는 유년시절부터 줄곧 하늘에 속해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첫 아내가 투병중에 세상을 떠나고 두 아이를 잃었을 때 조차 그는 고통중에야 비로소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때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말뿐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더퍼드는 스스로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로서의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럴 수 있는 자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바로 애버딘에 갇혀 있는 동안 220통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없어서는 안되며, 없을 수도 없으며, 없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날 이후로는 당신의 모든 애인들을 당신의 영혼 앞에 소집하여 그들에게 떠나라고 하십시오, 그리스도와 손을 잡으시고 그 이후로는 그리스도 밖에는 당신에게 다른 행복이 없게 하시고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쫓아가지 마시고 그리스도 없이는 죽음이 올 때 잠자리에 들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그리스도 뿐이니, 그리스도 외에 누가 있습니까! 125쪽



각 수신인의 이름밑에는 러더퍼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표기되어 있었다. 또한 편지 말미에는 자신의 능력이나 언변이 수신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그 은총과 은혜가 내려지기를 기도하거나 기도해달라고 적는 것으로보아 주님의 제자가 갖추어야 할 겸손함, 낮아짐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 주제가 다르다할지라도 사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어느 한 순간에라도 사람, 재산, 지위 등 이 세상의 것에 의자하려고 하거나 그로인한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로지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뜻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용이 이렇다 보니 종교가 없거나 혹은 어느정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비신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큰 위로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방법의 해결책이 다름아닌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맨 앞으로 넘어와 러더퍼드의 생애를 읽다보면 의외의 위로가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은 목회자로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그다지 희망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심지어 러더퍼드 역시도 그리스도를 향해 반항하며 "내가 그의 집에서 충성하기를 바랐는데 도대체 그리스도께서 내게 왜 이러시는거야?"(211쪽)하고 그리스도를 고발하기도 한다. 러더퍼드 자신도 아파본적이 있고, 방황한 적이 있기에 더더욱 수신자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공감할 수 있었고 진정으로 자신이 느낀 바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자신의 삶을 맡긴다는 것, 그리하여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된다면 그가 권하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와 찬미야 말로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일부 목회자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와 행동, 오히려 신을 거부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삶은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다만 쉽지 않은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사는 사람과 원망하고 분노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러더퍼드의 편지가 다른 이가 아닌 지금 내게 보낸 편지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한 통 한 통 읽다보면 분명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혀나 어떤 붓이나 사람의 재주가

유명한 러더퍼드를 기릴 수 있으랴!

그의 학식은 정당히 그의 명성을 높였고

진정한 경건은 그의 이름을 장식했다네.

그는 위에 있는 것과 사귀었으니

임마누엘의 사랑에 친숙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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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밤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시 101
김선경 엮음 / 메이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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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으면서부터 마음이 먹먹해졌다. 좋은 일과 나쁜일이 겹쳐온다는 것은,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저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걸 안다고, 잘 안다고 하면서도 매번 나쁜일이 올 때에는 분노와 절망감으로 매번 무너졌던 것 같다. 그럴 때 저자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종류의 위안을 '시'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시는 삶을 다독인다. 웃을 일이 없어도 미소 짓게 하고, 특별히 잘난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에 숨고 싶을 때 기죽지 말라 하고, 내가 누구인지 헤맬 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고 말해 준다.

-프롤로그 중에서-


시가 내 마음을 움직인 적은 있었어도 또한 완벽하게 그 시를 이해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나를 움직였던 그 시들을 좀 더 잘 알았더라면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를일이다. 오히려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되면 당시의 나의 상황과 다르다고 오히려 시를 더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내가 요즘들어 계속 '시'를 찾고 있다. 책<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처럼 저자가 좋은 시를 엮어서 풀이해주는 모음집부터 소설 속 주인공이 시를 통해 위로를 받을 때 간접적으로 나 또한 그렇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총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데 각각 제목이, '어느 날 시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날', '인생의 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들','이누이트족의 언어에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없는 이유','나는 정말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무심코 하는 말들을 위한 기도','시가 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내 삶을 뻔한 결말로부터 구해 준 결정적 순간들에 대하여'등이다. 굳이 챕터 별 제목을 다 적어놓은 것은 제목만 보더라도 시로 부터 받을 수 있는 위로가 얼마나 다양하고 또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개된 시를 접하게 되면 굳이 어느 챕터에 어떤 주제로 분류되어도 좋을 작품들이 많다. 그런가하면 작품 전체를 알진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인용이나 광고문구속에서 보았음직한 내용들도 많았다. 한 편 한 편이 워낙 명시라서 일부를 발췌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100여편이 넘는 작품 중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시 하나'를 소개해본다.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 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 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때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이기철 -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중에서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을 포함 해 '용서'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여러번 휘청거린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지는 내가 참 버겁고 힘들었다. 하나하나 내려놓고 모든 것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용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이 시를 가슴에 품기 전과 후과 분명 다를 것이다. 그렇게 저자 덕분에 나또한 시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누구도 해준 적 없고,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위로, 그 위로를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에서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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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 문방구
GB 편집부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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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을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생각나는 제품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부터 은은하게 다가오는 아로마 디퓨저의 향일 수도 있고, 언제봐도 큰 차이가 없으나 실제 착장을 해보면 느껴지는 편안하면서도 심플한 의류일 수도 있다. 또는 스테디셀러인 벽에 부착하는 CDP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실 무인양품은 이런 제품들 외에도 소소한 간식류, 깔끔하면서도 내구성이 좋은 주방용품은 물론 친구와 가구까지 집 빼고는 그 안에 모든 것을 무인양품 제품으로 채울 수 있을만큼 취급하는 품목이 다양하다. 책<무인양품 문방구>는 그 많은 품목중에서 문구류만 따로 편집해서 모았다. 책의 구성은 각각 고르다, 쓰다, 수납하다, 즐기다로 4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실제 사용후기를 보고 싶다면 두번째 챕터 '쓰다'편을 보면 되고, 카달로그 형식으로 제품을 만나고 싶다면 챕터1,3을 보면 된다. 제품의 탄생배경과 제조사에서 말하는 매력을 알고 싶어질 때는 챕터 4를 통해 문구의 개발 과정, 디자인, 소재, 크기 등을 알아볼 수 있다.



무인양품 제품중에서 개인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제품은 책에는 소개되지 않은 지우개다. 스케치할 때 사용해도 좋을만큼 괜찮은 제품인데 책에 소개되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책에 소개된 제품중에 '겔 잉키 볼펜(젤 잉크 볼펜)'의 경우는 초대 모델이 1998년에 출시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판중인 제품은 세 번째 모델로 전 세계의 무지러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2011년도에 출시된 3세대 모델부터 사용중인데 번짐없이 필기감이 좋아서 한 번 써보고는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인기있는 컬러는 블랙, 레드, 블루, 블루블래기라는데 사진에 보시다시피 인기컬러는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챕터 2에는 무지러들의 실제 사용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노트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캘리그래퍼 산도 미나코씨의 경우는 7~8년 전붜 줄곧 애용하고 있는데 캘리그래퍼인만큼 직접 꾸밀 수 있는 여유가 많은 심플함이 맘에 든다고 한다. 노트하나에 체크 리스트와 인덱스 스티키 메모를 결합, 마치 하나의 노트였던 것처럼 사용하는 실제 모습을 보니 솜씨가 좋다면 얼마든지 커스텀이 가능한 무인양품 노트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 식림목 페이퍼로 5권이 세트로 판매되는(개별 구매 가능) 앞뒤 표지가 크래프트지인 기본 노트는 B5 사이즈로 매장에 비치되어 있는 스탬프를 이용해 정말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학생들의 경우 과목별로 이용해도 좋고, 나처럼 두꺼운 인문서적이나 별도의 메모를 요하는 책을 읽을 때 가볍게 한 권씩 챙겨서 독서하면 효율적이다.


필기류와 노트류외에도 수납을 위한 정리 트레이도 무인양품에서 인기있는 제품이다. 트레이 역시 여러개를 혼합해서 사용할 수 있어서 퍼즐처럼 자유자재로 조합가능하다. 특히 캐리 케이스를 사용하면 정리된 트레이를 그대로 옮겨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외출시에 별도로 챙겼다가 돌아와서 다시 정리해야하는 불필요한 소모를 방지할 수 있다. 이 상품은 개발 담당자가 독일에 출장갔을 때 현지 잡화점에서 고정된 트레이를 보고 좀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생각해서 개발된 제품(147쪽 참조)이라고 한다.


현재 데스크톱 수납용품을 제외하고도 약 500여종의 문구류가 출시되었는데 상품개발 과정은 3년 계획을 토대로 실제 출시까지는 거의 1년 반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상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생활잡화부에 소속된 문구 담당과 디자이너가 함께 연구하고 상품을 개발할 때는 실제 현장에 방문해서 조사하는 작업을 거치고 제품개발이 완료되면 무인양품 점장이나 해외 스태프를 대상으로 전시회를 갖는다고 한다. 또한 자사 제품연구를 위해 자사문구류외에도 타사제품을 사용을 통해 위의 트레이 개발사례처럼 아이디어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했다.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역시 타사의 제품도, 해외의 좋은 제품들도 많이 사용해보는 것, 개발자 스스로 문구에 대한 애착을 갖고 다양하게 사용해보는 것은 필수라고 본다. 화려한 디자인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역시나 기본에 충실할 것, 이것이야말로 무인양품 문구류를 한 번 사용한 이후 놓을 수 없게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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