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윤수현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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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일요일 아침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라고 중얼거리고 싶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점점 늘어난다


<식탁에 커피향 흐리고> 중에서


이바라기 노리코. 공선옥 작가의 소설 표제시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잘 알려진 일본시인으로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작가의 시를 한 편 한 편 접할수록 윤동주를 혹은 한국을 사랑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더는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패전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 그야말로 가장 예뻤을 그 나이에 그녀는 참혹한 세상을 마주했고, '아무도 그녀에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던'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그녀는 시를 썼고 희망을 보았다. 자신과 조국의 희망만 본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피폐한 삶과 억울함도 그녀의 시선안에 들어왔다. 왜 불쌍한 저들(조선인들)탓이 되고 그로인해 희생되어야 하고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녀는 삶 그자체에 대한 깊은 관심이 느껴졌다. 글 서두에 발췌한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중 일부는 저자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평일 오후, 주말 아침이란 키워드를 넣고 SNS를 검색하면 그 안에는 늘 한 잔의 커피가 흐르고 그것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경제적 여유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인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간단하고 그리 어렵지도 수고롭지도 않은 그 장면하나가 그토록 여유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패전이후나 지금이나 사람이 온전하게 평화롭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살아있는 나라 죽어있는 나라

그것을 어떻게 간파할까

쏙 빼닮은 학살의 오늘에서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둘은 다가서서 나란히 선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모습을 감추고


모습을 감추고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중에서


이바라기 노리코를 떠올렸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란 사람은 과연 그녀의 작품 중 어떤 시를 먼저 떠올리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앞서 언급한 시도,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리뷰안에 스며들었던 <장 폴 사르트르에게>에게일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단 한 편의 시를 꼽으라면 위의 시,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의 저 부분이 떠오를 것이다. 살아있는 사과인지, 죽어있는 요리인지, 혹은 마음이 죽고살았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는가. 내 나라가 그러한지 이웃나라가 그러한지는 판단할 수 있을만큼 이성적이고 현명한지가 궁금해졌다. 물론 시인은 내게 그런 현명함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불문명하니 잘 보라고, 혹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도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하는 듯 싶었다. 마치 윤동주시인의 <아우의 인상화> 속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를 두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동생을 걱정하여 썼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윤동주시인이 동생을 걱정하듯 그녀도 자국민을 포함한 누구라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걱정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인의 사랑]속 시인이 말하길 누군가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분명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인'으로서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시인'으로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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