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평점 :

오늘날에도 1년이 넘는 기간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하면 다들 부러운 마음으로 쳐다보기 마련이다. 하물며 100년전에는 어떠했을까. 그것도 남편만 바라보며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있는 여성이라면 지금시대에도 분명 여행중에 혹은 귀국 후 여행에세이 한 권은 충분히 출판할 수 있을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여길만한 여행을 다녀온 이는 다름아닌 나혜석. 그림 뿐 아니라 글솜씨마저 뛰어났던, 어쩌면 너무나 뛰어나 시대가 그녀의 삶과 열정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부산을 출발 해 경성, 하얼빈, 모스크바, 바르샤바, 베른, 파리, 브뤼셀, 베를린, 런던, 뉴욕, 하와이, 요코하마 등을 걸쳐 그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당시의 여행길이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너무나 생생하면서도 미술관을 포함한 건축양식을 소개할 때의 그녀의 지성이 두드러져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신기한 것은 1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여행기가 지금 읽어도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제가 된 '꽃의 파리행'에 해당되는 파리기행은 특히나 시대적 차이가 적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파리는 마치 <말테의 수기>의 말테가 본 파리처럼 보는 순간 화려함이 느껴지는 도시는 아니었다.
파리는 누구든지 화려한 곳으로 연상한다. 그러나 파리에 처음 도착하면 누구든지 예상 밖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공기가 어두침침한 것과 여자의 의복이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때 첫인상은 화려하지 않았다. 사실은 오래 두고 보아야 화려한 파리를 조금씩 알 수 있다. 69쪽
파리의 첫 인상이 <말테의 수기>를 떠올리게 했다면 오래보아야 화려한 파리를 알 수 있다는 구절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야 말로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엮은이의 서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하기만 한 그녀의 삶, 신여성, 페미니스트, 그 시대의 이혼을 당당하게 글로써 밝힌 독립여성이었던 그녀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엮은이의 말처럼 그 화려한 이면뒤에는 시대에 부합되지 않은 자신의 열정과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고 나약해진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이 결국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행려병자로 사망하게 된 것만 보더라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기 속 그녀의 삶은 어떤가. 자신이 생각했거나 예상했던 각 국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그 차이를 발견하면서 신기해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려는 지금시대의 '인플루언서'와 같은 위치도 자각하고 있는 것 처럼 느꼈다. 그런가하면 진정한 자유만이 참 사랑을 얻을 수 있음을 유럽인들의 연애관을 통해서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본격적인 미술여행, 이태리 여행기를 보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는 호기심 가득한 나혜석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파리에 이어 그녀의 관련 지식이 만발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나혜석이 가지는 관심과 그녀의 노력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정도다.
실로 르네상스기의 이태리 회화는 인간 능력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므로 미술사상 만은 폐지를 점령하는 것이 이태리 르네상스기 회화요, 세계적 제작품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 그때 회화요, 역대의 명화가들이 그때 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오, 지금 화가들이 이태리를 찾아가는 것이 모두 그때 그림을 보기 위함이다. 121쪽
<꽃의 파리행>을 읽기전까지는 당시의 보통여성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녀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컸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또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자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이 아닌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마음이 들었다. 서두에도 적었지만 만약 그녀가 100년전이 아닌 지금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좋은 글들, 멋진 작품들을 한 작품 한 작품 다 만나보고 싶어진 것은 물론이다.
내게 늘 불안을 주던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