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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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장미란 역 / 평화를품은책

다섯 살의 어린 로웅 웅의 시선으로 보는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은 1975년 공산주의 혁명 단체인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장악하기 며칠 전, 부모님과 시장에서 국수를 사먹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된다. 호기심이 많은 로웅의 시선에는 모든 것이 질문의 대상이 되고, 그런 아이의 퍼붓는듯한 질문에 엄마는 혼을 내기도 하지만 다정한 아버지는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 사며 그녀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준다. 아버지의 품은 그토록 따뜻했고, 때론 밉기도 한 엄마이지만 누가봐도 맵시나고 예쁜 엄마 덕분에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는 자신의 환경이 만족스럽기만 한 로웅이었다. 그렇게 평화롭기만한 일상이 크메르루주에 의해 완전히 부서져버린다. 이전 정권에서 전문직, 공무원등으로 나라에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을 모두 '제거대상'으로 판명, 프롬펜 중심가에서 시골외딴 지역으로 모두 이주 시킨다. 그 기간이 대략 3년전동인데 이 시기에 로웅의 부모, 자매들 뿐 아니라 친척들을 포함 20여명이 희생된다. 캄보디아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무려 700만명 중 200만명이 이 기간에 '킬링필드'에서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소설형식을 취하지만 저자 로웅의 기억과 가족들의 증언으로 쓰인 '논픽션'이기도 하다. 피란 초반에는 다섯 살인 로웅의 어리기만 한 태도에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전쟁과 분노가 한 아이를 혹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고백했을 때였다.


"아름다운 것들을 싹 다 부숴버리고 싶어."

"그런 말 하지마. 정령들이 들어."

초우 언니가 내게 주의를 준다. 나는 언니 말에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행한 짓이다. 그 때문에 지금 나는 파괴를 원한다. 내 안의 증오와 분노는 어마어마하다. 앙카르가 깊이 증오하라고 가르쳐서 지금 내가 파괴력과 살상력을 갖게 된 것이다. -182쪽-

아버지가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는 데도, 언니가 아무런 보호나 치료행위가 이뤄지지 않는 말뿐인 병원에서 죽어가는 데도 어린 로웅은, 이미 성인이 된 어른들조차 제대로된 저항도 해보질 못한다. 남은 가족들은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자꾸만 이 사건이 발생한 1975년이란 글자를 상기시킨다. 50년도 지나지 않았던 때에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다가도 멀리 볼 것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쓰려왔다. 책의 후기에 저자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현재진행형으로 집필한 이유를 말한다. 어리다고 기억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쉽게 잊히는 것도 아니라고. 또한 과거시제로 쓰여지면 저자에게도 그 상처가 '지나간'일이 되어 덜 괴로울 수는 있어도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괴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기에 현재시제로 썼다고 말이다. 분명 저자는 그 시절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해당 사건을 생생하게 알릴 수 있는 주요한 몫을 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는 동안 나는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피하지 않고 그 괴로움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있는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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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삶의 서재 -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
캐서린 루이스 지음, 홍승훈 옮김 / 젤리판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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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삶의 서재 / 캐서린 루이스 / 젤리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마흔이 되고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먹은대로 살아진다는 말을 들을수록 더더욱 내 삶이 내 맘같지 않음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자기계발서, 심리치유서를 가장 많이 읽었던 때가 26살, 독립 후 첫 퇴사를 했을 때였다. 졸업하기 전에 직장이 생겨서, 그것도 전공도 아닌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독립은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고 나니 붙잡을 건 '책'밖에 없었다. 도서관이 집근처였기에 문여는 시간에 들어가 문닫는 시간까지 읽다가 그마저도 부족해 대출까지해서 그당시 스테디셀러였던 책들은 다 읽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영어공부나 다른 전문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지금도 물론 하지 않는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또 열심히 밥벌이를 하다보니 책을 멀리했다. 그러다 만 서른.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또 열심히 책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내가 도구로서 책이 아니라 그냥 책 자체를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고 그 이후에는 운이 좋았는지 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해왔다. 주로 인문학이나 여행서적 문학을 읽다가 올해 앞자리가 바뀌고는 결국 다시 찾게되는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 그리고 이 번에는 책제목부터 너무나 취향인 <내일 삶의 서재>다. 게대가 저자가 심리학과 유전자학 전문가다. 이보다 더 맞춤형 책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했던 말 또 써있고, 읽었던 문장 거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는데도 왜 이 책이 좋으냐면 다른 마흔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처럼 읽고나면 아무리 필사를 하고 기록을 남겨도 금새 잊는 사람들에게는 반복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전에 읽었던 좋았던 내용들만 마치 추려놓은 듯한 이 책이 어찌맘에 들지 않을까. 심지어 부제도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이다. 부서져있던 마음을 잘 붙이거나 아예 다듬어두어야 앞으로의 쉰, 예순...백살까지 잘 견디지 않을까.


우리는 현재의 나약함을 벗고 삶을 이겨내 진정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만일 모르겠다면 이제 지난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러면 분명 내일은 당신에게 행복의 빛이 갇그한 날로 찾아올 것이다. 37쪽

나를 모르고, 과거를 무시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를 붙잡는 것과 과거를 극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타인을 부러워하는 것이 무지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무지때문에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부러움이 무지로 인한 것이란 말에 오히려 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자면 내가 내 스스로의 가치와 개성을 인정하는 순간 타인이 내 안에 침투해서 나를 괴롭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의 가치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자기가 갖지 못한 인내와 노력만을 탓하며 저자를 부러워만 하는 감상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아니라 '자기파괴서'를 읽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을 대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해 앞으로 나아갔는지, 아니면 괴로워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으로 그쳤는지 궁금했다. 인생이란 펼쳐져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파른 비탈길 산봉우리를 넘는 것과 같다. -중략- 남들보다 조금 출발선에서 뒤처져있으면 어떠한가?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것은 그저 당신이 남들보다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91-92


지난 내 이력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안타까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어쩌다보니 책을 자주 읽게 된것인지조차도 몰라 서른이 되어서야 관련 공부를 시작하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취업이나 진로관련 글을 읽다보면 대학3학년생인데도 전공을 변경하거나 대학을 다시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괴롭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답글을 읽다보면 30대가 안된 20대 후반인 사람들이 아직 젊다는 말로 글쓴이를 위로해준다. 아마 서른이 넘은 나이게 내가 그런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던 일이나 계속 잘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발레나 올림픽 출전이 달린 운동선수처럼 적정시기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이전에 읽었던 <다크호스>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환경과 역할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무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일의 나는 지금과 또 완전히 달라 질 수 있다. 122쪽


마흔이 되어 자기계발서를 다시 찾아읽기 시작했다는 말을 서두에서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고민이 많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를 다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삶의 서재>는 자신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멈춰서있는것도 자신의 결정이라면 흔들림없이 굳게 믿고 불안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내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오늘과 '다르다'라는 의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불만이나 불안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이상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자학하거나 나락에 빠질필요는 없다. 위로받을 건 받고, 나아갈 수 있는 응원을 충분히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내일 삶의 서재>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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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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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역/ 솔


'교육받은 남성의 딸'. 이 책의 역자는 이 책을 이처럼 표현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에는 여성의 권리가 지금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지지가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을 <3기니>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3기니란 무엇인가. 기니는 화폐단위로 당시 사회를 기준 여성에게 1기니는 대단히 큰 돈이라고 한다. 그렇게 적지 않은 돈 3기니를 도대체 울프는 어떻게 사용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의 중심내용은 변호사가 울프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자신이 보내는 돈을 각각 어떻게 사용해주길 바라는지에 대해 적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상황에서 변호사는 울프에게 이와 관련한 지원을 요청한 것이고 울프는 이에 대해 1기니씩 각각 어떻게 쓰여지길 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선 울프는 전쟁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다름아닌 '남성'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남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자신들을 명예롭게 만들어줄 것이며 이러한 폭력적 행동들 또한 '남성이 남성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과 관련된 모든 처사가 여성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데 있다.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 기니 기부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 또 직업을 가진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대우에 관한 부분으로 과연 이것이 과거의 일인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인지 헷갈릴 수준으로 변화없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 여기에 또 다른 오해가 있다고 당신이 끼어들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일심동체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갑도 하나라고 말입니다. 아내의 봉급은 남편 소득의 절반이라고. 남자는 바로 그 이유로 여성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라고 - 왜냐하면 그는 부양 할 아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혼 남성은 미혼 여성과 같은 등급의 봉급을 받습니까? 95쪽


대학을 다니던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성학 혹은 여성운동과 관련된 참여 혹은 교육과 멀어질 수 없는 것이 지금의 '교육받은 여성'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적인 상황을 원치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선을 긋고 권리가 아닌 역차별을 주장하는 몇몇 운동가 혹은 단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위와 같은 내용들을 <3기니>를 통해 읽을 때는 과연 지금의 나의 태도가 진정으로 평화적인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확대와 전문직 여성들의 제대로된 보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1기니는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울프가 내놓았을지 궁금할 것이다. 소설을 제외하고는 <자기만의 방>이후 에세이는 <3기니>가 두 번째인데 개인적으로는 자기만의 방보다 훨씬 더 여성의 교육과 입장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읽기 수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출판사에서 펴낸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번째 책 <3기니>. 지금 내게 주어진 돈을 비롯한 귀중한 능력과 가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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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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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라는 책 / 알렌산다르 헤몬 지음/ 은행나무


오래 전 스티븐 킹 작가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글쓰기의 전략이나 비법보다는 그의 소설과도 같은 유년시절이 더 기억에 남아 글쓰기 책이 아닌 성장소설을 읽은듯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해외 유명작가들의 글쓰기 관련 책등을 읽게되면 이와 유사한 기분에 그냥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한 권 더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 <나의 삶이라는 책>을 읽고서는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안타까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들이 떠올랐다. <나의 삶이라는 책>의 저자 알렉산다르 헤몬은 단순히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글쓰기라던가, 삶을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여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직 철없을 시절에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는 것, 이것은 특별하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의 성장기와 유사하다. 즉 그들이 좀 더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고, 이를 맛깔나게 글을 옮길 수 있는 실력이 있으니 작가가 되었다기 보다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그들의 유년시절과 성장과정을 언급하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머리에 손전등을 매단 떠돌이 개를 포기한 순간부터 우리는 그저 그런 (사회주의판) 물질만능주의로 떨어지는 미끄럼틀을 탄 셈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 전에 광견병에 걸린 떠돌이 개들을 폐관식 밤 행사에 풀어놓자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볼렌스놀렌스 클럽은 최후의 발악도 해보지 못한 책 조용히 깨깽하며 문을 닫았다. 60-61쪽


문학도로 그리고 편집자로 살던 그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삶이었을 것이다. 내전때문에 돌아가지 못해 발이 묶였을 때 픽션으로 보자면 저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망치듯 과거에서 벗어나려는게 아니더라도 영화 <브루클린>에서의 에일리스처럼 오롯이 일과 자신의 사랑만을 고민해볼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랜시간 사용하던 언어를 사용할 수 없었을 때, 글로써 자신의 재능과 만족을 얻었던 작가가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에 놓여진 저자의 처지는 두손 두 발을 묶어놓는 듯한 좌절감 뿐이었을 것이다.


나의 합법적인 첫 직업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린피스의 지지를 호소하는 호별 방문원 일이었는데, 태생적으로 그린피스는 부적응자에게도 열려 있는 단체였다. 구직 문의를 위하 처음 그린피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을 때만 해도 나는 어떤 일인지는 고사하고 호별 방문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몰랐다. 141쪽


물론 저자의 경험, 그의 타자에 의한 이주와 정착과정을 두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저자의 스스로가 인정한 것처럼 그보다 더 한 고통의 순간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도 찾고자 하면 넘치기도 하다. 다만 자기앞에 놓인 시련을 어떻게 견디며 또 그것을 어떻게 내면에서 풀어내느냐가 작가로 혹은 탕아로 혹은 이보다 못한 범죄자나 낙오자로 나뉘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은 저자의 고국인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사라예보 내전으로 인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미국에서 정착하는 저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책의 첫 페이지부터 가슴이 한켠에 바람이 일었던, '영원히 내 품에서 숨 쉬는 이사벨에게'라는 한 줄 문구에 담긴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도 담겨져 있다. 전쟁, 가족을 잃은 슬픔, 타지에서의 생활 등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그래도 조금 지난 시대의 이야기 같겠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들 속의 인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처음 읽고자 했던 이유,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살아냈다'는 추천사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한 문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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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 - 유쾌한 스페인 미술관 여행
최상운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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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 유쾌한 스페인 미술관 여행 / 최상운 지음 / 생각을 담은 집

사실 그 나라를 아는 데는 미술관만큼 좋은 곳도 없다.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최상운 작가의 <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는 프랑스 유학중에 정말 저렴한 버스비로 스페인 다녀온 뒤 스페인 미술관에 흠뻑 빠진 것이 계기가 되어 책을 집필하는 기간에 추가로 더 다녀온 뒤 탄생하게 되었다. 위의 발췌문처럼 여행중에 미술관은 물론 박물관을 가는 것은 해당나라 혹은 도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라는 것에 동의한다. 특히 저자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사진을 전공하고 예술을 전공한 저자답게 조금도 지루할틈 없이 각국의 미술과 예술적 정취를 소개함과 동시에 보기만 해도 마치 그곳에 머무는듯한 느낌을 가지게하는 사진들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와 주변 소도시를 포함 여러 미술관을 다닌 저자에게 실제로도 어느 미술관이 가장 좋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과연 저자는 어디를 선택했을까. 다름아닌 피카소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다.


사실 달리미술관을 자주 언급하길래 그곳이 아닐까 싶었는데 레이나 소피나 미술관을 고른 이유는 전시된 작품도 작품이지만 다른 미술관과 달리 현대적 외형의 건물양식과는 달리 수수한 정원을 꼭 들려보라고 권한다. 정원에는 저자가 적극추천하는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작품, 스태빌과 모빌의 개념이 합쳐진 작품이 있는데 책에 작품사진이 들어있지만 안타깝게도 작품사진이 페이지가 펼쳐지는 부분에 위치하여 첨부하진 못했다. 저자는 이 작품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칼더의 모빌 조각을 많이 보았지만 이런 경이로움은 처음이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공중을 날아가는 화살처럼, 세상을 응시하는 거인의 눈 같은 작품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조각 아래 벤치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 있다. 그들이 있어 공간이 더욱 시적이고 풍요로워진다. 119쪽

저자가 극찬한 미술관과 작품을 뒤로하고 개인적으로 이 책, 스페인 미술관기행을 통해 만나고 싶었던 작품은 평소에도 애정하는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이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 표지가 된 소설책 뿐 아니라 이 작품이 수록된 미술관련 책들을 볼 때면 최소 3초간은 머뭇거리며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만약 마드리드에 간다면, 그곳에서 프라도 미술관에 정말 가게 된다면 이 작품만큼은 3초가 아니라 적어도 30분이상은 그 앞에 서 있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은 현기증이 날 만큼 작가가 관람객을 인도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스페인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건축가 '가우디'의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건축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경우도 종교와 무관하게 예술적 호기심을 가진이라면 누구라도 꼭 방문하고 싶은 건축물이자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호안미로 미술관, 콜럼버스 기념탑 등 스페인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과 여행지의 대한 정보와 감상이 200여 페이지에 빈틈없이 그득하게 담겨져 있다. 아마 저자의 신간이 차후에 또 출간된다면 그때에도 놓치지 않고 꼭 만나고 싶다. 그 전에 저자가 소개해 준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나 미술관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만큼은 꼭 다녀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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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9-0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방금 고야 책 읽은 것을 올렸는데~ 미술관 소개 글이 있어 반갑네요~ 아 저도 마드리드에 있은 미슬관 가고 싶네요 ㅎㅎ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