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삶의 서재 -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
캐서린 루이스 지음, 홍승훈 옮김 / 젤리판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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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삶의 서재 / 캐서린 루이스 / 젤리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마흔이 되고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먹은대로 살아진다는 말을 들을수록 더더욱 내 삶이 내 맘같지 않음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자기계발서, 심리치유서를 가장 많이 읽었던 때가 26살, 독립 후 첫 퇴사를 했을 때였다. 졸업하기 전에 직장이 생겨서, 그것도 전공도 아닌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독립은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고 나니 붙잡을 건 '책'밖에 없었다. 도서관이 집근처였기에 문여는 시간에 들어가 문닫는 시간까지 읽다가 그마저도 부족해 대출까지해서 그당시 스테디셀러였던 책들은 다 읽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영어공부나 다른 전문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지금도 물론 하지 않는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또 열심히 밥벌이를 하다보니 책을 멀리했다. 그러다 만 서른.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또 열심히 책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내가 도구로서 책이 아니라 그냥 책 자체를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고 그 이후에는 운이 좋았는지 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해왔다. 주로 인문학이나 여행서적 문학을 읽다가 올해 앞자리가 바뀌고는 결국 다시 찾게되는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 그리고 이 번에는 책제목부터 너무나 취향인 <내일 삶의 서재>다. 게대가 저자가 심리학과 유전자학 전문가다. 이보다 더 맞춤형 책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했던 말 또 써있고, 읽었던 문장 거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는데도 왜 이 책이 좋으냐면 다른 마흔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처럼 읽고나면 아무리 필사를 하고 기록을 남겨도 금새 잊는 사람들에게는 반복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전에 읽었던 좋았던 내용들만 마치 추려놓은 듯한 이 책이 어찌맘에 들지 않을까. 심지어 부제도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이다. 부서져있던 마음을 잘 붙이거나 아예 다듬어두어야 앞으로의 쉰, 예순...백살까지 잘 견디지 않을까.


우리는 현재의 나약함을 벗고 삶을 이겨내 진정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만일 모르겠다면 이제 지난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러면 분명 내일은 당신에게 행복의 빛이 갇그한 날로 찾아올 것이다. 37쪽

나를 모르고, 과거를 무시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를 붙잡는 것과 과거를 극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타인을 부러워하는 것이 무지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무지때문에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부러움이 무지로 인한 것이란 말에 오히려 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자면 내가 내 스스로의 가치와 개성을 인정하는 순간 타인이 내 안에 침투해서 나를 괴롭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의 가치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자기가 갖지 못한 인내와 노력만을 탓하며 저자를 부러워만 하는 감상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아니라 '자기파괴서'를 읽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을 대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해 앞으로 나아갔는지, 아니면 괴로워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으로 그쳤는지 궁금했다. 인생이란 펼쳐져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파른 비탈길 산봉우리를 넘는 것과 같다. -중략- 남들보다 조금 출발선에서 뒤처져있으면 어떠한가?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것은 그저 당신이 남들보다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91-92


지난 내 이력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안타까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어쩌다보니 책을 자주 읽게 된것인지조차도 몰라 서른이 되어서야 관련 공부를 시작하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취업이나 진로관련 글을 읽다보면 대학3학년생인데도 전공을 변경하거나 대학을 다시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괴롭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답글을 읽다보면 30대가 안된 20대 후반인 사람들이 아직 젊다는 말로 글쓴이를 위로해준다. 아마 서른이 넘은 나이게 내가 그런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던 일이나 계속 잘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발레나 올림픽 출전이 달린 운동선수처럼 적정시기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이전에 읽었던 <다크호스>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환경과 역할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무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일의 나는 지금과 또 완전히 달라 질 수 있다. 122쪽


마흔이 되어 자기계발서를 다시 찾아읽기 시작했다는 말을 서두에서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고민이 많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를 다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삶의 서재>는 자신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멈춰서있는것도 자신의 결정이라면 흔들림없이 굳게 믿고 불안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내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오늘과 '다르다'라는 의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불만이나 불안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이상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자학하거나 나락에 빠질필요는 없다. 위로받을 건 받고, 나아갈 수 있는 응원을 충분히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내일 삶의 서재>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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