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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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맥닐의 <인형공장>은 화가가 되고 싶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림은 물론 기본적인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아이리스라는 여성이 등장하는 19세기 런던의 수정궁이 완공되던 시대적 배경을 지닌 소설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최근에 읽었던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영화<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속의 여류화가들의 고단한 역사가 무겁게다가오지만 수집가 사일러스를 중심으로 읽는다면 소설<향수>가 떠오른다. 또 누군가 자신에게 집착하다못해 집요하게삶을 흔드는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해나가는 강인한 모습은 <미니어처리스트>를 떠올리게했다. 물론 동생이 자신보다 외적으로 아름다운 언니의 애정행각을 훔쳐보고 또 그 끝이 파멸에 가깝다는 점에서는 영화<팻걸>과 <테일즈 오브 테일>까지 연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언급한 책 3권과 3편의 영화까지 다 봤다면 이 소설이 얼마나 흥미롭고 놀라운 흡인력을 가진 소설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자면 ‘왕립미술원’과 관련된 화가들의 이야기까지 끝도 없이 이어갈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연계를 다 무시하고 ‘인형공장’이라는 제목이왜 붙여졌는지에 대해 얘기 보자면 당시의 여성은 ‘예쁘고, 정숙하며, 삶의 주인이 당연히 여성 자신이 아닌 부모 그리고남편’이었다. 마치 ‘인형’처럼. 결국 인형가게에서 견습생으로 있거나 남성화가의 모델로 움직이지 않는 인형처럼 곁에있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그 시대의 그 장소의 모든 여성이 인형이였으며 결국 세상 자체가 ‘인형공장’이었던게 아닐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면 시대가 언제든 또 상황이 어떻든 성별을 떠나 인형이길 자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리스가 위험에 빠졌을 때마다 루이가 구해주길 바라기만 했다면 어땠을까. 마치 로즈가 얼굴의 상처가 마음으로까지 번져 동생 아이리스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말이다. 돈 때문에 동물의 사체를 모을지언정 구걸하지 않았던 앨빈이 아이리스의 배려를 값싼 동정이라며 거부하지 않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제대로된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어제대로된 사랑을 줄 수 없던 사일러스와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인 내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지금 내가 머무는 이곳은 인형공장인가, 아닌가?
아니라면 나는 진정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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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내일 - 기후변화의 흔적을 따라간 한 가족의 이야기
야나 슈타인게써.옌스 슈타인게써 지음, 김희상 옮김 / 리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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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 옌스 슈타인게써 부부가 쓴 <세계의 내일>은 아이4명과 함께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남아프리카, 호주 그리고 가족이 사는 독일 오덴벨트까지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직접 듣고 경험한 기후변화에 대한 여정을 담은 책이다. 기후변화라는 단어만 보고 쓰레기로 가득찬 해안이나 먹을 것이 없어 야위어가는 동물들,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에 시든 꽃들의 장면을 마주할 것이 부담스럽거나 ‘뻔하다‘란 느낌으로 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진짜 후회했을 것 같다. 책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 주민들의 생활 면면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을 미래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이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 이상의 어떤 위험이 초래되는지 자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개 썰매를 타고 나가 물개를 잡는 사냥꾼도 아니고 몇 만마리의 순록을 이끌어 가는 원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하가 녹아 바다로 스며들면 염도가 낮아지고 그로인해 대기가 지나치게 따뜻해질 경우 생태계에는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씨를 내리고 소멸한 식물이 봄이되어 다시 피어나야 하는데 때도 아니게 따뜻해지면 미처 피어나지 못한 식물은 그대로 사멸한다. 일부 식물이 사멸하면 그 식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을 해야하는데 앞서 언급한 순록의 경우 얼음이 굳게 얼어붙어야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때 기온이 따뜻해져 얼음이 얕게 얼거나 너무 빨리 녹아버리면 얼음인 줄 알고 건너던 순록들은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고 2009년에 이런 사고가 실제 발생해 300마리의 순록이 물에 빠져 죽었다. 슈타인게써 부부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정치인들도 만나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원주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에 원주민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책에는 물개를 사냥하고 북극곰을 사냥 해 그 가죽을 벗겨낸 사진도 실려있는데 이를 두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사냥을 하는 이들은 무분별하거나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냥할 수 있는 종이나 수를 제한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석탄, 가스, 석유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기후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들이 사냥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보트나 차량이 아닌 개 썰매로 사냥한 고기를 함께 나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 아이들과 함께 험난한 지역을 떠나는 것 또한 부모로서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저렇게 아이들과 여러 곳을 다니며 진짜 자연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슈타인게써 부부가 마냥 부러울 수도 있다. 부모된 입장에서는 내 아이에게 이들 부부처럼 생물의다양성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해졌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에코백을 사용하는 수준으로는 희망적인 ‘세계의 내일‘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없다. 소비활동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것, 타인에게 보여주기 식 소비에서 벗어나 환경과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위한 수정이 요구된다. 덜 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덜 구매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하고 기름을 넣는 차가 아니라 전기로 이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내일>속에는 환경, 문화, 교육, 생태를 위해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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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역사와 만날 시간 - 인생의 변곡점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은 사람들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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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면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책<마흔, 역사와 만날 시간>에도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의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해줄 뿐 아니라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된 스승이라고 하는데 마흔이란 나이가 되다보니 내가 제자였을 때 그런 스승을 만났느냐를 떠올리기 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잠시였지만 '가르치는 입장'이었을 때 과연 그렇게 좋은 모습이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저자도 말한 것처럼 스승과 제자사일 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 배우자 및 친구 그리고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책에서는 특히 직장에서의 처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무래도 마흔이다보니 사회생활을 한참 할 시기로 후한 광무제 때의 명장 마원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마흔이 되었다고 누구나 어느 정도위 위치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정상에 오른 것 같아도 아직 올라야 할 길이 남거나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자신의 재량을 자랑하던 마원에게 그의 형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뛰어난 장인은 작품이 완성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법이다. 너는 큰 재목이니 늦게 완성될 것이다. 지금은 부디 자중하라"며 야단쳤다. 131쪽


앞서 공자의 이야기에서 나왔지만 나의 잘못이나 실수, 혹은 가벼운 처사에 진정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감사해야한다. 하지만 나이가 마흔이되면 누군가의 조언도 모두 잔소리처럼 들리거나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으로 건넨 말들이 잔소리로 남기도 한다. 마원의 이야기에 덧붙여진 것이 매순간을 마치 전성기가 찾아온 것처럼 노력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며칠 전에 서평을 적었던 <늦깍이 천재들의 비밀>에서도 핵심 내용이 바로 이거였다. 좀 늦더라도 혹은 타인과 비교했을 때 우울해지더라도 어제의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정진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흔 역사와 만날 시간>이란 제목만 보고 아직 마흔이 안되었으니까, 혹은 이미 마흔은 오래전에 지났다고 무심히 지나치진 않았으면 좋겠다. 마원처럼 때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동시에 나이들수록 관계라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는 지나버린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일들을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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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에 선 유니콘 - 완주를 위한 안내서
유효상.장상필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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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에 선 유니콘>은 국내에소 10여곳에 해당되는 1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수익을 내기에는 아직 이른 '유니콘'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유니콥스로 전락하지 않고 엑시콘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이야기한 책이다. 주요 내용은 유니콘 기업들이 이전에 없었던 완전하게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서비스에 부족한 점이나 개선점을 찾아내서 더한 '카피캣'기업에 관한 내용으로 저자들에 의하면 국내에서는 '카피캣'이란 표현이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것을 베꼈다고 보는 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반면 중국에서 주요 기업으로 손꼽히는 텐센트의 회장은 쿨하게 자신의 기업이 카피캣임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그저 고양이의 흉내내기에 머물지 않고 사자로 거듭났다고 까지 말했다고 전하며 진짜 호랑이가 되는 '카피타이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만 적으면 다소 의아할 것이다. 베끼는 사업이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 와닿지가 않을텐데 기술을 훔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의 아이폰과 유사한 기능의 휴대폰을 개발한 삼성도 카피캣에 해당되며 배달대행서비스를 하고 있는 몇몇 기업역시 최초의 기업을 모방한 카피캣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책에서는 각 분야별 성공한 카피캣 업체를 소개해주는데 좀전에 말했던 배달대행외에도 그루폰을 카피캣 한 사례로 쿠팡외에도 위메프 티몬이 이에 해당한다. 쿠팡의 경우는 '다음 날 배송'서비스를 도입하여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사실 마트가 근처에 있거나 쇼핑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맞벌이 부부나 한참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젊은 신혼부부에게는 다음 날 배송이 정말 필요한 서비스 중 하나였다. 반면 티몬의 경우는 경쟁업체에 비해 판매하는 품목의 종류를 확대하는 한편 가격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런가하면 과거에도 소비자의 소비패턴과 관심분야를 수집, 구독자에게 선별된 쇼핑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있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NS를 하다보면 관심분야와 관련된 쇼핑몰 배너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아예 개인의 취향은 물론 추천할 수 있는 정보까지 서비스화 해주는 것으로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해당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업체가 포함되었다고 보면 된다. 


유니콘의 가치평가는 세계적 규모의 투자 주체들이 위험을 고스란히 안은 채 '진흙 속 숨은 진주'를 찾는 일이다. 당장 몇 달 뒤 유니콘의 가치가 몇 배, 몇십 배로 뛰어오를 수 있고, 또 사업이 잘 안되면서 아예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중략- 상장이 돼서야 일반인들도 주식을 사는 등 가치 평가에 참여할 장이 열린다. 89쪽


이제는 기업 규모, 온-오프라인 구분등이 무의미할 정도로 국내 배달 시장은 속도와 편의성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추세다. 결국 기존의 대량- 저가배송에서 고객 중심의 라스트 마일 배송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퓨처 유니콘 탄생의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260쪽



유니콘 기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개인사업자도 아니지만 이런 책이 나올 때면 꼭 찾아보게 되는 이유가 앞서 언급한것처럼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서비스가 어떤 구조로 생산 제공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기업이 앞으로 상장되고 또 투자및 창업할 수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똑똑하게 쇼핑한다는 것이 예전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불편해 하고 필요하다고 느꼈던 서비스가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카피캣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나 차별화된 전략을 더하는 것은 아마 유니콘 기업을 떠나 모든 사업이 다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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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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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작가의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읽으면서 지난 2월에 감상했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렸다. 남편이 될 사람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보내야하는 여성의 삶도 그렇지만 제대로된 그림을 배우고 싶어도 배우거나 클래스를 여는 것이 남성화가에 비해 수월하지 않았던 화가 마리안느의 삶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된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는 여성이 접하는 일상들을 그려냈다. 동시대의 남성화가들이 야외로 나가 풍경을 담을 때 집안에 갇힌 그녀들이 그릴 수 있는 소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많지 않았을 뿐 그들이 붓을 다루는 예술적 능력마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카사트는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대신 여성들을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존재로 품위 있게 표현했다.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작품들은 마치 마돈나와 아기 예수를 그린 종교화의 구도를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카사트가 육아를 여자라면 누구나 쉽게 해내는 그림자 노동으로 보지 않고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로 생각했음을 드러낸다. 99쪽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이나 메리 카사트의 <푸른 암페어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작품을 보면 여성이라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여성이기에 그릴 수 있는 작품처럼 다가왔다. 여성혐오자였던 드가의 도움을 받을 만큼 카사트의 실력은 당시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카사트의 경우는 이후에도 주로 아이와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소재가 그것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육아에 숭고함을 그림으로 살려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최고의 삽화가 였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소와 소재의 제약 뿐 아니라 메리안의 경우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안에 머물러야만 했다. 메리안이 관심을 둔 것은 자연, 그중에서도 꽃과 곤충들이었다. 메리안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카야'를 떠올렸다. 가정폭력으로 모두가 떠난 오두막에 홀로 남아 자연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던 카야의 모습이 메리안과 정말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1665년, 메리안은 열여덟 살에 의붓아버지 제자인 요한 안드레아스 그라프와 결혼했는데 그는 술주정뱅이인 데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메리안은 남편 대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자수의 도안을 그려 팔았고, 양피지와 리넨에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다행히 그녀의 그림은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164쪽


마지막으로 소개할 화가는 파울라 모더존 베커다. 그녀의 이야기를 접할 때는 비극적 삶과 사실적 묘사로 잘 알려진 프리다칼로를 떠올렸다. 모더존 베커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또 그 경험을 통해 어머니라는 존재 그자체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면 프리다 칼로는 한 평생 자신의 아이를 원했으나 낳지 못함과 동시에 여성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면서도 한 세상을 맞이하게 되는 경이로움을 화폭에 담았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동시에 유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가 남성작가가 경험할 수 없는 월경을 표현했듯 모더존 베커는 남성들이 그려오던 정형화된 여성누드가 아닌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자리하는 '어머니'의 누드를 그렸다. <누워 있는 어머니와 아이> 작품을 보면 엄마와 아이라는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안겨져있던 그 포근했던 시절이 느껴져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라는 제목이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고 몇몇 화가들의 안타까운 생애는 성별을 떠나 속상하기도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잘 "싸워준'그녀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특히 이전에 알지 못했던 예술가과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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